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부탁하죠.”
남궁은 뒤집어진 차량에서 헬멧을 꺼내 푹 눌러쓰고서 말했다.
파앗-!!!
그는 무너진 항구의 벽을 통과해서 그대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즐비하게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들 사이를 통과할 때마다,
퓻-!! 파밧---!!
예측하기 어려운 궤도에서 날아드는 탄환이 정확히 남궁을 노리는 와이번의 눈을 터뜨렸다.
[키에에엑!!!]
시야를 잃고 발버둥 치는 와이번의 목을 영혼 병사들이 정확히 베어냈다.
[좌측 A-11934 박스 위로 가십시오. 대전차지뢰를 설치해 뒀습니다.]
남궁이 김창환의 지시를 따라 컨테이너에 연결되어 있는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섰다.
콰앙-! 쾅!! 콰가가가강!!!!
그를 노린 와이번들이 내려오는 순간 연속으로 지뢰가 터졌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시커멓게 그을린 와이번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놈들의 질긴 목숨은 지뢰만으로도 끊어지지 않았는지 남궁을 쫓으려 비틀비틀 그의 뒤를 따라 기어갔다.
“지뢰 터지는 타이밍이 좀 빠른 것 같은데?”
남궁은 마치 이런 일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시커멓게 그을린 헬멧을 던지며 말했다.
-그 정도 능력은 있으시지 않으십니까. 저희와 달리 대단하신 이능의 힘을 가진 분인데.
남궁은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피식 웃고 말았다.
“인사가 과하다. 새꺄.”
-인사도 없이 오신 분이 누군데 인사를 바랍니까. 형님께서 오신다는 인사를 호준이에게 미리 받아야 합니까? 제가?
‘호준이 녀석, 이 일이 끝나면 혼 좀 내야겠군.’
자신이 알기로는 김창환이 복무하고 있는 곳은 포항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강호준이 그에게 미리 얘기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명훈 형이랑도 같이 있으시다면서요. 호준이가 적색지대로 간다면서 형님을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는데? 대구? 부산?”
-어디에 있긴요.
어쩐지 수신기에서 들려야 할 목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남궁은 그 순간 도로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김창환을 볼 수 있었다.
뭔가 많은 것을 묻는 듯한 눈빛.
하지만 남궁은 그런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서 지나가며 말했다.
“인사는 나중에 하자.”
김창환은 자신을 지나가는 그의 반응에 서운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불만의 소리는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인간…….]
항구의 끝에 세워진 거대한 방벽이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저게…… 뭐지?”
처음에는 항구의 조형물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이제 보니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쿵, 쿵, 쿵, 쿠우웅……!!!
방벽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방벽 안에 바위로 된 머리가 나타났고, 마치 어린아이의 변신 로봇처럼 방벽의 구조가 변형되더니 거대한 석상의 모습이 되었다.
쿠그그그…….
석상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천천히 허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이언 골렘.”
5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마물을 바라보며 남궁이 말했다.
“저게 보스 몬스터인 겁니까?”
“아니. 저건 그냥 하수인에 불과해. 보스는 오직 1명이지만 저놈은 여기뿐만 아니라 군산과 대구에도 소환되었을 거야.”
“그럼 어쩌죠? 다른 곳은…….”
김창환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곳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저놈을 부숴야 한다. 3명의 파수꾼 중에 한 놈이라도 파괴되면 그곳에 보스 몬스터가 생성되거든.”
“그렇다면 서둘러야겠군요. 그런데 저 괴물 녀석…… 탄환이 들어 갈 곳이 있을지 모르겠네.”
두터운 강철 갑주를 두른 듯한 골렘의 모습에 김창환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대답했다.
쿵, 쿵, 쿵……!!
골렘이 걸음을 옮기자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같이 지면이 흔들렸다.
[…….]
놈은 마치 하등생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콰아아앙!!
하지만 그 순간, 있는 힘껏 던진 남궁의 검이 굉음과 함께 골렘의 머리를 때렸다.
“안 되면 되게 해야지.”
* * *
“……대륙에 마물들이 소환되었다고?”
막사로 돌아온 알렉 트라만은 한슨의 보고에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까지 적색지대의 사냥은 순조로웠다.
포탈을 타고 오자마자 연합의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거점을 세웠고 지대에 소환되어 있던 고블린들을 빠르게 섬멸했다.
고블린을 모두 소탕하고 나자 2번째 소환의 알림이 울렸다.
예상대로 리자드맨이었고, 이미 경험을 해봤던 그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놈들을 잡을 수 있었다.
2번의 전투에서 얻은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이전과는 달리 적색지대의 마물들이 드랍하는 아이템은 하나같이 상위 등급의 아이템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얻을 수 있는 룬들도 훨씬 많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적색지대는 그야말로 강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오히려 다른 세력들과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상황은?”
“대륙 전역에 소환된 마물은 와이번들이라고 해. 지금까지와 달리 중형급 마물이라 상대하는 게 쉽지 않은 듯 보이던데.”
“이상하군. 적색지대에 다음 마물은 오크라고 하지 않았어?”
적색지대에 소환되는 마물들은 일종의 앞으로 소환될 마물들의 예행연습과 같았다.
그렇기에 더 많은 마물을 경험해 볼수록 실제로 도시에 소환될 마물들을 소탕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 여겼다.
“지금 소환된 마물들은 4번째 문과는 별개의 것일 수 있지.”
“우리는 지금까지 적색지대가 3번쨰 문의 정체라고 생각했지만…… 적색지대는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거야.”
요한나의 말에 알렉은 인상을 구겼다.
“마물의 섬을 만들고 거기에 더해 대륙에도 마물들을 소환한다라…… 양쪽 모두를 노린 거로군.”
“섣부른 방심의 결과지.”
“지금 잘잘못을 따져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어. 덴 하울 쪽은?”
“거긴 보고를 받고 나서 바로 철수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그때였다.
막사의 문이 열리고, 유니버스 클랜의 클랜원이 알렉을 향해 경례하며 소리쳤다.
“방금 영국에서 도착한 영상입니다.”
그가 태블릿을 알렉에게 전했다.
-콰아아앙……!!
-으악!!!
영상을 틀자 끔찍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이게 와이번?”
“지금까지 상대했던 마물과는 차원이 다르잖아?”
인간보다 작은 고블린과 기껏해야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리자드맨과 달리, 영상 속 거대한 와이번은 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써펀트의 크기는 이것의 몇 배는 되었어.”
“하지만 그건…….”
요한나는 알렉의 눈치를 보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부하가 있는 상황에서 차마 써펀트를 잡은 것은 남궁이었지 않냐는 말을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지이잉…….
그때였다.
탁자에 놓여 있던 위성 전화가 울렸다.
“에이라 미쉘? 아직 여긴 철수 하지 않은 모양이로군.”
‘하긴, 구호 단체인 STW는 딱히 국가의 지원을 받고 움직이는 건 아니니까.’
알렉은 어쩐지 그녀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과연 자신들이 영상 속 와이번을 막을 수 있을까?
막을 수 있다 하더라도 분명 피해가 막심할 것이다.
죽음을 알고 돌아가야 할 일.
“…….”
하지만 여기서라면 강해질 수 있다.
평범한 고블린이 드랍하는 아이템마저 매직 등급이었다. 하다못해 3번째로 소환되는 오크까지만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는 분명 피해를 입을 것이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아온 그였기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알렉입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하지만 그 순간,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에이라 미쉘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어쩐지 조금 전 고민하던 모습과는 달리, 전화를 끊은 그는 꽤나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알렉. 무슨 얘기를 한 거야?”
오싹-
요한나는 어쩐지 살 떨리는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물었다.
“별거 아냐.”
하지만 그런 그녀를 향해 알렉은 오히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미래를 위한 합의를 했을 뿐.”
* * *
위이이잉…….
아이언 골렘과의 대치.
남궁은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드론들을 바라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누가 이런 상황에서 저딴 걸 날리고 있는 거지?”
“군에서 쓰는 건 아닙니다. 민간 쪽이겠죠.”
김창환이 위태롭게 날아다니는 서너 대의 드론들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모두 대피하라고 했을 텐데?”
“모르죠. 죽으려고 용을 쓰는 사람들이 더 있는지.”
철컥-
그가 총구를 겨누었다.
“떨어뜨릴까요?”
“됐어. 탄환을 아껴.”
남궁은 골렘에게 눈을 떼지 않고서 말했다.
“헤드는 좀 남아 있나?”
“네. 신체 교본술 하나 산 거 말고는 쓰질 않아서…….”
창환의 대답에 남궁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잘하고 있었네.”
“도움 좀 주시면 안 됩니까.”
“자-”
심드렁한 그에게 남궁이 뭔가를 던졌다.
“야차 보따리에는 총기류도 있긴 한데…… 그다지 네게 어울릴 만한 것은 없으니까 대신 이걸 써.”
“이게 뭡니까?”
창환은 손바닥 위에 있는 작은 알약을 바라봤다.
넘버링 8891.
이름 : 산올빼미의 눈알
등급 : 매직(최고)
▶ 세상 가장 멀리 볼 수 있다는 산올뺴미의 눈알.
▶ 복용 시 30분간 시야가 확장된다.
“익숙해지는 데 조금 걸릴 거야. 어디 숨어서 적응이 되면 나와.”
창환은 남궁의 말을 들으며 알약을 털어 넣었다.
퍼억!!!
그 순간 주위에 날고 있던 드론 몇 대가 단박에 폭발하며 산산조각이 났다.
“대충 된 것 같네요.”
“탄환 낭비하지 말랬는데?”
“앞으로 하지 않으면 되죠.”
남궁은 탄창을 갈아 넣으며 웃는 창환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생각했다.
‘산올빼미의 눈알을 먹으면 순식간에 시야가 몇 배나 늘어나서 나도 처음 먹었을 땐 적응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는데…….’
이능의 힘이 없어도 싸울 수 있다 자신했던 건 김창환 그 자체가 괴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태스크 포스(Task Force) L 때 기억나?”
“독일 녀석들하고 작전 했던 것 말입니까? 르완다에서 무장집단을 검거했을 때요.”
“맞아. 코드명 기억하고 있지?”
“베이트(Bait : 미끼).”
남궁의 말에 김창환은 단박에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형님답네요. 저 괴물을 상대로 혼자서 시간을 끄시려고 하다니. 알겠습니다. 적당한 포지션을 찾아보죠.”
창환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확실하게 쏴줄 테니까.”
“무슨 소리야.”
하지만 오히려 남궁이 고개를 꺾으며 말했다.
“그거 도망칠 곳을 잘 보라고 준건데.”
“……네?”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창환은 불안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미끼는 너야.”
남궁다웠다.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