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270)

76화

“정말 괜찮을까요?”

접견실을 나와 남궁과 복도를 걷던 박효주가 그에게 말했다.

“집은 저희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테니…… 적색지대에 다녀오시는 건 어떠세요? 어쨌든 보스 몬스터를 사냥해야 끝나는 거잖아요.”

“글쎄. 기자들에게도 못 지킨 집을 잘 지킬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되긴 하지만.”

“끄응…… 그건.”

결의 가득한 표정으로 목소리에 힘을 주었던 그녀는 남궁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얼굴을 붉혔다.

“농담이야. 내가 현 상황에서 정부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너 뿐이라는 건 거짓이 아냐.”

남궁이 말했다.

“집을 지킨다고 해서 적색지대를 포기하는 것은 아냐. 그쪽은 명훈이에게 맡길 거야.”

“으음…….”

박효주는 말을 아꼈다.

최명훈의 실력도 뛰어나다는 건 인정하지만, 알렉 트라만과 같은 계시자들이 있는 적색지대에서 과연 그가 활약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꼭 강해야만 보스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

남궁은 그녀의 표정을 읽은 듯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

그러고는 품 안에서 메모를 꺼냈다.

“따로 조사한 국내의 괜찮은 자질을 가진 인재들의 명단이야. 적색지대가 열리고 좀 시간이 지난 뒤에 마물들이 소환될 테니…… 그 시간 동안 최대한 영입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봐.”

“알겠습니다.”

박효주는 그가 건네준 명단을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가시지 않으시고요?”

“물론 나도 해야지. 저들 말고 따로 가볼 곳이 있거든. 뭐, 그 노인네는 내가 간다고 해서 도와줄지 의문이지만.”

“누군데요?”

“노원구의 만덕수. 전에 장길수에게 부탁했었는데 연락이 왔거든.”

‘장길수와 만덕수…… 일단 그 둘이라면 서울의 방어는 어느 정도 체계를 잡을 수 있겠지.’

남궁은 적절한 시기에 그를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참, 참고 사항이긴 한데 군 병력을 배치할 때 대구와 포항 쪽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게 좋을 거야.”

“군산은요?”

“군산 쪽은 오히려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쪽이 나을 거야. 방어를 하기에 썩 좋은 여건도 아니지만 위쪽에 있는 대전이 다른 도시보다 훨씬 안전할 거거든.”

“대전이요?”

“응. 어쩌면 서울보다 더 안전할 지도.”

남궁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무장공(武裝工) 진수혁.

무구 제작이라는 특수한 자질을 가진 그는 지금쯤이면 대전을 점차 요새화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자는 굳이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오히려 도움이 없을 때 더 빠르게 성장할 사람이니까.’

진수혁은 전생에도 적색지대에 가지 않고 도시를 지킨 수문장 중 한 명이었다.

“일단은 여기까진가…….”

남궁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재촉했다.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비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하지만 모울을 잡지 못한다면 마물들에게 밀리게 되겠지.’

그 전에 끝내야 했다.

적색지대든 이곳이든 결국 시간 싸움이었다.

* * *

-알렉 트라만의 유니버스 클랜, 적색지대 공략을 위해 출정하다!

-숨겨져 있던 계시자들이 모습을 드러내다!

-미 백악관의 중대 발표! 위대한 마법사 덴 하울의 등장을 알리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구호단체, STW의 신임 이사 에이라 미쉘, 계시자를 인정하다!!

-STW, 적색지대 공략자들을 지원하기로…… 마물 사냥이 아닌 사람들을 구호하는 것이 목표!

-에이라 미쉘의 인류애에 전 세계인들은 감동…….

적색지대가 열린 지 3일 뒤.

전 세계는 바쁘게 움직였고 남궁의 예상대로 계시자 중 하나인 덴 하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움직이기 시작했군.”

그들을 향한 쏟아지는 기사들은 읽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업로드되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에 대한 관심은 엄청났다.

“언론 플레이를 제대로 하는군. 적색지대를 공략하게 되면 세계를 구한 영웅이라도 되겠어.”

이미 두 차례의 지옥문을 막았던 남궁은 그들의 모습이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올라오는 기사들엔 그의 업적과 그의 정체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창 관심을 받았던, 대리자 일족의 계약자로 뽑힌 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오로지 적색지대를 공략하는 이야기뿐.

그리고 그곳을 공략하는 계시자들의 내용으로 인터넷은 도배되고 있었다.

“영웅을 만들려는 것이겠지.”

남궁은 그들의 속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적색지대를 공략하게 되면 언론들은 그를 세계를 구할 영웅으로 칭송할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각국의 정부들은 그 영웅이 자신들이 속한 연합에서 나오길 바라고 있다.

‘그 욕심 때문에 적색지대를 공략하기는커녕 거점을 확보하고 서로 싸우느라 바빴지.’

“쯧-”

남궁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

그 순간, 기사 목록 중 그의 눈에 들어오는 제목이 하나 있었다.

[영웅 이전에 영웅이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일까?

남궁은 핸드폰을 끄기 전에 그 기사를 눌렀다.

[2번의 차원문을 막은 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그의 정체에 주목 해 볼 필요가 있다.]

기사의 내용은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3명의 계시자들에 관련된 기사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기자가 있다는 것은 그로서는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1번째 문 이후 계시자로 주목 받았던 최명훈, 강호준 씨는 계시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2개의 문은 분명 한국에서 공략되었다.]

[그렇다면 보스는 사냥한 자는 누구?]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알아 낼 필요가 있다.]

스크롤을 내려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국경일보 한지희 기자】

“흐음···.”

남궁은 혼자서만 다른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을 기억했다. 

‘모난 돌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앞으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

 지잉- 지잉-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기사가 적혀 있는 화면 위로 장길수의 이름이 나타났다.

-도착했어?

“네. 이제 막.”

-정말 같이 안 가도 되겠어? 그 노인네 성깔이 보통이 아니더만. 전에 협회 애들이 갔다가 혼쭐이 나서 쫓겨났거든.

“그 성격 저도 잘 알죠. 걱정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쉽지 않았을 텐데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여튼 필요한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게. 나는 자네가 말한 대로 거점의 방벽을 추가로 세우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차에서 내린 남궁은 장길수와의 통화를 끝내고서 쪽지에 적힌 주소를 보며 주위를 훑었다.

그가 없는 동안 마장동은 아직 미흡하지만 그래도 다른 구역에 비해 요새로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3개의 바리게이트를 구축했고 각각의 구역에는 축산 협회의 도축업자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남궁과 의논한 결과 장길수는 적색지대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침공 하는 마물들을 막을 생각이었다.

‘마물을 먹어치워서 강해지는 그로서는 오히려 습격해 오는 마물을 받아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니까.’

장길수는 협회인들을 대동하여 도시를 지킬 방벽을 계속해서 만들고는 있었지만 그래 봐야 그들이 지킬 수 있는 지역은 한정적이었다.

박효주를 필두로 한 마물전담팀인 참악 부대 역시 아직 수가 적었다.

‘서울의 크기는 크고 쓸 만한 실력자들을 너무 적다.’

그렇다고 진수혁처럼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도 없었다.

그렇기에 찾은 방법.

“…….”

남궁은 특별할 것 없는 동네 골목길을 훑었다.

1번째 지옥문의 고블린 습격으로 여기저기 부서진 거리는 아직 복구가 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끄응-”

골목 안쪽에서 힘을 쓰는 숨소리가 들렸다.

‘여긴가.’

남궁이 길목에 접어들자 안쪽에는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 폭삭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쌓여 있는 공터가 나타났다.

“실례합니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티셔츠 한 장에 수건을 목에 두른 채로 시멘트가 붙은 철근을 나르고 있는 노인은 남궁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체구는 작았지만 나이를 무색하게 잘 잡혀 있는 근육과 범상치 않는 눈빛.

공방왕(工房王) 만덕수였다.

남궁은 당장에라도 가서 악수를 청하고 싶은 반가움에 어깨가 움찔거렸다.

전생에 도움을 받았던 동료 중 한 명.

하지만 그가 자신을 알 리 없었다.

“여기가 철물점이 맞습니까? 이런 곳에 이렇게 커다란 공터가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는 기쁨을 억누르며 모른 척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검색을 해서 찾아왔다는 의미였다.

“손님이셨구먼. 그래, 뭘 사러 오셨소? 철물점은 저기 뒤에 있네. 그리로 갑시다.”

만덕수는 들고 있던 삽을 내려놓고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여긴 그냥 빈 공터라 내가 정리를 하던 것뿐이거든. 원래는 아들 내외가 살던 곳이었는데 말이지.”

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공터 여기저기 아직 남아 있는 잔해들은 이곳에 집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셨군요.”

남궁은 그의 말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덕수에게 자녀가 있었는지 몰랐는데…… 하긴, 도통 말을 하지 않았던 양반이니까. 문이 열리고 나서 잃은 모양이군.’

무너진 건물을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남궁은 잠시 그가 정리를 하는 동안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혼자서 하시는 겁니까?”

“뭐…… 그렇지. 빌어먹을 세상…… 남은 것도 얼마 없는 늙은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아 가다니 말이야.”

만덕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그러는 걸 겁니다. 저 아이라고 해서 어찌 부모의 시체를 찾고 싶지 않겠습니까.”

남궁의 말에 그는 잔뜩 쌓여 있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하지만 혼자서 저 잔해들을 옮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 않습니까. 인부라도 부르시죠.”

“됐네.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네. 저기 가서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나 보게나.”

그는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물건을 들여오던 업체들이 대부분 문을 닫아서 남은 게 별로 없어서 말이야. 찾는 게 있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말과 달리 가게 안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물건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남궁은 몇 가지 물건들을 살폈다.

‘가볍다.’

평범해 보이는 것들이었지만 절대로 그 안의 내용물들은 그렇지 않았다.

철컥-

남궁은 상자 안에서 낡은 전동 드릴을 꺼냈다.

지이이잉…….

드릴이 회전하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울렸다.

“좋네요.”

남궁은 들고 있던 전동 드릴을 그에게 흔들고는 자리에 내려놓았다.

“거긴 중고야. 쓸 만할 걸세. 내가 조금씩 손을 본 것들이거든. 중고라서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웬만한 새 제품보다 더 나을걸.”

“그런 것 같네요. 실력이 좋으신가 봅니다. 이거 장비 전문인 툴앤사(社)에서 나온 제품 아닙니까?”

“알아보는군.”

“성능이 좋아서 부대에서도 많이 쓰죠. 단점은 더럽게 무겁다는 거지만요.”

남궁이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건 장난감처럼 가볍네요. 경량화된 제품이 나왔을 리 없고.”

“…….”

그는 진열대 안쪽에 있는 작은 망치를 꺼냈다.

사고 시 유리를 깨는 용도로 사용되는 비상용 유리 망치였다.

기껏해야 손바닥만 한 크기.

저벅- 저벅- 저벅-

남궁은 그것을 들고서 가게 문을 나섰다 .

“자, 잠시만……!!”

별것 아닌 것 같은 그 망치를 잡는 순간 만덕수는 당황한 듯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앙-!!

남궁은 망치로 발아래에 있는 커다란 시멘트 덩이를 내려쳤다.

쩌적…… 쩌적…….

퍼억!!!

“손을 보신 것치곤 좀 과하네요.”

그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망치에 닿은 부분에서 금이 가더니 시멘트 덩어리들이 산산조각 나며 가루가 되어 버렸다.

“무너진 건물 아래 자식의 시체가 깔려 있다면…… 당장에라도 구해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죠.”

남궁은 들고 있던 망치를 만덕수에게 던지며 말했다.

“그런데 인력도 부르지 않고 혼자서 잔해를 치운다? 왜일까요?”

그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직접 하는 게 더 빠르기 때문이겠죠.”

“……자네 정체가 뭔가?”

만덕수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

“앞으로 서울을 비롯해서 주요 도시들에 방벽을 세울 겁니다. 동원 할 수 있는 모든 인력을 모두 동원하고 있지만……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힘을 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분명 말했을 텐데. 나는 이 세상에 더는 여한이 없어. 조용히 내 할 일을 마치고 마무리할 걸세.”

“아니.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자네가 뭔데?”

남궁의 말에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저 역시 부모니까요.”

움찔-

그 순간 만덕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솨아아악……!!

남궁의 주위에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나타난 영혼 병사들이 무너진 잔해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쿠그…… 쿠그그그…….

영혼 병사들은 연기의 형태가 되어 잔해들을 감싸 하나씩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기훈아…….”

잔해 속에서 만덕수의 아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의 아들 부부는 마치 마지막 순간의 공포를 이겨내기라도 하려는 듯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흑…… 흐흑…….”

만덕수는 일그러진 얼굴로 두 시체를 끌어안았다.

“부모의 마음을 지켜주십시오. 자식을 잃지 않도록. 그 끔찍한 경험을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꽈악-

남궁은 만덕수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당신이 만든 도구라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

그의 말을 조용히 듣던 만덕수는 뭉개진 아들의 뺨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물었다.

“……아이가 있다고 했나?”

“네. 딸이 한 명 있습니다.”

“아이는 살아 있고?”

남궁은 잠시 그의 물음에 대답을 멈칫했다.

마치 주마등처럼, 회귀 이전 25년간의 끔찍했던 시린 감정들이 그를 찌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대답할 수 있다.

“네.”

남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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