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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63/270)

63화

“응. 이제 감 잡았어.”

소민은 마지막 한 마리 남은 버거스트의 두터운 다리를 날려 버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쪽 다리가 폭사당한 채 몸뚱이만 남은 버거스터는 괴로운 듯 꺼억꺼억거리는 묘한 신음을 뱉어냈다.

“흠.”

남궁은 배를 뒤집고 있는 녀석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었다. 단단한 등 껍데기와 달리 배쪽 부분은 약해서 손쉽게 검이 들어갔다.

‘이거 말이 안 나오는군…… 마법과 같이 술법 계열의 능력이 자질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3마리의 버거스터를 모두 일격에 폭사시켜 버린 딸을 보며 남궁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실상 다리의 관절을 노릴 필요도 없었다.

‘……이 정도면 나보다 센 거 아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쿠그그그그-

버거스터를 모두 처리하자 밑으로 내려가는 문이 열렸다.

“아빠, 저기!!”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들쥐처럼 생긴 마물들이 수십, 수백 마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솨아악-!!

남궁이 손을 젓자 영혼 병사들이 전방으로 달려 나가며 마물들을 막아섰다.

타당! 탕! 타다다당!!!

마물들이 영혼 병사들과 부딪히자 마치 소나기가 지붕을 때리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크드드드득……!!

영혼 병사들이 연신 검을 휘둘렀지만 밀물처럼 밀려오는 마물들이 점차 그들을 뒤덮기 시작했다.

“……불메뚜기까지? 저건 아예 아시아에서는 나오지도 않는 마물인데…… 현류 녀석 아주 작정을 하고 만든 모양이군.”

남궁은 그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화르륵!!!

그때였다.

남궁의 뒤에서 소민이 마법을 펼쳤다.

쾅! 쾅! 콰가강!!

상공에서 떨어지는 대여섯 발의 뇌화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메뚜기 떼가 있는 곳에 떨어졌다.

[케케겍……!!]

사방에서 비명과도 같은 마물의 외침이 들렸다.

뇌화가 떨어진 장소에 수십 마리의 메뚜기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의 뇌화가 강력하긴 해도 범위가 넓지 않는 일격 필살의 마법.

여전히 남아 있는 수백 마리의 불메뚜기들이 두 사람을 덮쳤다.

“소민아, 실드를 펴!”

남궁의 외침에 그녀가 황급히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를 가볍게 흔들었다.

명훈에게서 빌린【고블린 로드의 팔찌】가 빛이 나며 옅은 막이 그녀를 보호했다.

카강! 캉!! 카가강!!

로드의 팔찌에서 만들 수 있는 실드는 5등급밖에 되지 않는 낮은 것이었지만 그녀의 마력이 더해지자 수십 마리 불메뚜기의 공격에도 부서지지 않았다.

‘확실히 명훈이가 쓸 때와는 달라.’

남궁은 그녀가 실드에 보호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검을 뽑았다.

스르릉-

그의 허리에는 한 자루의 검이 더 채워져 있었다. 뽑아 든 검의 날은 참회자의 검과 달리 새하얗다.

【백천강검】이었다.

콰직!!!

그가 바닥에 검을 꽂아 넣자 마치 파도처럼 검을 중심으로 새하얀 얼음이 처처척!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치이이익……!! 치익……!!

화염 속성을 가진 불메뚜기들이 바닥이 얼자 괴로운 듯 새하얀 김을 뿜어내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훕……!!”

그가 좀 더 힘을 주자 버둥거리던 불메뚜기들이 서서히 새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투둑……! 투두두둑……!!

얼어붙은 메뚜기들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몇몇 놈들은 그 충격에 부서졌지만 수북하게 쌓인 메뚜기들은 끼릭끼릭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쿠앙-!!!

그 순간, 아스가 모여 있던 불메뚜기의 무리에 도끼를 냅다 던졌다.

쾅! 쾅!! 콰가가강!!!

도끼가 부메랑처럼 원을 그리며 날아가 얼어붙은 불메뚜기들을 사정없이 부수며 벽에 박혔다.

부우웅……!!

아스가 도끼의 끝에 달린 줄을 잡아당기자 벽에 박혔던 도끼가 다시 그의 손에 들어왔다.

서컹-!!!

나머지 영혼 병사들도 아스의 뒤를 따라 바닥에 쓰러진 마물들을 처리했다.

엄청난 숫자였지만 그에 비해 놈들을 처리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끝난 건가.”

마지막 한 마리의 불메뚜기를 발로 밟으며 그는 중얼거렸다.

지끈-

순간, 남궁은 관자놀이를 찌르는 듯한 통증에 잠시 비틀거렸다.

‘……만만치 않은 일이군.’

무기에 내재되어 있는 힘을 끌어내서 사용하는 것도 결국 정신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일대를 얼려 버렸으니 충분히 무리가 가는 일이었다.

“아빠, 괜찮아?”

실드를 풀고 소민이 그의 뒤로 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걱정 마.”

하지만 소민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무리하지 마. 절대로. 알겠지?”

“가자.”

남궁은 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퉁- 퉁- 퉁-

출구가 열리고 철제로 된 계단을 따라 한 층 더 아래로 내려오자 밀림과도 같았던 풍경은 어느새 커다란 지하 굴로 변해 있었다.

“흐음…….”

아이슬란드의 빙하지에서 미로와도 같은 지하 굴을 경험했던 남궁은 눈앞에 펼쳐진 동굴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살려줘…….”

하지만 다행히 동굴은 빙하지의 것처럼 깊진 않은 모양이었다.

옅은 신음과 같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걸어가자 커다란 나무뿌리로 보이는 것들이 벽을 뚫고 자라 있었다.

“누구?”

남궁은 뿌리에 엉켜 있는 한 남자를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그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솔빛섬 안으로 남궁보다 먼저 들어 간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오, 세상에……! 사람이 있다니. 제, 제발 나 좀 도와주시오!”

남자는 그를 보더니 다급히 소리쳤다.

서걱-

남궁이 남자를 감싸고 있던 뿌리들을 베어냈다.

뿌리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잘라낸 단면에서 피처럼 붉은 액체를 뿜어냈다.

‘이 뿌리는…….’

남궁은 살짝 뿌리를 보고는 눈을 돌렸다.

“고, 고맙네…….”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김갑철의 존재를 모른 척하는 남궁의 말에 소민은 눈치를 채고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로 물러났다.

‘묘한 일이군. 현류가 밀어주고 있는 김갑철이 보스 방에 들어가기 전에 잡혔다?’

“하하, 그럴 수밖에. 세빛섬과 가빛섬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곳에 와서 그렇거든.”

“자신이 있었나 보군. 룬과 무기도 마다 않고 바로 보스를 잡으러 오다니 말이야.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남궁은 김갑철을 슬쩍 훑으며 말했다.

“꼴을 보니 썩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허허, 내가 좀 실수를 해서 붙잡혀 있긴 했지만 실력이 없는 건 아닐세.”

그의 말에 김갑철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도와준 건 도와준 거고 저 새낀 뭔데 다짜고짜 반말이야?’

“왜?”

“하, 하하. 아닐세.”

‘씨벌…… 눈빛만 보면 잡아먹을 것 같네.’

김갑철은 자신도 모르게 남궁의 기세에 움츠러드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누군가?

아무도 모르지만 야차 일족의 후원을 몰래 받고 있지 않는가.

‘그래. 대리 경매의 우승자는 내가 될 거라고 그분이 딱 꼬집어서 얘기했잖아. 그래 발버둥 쳐봐라. 어차피 결과는 똑같으니까.’

그는 생각했다.

‘나중에 바닥에 대가리를 처박게 하고 빌게 만들어줘도 할 말 없을 거다. 싸가지 없는 놈.’

속으로는 온갖 욕을 퍼붓고 있었지만 정작 남궁의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

남궁이 동굴의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 나도 함께 가면 안 되겠나?”

기다렸다는 듯 김갑철이 그에게 소리치며 달라붙었다.

“경매 시작 전에 들었을 텐데? 후보는 2명밖에 뽑히지 않는다고. 굳이 내가 경쟁자를 도와줄 이유는 없는데.”

“하지만 그건 지금이 아니라 야차 일족이 관할하는 다른 국가들까지 합쳐진 경쟁일 때 아닌가. 일단은 지금은 보스를 잡고 나면 후보로 올라갈 수 있으니…… 힘을 합치는 게 좋지 않은가?”

그는 손을 비비며 굽실거렸다.

“경쟁은 그때 가서 해도 괜찮으니 말이야. 일단 이곳을 통과하자는 거지. 안쪽에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한 사람이라도 더 있는 게 좋지 않은가?”

“흐음. 그것도 맞는 말이군.”

“그럼, 그럼. 확실히 상황 파악을 잘하는 친구로구먼! 언제 영등포로 놀러오게. 내 족발에 막걸리를 기가 막히게 하는 곳을 알거든.”

김갑철은 껄껄거리며 남궁에게 말을 붙였다.

끼이이익-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 대답 대신 남궁은 그냥 문을 열었다.

▶ 솔빛섬의 비밀 문이 열렸습니다.

▶ 비밀방의 보스가 사냥될 시 1차 후보 경매가 종료됩니다.

▶ 보스 사냥의 기여도에 따라 탈락자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 주의하십시오. 모든 지원자는 서둘러 대리 일족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시기 바랍니다.

문이 열리자 머릿속을 때리는 알림이 울렸다.

“……기, 기여도?”

김갑철이 알림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그럼 그렇지…….’

하지만 남궁은 대충 예상한 듯 생각했다.

세빛섬과 가빛섬에서는 다양한 룬과 무구가 드랍되기에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나올 때까지 무한정으로 머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곳에서 아이템만 먹고 경매는 참가하지 않으려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자도 있었다.

‘놈들이 인간을 모두 살려줄 리가 없지.’

하지만 기여도라는 단어가 들린 순간 남궁은 직감했다.

보스가 잡히는 순간 솔빛섬으로 넘어오지 않고 룬과 아이템만 탐한 자들은 모두 죽을 거란 것을.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뒤늦게 솔빛섬으로 내려오는 자들 역시…….

아마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기다려 줄 수 없으니까.

[크르르르-]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낮은 으르렁거림.

보스가 나타났다.

전투는 이미 시작되었다.

* * *

“저, 저게 뭐지? 귀, 귀신인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그들의 앞에 걸어와 서 있는 하나의 인영을 보며 김갑철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크르르르…….]

검은 후드로 머리를 감싸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놈이 뱉어 내는 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뿌리 파수꾼. 정령의 일종이긴 한데…… 타락한 놈이지. 당신이 감겨 있었던 오염된 지하목에서 태어난 놈이니까.”

“저놈을 잡으면 되는 건가?”

“아마도.”

남궁의 대답에 김갑철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그래, 저걸 어떻게 잡아야 하지?”

“그건 당신이 해야지. 아무 계획도 없이 여기에 들어왔을 리는 없고. 안 그래?”

“하하,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질 것 같은데…….”

“우리야 당연히 믿는 게 있지. 하지만 그 패를 언제 꺼낼지는 우리가 결정해. 힘을 합치자면 목숨을 구해준 값 정도는 먼저 해야지 않겠나?”

“쯥…….”

김갑철은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거. 그래. 밥값은 해야지. 이런 꼬맹이를 시킬 수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야.”

철컥-

그는 등에 매고 있던 커다란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드론?”

소민은 생각지도 못한 물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보고 있으라고.”

김갑철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춤에 달려 있던 컨트롤러를 조종했다.

“이게 바로 이 김갑철 님의 카드지!!”

부우우우웅……!!!

그러자 3대의 드론들이 일제히 줄을 맞춰 날아올랐다.

치이잉-

드론에는 작은 포신이 달려 있었고, 곧 포신이 앞으로 쏠리면서 파수꾼을 겨누었다.

쿡-

두두두두두두두---!!!!

컨트롤러의 버튼을 누르자 드론들에 달려 있던 포신들이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대단한데? 드론을 무기로 쓴다라…… 공학 계열의 자질은 쉽게 개안되는 게 아닌데 말이야. 컨트롤도 그렇고 꽤나 손재주가 있나 봐?”

“당연하지. 내가 드론 조종만 몇 년인데. 건물 사이사이로 드론을 날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드론을 도시에서 날리는 건 불법 아닌가? 뭘 훔쳐보려고 그런 짓을 할까?”

포탄을 쏘던 김갑철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세입자를 골라 받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마 그 당시엔 조종하던 드론에 포신 대신 카메라가 달려 있었겠지?”

“무, 무슨…….”

나직하게 귀를 때리는 남궁의 말에 김갑철의 낯빛이 새하얗게 변했다.

“됐다. 몰카범은 그냥 뒤지는 게 낫지.”

“……야! 듣자 하니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지금 지껄이는……!”

푸욱-

그때였다.

쏟아지는 드론의 포화 속에서 검은 검이 튀어나와 김갑철의 복부를 찔러 등을 관통했다.

“……쿨럭?”

“헛소리는 무슨. 당신 건물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들은 건데.”

“거짓말…… 분명 이거면 잡을 수 있다고 했는…….”

까드드득-

하지만 그의 복부를 관통한 검이 돌아가자 뼈를 깎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 핏덩이가 흘러나왔다.

“사, 살려…….”

김갑철은 남궁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래도 경매에 장난질을 친 건 현류만이 아닌 모양이야.”

다른 건 기억이 나지 않아도 남궁은 대리 경매에 있어 솔빛섬의 보스는 알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곳에 여왕군벌의 벌집이 있어야 했다.’

여왕벌 자체는 별다른 위험 없이 수많은 작은 벌들을 통치하는 여왕군벌은 드론을 조종하는 김갑철에게 딱 맞는 상대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여왕군벌이 아닌 뿌리 파수꾼.

보스가 바꿔치기 된 것이었다.

“그래. 이 정도는 해야 내 계약마지.”

남궁은 단박에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스르릉-

그는 파수꾼을 향해 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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