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인류 대공황!!
-끝나지 않은 공포?! 마물들은 과연 언제까지 인류를 위협할 것인가……!
-세계 각지에서 사상자들 속출!
-유럽 주요 도시에서 폐쇄령을 내린 곳들도 등장하기 시작!
-국제연합 UN에서 긴급회의를 제의! 하나 각국 관계자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난항을 거듭 중.
호준과 명훈과 대화를 나누고 난 뒤 남궁은 성채 안으로 들어왔다.
핸드폰을 켜자, 2번째 몬스터 웨이브까지 끝난 지금 세계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남궁의 눈에는 오히려 지금 이 혼란이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라는 느낌뿐이었다.
‘긴급회의? 그런 걸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직 혼란도 아니지.’
3번째 문이 열리는 시점에서 이미 소국가들 중엔 지도에서 사라진 곳들도 속출했으니까.
“뭐, 더 이상 전생과 비교할 필요는 없겠지. 이제는 내가 기억하는 정보로 마물들을 공략하는 것만 생각하면 돼.”
국가의 붕괴는 어느 정도 막았다.
사라졌을 뻔한 정부의 체제를 지켰고, 자신이 빠르게 문을 닫은 결과 아직 많은 국가들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군부대 같은 현재의 무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군대가 유지되는 것은 의미가 크다.’
단순히 부대의 무기 때문이 아니다.
일반인들보다 화력 동원이 가능한 군인들이 초반에 더 많은 헤드를 모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군인들의 성장이 중요한 것이었다.
‘각국의 군대는 이미 체계가 갖추어졌으니 군인들의 전력만 보강된다면 각국을 지키는 데 한결 수월해지겠지.’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다만 남궁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다른 기사였다.
-각 도시에 종말론자들 속출!
-거리에는 광분에 빠진 시민들이 식료품과 생필품 가게들을 무분별하게 습격 중.
-오스트레일리아의 구호단체, STW의 신임 이사 에이라의 기자회견!
-에이라 미쉘, 그녀는 계시자인가?!
-혼란 속에서 STW 전 세계의 구원을 약속! 국가를 초월한 범국가적 지원 검토…….
‘드디어 성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군.’
남궁은 익숙한 그 이름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상, 미풍의 어머니가 뽑은 계시자인 그녀는 강력한 회복 능력을 가진 계시자였다.
‘STW의 출범은 또 하나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알렉 트라만이 스스로 계시자임을 밝히고 사람들을 모으며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시점에서 STW는 그에게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절단과 같은 신체의 대미지뿐만 아니라 독이나 정신 이상과 같은 상태 변화까지 회복시킬 수 있는 엄청난 힐러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치료를 받길 바랐고, 그것은 진웨이가 신종 마약으로 일으킬 광신교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흐음…….”
초국가연합의 알렉, 삼합회의 진웨이, 그리고 STW의 에이라.
“당분간은 이들의 삼파전(三巴戰)이 되겠군.”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이 기회다.’
그리고 전 세계의 이목이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가 자신의 계획을 준비할 수 있는 시기이리라.
“하지만 그 전에…….”
남궁은 팔을 들어 올렸다.
“이것부터 해결을 해야겠지.”
란의 둥지에서 우(无)를 만나고 난 뒤에 자신의 왼팔에 감겨 있는 사슬이었다.
차르릉…….
손을 흔들자 감겨 있던 사슬이 부딪히며 쇳소리가 들렸지만, 보기와 다르게 무게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넘버링 ??
이름 : 우(无)의 사슬
등급 : ??
▶ 우(无)의 사슬. 특수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역시나 넘버링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슬의 정보를 볼 수 있다는 것.
‘넘버링이 있다는 것은 그래도 위상들이 허가한 물건이라는 뜻일 테니까.’
우우우웅…….
남궁은 사슬이 감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사슬이 가볍게 떨렸지만 거기까지일 뿐.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흐음.”
우(无)의 존재조차 아직 완벽하게 모르는 상황이니 그의 무기라 한 들 짐작이 가는 것도 없었다.
어떤 무기인지 알 수가 없으니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혹시 마력이 필요한 건가?’
그렇다면 난감한 일이었다.
자신은 마력을 쓰지도 못하거니와 손목에 감겨 있는 사슬은 풀 수도 없어 소민에게 확인을 해볼 수도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거기 쓰여 있지 않느냐. 우(无)의 사슬이라고 말이야.]
그때였다.
남궁이 있던 방이 순식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암흑이 되었다.
동시에 그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를 향해 걸어왔다.
“요르.”
[이해하도록 해. 너를 보는 눈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야. 편하게 대화를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상관없어.”
남궁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요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옜다. 네가 말한 성장의 비약. 네 말대로 위상들에게 받아왔다. 한데 네 의도는 알겠다만…… 써펀트의 알을 부화시킬 순 있는 거냐.]
“아니. 몰라.”
[나 참, 여전히 대책 없는 녀석이군.]
“부화시키는 방법은 모르지만 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을 아니까.”
[그게 누군데?]
“드루이드.”
남궁의 대답에 요르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설마 가시덩굴의 미망인이 뽑은 그 계시자 말이야?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저 비약을 주면서 제일 반대했던 게 바로 가시덩굴의 미망인이라고.]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방법도 모르는데 성체로 진화시킬 수 있는 성장의 비약부터 달라고 했어? 그리 대단한 물건도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요르는 작은 비약을 남궁에게 건넸다.
[차라리 레어나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을 달라는 게 나았을 텐데.]
“아이템의 가치는 가격이나 등급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거니까.”
[뭐…… 남들보다 먼저 소환수를 부릴 수 있으면 좋긴 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 보는 장사야. 성장의 비약은 곧 사람들에게 개방될 아이템이기도 하니까.]
“뭐…… 써펀트를 부화시킬 수 있다면 거기에 쓰는 게 맞긴 하지만, 꼭 성장의 비약을 소환수에게만 쓰라는 법은 없고.”
[……흠?]
그 순간 요르는 남궁의 표정을 읽었다.
[그렇군. 넌 대책이 없어 보여도 대책을 항상 마련해 놓고 움직이는 놈이니…….]
뭔가 수를 노릴 때 짓는 그의 특유의 얼굴을 보며 요르는 자신의 걱정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켜볼 재미는 남겨둬야겠군.]
“그나저나 써펀트의 알보다 난 이것에 대해서 얘기를 해줬으면 하는데.”
차르릉-
남궁이 팔을 들어 감겨 있는 사슬을 요르에게 보였다.
[말 그대로 우(无)가 사용했던 사슬이다. 솔직히 이걸 네게 줄 줄은 나도 몰랐군. 어지간히도 네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녀석이 네게 뭐라고 하던?]
“자신을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자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군.]
“도대체 놈은 뭐지?”
[그 말 그대로다. 부재가 아닌 존재하지 않은 자. 오로지 그만이 유일한 것.]
요르는 남궁에게 말했다.
[세상을 구성하는 근원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창조와 파괴이다.]
“설마 창조를 위상들이 맡고 파괴를 그 우(无)라는 존재가 하는 건가?”
[아니. 창조와 파괴 모두 우리 위상들의 몫이다. 너희들에게 있어서 카니발이 불합리하고 억울해 보일 수 있지만…… 수많은 차원을 두고 본다면 적절한 파괴는 더 강렬한 창조를 만들어내니까. 우리는 그것을 조율하는 것이다.]
“내 눈에는 그냥 인간들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것뿐으로 보이는데?”
남궁의 차가운 되물음에 요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수천, 수만 년 똑같은 일을 반복해 왔다면 변화가 필요하지. 여흥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건 너희들에게도 하나의 기회이자 혜택이니까.]
“그래서? 우(无)는 그럼 뭐지?”
[놈은 창조와 파괴 사이에 태어난 공허다. 근원에서 태어나지 않은 비정상적인 것. 우리 위상과는 결이 다른 존재. 위상이 순리(順理)를 지키는 존재라면 놈은 변곡(變曲)을 비트는 존재.]
“놈이 했던 말이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되는 군. 자신이 존재하지 않은 자라는 것 말이야.”
[그래. 시간을 역행하는 회귀란 그야말로 변곡 그 자체지. 위상들은 너를 회귀자로 확신했으니 그에게 보내 시험을 한 거다.]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변곡점에 서 있는 너를 놈이 가만둘 리 없다는 거지.]
[그런데 놈이 날 놓아줬다?”
[맞아.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거지. 더 이상 위상들은 너를 시험 할 수 없을 거다. 오히려 혼란스럽지.]
“에리카에게 내가 회귀자란 걸 얘기한 걸 알고 있어서로군.”
[맞아. 네가 거짓말을 한 건가 싶어 하는 자들도 있으니까. 재밌게 되었어. 회귀자가 있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역이용하다니 말이야.]
“뭐, 알을 얻기도 전에 벌어진 거라 생각보다 놈들의 시험이 빨랐던 것 같지만…… 뭐 상관없지.”
[그 사슬은 우리 위상들도 정확히 모른다. 나도 아는 것이라곤 우(无)의 사슬은 위상도 끊지 못한다는 것 정도뿐이겠군.]
“내가 쓸 수 있는 거긴 한가? 마력이라든지 정령력같이 다른 이형(異形)의 힘이 필요한 건…….”
[글쎄. 만약 네가 쓰지 못한다면 우(无)가 줬을 리가 없다. 마력이 필요하다면 마력을 얻을 계기가 생길 것이고 정령력이 필요하다면 정령과 계약할 일이 생길 것이다. 그는 우리도 보지 못한 모든 축제를 관망한 자이니까. 과거도 미래도 모두 알 수 있다.]
“으흠…….”
[아마 어떤 계기가 네게 생길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저 사슬의 사용법도 저 사슬이 뭔지도 알게 되겠지.]
남궁은 요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조심해라. 우(无)가 네게 관심을 보인다는 건 썩 유쾌한 것은 아니니까.]
“놈에게 빼앗기기 싫으면 내게 더 잘해야지.”
요르는 그의 말에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녀석아. 지금 나만큼 계시자에게 신경을 쓰는 위상이 있는 줄 아느냐.]
“신경을 쓰기는. 기껏 던전을 클리어했는데 너희들은 나를 시험하기 위해 이상한 이동서 한 장만 덩그러니 놓고 갔잖아.”
[그게 무슨…….]
“미궁의 보상. 신경을 쓸 거라면 원래 내가 얻어야 했던 제대로 된 보상은 다시 내놓아야 하지 않겠어?”
[허…… 하여간 틈이 없는 녀석이라니까.]
요르는 남궁의 말에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우(无)의 사슬을 얻어 놓고도 보상을 달라니…….]
“지금 당장 쓰지 못하는 건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서 내놓기나 해.”
탁-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보상 상자 하나가 나타났다.
[뭐, 네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니까. 이 정도는 챙겨줘도 위상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거다.]
“당연히 그래야지.”
남궁은 상자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 여명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 축제가 끝나고 모두 쉬어갈 시간입니다.
▶ 2번째 카니발이 끝낸 참가자들에게 대리자 일족이 작은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그때였다.
“……시작되었군.”
머릿속에서 울리는 야차의 목소리.
▶ 대리자 일족들은 카니발에 참가하고 있는 여러분들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적색지대가 나타나기 전 대리 경매가 시작됨을 알리는 알림이었다.
[듣자 하니 네 딸이 경매에 참가 한다지?]
“그런데?”
[확인해 봐라.]
요르는 마치 빨리 열어보라는 듯 턱짓으로 보상 상자를 가리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탈칵-
“이건…….”
그는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아이템을 확인하고는 살짝 놀란 눈으로 요르를 바라봤다.
[어때, 마음에 드나?]
남궁은 그의 물음에 피식 웃었다.
“이제야 좀 제대로 일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