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이런 짓을 하고도……!! 네놈들이 무사할 것 같아!!! 이 개새끼야!!!”
창고의 기둥에 묶인 려진이 악에 바친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성우는 당황한 얼굴로 그녀와 남궁을 바라봤지만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는 남궁은 오히려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조용히 좀 시켜.”
“네.”
박효주가 려진의 입에 헝겊을 밀어 넣었다.
“웁……! 웁웁!!!”
“나는 헤드를 얻을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 너랑 편을 먹겠다고 한 적은 없어.”
남궁은 안간힘을 쓰는 그녀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려진…… 려진…… 어딘가 낯이 익은 이름이다 싶었는데 말이야. 너, 대림 일대를 관리하고 있는 여한수가 네 동생이지?”
“…….”
“여기서의 이름은 여진화고 말이야. 천쉰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네가 여기를 맡게 될 예정이었지? 그래서 천쉰이 아니라 진웨이를 따른다고 한 거고.”
“웁!! 우우웁!!”
남궁은 처음 려진의 이름을 들었을 때 어째서 낯이 익은가 싶었다.
“너무 억울해하지는 마. 어차피 너희들은 진웨이가 쓰다 버리는 말에 불과했으니까.”
려진은 입에 물린 헝겊을 뱉으려 고개를 저었다.
“놈이 약이 완성되고 나면 가장 먼저 누굴 광전사로 만들 것 같아? 바로 너희들부터야.”
“우웁!!!”
콰아아앙---!!
그때였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창고의 문이 박살 나며 튕겨져 나갔다.
“흐익?!”
불안하게 지켜보던 성우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철문에 머리를 숙였다.
콰앙-!!
그의 앞을 박효주가 가로막으며 날렵하게 발을 휘둘러 튕겨 온 철문의 방향을 비틀었다.
철문이 바닥에 미끄러지듯 나뒹굴며 흙먼지를 뿜어냈다.
“요란하게도 오는군.”
“려진……!! 이 개새끼가 감히 산주께서 계획하신 사업을 말아먹어? 이 갈아 먹어도 시원찮을……!!”
문을 부수고 들어온 천쉰이 씩씩거리면서 소리쳤다.
“열을 내는 건 상관없는데 내 앞에서 하지 마라. 거슬리니까.”
“이봐, 저년을 당장 넘겨.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을 테니까.”
천쉰은 과할 정도로 씩씩거리며 남궁에게 말했다.
남궁은 그가 왜 저런 연기를 하고 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려진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 최대한 더 발광하는 것일 테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부하의 배신으로 인해 임무를 실패했다는 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일이었다.
“진웨이는?”
“곧 오신다. 빌어먹은 저년 때문에 모든 게 틀어졌어! 산주께서 새로운 술법을 완성하기 위해 폐관에 들어가셨는데…….”
“폐관수련? 무슨 소설도 아니고…… 갖다 붙이기는. 야차 보따리에서 레시피를 사서 만드는 것뿐인데.”
남궁은 천쉰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저기 앉아 있어. 어차피 녀석이 와야 얘기가 진행될 테니.”
“그 전에 먼저 려진을 넘겨.”
“날 못 믿나?”
“그건 아니지만…… 산주께서 절대로 산 채로 잡아두라고 하셨다.”
“그래서 날 못 믿느냐고.”
남궁이 다시 한번 되묻자 천쉰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젠장, 애들 앞에 있는데 내 체면도 좀 살려달라는 말이었잖아. ……빌어먹을, 됐다.”
남궁에게 맞은 코뼈가 아직도 욱신거리는 느낌인 듯, 천쉰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뒤로 물러섰다.
“근데…… 괜찮을까요? 저희 쪽도 부르는 게 어떻겠습니까?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박효주가 창고 밖에 있는 인원을 훑으며 남궁에게 말했다.
천쉰이 데리고 온 사람의 수도 제법 많았지만 진웨이가 이곳에 온다면 절대로 혼자 올 리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피해만 늘 뿐이야. 그리고 놈은 절대로 나와 싸울 리 없어. 아니, 싸우지 못해.”
“으흠…… 알겠습니다.”
남궁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는 그녀였지만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가 일개 조폭도 아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삼합회였으니 말이다.
“도착한 모양입니다. 인천공항 관제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전용기를 타고 온 모양이네요. 인원은 대략 40여 명쯤 된다고 합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박효주가 울리는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미리 총리께 보고를 한 그녀가 공항의 활주로를 비워두었던 것이다.
“천쉰, 진웨이에게 연락해라. 공항 근처에 P호텔이 있다. 거기 카지노에서 만나자고 해. 떨거지들은 떼어 놓고.”
“……자신만만하더니 결국 너도 두려운가 보지? 산주와의 독대를 청하니 말이야. 연락을 해봤자 불가능해. 산주의 호위들이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거다.”
“딱히. 쓸데없는 피를 보고 싶지 않을 뿐인 거지. 려진은 여기에 두고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하라는 건 아냐. 진웨이와의 대화가 끝나면 데려가라.”
“웁……! 우웁……!!”
려진이 남궁을 향해 뭐라고 소리쳤지만 헝겊을 물고 있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순 없었다.
“아니. 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이다. 나대지 마.”
“뭐? 별 볼 일 없는 게 어디서…….”
“멋대로 하고 싶으면 해봐. 대신 지금부터 내가 아닌 대한민국을 상대해야 할 테니.”
두두두두두…….
그때였다.
창고 위에서 들려오는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에 천쉰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저 사람은 상관없다지만 너희 같은 조폭 새끼들은 꼭 떼로 밀고 오더라고. 쪽수로 밀어붙이는 거면 이쪽도 모자라지 않거든?”
창고 위에 멈춘 헬기에서 레펠을 타고 내려온 부대원들이 문 앞의 부하들을 밀치며 들어왔다.
“충성. 모시러 왔습니다.”
중무장을 한 요원들이 박효주를 향해 경례를 했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움직이도록 해. 1팀을 제외하고 나머지 팀원은 상공에서 대기. 헛짓거리가 보이면 발포도 상관없다.”
“알겠습니다.”
“우와…….”
그녀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요원들을 보며 성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바라봤다.
“조용히 있어라.”
“……윽!!”
남궁은 천쉰의 이마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기며 요원들을 따라 헬기에 몸을 실었다.
* * *
인천 P호텔.
평상시였다면 객실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의 관광객들로 붐볐을 곳이었지만 로비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저벅- 저벅- 저벅-
조명이 밝게 비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없는 카지노 안은 오히려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슉-!!
안으로 들어온 남궁은 자신을 향해 날아온 뭔가를 움켜잡았다.
게임에서 사용되는 칩(Chip)이었다.
“도박을 좋아하나?”
남궁은 칩이 날아 온 방향을 바라봤다.
룰렛이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둥근 안경을 낀 지적인 외모는 삼합회의 수장이라기보다 연구자의 느낌이 강해 오히려 위화감마저 느끼게 했다.
“딱히.”
“그런데 왜 도박을 하지? 삼합회를 상대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건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것인데 말이야.”
파앙---!!
남궁이 쥐고 있던 칩을 손가락으로 튕겨 진웨이에게 날렸다.
“……!!”
칩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그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벽에 튕기며 부서졌다.
“도박 안 한다니까?”
산산조각이 난 칩보다 칩이 부딪혔던 벽면이 날카롭게 부서진 것을 보며, 진웨이는 살짝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어젯밤에 리자드맨을 좀 많이 잡아서 말이야. 덕분에 힘 조절이 아직 어려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주르륵-
그 순간, 진웨이의 뺨에 뒤늦게 상처가 생기면서 핏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보호의 비약을 바른 상태인데도 내게 상처를 내다니…… 저 자…… 정체가 뭐지?’
진웨이는 남궁을 살폈다.
삼합회의 수장으로서 그 역시 수라를 경험했던 자였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죽여 왔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났다.
보폭에서부터 발의 위치, 자세, 시선 처리, 반사 신경 등등…….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직업군과 특색을 꿰뚫어볼 수 있다 자신했건만 진웨이는 도무지 남궁의 진위를 살피기 어려웠다.
‘……특이하군.’
절제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연스럽고, 막무가내인 것 같으면서도 예리했다.
‘게다가 저 눈. 살인을 해본 자의 것이야. 군인? 청부업자? 아냐. 그 정도 수준이 아냐.’
남궁을 살필수록 오히려 혼란만 가득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거 뛰어난 눈썰미를 가졌다고 해도 남궁이 살아온 삶을 가늠할 수 있을 리 없었다.
25년 동안 이 지옥 속에서 살아남은 자였으니까.
“과연…… 자신 있을 만하군.”
진웨이는 조금 전과 달리 남궁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 밖에 부하들을 배치해 놓긴 했지만…… 칩을 저렇게 날릴 수 있는 자라면 아무런 소용도 없겠지.’
독대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 있었던 그였지만 어느새 전세가 역전되고 말았다.
“세상이 변하긴 변했어. 억만금을 줘도 만날 수 없는 삼합회의 산주를 이렇게 만날 수 있으니 말이지.”
“……그래.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손바닥은 어느새 긴장감으로 축축하게 땀이 나 있었다.
‘걸렸군.’
진웨이가 질문을 하는 순간 남궁은 다행히 자신의 연기가 제대로 먹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리자드맨을 학살하면서 놈들의 사령을 흡수해 힘이 대폭 증가한 덕분이군.’
사실상 힘을 제외한 나머지 능력은 각종 포션을 덕지덕지 몸에 바른 그를 이길 수 없었다.
체력에서부터 민첩성까지, 다른 부분은 진웨이보다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일단 정말로 전투가 벌어진다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거다,’
그렇기 때문에 남궁은 강화된 힘으로 오히려 선수를 친 것이었다. 진웨이를 속이기 위해서 말이다.
“어서 말해봐.”
남궁은 진웨이를 바라봤다.
“알렉 트라만이 했던 기자회견을 기억하겠지?”
“설마…….”
그 순간 진웨이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래. 나도 위상에게 선택받은 계시자거든. 그리고 너 역시 그렇겠지.”
“내가 계시자인 것은 어떻게 알지? 도대체 너 뭐 하는 놈이야?”
“니나가와 가문의 에리카. 아마 삼합회의 수장이니 너도 이름은 들어 봤을 거야.”
“니나가와 에리카? 비월(飛月)의 공주님을 말하는 건가.”
“맞아.”
“설마…… 그녀도 계시자란 말이야?”
남궁은 진웨이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놀랍군…… 그렇다면 너와 알렉, 에리카 그리고 나까지. 8명의 계시자 중에 벌써 4명을 찾은 거로군. 하지만 그걸론 내 첫 번째 물음의 대답이 될 수 없어.”
“너를 어떻게 알았냐고?”
남궁은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되물었다.
“위상에게 선택받은 계시자들은 알 거야. 위상이 우리에게 하나의 임무를 주었다는 거.”
“…….”
“이 세계에 회귀자가 있다. 계시자는 그자를 찾아내야 한다. 맞지?”
남궁은 눈빛을 빛내며 진웨이에게 말했다.
“선택은 네 몫이다. 하나 니나가와 에리카는 미래를 볼 수 있더군.”
“……!!”
그 순간 진웨이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녀가 회귀자란 말인가?!! 아니, 잠깐. 네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면?”
하지만 놀람도 잠시, 그는 다시 냉정한 눈빛으로 그에게 물었다.
“믿어 달라고 한 적 없다. 거짓말도 아니고. 선택은 네가 알아서 해.”
“으흠…….”
남궁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현재 회귀자가 존재하고, 니나가와 에리카가 미래를 볼 수 있다.
그의 말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속아 넘어간 놈이 바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