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무슨…… 헛소리야! 아악!! 자, 잠깐!!”
남궁이 부러진 갈비뼈를 살짝 찌르자 성질을 부리던 성우는 통증에 몸부림을 치며 비명을 질렀다.
“말했을 텐데. 신체 능력이 강해져도 통증은 똑같다고. 경험도 없이 갑자기 얻은 힘. 몸은 강해진다고 정신까지 강해지는 건 아니지.”
“으, 으윽…….”
성우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그래도 말이야. 군신화는 주위 사람들의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지만, 진짜 강점은 강화시킨 능력치를 흡수해서 본인의 능력치를 폭발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거거든. 그걸 깨우치는 건 쉬운 게 아닌데.”
남궁은 여전히 흥미로운 눈으로 말했다.
“싸가지는 없어도 자질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건데.”
“이 씨발! 그래서! 뭐?!!”
“쓸 만한 놈이면 데리고 다녀 볼까 싶어서.”
그의 대답에 성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쳤네. 내가 널 왜 따라가?”
“널?”
“그, 그쪽을…….”
남궁과 눈이 마주치자 성우는 자연스럽게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보아하니 전신화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 네 친구들을 봐라.”
“네?”
성우는 그제야 주위를 훑었다.
“헉…… 헉…….”
“살려…….”
놀랍게도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날뛰던 아이들이 저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헛구역질을 하며 거품을 뱉어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게 어떻게…….”
“군신화는 주위의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어주지. 하지만 그 힘을 회수하는 순간 받았던 버프에 곱절로 대미지를 입는다.”
“모, 몰랐어…….”
“얼마나 오랫동안 군신화를 유지했던 거지?”
“능력을 알게 되고 난 후부터 계속…… 일주일은 되었을 거예요.”
‘군신화를 그렇게 오랫동안?’
성우의 대답에 남궁은 꽤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가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 아저씨. 쟤들 괜찮은 거죠? 야!! 이 새끼들아. 정신 차려!! 얌마!!”
다급히 쓰러져 있는 아이들에게 달려간 그는 공포를 숨기려는 듯 더욱더 큰 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군신화의 지속 시간이 길수록 받은 버프의 양도 많다. 그게 무슨 뜻인지 너도 알겠지.”
툭-
그 순간 성우가 붙잡고 흔들어 대던 아이의 팔이 맥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저거 들어라. 시간 없으니까. 창고까지 옮겨.”
“……피도 눈물도 없네. 당신…… 알고 있으면서 얘기 안 한 거지?”
성우는 울먹이는 소리로 그를 노려봤다.
“네가 전신화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으니까. 그리고 왜 이 상황을 내가 비난받아야 하지?”
“……뭐?”
온갖 감정이 뒤엉켜 있는 성우와 달리, 남궁은 차가울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힘을 쓰는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네 힘은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야. 조심성 없이 저지른 주제에 이제 와서 어려서 서툴렀다 핑계라도 대려고? 지금 같은 세상에서?”
“그, 그건…….”
“네 힘은 양날의 검이다. 그 힘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너뿐만 아니라 네 동료도 강해야 하는 법이야.”
꽈악-
남궁은 쓰러져 있는 성우의 손을 움켜잡았다.
“……!!”
그 순간 성우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를 바라봤다.
밀려들어 오는 힘.
그건 지금까지 흡수한 힘들보다 훨씬 더 강했다.
“개미끼리 서로 아웅다웅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개미가 물어 봐야 코끼리에겐 감흥도 없다.”
“저…… 저도 데려가 주세요.”
성우는 스스로 말을 하고도 놀란 듯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군신화 버프는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야 하는 법이야. 단순히 힘을 빼앗기는 문제만이 아니거든. 마물과 싸우는 순간 네가 버프를 지워 버리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사냥터에서 남 죽이기 딱 좋은 능력이지.”
남궁은 전대에 들어 있던 포션 하나를 꺼내 성우에게 던졌다.
“군신화 빼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냥…… 짐꾼으로라도 써주십시오.”
성우의 말에 남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미 말했잖아. 저거 들어.”
써펀트의 알을 가리켰다.
“리자드맨을 잔인하게 패 죽이던 애예요. 게다가 친구들이 죽자마자 노선을 갈아타는 꼴이라니. 썩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걸요.”
그때 창고의 문이 열리며 나타난 박효주에게 두 사람의 시선이 쏠렸다.
“친구 아니에요. 그냥 길에서 만난 애들이지. 바이크도 그냥 가게를 털어서 훔친 거고…… 그냥 살아남으려고 같이 있던 건데요.”
시멘트 포대를 나르듯 익숙하게 써펀트의 알을 등에 짊어진 성우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남으려고 아줌마가 아니라 저 아저씨에게 붙은 거고.”
“아, 아줌마?”
“창고 안에서 쫄아서 훔쳐보는 사람보단 낫죠. 안 그래요?”
“누가 쫄았다고 그래?”
“가시죠. 형님.”
박효주는 당돌한 성우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나 참, 엄청 뻔뻔한 녀석이네.”
“고딩에게 겁먹은 국정원 요원이라…… 이쪽이 더 볼만은 했겠는데.”
“아 씨, 아니거든요?”
남궁은 피식 웃으며 창고로 향했다.
* * *
“와씨, 미쳤네…… 이게 다 뭐예요?”
“그거 건들지 않는 게 좋을걸. 이제 원액을 추출한 거라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네 몸을 칼로 쑤셔대도 모르게 만들 거다.”
창고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기계를 보며 성우는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이제 거의 끝났어. 추출된 액체를 굳혀서 가루로 만들면 우리가 아는 형태가 되지.”
“굳이 알약으로 만들 필요는 없어. 분사를 하는 게 더 좋으니 오히려 원액을 물에 희석해서 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려운 일은 아니지.”
려진은 남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이게 다 뭐예요?”
“마약. 그것도 현존하는 약 중에서 가장 강력한 거. 환각 정도가 아닐걸.”
“마, 마약이요? 와…… 미쳤네.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어. 이 와중에 사업이라니. 형님, 존경합니다. 저랑은 스케일이 다르시네요.”
창고 안쪽으로 알을 밀어 넣은 성우는 남궁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업은 내가 아니라 저쪽이다. 삼합회 쪽 사람이거든.”
“사, 삼합회요?”
“그리고 저긴 국정원 요원.”
“…….”
성우는 도대체 무슨 조합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멍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그런데 저건 뭐예요? 웬 알을 가지고 오셨어요?”
“그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써펀트의 새끼가 들어 있거든. 깨지기라도 하면 곤란해.”
“써, 써펀트요?”
“응. 리자드맨들을 유인할 미끼지. 마물 소환이 이제 거의 완료되었어. 하지만 전 지역에 걸쳐 산발적으로 소환된 놈들을 찾아다니며 잡는 건 별로 좋지 않은 방법이니까.”
“고블린 때는 놈들이 광화문으로 집결했었는데…….”
“그렇게 되게 내가 만든 거니까.”
박효주는 남궁의 말에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써펀트는 죽었지만 써펀트의 알은 아직 남아 있어. 둥지에 있어야 할 알이 바깥으로 나왔으니 소환된 리자드맨들은 알을 보호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이쪽으로 몰릴 거야.”
“미친……!! 당신 무슨 짓을 한 거야? 마물이 이곳으로 온다고?”
“여기로요? 몇 마리나요?”
“모르지. 수백이 될 수도 있고 수천이 될 수도 있겠지. 오는 도중에 죽을진 모르겠지만 살아 있는 모든 리자드맨들이 이곳으로 향할걸.”
꿀꺽-
성우는 남궁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저 그럼…… 짐꾼은 이마 가보겠습니다. 높으신 분들끼리 대화 나누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서 그는 창고의 문을 열려 했다.
부우우우웅---!!!
끼이익--!!
그때였다. 서너 대의 차가 거칠게 창고 주위를 둘러싸며 멈춰 섰다.
“여기다!!!!”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들이 차 안에서 나오자 창고의 문을 열었던 성우가 도로 문을 닫았다.
“천일회 녀석들이 왔나 보군.”
“처, 천일회요? 설마…… 인터넷에서 유명한 그 천일회요?”
“맞아. 조금 전에 천일회 회장 신태화가 죽었거든.”
성우는 말로만 듣던 이름이 끊임없이 나오자 용량이 초과된 표정으로 멍하니 남궁을 바라봤다.
“미친놈들을. 저런 오합지졸로 뭘 하려고 온 거지? 회장의 복수라도 할 생각인가?”
려진은 창고로 향하는 조폭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복수가 아닐걸. 여기서 약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한탕 해보려고 오는 거지. 쟤들이 그렇게 충성심이 깊은 애들은 아니거든.”
“그럼 더 말할 것도 없겠군.”
끼이익-
려진은 은사를 뽑아 손바닥을 감으며 팽팽하게 잡았다.
“그거 얼마 남지 않은 거 아냐?”
“사람 목 자르는 정도로는 날이 상하지 않아.”
“듣던 중 다행이로군. 하지만 굳이 나설 필요는 없을 거야. 그보다 약이나 어서 담도록 해.”
“나설 필요 없다니?”
그때였다.
려진이 남궁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을 때,
쿠구구구구구……!!
쿠그그그……!!
“……!!!”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으, 으악!”
“커헉……!!”
“사…… 살려줘!!! 안 돼!!”
창고 밖에서 쏟아지는 비명 소리에 사람들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캬악! 캬악!!]
[캬가가각!!]
리자드맨들의 날카로운 포효와 함께 순식간에 조폭들의 사지에 수십 개의 창이 꽂혔다.
우적……! 우적……!
놈들은 쓰러진 시체 위에 달려들어 마치 먹잇감을 뜯어먹는 것처럼 살점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당신이 무슨 짓을 한지 알기나 해? 저 괴물들이 이곳으로 오면 여긴 완전히 끝이라고!!!”
“맞아. 그게 내가 노리는 거야.”
“……뭐?”
“진웨이가 만든 신종 마약. 광신도를 만들 정도로 엄청나게 강력한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모자라 서서히 생명을 갉아먹는 일종의 지독한 독이지.”
남궁은 려진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게 마물에게도 먹힐 수 있단 말이지. 조금 지나면 별 소용이 없긴 하지만 리자드맨에겐 아주 탁월하지.”
“그, 그게 무슨…….”
“너희들이 만든 마약으로 마물을 잡을 거다. 그걸 쓰기 위해서 여기에 온 거니까.”
“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산주께서 널 가만두지 않으실 거다.”
솨아아악---!!
그 순간 그의 주위로 영혼 병사들이 나타났다.
“……!!”
저벅- 저벅- 저벅-
남궁은 려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무, 무슨…….”
그가 앞으로 걸어올 때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툭-
창고의 벽에 등이 닿아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누가 누구를 가만두지 않는다고? 그러는 너희야말로 우리가 네놈들의 헛짓거리를 가만 둘 거라고 생각했나?”
“뭐……?”
“대한민국에 마약 공장을 세우겠다고?”
남궁은 그녀를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개소리도 작작해야지.”
퍼억--!!
그가 있는 힘껏 발로 려진의 다리를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