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270)

60화

“멈춰!! 알렉!!!”

“……?!!”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팔이 자신의 검날을 붙잡자 알렉은 당혹과 경악에 찬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차르르릉……! 카각!!

우(无)의 사슬이 알렉의 별해검에 닿자 날카로운 공명음을 뿜어냈다.

카가강……!!

알렉이 황급히 검을 잡아당겼다.

검날이 사슬과 부딪히면서 번쩍거리는 스파크가 터져 나왔다.

“윽?!”

뒤로 물러나던 알렉의 몸이 휘청거렸다.

마치 사슬이 검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검을 움켜잡아 놓아주지 않았다.

“무, 무슨…….”

퍼억-!!

사슬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이 남궁이 알렉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주먹이 알렉의 턱에 정확히 꽂혔다. 알렉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비틀거렸다.

“대중의 앞에서는 영웅인 척하더니 뒤에서는 이런 양아치 짓을 하고 있었군. 이걸 사람들이 알아야 할 텐데 말이야. 안 그래? 알렉 트라만.”

“네, 네가 어째서 여기에?”

“너도 여기에 있는데 내가 여기에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빠득-

알렉은 남궁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그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듯 보였지만 사실 누구보다 빠르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는 듯 보였다.

“……남궁? 너 왜…….”

그 순간 놀란 것은 알렉만이 아니었다.

록산느는 갑자기 나타난 그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오랜만에 재회가 딱히 달갑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보기 싫은 건 알겠지만 내 덕에 목숨을 구한 거니 그러려니 해.”

남궁은 쥐고 있던 별해검을 밀치듯 놓았다.

알렉이 뒤로 물러서며 그에게 맞은 턱을 손등으로 쓸어내렸다.

“국가를 뛰어넘을 연합 클랜을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동료를 모으는 방법이 꽤 거친데.”

“동료일지 적일지 모르지.”

“조급함이 보이는군. 왜? 두 번 연속으로 월드 보스를 놓치니 점차 격차가 좁혀지는 것 같아서 두렵나 보지?”

“격차? 누가 누구와? 설마 그 격차가 너와의 것을 말하는 건가? 웃기지도 않는군!!”

“말이 많아졌어.”

“……닥쳐!!”

남궁은 조용히 그를 도발했고, 그의 예상대로 알렉은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두 사람이 격돌했다.

새하얀 검신의 알렉의 검과 칠흑같이 어두운 남궁의 검이 서로 부딪힐 때마다 낮과 밤이 오가는 듯 주위가 번쩍였다.

“흐아압!!”

검을 쥔 알렉의 팔이 힘줄이 돋아 날 정도로 부풀었고, 한 번 한 번 내려칠 때마다 동굴 안이 흔들릴 정도였다.

‘더 강해졌군…… 관망자의 가호로 처음부터 신체 능력이 향상된 것도 있지만 확실히 녀석의 성장 속도는 엄청나다.’

검을 비껴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궁은 팔이 얼얼한 기분이었다.

카강!!!

알렉의 검이 남궁을 아슬아슬하게 빗맞히며 그대로 벽에 박혔다.

쿠그그그그…….

얼음벽이 움푹 파이며 별해검이 깊게 박혔다.

“후웁!!”

그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뽑으며 다시 남궁을 공격하려 했다.

“……그만!!”

그때였다.

록산느의 외침에 알렉의 검이 남궁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저거 봐!! 이러다 동굴이 무너지겠어!! 이대로 계속 난리를 피우면 우리 모두 생매장이라고!! 다 함께 죽고 싶어?”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

알렉이 주위를 훑었다. 여기저기 검에 의해 부서진 벽들이 확실히 위태로워 보였다.

“더 이상 이곳을 훼손시키면 가만두지 않아. 그리고 남궁, 당신도 이제 멈춰. 내가 저딴 녀석에게 쉽게 죽을 위인이라 생각했어?”

“……저딴 녀석?”

크아아아앙---!!

그 순간 알렉을 향해 거대한 백표범이 뛰어들었다.

“……!!!”

가호의 영향으로 신체 능력이 향상된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육중한 무게의 표범은 그를 단박에 쓰러뜨렸다.

[왜? 그럼 지금 당장 그 얇은 목을 찢어줄까?]

알렉의 위에 올라 날카로운 송곳니로 으르렁거리며 그녀가 말했다.

표범이 말을 하는 광경이 이질적이었지만, 그런 이질적인 느낌마저 압살할 정도로 그녀의 위압은 강렬했다.

‘백표범이라…… 아마 변환계 2단계 마법이었을 텐데. 표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수행 결과도 알렉 못지않군.’

남궁은 과연 계시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상들이 그들을 눈여겨본 이유는 분명 있었을 테고, 그것이 바로 저런 뛰어난 자질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휴전하는 게 좋겠군.”

남궁이 먼저 검을 집어넣자 록산느에게 깔려 있던 알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 트라만. 잘도 여길 찾았군. 쿠후란의 결계가 닿지 않는 곳이라지만 쉽지 않았을 텐데…… 감시 능력을 쓸 수 있는 자를 영입한 건가?]

“글쎄…… 큭!!”

대답을 회피하려는 순간 록산느가 앞발로 알렉의 어깨를 짓눌렀다.

[지금까지 당신만 일방적으로 얘기했으니 이젠 내 질문에 답을 해줘야겠어.]

“크윽!! 맞아. 최근에 퍼밀리어를 다룰 수 있는 마법사를 영입했다. 영국 마법회 소속이었던 자다.”

[그자에게 전해. 다시는 이곳을 염탐하지 말라고. 그때는 내가 찾아가겠다고 말이야.]

“……알겠다.”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어깨에 박혀 서서히 파고들었다.

“제법 볼만한 모습인데. 아무래도 너는 감당하지 못할 괴물을 상대하고 있었군.”

“……닥쳐.”

남궁은 그런 알렉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당신도 마찬가지야. 쿠후란의 허락이 있었으니 이곳에 온 모양이지만 난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 따윈 없어.]

알렉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둘 다 당장 꺼져!]

“……오해를 풀 기회를 줬으면 좋겠군. 다음에 다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지.”

그는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러고는 품 안에서 작은 메모지를 꺼내 모서리를 찢었다.

화르륵……!

그러자 메모지가 갑자기 불타며 새하얀 연기와 함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양피지가 아닌 걸 봐서는 장거리는 아니고 근거리 이동서인 것 같은데. 크레바스를 빠져나갈 용도인가 보군. 벌써 저걸 제작할 수 있는 공방을 만든 건가?’

남궁은 알렉이 사용한 아이템을 보며 그의 산하에 있는 일원들이 과연 하나같이 뛰어난 자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가진 제3의 눈. 태양목의 힘이었다.

“당신은 왜 안 가?”

“저 녀석 살려 보내면 뒤가 안 좋을 텐데. 집요한 녀석이라서 널 영입하든지 죽이든지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해낼 거다.”

“그런 선택지는 내게도 있어.”

“넌 못 죽여.”

“내가? 웃기는 소리 하네. 지금 당장 보여줘?”

“드루이드니까.”

움찔-

록산느의 눈썹이 흔들렸다.

“그런 고리타분한 건 그 노인네나 하라고 해. 헛소리할 거면 닥치고 꺼져.”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 까칠하군.”

“당신 때문에 난 친구를 잃었어. 그때 분명 얘기했을 텐데. 두 번 다시 보지 않길 바란다고.”

“……그때의 일은 나도 유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퍼억-!!

그 순간 남궁의 어깨에 날카로운 단검이 박혔다.

아니, 박혔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두 손가락으로 날을 붙잡고 있었다.

“유감? 그래서 네놈들이 싫은 거야. 너희들에겐 임무가 더 소중했겠지. 고작 내일 먹을 식비가 없어 목숨을 걸고 너희를 도운 어린아이의 목숨 따위보다!”

록산느는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미안하다. 하지만 목숨을 희생해서 임무를 완수하려고 한 사람은 내 부대에 아무도 없다.”

“그럼 네가 죽었어야지.”

남궁은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2010년 7월 24일. 모로코 작전. 이름은 뷔아. 2명의 동생이 있고 그들은 지금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지. 내가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에게 보조금을 보내주는 것뿐이었군. 뭐,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돈이 무슨 상관이겠냐만.”

“당신…… 기억하고 있었어?”

록산느는 남궁의 대답에 짐짓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도 자신들을 이용하고 버린 자들이라 여겼던 그가 자그마치 10년 동안 희생된 친구의 가족을 돌보고 있었다니 말이다.

“잊어버리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

“나로 인해 희생된 자들의 얼굴은 하나하나 지금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잊으려 해서는 안 되지.”

록산느는 그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난 알렉처럼 거창하게 인류를 구원할 생각은 없어. 녀석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에 거침없겠지만…… 난 이제 그런 삶은 지쳤거든.”

남궁은 전대에서 상자를 꺼냈다.

써펀트의 알이 들어 있는 상자를 본 록산느의 눈길이 그곳에 꽂혔다.

“난 그냥 내 가족을 지킬 힘이 필요한 것뿐이지.”

“이건…….”

“써펀트의 알이다. 쿠후란이 말하길 이걸 부화시킬 수 있는 자는 너뿐이라고 하더군.”

남궁이 알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 역시 너를 만나는 것이 껄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내 코가 석 자인데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겠어.”

남궁은 그녀를 바라봤다.

“이걸 부화시킨다고 해서 알렉처럼 영웅놀이를 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좀 더 많은 마물을 잡을 순 있겠지.”

“쳇, 짜증 나는 놈.”

하지만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써펀트의 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이게 흥미롭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군.”

“가능할까?”

“이걸 어디서 구한 거지?”

“뭐…… 우연히.”

록산느는 그가 대답을 해주지 않을 거란 걸 안다는 듯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겠어. 그런데 나를 믿어? 알렉의 말대로 계시자들은 모두 경쟁자들이야.”

“그렇다고 모두 적은 아니지. 알렉이 널 영입하러 온 것처럼 말이야.”

“죽었다 깨어나도 당신 밑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어.”

“나 역시 맹수를 키울 생각은 없다.”

“흥…… 만약 부화시킨다면 당신은 내게 무엇을 해줄 건데? 내게 이걸 줄 건가?”

그녀는 상자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며 남궁에게 물었다.

“그 녀석을 가지면 오히려 넌 손해일걸. 소환수는 한 마리밖에 얻지 못하니까. 곧 있으면 넌 이 써펀트보다 더한 소환수를 얻게 될 거야.”

“……뭐?”

“나같이 테이밍의 재능이 없는 자나 각인효과에 기대어 소환수를 얻으려는 것이지.”

“흐음. 그럼 넌 뭘 제시할 건데?”

“드루이드지만 네게 부족한 것. 그걸 채워줄 사람을 소개해 주마.”

록산느는 그의 말에 코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부족한 거? 그런 거 없어.”

“정령술.”

“……뭐?”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황급히 되물었다.

“싫든 좋든 네가 드루이드의 길을 걸으려면 정령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알다시피 넌 정령술엔 재능이 없어. 그걸 받쳐줄 사람이 필요하지.”

남궁은 그녀에게 말했다.

“설마…… 네가 그 사람을 안단 말이야?”

“알다 뿐이겠어. 내 동료다. 지금 쿠후란에게 훈련을 받고 있을걸. 쿠후란이 그녀를 보고 이런 말을 했지. 그의 평생 동안 그토록 깊은 영해를 가진 자는 처음이라고.”

“……쿠후란이? 정말?”

“거짓말이라고 생각되면 그에게 직접 물어봐. 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말이야.”

“믿을 수 없군. 그런 엄청난 정령술사가 당신과 함께 있다니…….”

“어디 그뿐이겠어. 들으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자질을 가진 자들이 수두룩한데.”

남궁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직감했다.

록산느 칸.

알렉 트라만이 완성할 초국가 연합 클랜의 가장 중요한 3명의 기둥 중 한 명.

오늘 그 기둥 하나가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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