소설리스트

48화 (48/270)

48화

꽈악-

장봉도 야달선착장에 배를 묶은 남궁은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여기엔 마물이 나오지 않은 건가?’

영종도를 습격한 리자드맨 떼와는 달리 섬은 조용했다.

‘마물의 수는 밀집된 사람 수에 비례한다는 얘기가 있긴 했는데…….’

지옥문이 열린 뒤 알렉 트라만이 세운 초국가연합 클랜에는 단순히 마물을 사냥하는 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태를 분석하는 연구가부터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던 과학자, 그리고 분석가와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까지 있었다.

남궁이 기억하는 것은 그들 중 한 명이 냈던 가설(假說)이었다.

하지만 확인할 순 없었다.

증거는 불충분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마치 고독(蠱毒)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넣을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 과학자가 한국계였던 것 같은데…….’

남궁은 어째서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오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속도를 높였다.

타다다……!!

그렇게 수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그의 눈앞에는 해변가가 나타났다.

“저긴 것 같은데…….”

남궁이 기억하기로 해변 아래 봉우리가 져 있는 곳에 분명 동굴이 있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 가려져 동굴의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물때가 맞지 않는군.”

시각은 밤에 가까웠고 어느새 만조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저런 걸 다 따질 때가 아니지. 지금은 무엇보다 서둘러야 하니까.”

남궁은 야차 보따리를 펼쳤다.

그리고 스크롤을 내려 빠르게 목록을 보던 그는 몇 개의 아이템을 구입했다.

넘버링 8231.

이름 : 아트란 심해복의 허파

등급 : 매직(최고)

▶가격 : 15,000헤드

▶ 10분간 물속에서 자유롭게 숨을 쉬게 해준다.

▶ 소모 시간 전까지 재사용 가능

넘버링 19983.

이름 : 피쉬맨의 물갈퀴

등급 : 매직(최고)

▶가격 : 5,000헤드

▶ 물속에서 수영 속도를 2배 증가시켜 준다.

▶ 소모 시간 전까지 재사용 가능

“써번트를 잡고 받은 헤드 보상을 여기서 다 쓰는군…… 어쩔 수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보따리 속 물건값은 사기야.”

순식간에 2만 헤드가 사라진 남궁은 입맛이 쓴 듯 중얼거렸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얻을 수 있는 헤드가 많아지기는 하지만 매직 등급만 되도 가격이 널뛰기 하듯 뛰어오르니, 사실상 초반엔 구매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종의 희망고문일 뿐이지.’

저 포션만 있었다면…… 저 무기만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보따리 속 물건들을 보며 좌절하는 것.

하지만 카니발은 무엇보다 초반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으니…….

희망이 절망이 되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남궁의 기억 속을 다시 스치고 지나갔다.

“후우…….”

남궁은 상념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와서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으면서도 철거머리처럼 순간순간 기억들은 집요하게 그를 붙잡았다.

풍덩-!

남궁은 작은 허파를 입에 물고는 물갈퀴를 발에 끼워 넣고서 바다 아래로 들어갔다.

* * *

보글…… 보글…….

파도가 거센 밤바다를 헤치며 남궁은 차가운 물 아래로 깊이 들어갔다.

물갈퀴 덕분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에 두 개의 동굴 입구가 보였다.

해골 바위 혹은 투구 바위라 불리는 봉우리 아래에 있는 동굴의 깊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저기다.’

남궁은 주위를 살피며 좀 더 아래로 내려갔다. 동굴 입구를 통과하자 공동처럼 생긴 공간 안쪽에 새하얀 알이 하나 있었다.

‘엄청 크네.’

눕혀 있는 알의 크기는 거의 그의 키만큼 컸다. 기계를 쓰지 않는 이상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가져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전대에 넣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 생명체는 넣을 수 없습니다.

알 위에 손을 가져가자 경고와 같은 알림이 들렸다.

“훕……!!”

남궁은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알 아래에 손을 집어넣고는 있는 힘껏 들어 올렸다.

다행히 물속이라 부력 덕분에 알은 걱정과 달리 어렵지 않게 들썩였다.

쿠웅…….

알을 물속에 띄우고서 몇 걸음 걸어가던 남궁은 동굴을 나가기 바로 직전, 입구에 다시 알을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충분히 들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가는 길이 험난하겠군.’

솨아아악……!!!

알을 동굴 밖으로 살짝 밀어 넣는 순간, 갑자기 입구 쪽에서 강렬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캬악……!! 캬아아악……!!]

그리고 소용돌이 속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 같은 포효가 들렸다.

‘해마(海馬)들이로군.’

남궁은 어디선가 나타나 동굴의 입구를 포위하듯 빠르게 헤엄치는 마물들을 바라봤다.

꼬리를 말아 통통 튀듯 헤엄치는 놈들은 분명 거대한 해마를 닮았지만, 튀어나온 주둥이에서 세 가닥의 날카로운 촉수들이 흐느적거리는 모습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알을 지키는 파수꾼들.’

남궁은 동굴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가 험난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간조 시간이 되어서 물이 빠지면 놈들도 힘을 못 쓸 텐데…….’

리자드맨이나 피서맨 같은 마물들과 달리 해마들은 강력하지만 오직 물에서만 살 수 있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이 가장 가득한 만조 시간.

게다가 물이 빠지려면 최소한 두어 시간은 더 걸려야 했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고 지금도 계속 마물들이 소환되고 있으니…… 지체할수록 육지로 올라가는 건 더 힘들어진다.’

결국 저 앞에 있는 해마들을 모두 사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훕……!!”

남궁은 서펀트의 알을 동굴의 입구 바로 앞에 두고서 고개를 돌렸다.

[캬악……! 캬아악!!]

수십 마리의 해마들이 마치 늪의 미꾸라지처럼 얽키고설키며 입구를 막기 시작했다.

“알을 지키고 있어.”

남궁이 아스와 영혼 병사들을 불러내 주위에 세웠다. 그러고는 슬쩍 고개를 돌리며 조금 전 알이 있었던 자리를 훑기 시작했다.

‘분명 여기 있을 텐데…….’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와 벽을 살피던 남궁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뭔가를 발견했다.

‘찾았다.’

* * *

[어떻게…… 저자가 써펀트의 알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 거지? 이건 말도 안 돼!! 반칙이라고!]

[무슨 반칙이야? 2번째 파수꾼인 써펀트는 문이 열리고 난 뒤 지정된 장소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하지만 놈이 알을 품기도 전에 죽었으니 웨이브 때 알이 소환되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지.]

[이상하지!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 우리가 의심하는 건 저자가 어떻게 알이 있는 장소를 단번에 알았느냐는 거다.]

[낸들 아나.]

둥근 원형 탁자 위에 대화를 나누는 그림자들은 대부분 화가 난 목소리였다.

[저놈이 회귀자가 틀림없어. 제약을 걸어야 해.]

[무슨 증거로? 저 녀석은 란의 둥지에서 살아 돌아왔다. 회귀자라면 그 안에 있던 놈이 그를 살려 보냈을까?]

[그건…….]

[확실히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

이죽거리는 하나의 목소리.

그리고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목소리와 의심 가득한 목소리까지.

탁자 아래에는 여러 개의 목소리가 섞여 혼란스러웠다.

[설령 그가 회귀자라 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래. 카니발의 참가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위상의 규율에 어긋난다.]

[퀘스트를 미리 불러내는 것도 간신히 합의하에 가능했던 일이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시험은 끝냈다. 그리고 그는 그걸 통과했어. 더 이상 그를 의심하는 것은 안 돼.]

[…….]

의견이 갈라졌다.

그럴 수밖에.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우(无)는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인데…… 회귀자의 시간은 그 어떤 먹잇감보다도 놈에게 달콤한 것일 텐데.]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 놈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니까. 어쩌면 우리가 녀석에게 괜한 빌미를 준 것일지도 모르지.]

[젠장…… 골치 아프게 생겼군.]

[뭘 걱정해? 놈은 둥지에 갇혀 있다. 선대의 선대부터, 그리고 지금 우리까지. 모든 위상들이 놈의 결계를 확인하고 있는데.]

[그래.]

요르는 일렁이는 그림자들을 바라보며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림자가 흔들리는 모습이 강할수록 위상들의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써펀트의 알이 있는 곳으로 가다니…… 눈에 띄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아예 대놓고 활보하는군.’

그는 남궁의 행보를 보며 오히려 자신이 살이 떨리는 기분이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애가 타는 위상들에게 남궁은 마치 보란 듯이 미래의 지식들을 활용하고 있었다.

‘위상들은 서로의 계시자가 누군지 알지만 계시자 본인들은 누가 누구인지 아직 모른다.’

남궁이 만난 계시자는 둘.

그중에서도 그가 자신이 회귀자라 밝힌 사람은 니나가와 에리카.

‘그렇다면 역시 란의 둥지를 계획한 건 안갯속 길잡이겠지.’

그는 턱을 괸 채 가장 일렁이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냥 두고 볼일은 아니지.’

이에는 이.

계시자에게는 손을 대지 못해도 위상들끼리의 싸움은 규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요르는 뱀의 이빨이 결코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의외야. 어째서 우(无)가 남궁을 살려 보낸 것일까.’

그의 기억으로 지금껏 수많은 카니발 중 회귀에 성공한 사람은 남궁뿐이었다.

위상들의 말처럼 우(无)는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그렇기에 남궁이 가진 기억은 우(无)에게는 분명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을 터.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겠지…….’

요르는 어쩌면 회귀자를 찾기 위한 욕심이 오히려 괜한 벌집을 건들인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없다.]

[그래. 그는 시험에 통과했으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 써펀트의 알을 부화라도 시킨다면…….]

[그럴 리가. 아무리 회귀자라 하더라도 써펀트의 알을 부화시킬 수 있을 리 없어.]

[그래. 저건 특수한 조건이 있지 않는 한…….]

한숨이 섞인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요르는 피식 웃었다.

[회귀자 아니라니까? 란의 둥지에서 살아온 녀석을 회귀자로 몰아가는데, 솔직히 말해서 내가 아니라면 이제 너희들 중에 회귀자를 뽑은 위상이 따로 있다는 소리잖아.]

요르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할 수 있는 게 왜 없어? 이번엔 누가 시험대에 오를지 정해야지.]

[그, 그건…….]

그의 말에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요르는 그게 누군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누가 다음 차례가 돼야 할지 모두 알고 있지. 당연히 가장 처음 란의 둥지를 제안한 자가 그 죗값을 짊어져야 하지 않겠어?]

흔들리는 그림자.

요르는 안갯속 길잡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 뭘 원하는 거지?]

[글쎄. 쓸데없이 너희가 30년 뒤에 있을 일을 끌어다 썼으니 까짓것 나는 50년 뒤에 있을 일을 앞당겨 너희 계시자에게 줘볼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억지야!]

[그래. 우리도 자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잖은가.]

[이제 와서 미래에 준비된 퀘스트들을 더 여는 건 좋지 않아.]

위상들은 요르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반발하기 시작했다.

‘분명 일곱 뱀의 계시자가 회귀자다.’

‘그래야 하는데…… 어째서 살아남은 거지?’

‘이대로 있다가는…….’

행여나 자신의 계시자가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좋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너희들의 계시자를 시험하는 것 대신 내 계시자에게 혜택을 주는 거다.]

[혜택이라니……?]

[회귀자가 알지 못하는 미래의 일을 불러내는 것보다, 회귀자가 알고 있는 25년의 시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하나의 혜택을 내 계시자에게 주겠다는 뜻이다.]

[으음…….]

[그렇게 된다면 형평성에 맞겠지. 회귀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는 이미 알고 있는 혜택일 테니까.]

요르는 말했다.

‘회귀자가 누군지 모른다고?’

‘저 가증스러운 놈.’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분명 입이 찢어지게 웃고 있겠지…….’

‘가뜩이나 격차가 벌어져 있는데 여기서 저 녀석의 계시자가 또 혜택을 받는다면…….’

하지만 모두의 생각은 결국 하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 계시자가 시험에 드는 것보단 낫지.’

[단 한 가지 약속을 해줘야겠다.]

[뭐지?]

[회귀자는 25년까지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너의 계시자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25년간의 혜택을 골라서 받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 25년간의 기억은 회귀자의 특권이지 너의 계시자의 특권이 아니니까.]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위상들은 마치 서로 말을 맞춘 것처럼 동의했다.

[2번째 문이 열린 지금 시점까지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라면 용인하겠다. 어떤가.]

[나 역시.]

‘뭐, 지금 얻을 수 있는 혜택이라고 해봐야 매직 등급의 무구 정도 수준이니까.’

‘특별히 대단한 것은 아니다.’

‘……충분히 승산은 있어.’

[알겠다. 그리하도록 하지. 2번째 문이 열린 이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된다 이거지?]

하지만 그들의 생각을 읽은 것인 냥 오히려 요르는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그래. 뭘 원하지?]

[별거 없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

[잠깐. 행여나 써펀트의 알을 부화시키는 방법 같은 걸 알려달라는 요구는 안 된다.]

[그래. 설령 회귀자라 할지라도 그 방법을 알지는 확실하지 않아.]

[옳은 말이다. 회귀자가 모르는 정보를 알려주는 건 너무 큰 혜택이다.]

[거참. 쫑알쫑알 시끄럽네.]

[…… 뭐?]

그는 7명의 위상들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써펀트의 알을 부화하는 방법 같은 걸 알려주라고 하지 않아. 나는 아주 흔한 아이템 하나를 그에게 제공해 주라는 것뿐이니까.]

[그게 뭐지?]

요르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성장의 비약.]

마물을 성체로 진화시키는 물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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