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77/270)

77화

-알렉 트라만의 유니버스 클랜, 적색지대 공략 순항 중! 첫 번째 마물, 고블린을 격퇴! 이어 리자드맨과 격돌 중…….

-미국의 덴 하울, 뒤늦은 거점화 성공! 발 빠르게 공략에 참여, 리자드맨 섬멸의 의지를 밝히다!

-구호단체 STW의 이사 에이라 미쉘의 뛰어난 회복 능력! 사람들은 그녀를 성녀라 칭하기 시작…….

적색지대가 열린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만에 고블린 섬멸이라…… 내 생각보다 오히려 속도가 빠른걸.”

남궁은 연일 올라오는 공략 속보를 읽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생에선 거점을 차지하고 나서 서로 마물을 선점하려고 다투기 바빴는데…….”

에이라 미쉘이야 어차피 중립이었다 해도, 의외로 알렉 트라만과 덴 하울의 세력들 또한 마찰 없이 적색지대의 마물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설마 이것도 나 때문인 건가?”

남궁은 스스로 말하면서도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서로 싸우고 있을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는 것이었다.

꺾어야 할 상대가 있으니 일단은 함께 강해져야 했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무언의 동맹을 맺은 상태가 된 것이다.

공공의 적.

뭐, 나쁘지 않았다.

악역이 되는 것에 그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그로 인해 그들이 적색지대에서 더 강해질 수 있다면 말이다.

“준비 끝났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박효주가 들어왔다.

“부대의 배치는 모두 끝났고 헬기를 이용해서 공항으로 바로 가시면 됩니다.”

그녀는 요 며칠간 꽤나 열심히 움직인 듯 조금 피곤한 모습이었다.

“침공에 관한 공문은?”

“마물이 적색지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각국은 좀 더 방비에 집중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공문을 보내긴 했습니다만…….”

“다들 무시한 모양이군.”

남궁의 물음에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적색지대 공략에 다들 관심이 쏠려서…… 그래도 유일하게 아이슬란드 쪽에서만 답신이 온 모양입니다.”

“흐음.”

‘쿠후란이 힘을 쓴 모양이로군.’

박효주의 말에 남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오늘이 지나면.”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우리의 말을 무시할 수 없을 거야.”

두두두두두두…….

남궁은 헬기에 몸을 실었다.

“출발한다.”

성남에 위치한 공항에는 평상시와 달리 전투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포항으로.”

모두가 환희에 빠져 있는 지금,그는 이미 전투를 시작하고 있었다.

* * *

“갑자기 뭐야?”

“얼마 전부터 갑자기 펜스를 설치하더니 저렇게 군대가 진을 치던데?”

“하여간 쓸데없는 짓을 한다니까. 지금 다들 적색지대 공략한다고 난리인데…….”

“그러게 말이야. 하라는 공략은 안 하고 뭘 하는 건지.”

며칠 전부터 포항신항에서 공항까지 배치된 군부대의 모습을 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곳은 작전 지역입니다. 문자를 받으셨을 텐데요. 조속히 귀가하시기 바랍니다.”

군인은 몰려든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경계를 서는 군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작전은 무슨…… 또 뭘 하려고?”

“돈 낭비도 아주 제대로 하네…… 요즘 세상에 군인이 무슨 소용이라고. 계시자라면 모를까.”

대놓고 말을 하진 못했지만 그들은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리기 일쑤였다.

솨아아아악---!!!

하지만 그때, 머리 위로 귀를 찢을 듯한 요란한 전투기 소리가 들렸다.

부우우우……!!

촤아아아아……!!

상공에서 날아가는 전투기뿐만 아니라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함선들의 등장에 사람들은 뭔가 이상함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지, 집으로 갈까?”

“그게 좋겠지? 볼 것도 없고…….”

지이이잉-

그 순간, 사람들은 일제히 울리는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봤다.

마치 마지막 경고처럼 외출을 금지하는 긴급 재난 문자가 울리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에휴, 사람들도 참…… 꼭 일이 터져야 말을 듣는다니까.”

“그런데 진짭니까? 마물이 나온다는 말 말입니다.”

“모르지 나야. 군인이잖냐. 까라면 까는 거고 죽으라면 죽는 거지.”

“죽으래도 죽긴 싫은데요.”

“크큭.”

펜스 뒤로 흩어지는 시민들을 바라보던 2명의 군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나눴다.

“지시 보고받았지? 전방 지원이야. 단독 임무니까 조심하게.”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호리호리하게 생긴 남자는 군인답지 않게 햇빛을 거의 보지 않은 것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무기고에 연락해 뒀으니 필요한 장비들이 있으면 모두 가져가고.”

“네이, 네이.”

어쩐지 의욕이 없어 보이는 퀭한 눈동자로 그는 손을 저으며 저벅 저벅 걸음을 나섰다.

솨아아악---!!!

“흐음.”

그리고 상공 위를 나르는 전투기의 엔진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날씨 한 번 기가 막히군.”

풀어헤친 군복 가슴에 붙은 이름표에 적혀 있는 이름은 【김창환】.

“……어?”

그 순간, 하늘의 색이 변했다.

마치 해가 사라진 것처럼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뭔가 잘못되었다.

어두워진 하늘은 해 때문이 아니었다.

[키에에에엑---!!!]

까마득하게 상공을 채운 몬스터 때문이었다.

* * *

워싱턴 D.C

과거의 공포는 이제 사라진 듯 점차 복구되는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일상을 되찾은 듯 보였다.

“덴 하울이 적색지대를 공략하고 나면 나중에 우리도 거기 가볼 수 있으려나?”

“그러게. 관광지같이 변하면 좋을 것 같은데.”

라파예트 공원을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엔 이제 조금 희망이 생기는 듯 보였다.

콰아아아앙---!!

그때였다.

높이 169m의 현존 하는 세계 최고의 오벨리스크, 공원에 세워진 워싱턴 기념탑이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굉음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뭐, 뭐야?!”

기념탑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무너지는 잔해와 함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로마.

한때 텅텅 비었던 트레비 분수 앞에도 어느새 사람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치직…… 치지직…….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멋진 분수에 꽂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뭐지?”

비라도 내릴 것처럼 잔뜩 어두워진 하늘을 사람들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툭-

순간 누군가 들고 있던 커피잔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촤악 하고 뜨거운 커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

하지만 뜨거운 커피가 자신의 바지를 적셔도, 그 누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넋이 나간 얼굴들.

[키에에에에엑---!!!!!]

사람들은 자신들을 향해 들려오는 마물의 포효 소리에 그저 굳은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영국.

“으, 으아아악!!”

“살려줘!!”

런던 거리로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

이미 두 차례나 마물들을 겪어봤음에도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선 2번의 지옥문과 지금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순조로운 적색지대의 공략과 함께, 그곳을 공략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으니까.

퍼억--!!

“크악!!”

하지만 막연한 희망은 더 큰 절망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사방엔 시체들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사…… 사…… 살…… 으아아악!!!”

거리를 도망치던 남자의 비명 소리가 메아리처럼 저 멀리 사라져 갔다.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뭔가가 목덜미를 콱! 낚아채며 하늘로 날아오른 것이었다.

우드득…… 우득!!

공중에서 들리는 뼈를 씹어 먹는 소리.

하늘 위로 뜯겨 나간 팔과 다리만이 조금 전 남자의 존재를 알리는 증거일 뿐이었다.

[키에에엑!!!]

익룡처럼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긴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물들.

와이번이었다.

남성을 먹어치운 놈은 아직도 배가 고픈지 다음 먹잇감을 찾으러 두리번거렸다.

-맙소사…… 저게 도대체 몇 마리야?

슈아아앙……!!

급파된 F-35∥편대의 무전에서 공포가 느껴졌다.

-발사 준비.

-……라저.

쿠아아아앙……!!

전투기의 미사일이 일제히 불을 뿜자, 와이번들 사이에서 일어난 폭발이 여기저기 검은 불꽃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가 하늘을 가득 채웠다.

[키에에에엑!!]

시커멓게 그을린 몇몇의 와이번들이 충격에 비명과 함께 지면으로 추락했다.

-타격의 유효 확인.

-전 대대 화력을 집중한다.

-라저. 제2발 준…….

하지만 그 순간, 추락하던 와이번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감았던 눈을 떴다.

솨아아악!!!

몇 번의 날갯짓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놈이 커다란 입을 멀리며 선두에 있던 전투기를 와그작 씹어 먹었다.

콰앙!!

손을 쓸 새도 없이 한 대가 종잇장처럼 뜯겨 나갔다.

-알파! 알파!! 응답하라!!

동료의 외침에도 대답은 없었다.

퍼어어엉---!!

그리고 전투기를 물어뜯고 있던 와이번의 복부에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부서진 전투기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

[케에엑!!!]

조금 전과 달리 폭발과 함께 복부가 뚫린 와이번은 이번에야말로 숨을 거둔 채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알파!!…… 한슨!! 한슨 대위!! 야!! 이 새끼야!!!]

솨아아앙……!!

남은 4대의 전투기들이 방향을 틀며 선회했다.

대답은 없었다.

미사일의 폭발과 함께 완파된 전투기 역시 와이번의 시체와 같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나버렸다.

콰앙-!!!

하지만 동료를 잃을 슬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위험해!!]

선회하던 편대 전투기의 앞으로, 와이번들이 어느새 그들을 물어뜯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찰 드론이 찍어온 영상입니다!”

영국 의회의 웨스트민스터 궁전에 긴급 소집 된 각 각료들은 황급히 모니터를 향했다.

“이, 이럴 수가…….”

국방부참모총장 칼슨 총장은 모니터에서 보이는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우그적……! 우그적……!!]

[콰드드득……!!]

스피커로 들리는 마물의 울음소리.

장관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다.

‘……모두 사실이었어.’

뚜– 뚜-

회의실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각료들은 긴장힌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여왕님이십니다.”

총리는 창백한 얼굴로 칼슨 총장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칼슨 총장.

“……네.”

-얼마 전에 한국에서 공문이 왔다고 했었죠?

“그, 그게…… 그렇습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들썩이던 총장은 여왕의 물음에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들은 알렉 트라만이 적색지대를 공략하게 되면 얻을 이익만을 생각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마물 공습의 경고?

그저 타국의 시기라고 치부하며 당연하게도 무시해 버렸다.

한데…….

경고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현재 남아 있는 전력으로 마물들을 막을 수 있습니까.

“특성을 깨우친 능력자들 대부분이 적색지대로 가 있는 상황이라…… 동원할 수 있는 부대 전력을 모두 투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은 불가능하다는 뜻이군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총장의 대답에 여왕은 탄식의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방법이 없는 겁니까.

“일전의 몬스터 웨이브와 같은 형식이라면…… 어쩌면 이번에도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마물의 소환도 멈출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알렉 트라만을 부를 수 있습니까?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하나 첫 번째 고블린들을 소탕하고 지금 막 새롭게 소환된 리자드맨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아서…….”

그의 대답에 여왕은 탄식을 터뜨리고 말았다.

“현재로서는 적색지대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국가들이 보스 몬스터를 토벌하기를 바랄 수밖에…….”

-하아…… 가능성이 있는 곳이 있나요?

“현재로선 한 곳뿐입니다.”

-그게 어디죠?

“지금까지 모든 보스를 사냥한 나라…….”

총장은 여왕의 물음에 죽기보다 싫은 표정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앞서나가려던 욕심에 모든 전력을 투입한 것이 오히려 그들을 돋보이게 만들고 말았으니까.

“……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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