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콰앙---!!!!
두터운 석판으로 되어 있던 탁자가 바스러졌다.
[어떤 새끼야!!!]
부서진 탁자 앞에 선 현류가 소리쳤다.
[야, 어디서 아버지께서 아끼시는 탁자를 함부로 부수고 지랄이야?]
[……너지? 네놈이 최종 보스를 바꾼 거지?]
[얘들아, 저 새끼 뭐라는 거냐? 내가 뭐? 누가 들으면 자기가 손을 써 놓은 걸 내가 다시 고친 줄 알겠다? 안 그러냐?]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로 코를 파며 규류가 주위의 야차들에게 물었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그의 반응과 달리 주위의 야차들은 긴장 가득한 모습을 한 채 누구도 두 사람의 대화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리고 열내지 마. 딱 보니 각 나오겠는데. 그래도 저 아저씨 아직 죽진 않았으니까. 또 모르잖아? 잘하면 아직 기회가 있을지도.]
[……뭐?]
[대리자 일족들이 직접 한 사람에게 개입을 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한 사람이 아닌 모두에게라면 불법이 아니니까.]
규류는 눈썹을 씰룩이며 그에게 말했다.
[위계의 권한으로 딱 1번. 모든 사람들에게 후원을 해줄 수 있잖아.]
[설마…… 보따리 특가를 말하는 거냐.]
현류는 규류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맞아. 일종의 타임 세일. 위계의 권한을 이용해서 일정 시간 동안 야차 보따리에서 판매하는 지정 아이템을 할인할 수 있지.]
어디서 들고 왔는지 규류는 외눈 안경을 끼고서 커다란 부채를 펼쳐 탁자가 있었던 자리에 서서는 어깨를 씰룩였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지요~ 1+1이 될 수도 있고 반값 할인이 될 수도 있고~]
툭- 툭 – 툭-
규류가 현류의 머리를 부채로 건드렸다.
콰직-!!
신경질적으로 그의 부채를 낚아챈 현류가 그것을 집어 던지며 으르렁거렸다.
[……뭐 하는 짓거리야?]
[말했잖아.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라고. 네가 고른 말을 믿으면 가지고 있는 패를 걸든지. 아니면 포기하든지.]
규류의 표정이 바뀌었다.
[장난해? 보따리 특가는 카니발이 끝날 때까지 딱 한 번만 쓸 수 있다. 그것도 각각의 일족 중 최상위 위계를 가진 단 2명만이 사용할 수 있는 거라고!]
[그래서?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뭐?]
[손해 볼 것 없잖아? 어차피 16명의 경매 후보는 정해질 거고, 저자가 죽어도 좋든 싫든 야차 일족 역시 계약자를 뽑게 될 테니까.]
규류는 씨익 웃으며 현류의 어깨 위로 팔을 얹으며 말했다.
[우리가 뭐 그런 걸로 경쟁하던 사이인가? 네 편 내 편 할 게 뭐가 있어? 우린 사이좋은 형제인데.]
움찔-
그 순간 현류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빌어먹을…… 규류 저놈이 생각하는 게 뭔지 뻔히 알겠는데……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남궁이 야차 일족의 계약자가 되면 모든 게 끝이었다. 하지만 특가를 열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게 놈들이 노리는 것이겠지. 뿌리사냥꾼의 검에는 독이 있다. 김갑철의 상처를 보니 엘릭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최상급 금창약은 필요한데…….’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최상급 금창약의 각격은 150,000헤드.
특가를 하게 된다 하더라도 75,000헤드였다.
‘헤드가 모자라…….’
그가 기억하기로 김갑철이 가지고 있는 헤드는 기껏해야 1만 헤드가 조금 넘을 뿐이었다.
물론 월드 보스뿐만 아니라 던전까지 모두 독식한 남궁이 비정상적인 것일 뿐 일반적으로 봤을 때 필드에서만 그 정도를 모은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웃기지 마. 네놈 속을 모를 줄 알고?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보따리 특가를 내가 누구 좋으라고 지금 써?]
[그러시든가. 나는 또 혹시 헤드가 부족한가 싶어서 걱정했지. 아니면 말고.]
[헤드가 부족하면 뭐? 너라고 뭐 다를 줄 알아?]
[그럼. 그럼. 다르지 않지. 어찌 잘나신 1위계보다 내가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겠어.]
[……장난해?]
[에이, 설마. 근데 꼭 금창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하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 순간 현류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무슨 방법인데?]
[대리 경매 규율을 조금 바꾸는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경매의 규율을 멋대로 바꾸는 건 불법이라고 조금 전에 말했을 텐데?]
[혼자서 몰래 바꾸면 그렇지. 야차들의 동의를 얻으면 불법이 아니라 합법이 되지. 마침 여기 그 야차들이 모두 모여 있잖아?]
규류가 자신의 뒤에 있는 야차들을 쓱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저치만 살리기 위한 방법이라면 동의하지 않겠지. 여기엔 분명 다른 야차들도 알게 모르게 자신들이 고른 계약자가 있을 거야. 모두가 너와 같은 마음일걸. 자신의 계약자가 죽지 않길 바라겠지.]
[…….]
그의 말대로 다른 야차들의 표정도 달라졌다.
1위계와 2위계에 눌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들 역시 결국은 모두 경쟁자였으니까.
[모두가 만족할 만한 답을 가져왔다는 뜻인가.]
[선택은 너희 몫이지. 사실 다들 알 텐데. 내가 후원하는 자가 저기 저 남궁이라는 걸. 솔직히 말해서 내가 봐주는 거라고.]
규류는 야차들을 훑으며 말했다.
[네가 보스를 바꿔치기한 거잖아.]
[야. 지금 나한테 할 소리는 아닌 거 알지? 같이 얼싸안고 야차 지옥에 떨어질래, 아니면 닥치고 함께 도생하는 방법을 찾을래?]
빠득-
현류가 그의 말에 이빨을 갈았다.
[방법은?]
[간단해. 경매 달성의 목표를 사냥이 아니라 생존으로 바꾸면 되는 거지. 30분 동안 살아남으면 모두 후보가 되어 다음으로 넘어가는 거야.]
규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30분이면 두 섬에 처박혀 아이템과 룬이라 탐하던 어중이떠중이들도 충분히 보스 방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저치도 보아하니 30분 정도는 연명할 것 같고. 경매가 끝나면 후보자들이 자연 치유되는 건 알지?]
[그 길뿐인가…….]
현류는 규류의 제안을 따르는 것이 못내 마땅찮은 듯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그 길뿐이야.]
그의 물음에 규류도 함께 씨익 웃었다.
‘그게 오늘 네가 아주 엿 되는 길이기도 하지.’
* * *
콰앙---!!!
뿌리사냥꾼의 머리 위로 뇌화가 떨어졌다.
강력한 마력에 흔들림에 놈은 검을 버리며 뒤로 황급히 물러섰다.
촤르륵……!!
놈이 손을 허공에 튕기자 손목에서 줄기가 솟으며 한 자루의 검이 다시 빈 손바닥에서 튀어나왔다.
“으…… 으으…….”
복부에 검이 박힌 채로 김갑철은 옅은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바닥에 너부러졌다.
“저걸 맞고도 죽지 않다니. 태생적인 신체 능력이 좋아 보이지는 않은데…… 제법 룬을 먹은 모양이지?”
남궁은 자신의 발아래 부들부들 떨고 있는 김갑철을 바라보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혹시 내 세입자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 건가? 누, 누구지? 305호 미선 씨인가? 아니면…… 712호에 수현 씨?”
“아주 줄줄 나오네.”
“……크아악!!”
남궁은 쓰러져 있는 김갑철이 걸리적거린다는 듯 발로 툭 밀었다.
그 바람에 고통스러운 듯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비명을 질렀다.
“딱히 당신에게 원한은 없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구해줄 이유도 없어. 각자도생 몰라?”
“하, 하지만……!!”
“정 급하면 네가 믿고 있는 야차에게라도 졸라보든지.”
남궁은 그렇게 대답하고 그를 뒤로한 채 걸어가자, 김갑철은 사색이 되어 남궁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 안 돼!!! 보스는…… 보스는 내가 잡아야 한다고!!”
멈칫-
그 순간 남궁의 발걸음이 멈췄다.
‘묘하네.’
자신을 버려두고 간다는 공포나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지금 김갑철은 보스 사냥에 실패한다는 두려움이 더 큰 것 같았다.
‘자기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 어째서…….’
남궁은 아직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남아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뭐, 나중에 알게 되겠지. 현류 녀석이 김갑철을 이대로 죽이게 둘 리는 없으니까.’
한때는 대한민국 최대의 클랜주였지만 이번 생에서 그는 그저 지나가는 관문에 지나지 않으니까.
[크르르르…….]
남궁은 사소한 문제는 넘겨두고 이제 눈앞의 보스에 집중하기로 했다.
“뿌리사냥꾼. 인간형 마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본체는 저기 뒤에 있는 어둠목이야.”
그의 말에 소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걸 죽이지 않는 이상 놈은 계속해서 재생할 거야.”
“태워 버리면 될까?”
“지하목은 타락하긴 했지만 정령수의 일종이라서 마법 내성이 강해. 뇌화의 위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잡을 수 있는 놈은 아니지.”
“우움…… 그럼 어떡하지?”
남궁은 그녀의 물음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기다려 봐.”
▶ 야차 일족 과반수의 찬성으로 경매의 규율이 변경됩니다.
▶ 비밀 방의 보스 사냥 → 30분 내로 비밀 방에 도착하여 생존
▶ 비밀 방의 보스가 사냥되면 시간과 별개로 비밀 방 안에 생존자들만이 후보가 됩니다.
그때였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매의 룰이 변경되었다는 알림이 울렸다.
‘됐다.’
남궁은 알림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지 않고 생존만 하더라도 후보에 오를 수 있다.
“찾았다!!”
“여기야!! 여기라고!!”
기회가 다시 찾아왔으니 섬에 남아 있던 참가자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저, 저게 보스인가?”
“와씨…… 살벌하게 생겼네.”
보스방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뿌리사냥꾼을 보더니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들의 눈은 다급해 보이는 김갑철과는 달랐다.
‘아하.’
남궁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다.
보스를 잡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살아남는 것이라면…… 할만하다고 말이다.
대충 묻어가도 성공이니까.
단순에 섬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야, 네가 아까 무기 먹었다고 자랑했잖아.”
“뭐래. 그러는 너는 상급 힘의 룬 먹었다고 보스 같은 거 한 방이라며?”
“내가 언제…….”
뿌리사냥꾼을 보며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말만 많았지 나서는 자는 없었다.
대신 그들은 뿌리사냥꾼의 위에 나타난 모래시계를 살필 뿐이었다.
목숨을 걸고 사냥을 해야 하는 것에서 이제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자가 손해가 돼버린 것이다.
‘볼만하군.’
남궁은 그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쉬운 게 어디 있나.”
아무래도 아직 그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싸우기 싫어도 싸우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빌어먹을 카니발이라는 것을 말이다.
파앗-!!
그 순간 뿌리사냥꾼이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김갑철, 현류, 뿌리사냥꾼, 그리고 생존 목표로 바뀐 규율과 원래는 없을 보스방의 참가자들까지.
퍼즐들은 이제 갖춰졌다.
“소민아. 아빠가 줬던 거 잘 가지고 있지?”
“응. 여기.”
김갑철을 뒤로한 채 남궁이 딸에게 물었다.
그러자 소민은 목에 걸고 있는 얇은 금줄로 된 펜던트를 보였다.
다름 아닌 요르에게서 받은 미궁의 보상이었다.
“그래. 잘 가지고 있어.”
남궁은 말했다.
“이제 그 퍼즐을 채울 판을 짤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