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남의 집 살림살이를 아주 다 부수겠군.]
걸걸한 목소리에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왔나.”
[왔나? 어느 안전이라고 이 새끼…… 말하는 꼬락서니가? 죽고 싶…… 켁!!!]
[시끄럽다.]
통천루의 입구에 서 있던 남궁을 보며 현류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목덜미를 잡아 무휘가 뒤로 내던졌다.
[내가 아직 대화를 시작하지 않았느냐. 끼어들 자리라고 생각했느냐.]
[……죄, 죄송합니다.]
수미터를 날아간 현류는 간신히 바닥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단 한 번뿐이었는데 무휘의 손에 잡힌 그의 목은 시뻘겋게 자국이 나 있었다.
‘……1위계인 현류가 아니라 우리였으면 아마 목이 부러졌을 거야.’
‘여전히 가차 없으시군.’
뒤에 있던 다른 야차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을 한번 쓰윽 훑었다.
‘그런데 정말…… 저 인간을 상대로 아버님께서 흉차를 쓰실 생각인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제 고작 2번째 문이 끝났을 뿐이야.’
‘룬이든 뭐든 온갖 수는 다 써도…… 격이 너무 달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엉망이 된 규류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양쪽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고 코끝은 부러진 듯 삐뚤하게 꺾여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팔다리뿐만 아니라 전신에 성한 곳이 없어 보였다.
[괜찮냐. 그러게 왜 나대냐. 낄낄.]
[지금 네 몰골을 보고 내게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다 죽어가는 놈이.]
[다 죽어가긴. 야, 이거 봐라.]
퉁-
규류는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그러자 마치 쇠를 치는 것처럼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묵색의 비늘이 튕기며 울렸다.
[투갑술이다. 들어는 봤지? 야차술 중에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술법 말이야.]
그가 씨익 웃자 이빨이 부러진 듯 군데군데 빈 곳이 보였다.
[절대무결의 방어로 수장의 자리까지 오른 마후란의 술법이지. 이제 이 몸께서 계승 했다 이거야.]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지금 그 모습이 절대무결이란 말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제2위계에 오른 녀석이 그렇게 술법의 이해도가 낮아서는…… 쯧.]
현류는 규류의 말에 냉소를 지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의 태도에 규류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냐? 너도 알 텐데. 수장의 자리를 경쟁할 수 있는 위계를 가진 야차들 중에 나보다 더 술법을 빨리 익힌 녀석은 없다는 거.]
[…….]
[네가 1위계를 받은 건 어머니의 혈통 때문이지 나보다 더 잘나서가 아냐.]
[뭐? 이 새끼가…….]
현류는 그를 노려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그럼? 그 꼴은 뭐지? 네 자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면? 투갑술을 익히고도 그 모양이야?]
[뭐긴 뭐야.]
콰아아아앙--!!!
그때였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뜨겁고 새하얀 증기가 섞인 흙먼지가 그들을 덮쳤다.
[내 계약자란 인간이 한마디로 미친놈이라는 거지.]
[……!!!]
수미터를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아치는 증기의 열기에 야차들은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설마…….]
현류는 그 증기가 무휘의 흉차가 발동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정말 인간을 상대로 무구를 사용하셨다는 건가?]
[낄…… 낄낄.]
놀란 현류의 표정을 보며 규류는 재밌어 죽겠다는 듯 웃었다.
[아고고고…….]
웃다가 지끈거리는 통증에 턱을 부여잡으며 그는 연기 속 두 사람을 바라봤다.
[장로회의 노인네들이 경악을 금치 못할 거야. 그들은 항상 무량의 술법이 최강이라 소리쳤으니까.]
[그런데? 불순한 소리를 하려는 거냐.]
[불순하다니. 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는데 그냥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잖아.]
규류는 말했다.
[무량의 술법은 이미 한 번 깨진 술법이라는 거.]
솨아아악…….
흉차의 열기로 만들어진 흙먼지가 바람에 실려 씻겨 나가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저게 뭐야?]
[말도 안 돼…… 아버님의 흉차를 막았다고?]
[고작 인간 따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규류는 오히려 자신이 기쁜 듯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거다. 안주한 자는 얻을 수 없는 힘이지.]
현류는 창백한 얼굴로 남궁을 바라봤다.
[무명의 술법…….]
* * *
[……무아경(無我經)?]
무휘는 자신의 주먹을 막아 선 남궁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사라진 무명의 술법인가?]
“그래. 바로 맞혔다.”
[미치겠군…… 수많은 수장들이 찾으려고 했던 그 술법을 인간이 익히다니. 도대체 그걸 어떻게 익힌 거지?]
“어떻게 익히긴. 비전서가 저 탑 안에 있었으니 익혔던 거지.”
[허…… 허허.]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남궁의 태도에 무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무량을 이긴 유일한 야차. 무명은 역진경의 안쪽에 자신의 술법은 남겨놓았더군. 그건 일종의 메시지야. 이미 한 번 깨진 술법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
꿈틀-
남궁의 말에 무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을 인정하고 부정한 자만이 무명의 술법을 익힐 수 있게 해둔거지.”
[얄궂군. 그의 숨겨진 뜻을 우리가 아닌 인간이 깨우치다니 말이야.]
철컥-
무휘가 자세를 잡았다.
그가 손을 뒤로 잡아당기자 건틀릿의 위쪽에서 마치 탄피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커다란 통이 튀어나왔다.
촤르륵……! 철컥-!!
건틀릿의 테두리에는 그런 원통이 8개씩 달려 있었고, 튀어나간 빈자리에 테두리에 있던 원통 하나가 장전되었다.
통 안에 들어 있는 특수한 탄을 투기로 폭발시켜 순간 비약적인 공격력을 내는 발경술(發勁術).
그것이 무휘의 흉차였다.
‘앞으로 8개인가.’
남궁은 바닥에 떨어진 빈 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대 야차의 수장들 중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졌지만 탄환이 필요하다는 제약이 있었다.
‘뭐…… 흉차가 없다고 해서 저 괴물을 이길 자신은 없지만 말이야.’
그는 긴장된 표정으로 무휘를 바라봤다.
[재밌군. 풍문으로만 들었던 무명의 술법을 찾은 것도 모자라서 익히기까지 하다니…… 장로회의 노인네들이 경악하겠어.]
퉁- !! 퉁퉁- !!
무휘가 양쪽 건틀릿을 서로 부딪히며 말했다.
[걱정 마라. 힘의 균형은 맞춰주마. 대충…… 1,000,000분의 1 정도의 힘으로 상대해 줄 테니.]
그는 마치 들어와 보라는 듯 입꼬리를 씩 올리며 남궁을 향해 손짓했다.
마치 어린아이와 놀아주는 듯한 모습.
오싹-
하지만 여유로워 보이는 무휘와 달리 남궁은 그가 손을 든 것만으로도 자신도 모르게 검을 움켜잡았다.
“……괴물은 괴물이군.”
남궁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휘의 태도는 장난 같아 보여도 그의 말은 장난이 아닐 것이다.
정말로 그는 자신의 수준에 맞춰 능력을 낮췄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위압감은 단순히 능력을 떠나 태생적인 것이었다.
“후우…….”
쥐고 있던 검에 힘을 주자 참회자의 검날에 검은 기류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사령술로 검의 예기를 높인다? 저런 게 가능한 건가?]
[말했잖아. 내 계약자는 미쳤다고. 네가 고른 욕심 많은 아저씨와는 다르지.]
[솔직히 말해봐. 진짜 네놈이 찾은 거냐? 저자를?]
[응? 뭐…… 비슷하거든?]
현류의 물음에 규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먼 산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좋아. 그래야지. 진짜 실력 한번 볼까.]
무휘는 남궁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아주 잠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두 사람의 공간은 공기마저 무겁게 내리앉았다.
[흠.]
모두가 긴장된 상황.
하지만 무휘는 오히려 지루하다는 듯 낮은 탄성을 터뜨렸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거구인 그의 몸이 굉음과 함께 포탄처럼 튀어나갔다.
[여기까지 찾아온 게 서로 얼굴만 보기 위해서는 아니잖냐. 안 그래?]
부우웅-!!
남궁은 날아오는 주먹을 황급히 피했다.
펑! 퍼엉! 퍼어어엉!!
분명 공격을 피했지만 요란하게 터지는 파공음과 함께 남궁의 머리가 옆으로 획 꺾였다.
“……쿨럭!!”
그의 입가에 핏물이 맺혔다.
“퉷!!”
한 움큼의 피를 뱉어 내며 남궁이 입가의 핏물을 손등으로 닦았다.
화아아악……!!
그가 서 있던 자리에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얕다.]
사령술로 만든 연기를 뚫고 검을 그으려는 찰나, 무휘가 기다렸다는 듯 상체를 돌리며 후방을 향해 냅다 주먹을 날렸다.
[야차는 냄새를 잘 맡거든.]
퍼어어엉!!!!
대포를 쏘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그의 건틀릿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캉-!!
경쾌한 소리와 함께 【흉차】가 열기를 뿜어내며 빈 탄환이 튀어나왔다.
[……!!]
하지만 그 순간 무휘의 얼굴이 굳어졌다.
타닷……!!
연기가 흩어지자 그의 주먹에 맞닿아 있는 것은 남궁의 피가 묻어 있는 검을 든 아스였다.
[크…… 크륵…….]
사령이라 죽진 않겠지만 무휘의 일격에 상체의 거의 대부분이 날아가 버린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내며 사라졌다.
푸욱-
그 순간 따끔한 통증과 함께 무휘는 아래를 바라봤다. 자신의 복부를 뚫고【백천강검】이 튀어나왔다.
치이이익……!!
몸 안에 흐르는 열기와 검의 냉기가 만나자 새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훕……!!”
남궁은 무휘의 옆구리에 박아 넣은 검의 손잡이를 밟고 뛰어 올라 허공에 떠 있는 【참회자의 검】을 움켜잡았다.
화아아악……!!
그 순간 그의 등 뒤로 영혼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캉! 캉!! 카가가강!!!
영혼 병사들이 일제히 무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수십 번의 검격이 요란하게 무휘의 건틀릿을 두들겼다.
[과연 요르의 사령술이구나. 2번째 문이 끝난 시점인데 이 정도로 싸울 수 있다니. 하나…….]
부우우웅--!!!
무휘가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영혼 병사들을 공격했다.
[아직 승화(昇華)도 거치지 않은 사령들로 가당키나 하겠느냐!]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영혼 병사 중 하나가 그대로 부서지며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퍽! 퍼억!!
그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영혼병사들이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그야말로 압살(壓殺).
현 시점의 마물들 중 아스 덕분에 강화된 영혼 병사들을 일격에 소멸시킬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어떠냐.]
순간 허공에 흩어지는 영혼 병사들의 가루를 바라보며 무휘가 말했다.
“어떻긴…… 힘 낭비지.”
철크덕-
그 순간, 부서진 영혼 병사들의 가루들이 무휘의 건틀릿에 엉겨 붙었다.
[……?!]
무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의 흉차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푸욱-
그 순간 무휘가 고개를 돌렸다.
[너, 나와 독대를 할 때 뭐라고 했더라?]
무휘는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 쇄골과 목 사이로 검을 밀어 넣는 남궁을 보며 물었다.
“뭐라긴…… 당신을 살리겠다고 했지.”
꽈드드득…….
남궁은 온 힘을 다해 검을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