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써펀트를 성체로 성장시키려고? 뻔한 수를 쓰는군. 우리가 그런 걸 수락할 것 같은가?]
[그래. 써번트는 2번째 문의 파수꾼이다. 월드 보스란 말이야. 그 정도의 마물을 계시자가 다룬다?]
[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잔머리를 굴리는군.]
요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림자 속 나머지 위상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욕심이 과해. 그냥 보따리 안에 있는 물건 중에 하나를 주는 걸로 끝내게.]
[그래. 대리자 일족에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 중에 현 시점에서 레어 등급의 도구들까지 있으니 손해는 아닐 텐데.]
하지만 그런 그들의 말에 요르는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어째서? 성장의 비약은 기껏해야 매직 등급에 불과한 소모품이다. 그리고 3번째 문이 열리고 나면 충분히 구입할 수 있는 그다지 대단한 물건도 아냐.]
그는 턱을 괴며 말했다.
[3번째 문이 열리고 나면 소환수의 밤이 시작될 테니까. 안 그래?]
[…….]
[…….]
그의 한마디에 그림자들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3번째 문을 기점으로 10번째 문이 열릴 때까지 위상들은 차례로 카니발의 생존자들에게 은총을 내릴 수 있게 되지.]
그 첫 번째 은총이 바로 가시덩굴의 미망인의 소환수의 밤이었다. 아포칼립스에서 동료를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배신과 배반이 일어나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환수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잖아? 그녀의 계시자가 소환수를 다루는 테이밍의 자질을 가진 드루이드라는 사실을 말이야.]
[그게 뭐?]
[그게 뭐? 위도우.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정도껏 깔아야지.]
[요르……!! 진명을 부른 것은 규율로 금하고 있을 텐데?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함세!]
가시덩굴의 미망인의 진짜 이름이 요르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나머지 위상들이 당혹과 분노를 터뜨렸다.
[규율? 네놈들은 내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부르면서 뭐 그런 같잖은 짓을 하라는 거지?]
[그건 당신이 저지른 짓 때문이잖아!!]
[그러게 말이야.]
[흥…… 자신들의 안위밖에 모르는 놈들이라니. 하긴 그러니 이런 짓을 하는 거겠지. 겉으론 동료가 없는 자들을 위한 은총이라고 하지만 결국 자신의 계시자에게 강력한 소환수를 주기 위함이잖아?]
[그만하지?]
[화낼 필요 없어. 나머지 위상들도 마찬가지니까. 은총이란 이름하에 자신들의 계시자를 위한 몰아주기일 뿐이지. 그러니 잊지 마라. 마지막 은총이 나라는 걸 말이야.]
일렁이는 그림자가 새하얗게 변하더니 한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너. 누가 봐도 써펀트의 알을 부화시켜서 성체로 만들 계획이잖은가. 네 계시자에게 내 은총보다 더 빨리 소환수를 갖게 하려고 말이야.]
그녀의 눈동자는 에메랄드처럼 빛났고 오만가지 풀들이 엉켜 있는 덩굴로 된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내가 준비한 소환수의 밤을 완전히 물 먹이려는 생각이겠지!]
[쫄리긴 한가 보군. 그런 헛소리를 하니 말이야.]
[……뭐, 뭐라고?]
[드루이드도 아닌 내 계시자가 써펀트의 알을 정말로 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조금 전 다들 했던 말을 잊었나? 부화시킬 리 없다고 말이야.]
[그, 그건…….]
빠득-
가시덩굴의 미망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상황에 딱 맞는 말이 있지. 내 계시자가 전에 그런 말을 하더라고.]
요르는 미망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쫄리면 뒈지시든가.]
* * *
“……남궁 씨?”
창고 안에 있던 박효주는 알을 집어 던진 사람을 확인하고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네? 둘이 혹시 이거야?”
려진은 그녀를 보며 새끼손가락을 펼쳐 흔들었다.
“나랑 저 사람하고 사귀냐고? 쓸데없는 헛소리하지 말고 앞이나 보시지?”
“뭐, 어때. 전쟁 중에도 사랑은 싹트는 법인데. 나도 그이를 만난 게 마카오에서 항쟁하던 시절이었는걸?”
“……닥쳐주시지.”
박효주는 려진을 향해 으르렁거리듯 말했지만 어쩐지 려진은 그런 그녀를 귀엽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인생 선배로서 하는 말인데 마음에 들면 잡아. 특히나 이런 뭣 같은 세상이 되어 버렸을 땐 더더욱 사랑을 해야지. 안 그래도 팍팍한데.”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 애들을 죽여 버리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 주제에…… 잘도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군.”
“적이랑 동지는 다르지.”
“동지? 당신하고 내가? 지나가는 개가 웃겠네. 세상 진짜 망하려나 보다. 조폭 새끼들이 감히 국정원과 맞먹으려고 하다니 말이야.”
콰앙---!!!
려진의 대답은 밖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들을 수 없었다.
“누, 누구야?!”
창고 주위에 세워진 가로등 아래에서 흠뻑 젖은 몸으로 걸어오는 남궁을 보며 아이들은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죽는 줄 알았네…… 빌어먹을 알 더럽게 무거웠어. 거기 너희들 할 일 없으면 저거나 옮기는 것 좀 도와주는 거 어때?”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대충 짜면서 남궁은 지친 듯 부두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스으으으…….
차가운 밤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열이 오르는 듯 그의 어깨에서 새하얀 김이 피어나고 있었다.
“너희들. 힘이 남아돌면 저거나 옮기는 거 도우는 게 어때. 물속에서는 몰랐는데 더럽게 무겁네.”
철푸덕-!!
남궁은 알을 묶어놓은 해마의 내장 끈을 바닥에 뜯어 내 그들의 앞에 던지며 말했다.
“아, 네? 네…… 네?!”
남궁의 앞에 있던 아이는 자신의 발밑에 떨어진 내장을 보며 황급히 소리쳤다.
딱-!!
“아얏!!”
그의 머리가 앞으로 꺾였고 남궁은 뒤통수를 후려갈긴 성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야, 너 뭐하냐? 미쳤어? 저 인간을 돕긴 뭘 도와? 씨발…… 방금 나 죽을 뻔한 거 안 보여??”
“미, 미안…….”
얼얼한 뒤통수를 문지르는 아이를 거칠게 밀어 버리며 성우는 남궁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찍-
남궁의 바로 앞에 침을 뱉은 성우가 그의 뺨을 툭 치며 말했다.
“어이 아저씨, 이거 안 보여?”
바지를 걷자 조금 전 바이크가 넘어지면서 아스팔트에 긁힌 상처가 보였다.
“…….”
남궁은 그걸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저거 아저씨 짓이잖아. 내가 저거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어? 어떻게 책임질 거야?”
“죽을 뻔한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러는 너희. 어려 보이는데 면허는 있어서 타는 거냐.”
꾸욱-
남궁은 귀찮다는 듯 성우의 정수리를 누르듯 앞으로 밀어 당기며 지나쳤다. 무게 중심이 쏠린 성우는 볼쌍 사납게 앞으로 고꾸라졌다.
콰당……!!
“아이 씨발!!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바닥에 엎어졌던 그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일어섰다. 경험이 있는 자라면 자신을 이토록 쉽게 넘긴 남궁에 대해 경계를 하겠지만 성우는 그런 걸 살필 여력이 있는 자가 아니었다.
“야!! 거기 멈춰!!”
그의 몸에서 붉은 오러가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주위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이 되었다.
‘이거 봐라?’
그 순간 남궁은 의외라는 듯 자신들 둘러 싼 아이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면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세상이 괴물 천지인데 그딴 걸 누가 신경 써? 사람 죽여도 아무렇지 않은 세상이라고. 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이 새끼야.”
부우우웅---!!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앞에 있던 아이들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부웅! 붕!! 부우웅!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모양새였지만 속도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콰직……!!
게다가 이따금 쇠파이프가 땅에 부딪힐 때마다 놀랍게도 아스팔트 바닥이 퍽퍽 부서졌다.
인간의 힘이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나머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이 부서질 정도라고? 도대체 저건 무슨 능력인 거야?’
창고 안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박효주는 날뛰는 아이들을 보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네 양아치가 얻을 능력이 아닌데. 이제 보니 골목대장 정도는 하는 모양이구나? 너.”
남궁은 가장 짙은 오라를 뿜어내는 성우를 보며 의외라는 듯 피식 웃었다.
군신화(君臣化).
자신의 주위에 룬 획득률을 올려주는 전태호와 같이 범위형 자질이었다.
시전자의 주위에 원하는 대상자들의 신체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힘이었다.
‘군주의 자질이라고도 하지. 제법 유능했던 클랜과 연합의 장(長)들이 가지고 있던 자질인데…… 이걸 여기서 볼 줄이야.’
마력과 함께 아주 희귀한 능력이었다.
남궁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성우를 바라봤다.
“저기, 아저씨.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가지고 있는 거 내놓고 가셔. 성우가 화나면 장난 아니니까.”
조금 전 어리둥절하게 남궁의 말을 따르려고 했던 아이가 파이프를 든 채 조금은 떨리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아, 그래?”
남궁은 아이의 코를 살짝 비틀었다.
“아얏!!!”
몸을 부르르 떠는 아이의 코를 조금 더 꺾자 우둑! 하는 소리와 함께 코뼈가 부러졌다.
“그래서?”
“아악! 내 코!! 아아악!!”
고통에 바닥에 엎드리듯 주저앉은 아이를 발로 툭 밀며 앞을 바라봤다.
퍼억-!!
날아오는 각목을 피하며 남궁의 주먹이 다른 아이의 옆구리에 박혔다.
“……컥!!”
그의 주먹에 맞은 아이의 입에서 침과 피가 엉킨 진득한 점액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무리 신체가 강화돼도…….”
새우처럼 바닥에 웅크리고 쓰러지는 그의 뒤로 두 명이 달려들었다.
“……죽어!!!”
어디서 구한 건지 그들은 있는 힘껏 잭나이프를 휘둘렀지만, 엉성한 솜씨로는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그를 맞힐 수 있을 리 없었다.
부웅-!!
남궁이 나이프를 피하면서 슬쩍 다리를 걸자 오히려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는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퍼억-!!
바닥에 쓰러진 녀석의 등을 잡아들어 올리자, 나이프를 찌르려던 나머지 녀석이 황급히 손을 거두다 그와 부딪혔다.
“아픈 게 안 아파지는 건 아니거든.”
남궁은 손목을 비틀어 나이프를 빼앗아서는 그대로 두 사람의 허벅지에 한 대씩 찔러 넣었다.
“으악! 으아아악!!”
“사, 살려……!!”
나이프에 찔린 두 사람은 마치 당장에라도 죽을 것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뭐, 뭐야? 저 아저씨.”
“완전 괴물이잖아?”
“서…… 성우야…… 어떻게 하지?”
기껏해야 고등학생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이었다. 한두 명 나가떨어지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기세를 죽이기엔 충분했다.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저 새끼 한 명뿐이라고! 우리 쪽수가 몇인데 한 놈한테 왜 쫄아!”
“그렇군. 쪽수가 부족한가.”
스아아악……!!
그 순간 남궁의 발아래에서 검은 연기가 흩어졌다.
“흐, 흐익?!”
“아악!”
“으아아악……!!”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 어느새 나타난 영혼 병사들이 그들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
콰직!!!
아이들보다 2배는 큰 아스가 한 명의 뒤통수를 움켜잡고서 바닥에 찍어 눌렀다.
“컥!!”
부우우웅-!!!
“그만.”
남궁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아스의 도끼가 쓰러진 아이의 목에 아슬아슬하게 닿기 직전에 멈췄다.
주르륵…….
눈앞에 멈춰 있는 거대한 날을 본 순간, 입고 있던 청바지가 축축하게 물들었다.
“이제 대충 쪽수는 맞춰진 것 같은데?”
남궁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성우에게 쏠렸다.
“이 씨발……!!”
그의 도발에 성우는 절룩거리는 다리로 있는 힘껏 달려 남궁에게 뛰어올랐다.
다다다닥……!!
순식간에 좁혀진 두 사람의 거리.
부웅-!!
성우가 주먹을 날렸다.
권투라도 배운 모양인 듯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자세가 잡혀 있었다.
“뒈졌어. 너!!”
하지만 남궁은 그의 속도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손바닥으로 내지르는 주먹을 가볍게 빗겨 쳤다.
“저, 저게 가능한 거야?”
“이런 미친…….”
남은 아이들은 목에 닿을 듯 세워진 검날조차 잊은 채 두 사람의 싸움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탁……!! 타닥……!
성우가 휘두른 주먹이 남궁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간 순간, 남궁이 손바닥으로 성우의 주먹을 위로 쳐 올렸다.
“……?!”
마치 만세를 하는 것처럼 양팔이 충격에 튕겨 나가며 펼쳐졌다.
“아.”
순간 어두워진 얼굴과 함께 탄식처럼 나온 외마디.
퍼억--!!!
남궁의 주먹이 성우의 갈비뼈를 후려쳤다. 순간 그의 허리가 디귿 자로 꺾였다.
“커, 커컥!!”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성우가 옆구리를 움켜잡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요놈 보게. 군신화뿐만 아니라 그다음 단계인 전신화(戰臣化)까지 쓸 수 있네? 확실히 어린애라 그런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습득이 빠르군.”
오만상을 찡그리는 성우와 달리 남궁은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군신화가 시전자 주위의 사람들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라면 전신화는 그 강화된 힘을 다시 흡수해서 시전자를 강화시키는 힘이었다.
“튼튼하네.”
그런 성우를 남궁은 내려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짐꾼으로 딱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