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다리가 바깥으로 꺾이며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크아아악!!”
그녀의 비명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렸다.
부러진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으며 뒹구는 그녀를 뒤로한 채 남궁이 박효주에게 말했다.
“리자드맨들이 몰려올 거다. 그 전에 마약을 나눠서 창고 밖으로 던져. 놈들을 환각에 빠지게 한 뒤에 처리한다.”
“네, 알겠어요.”
그의 명령에 박효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움직였다.
“넌 재빨리? 너도 날라야지.”
“네? 저요? 아…… 그렇죠. 내가 뭐 하고 있지? 아하하하……!”
성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남궁의 눈빛에 어색하게 웃으며 황급히 박효주의 뒤를 따랐다.
“죽여 버리겠어……!!”
툭-
그때였다.
남궁은 품 안에 있던 핸드폰을 그녀의 앞에 던졌다.
“쓸데없이 열내지 마. 대신 네게 제안을 하나 하지. 지금 네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선택지……?”
“첫 번째는 전화를 걸어 진웨이에게 지금 내가 벌인 일에 대해서 보고하는 것. 아마도 너는 녀석에게 인정받는 부하가 되겠지. 기쁜 일이지. 진웨이의 머릿속에 충견으로 기억될 거야.”
스르릉-
남궁이 검을 뽑아 그녀의 목에 가져가며 말했다.
차가운 예기에 려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대신 이 모든 걸 저승에서 봐야겠지만.”
“사, 살려…….”
날이 조금씩 자신의 목을 파고들자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남궁을 바라봤다.
“둘째. 여기서 나와 함께 약을 써서 리자드맨을 사냥하는 것. 너도 알다시피 저 많은 마물을 잡으면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헤드를 얻을 수 있을 거다.”
“…….”
“그 정도 양의 헤드라면 당장 필요한 물건들을 살 수 있을 거야. 너도 이제 눈치챘겠지. 초반에 헤드를 수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야.”
려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창고 밖에 보이는 리자드맨의 수는 어림잡아도 백여 마리가 넘었다.
그리고 써펀트의 알이 있는 이상 앞으로 더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최소 수백…… 잘하면 천 단위까지도 가능할지도 몰라. 만약 그렇다면…….’
그녀가 알기로 고블린 웨이브 때에 자신이 속해 있었던 홍콩 세력이 사냥한 고블린의 수가 고작 200마리가 채 되지 않았었다.
갑작스러웠던 것도 있지만 많은 인원이 투입된 것에 비해 성과는 미비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고블린보다 더 많은 헤드를 주는 리자드맨들이 잔뜩 있었다.
“산주에 대한 충성심? 뭐, 좋다, 이거야. 하지만 이미 세상은 변했어. 천쉰이 그랬던 것처럼 믿음의 증거는 힘이지.”
남궁은 려진의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힘은 곧 헤드야. 헤드가 많을수록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지. 진웨이가 이런 제안을 한 적 있나? 없을걸. 나야말로 네게 천재일우의 기회를 주는 것일지도.”
욱신-
남궁에게 걷어차인 다리에 통증이 일었지만 이미 그녀는 그런 사소한 것은 느껴지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싫으면 말고.”
“자, 잠깐!!!”
남궁이 검을 쥔 손에 조금 더 힘을 가하자 그녀는 황급히 소리쳤다.
“……해보겠어.”
그러고는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말이야. 암호는?”
“……3391.”
“들었지?”
남궁의 말에 박효주가 기계의 버튼을 눌렀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제 된 약물의 원액이 들어 있는 통이 기계 안에서 튀어나왔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별것 없어. 저 둘이 리자드맨을 환각에 빠트리면 너와 내가 최대한 빠르게 놈들을 사냥한다. 간단하지?”
남궁은 그녀가 쥐고 있는 은사를 가리켰다.
“……알겠어.”
결심을 한 이상 망설임은 없는 듯 려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고의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준비됐어요!”
박효주는 기계 안에서 꺼낸 원액을 물에 희석한 통을 가져오며 소리쳤다.
“열어.”
남궁이 창고 안에 있던 마스크를 쓰면서 말했다.
쿠드드드드……!!
그의 명령에 려진이 있는 힘껏 창고의 문을 열었다.
철문이 바닥을 끌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리자 천일회의 조폭들을 먹어 치우던 리자드맨들이 일제히 머리를 돌렸다.
촤아아악---!!
그 순간 남궁이 박효주에게 받은 약을 뿌렸다.
[……크륵?]
약을 뒤집어 쓴 녀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는 순간 지독한 향이 순식간에 일대에 퍼지기 시작했다.
킁……? 킁킁?
리자드맨들이 마치 맛있는 먹잇감을 쫓는 동물들처럼 코를 들썩였다.
[케……! 케켁!!]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놀랍게도 리자드맨들이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시작됐군.”
어떤 녀석들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고 어떤 녀석들은 바닥을 핥는다든지, 네 발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저들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콰앙--!!!
아스가 거대한 도끼를 횡으로 휘둘렀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리자드맨들의 목이 잘려 나가며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서걱-!! 촤아아악--!
나머지 영혼 병사들이 아스의 뒤를 따라 밖에 서 있는 리자드맨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흐음.”
끔찍한 광경이지만 남궁은 개의치 않았다.
차곡차곡 쌓여 가는 헤드의 수를 보며 오히려 그는 차가운 냉소를 지을 뿐이었다.
* * *
꿀꺽-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성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침을 삼킬 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
정적이 흘렀고 창고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그저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 살았다.”
밤에 시작된 혈투는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이어졌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자 성우는 결국 바닥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바닥에 닿은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은 핏물.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마물들의 시체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흐흐흐…….”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성우는 오히려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살육이 기뻐서가 아니었다.
생존의 기쁨이었다.
▶ 잔여 헤드 : 7,103헤드
그리고 생존보다 더한 기쁨은 바로 이것이었다.
성우는 획득한 헤드의 양을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다. 첫 번째 지옥문이 열렸던 시기에 얻었던 헤드를 제외하고도 이곳에서 얻은 4,500헤드가 넘었다.
‘소환된 마물이 리자드맨 말고도 다른 녀석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1,000마리 이상은 잡은 게 아닐까?’
성우는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직도 떨리고 있는 손은 지쳐서인지 좋아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군대가 와도 불가능한 일을 고작 4명이서 해낸 것이었으니까.
“응, 그래. 알겠다. 고생했어.”
기뻐서 날뛰고 싶은 그와 달리 마물 사냥이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전화를 건 남궁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와…… 저 아저씨는 지치지도 않나?’
성우는 남궁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의 버프가 있긴 했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도 지친 기색이 역력한 것이 비슷한 처지였다.
‘숨도 거칠어지지 않았네. 도대체 정체가 뭐지?’
거침없이 마물을 베어 버리는 냉정함부터 압도적인 실력까지…… 성우의 눈에 남궁은 그야말로 뛰어넘을 수 없는 벽 그 자체였다.
“다행히 서울 쪽은 피해가 크지 않은 모양이야. 호준이 덕분에 군대가 각종 도로를 미리 차단하고 있었던 것 같군. 어쩐지 마물의 수가 적더라니.”
“다행이네요.”
박효주와 대화를 나누는 남궁의 말에 성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적다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마물을 잡은 거야? 저 아저씬.’
성우는 보면 볼수록 그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져갔 다.
“크, 크크……! 이거 뭐야? 엄청나잖아!! 히히히!!!”
그 순간, 려진의 웃음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1만 헤드를 이렇게 빨리 모으다니…… 삼합회의 간부들도 이만큼 모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크큭, 좋아. 이제 그걸 사게 되면 삼합회든 뭐든 알 바가 아니지.”
그녀는 히죽거리며 야차 보따리를 열었다.
“잠깐. 혹시 사려는 게 독거미줄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걸.”
“왜?”
“지금부터 헤드를 마음대로 써 버리면 위험할 거야. 죽고 싶지 않다면 헤드를 아끼는 게 좋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통화를 끝낸 남궁이 려진을 향해 말하자, 기쁨도 잠시 그녀는 인상을 찡그렸다.
“여기 있어요. 다행히 저희 팀원 중 중국하고 홍콩 쪽에서 작업을 하던 애들이 있어서 알고 있네요.”
“미안. 내가 녀석의 번호를 받는다는 걸 깜빡했지 뭐야.”
남궁의 앞에 있던 박효주가 려진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려진은 그녀의 핸드폰에 적혀 있는 숫자를 보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자, 잠깐……!! 그거 뭐야?”
“표정을 보니 다행히 맞나 보네. 뭐긴 뭐야. 천쉰의 번호지.”
“그러니까. 그걸 왜 지금 네가 나한테 보여주는 거냐고!!”
려진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그건 그녀가 지금 불안해하고 있다는 증거기도 했다.
“나다.”
“저, 정말 홍근(紅根)에게 연락을 한 건가? 아니지? 장난치지 마! 거짓말이잖아!!”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보면 알겠지.”
매달리는 려진의 팔을 뿌리치며 박효주는 차갑게 말했다.
“우, 웃기지 마……! 야, 너희들 하나도 재미없거든? 우리 같은 편이잖아. 응? 안 그래?”
“그런데 와 보니 문제가 조금 생겼다.”
“자, 잠깐……!!”
“마물의 습격이 있었거든. 너희 애들은 모두 죽었다. 그래, 너희도 겪었을 테니 알겠지. 약은 어쨌냐고? 어쩔 수 없었어. 모두 없어졌다.”
곧 남궁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핸드폰을 귀에서 떼었다.
너머로 고래고래 소리치는 천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암호가 필요한데 어떻게 꺼냈냐는군.”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려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눈으로 남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야 어려운 일도 아냐. 네가 붙여준 녀석에게 물어보니 알아서 불던데? 삼합회의 입도 꽤나 가볍지 뭐야. 하긴, 충성심보단 목숨이 우선이지. 안 그래?”
“너…… 너……!!”
당황한 려진을 바라보며 남궁은 통화를 이어갔다.
“원하는 거? 별로 어려운 일은 아냐. 일주일 뒤에 진웨이가 이곳으로 온다고 했던가? 지금 당장 오라고 해. 네가 아니라 녀석과 대화를 하겠다.”
-미친놈……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감히 산주를 오라 가라 해?
분노가 서린 천쉰의 목소리를 들으며 남궁은 오히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대신 값은 치르지. 네가 그랬지 않나? 능력을 보이라고 말이야.”
-공장을 부순 것도 모자라 버서커까지 써버린 주제에 능력? 헛소리하지 마!
“천일회 녀석들은 모두 처리했다.”
-하아…… 미친놈. 농담해? 공장이 부서진 마당에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1만 헤드.”
-1만……?
노성을 지르던 천쉰이 헤드의 가격을 듣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지금 상황에서는 얻을 수 없는 엄청난 양이었으니까.
‘거절할 수 없을걸. 연금술사는 각종 재료들이 필요하니까. 팔무성 중에 가장 헤드가 절실한 녀석이지.’
남궁은 어떤 대답이 나올지 이미 확신한 듯한 얼굴이었다.
“덤으로 배신자까지.”
남궁은 려진을 바라보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어때?”
그 순간 려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