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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80/270)

80화

“이, 이런……! X발!! 내가 저 인간은 가만두면 성을 간다! 성을 갈아!!”

김창환은 아이언 골렘에게 자신을 떠민 남궁을 향해 온갖 욕을 퍼부으면서도 있는 힘껏 부두를 달리기 시작했다.

‘제길, 됐고 일단 숨을 만한 곳을……!’

욕지거리를 해봐야 쫓아오는 아이언 골렘이 알아서 사라져 줄 것도 아니었고, 창환은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산올빼미의 눈알 덕분에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틈새까지 그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저기다!!’

전력질주를 하던 창환이 몸을 틀며 컨테이너 박스들이 쌓여 있는 곳으로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팅-!!

그가 연막탄의 안전핀을 뽑아 뒤로 냅다 던졌다.

치이이이익……!!

새하얀 연기가 컨테이너 박스 사이를 가득 채웠고 뒤따라오던 아이언 골렘은 목표를 잃고 잠시 머뭇거렸다.

탕-! 타탕--!!!

그 순간, 탄환이 쇠에 부딪히며 튕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 같은 새끼…… 이번에 새롭게 개발된 대전차용 탄환인데 이것도 안 통해?”

연막을 뚫고 정확히 아이언 골렘의 관절을 노린 창환이 할 얘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골렘의 단단함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크르르르…….]

골렘이 탄환의 궤도를 살피며 그 쪽으로 연기를 뚫고 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앙!!!

연막을 뚫고 튀어나온 아스의 도끼가 아이언 골렘의 이마를 정확히 때렸다.

쿠웅!!

골렘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카가가가가각!!

동시에 3명의 영혼 병사들이 연거푸 골렘의 사지에 검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부우웅……!!

하지만 쏟아지는 그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골렘은 영혼 병사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처음 목표인 창환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아오, 형님!! 저놈 좀 어떻게 해주십쇼!!!”

창환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골렘을 바라보며 허공에 소리쳤다.

하지만 남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으아악……!!”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공포에 찬 비명을 지르며 창환이 양팔로 얼굴을 감쌌다.

콰앙! 쾅!! 콰가강!!!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컨트롤러에 붉은빛이 들어왔다.

동시에 아이언 골렘이 밟은 지면이 폭발하며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쿠웅……! 쿠궁!!!

구덩이에 발이 걸린 아이언 골렘이 그대로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 하하! 별거 아니네. 새끼. 덩치만 컸지 느려터져서 잡히겠냐?”

언제 그랬냐는 듯 창환은 들고 있던 컨트롤러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탕! 탕!! 타탕!!

순식간에 컨테이너 박스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그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골렘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쿠그그그…….

하지만 몇 번의 불꽃이 튀는 것이 고작.

그다지 대미지가 없는 듯 쓰러진 골렘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후웁.”

타닥……! 타다다닥……!!

창환은 쥐고 있던 권총을 집어 던지고서 숨을 있는 힘껏 들이마시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야…… 룬 하나 먹지 않은 인간이 저렇게까지 싸울 수 있는 겁니까? 인간의 성장력은 대단하네요.]

복잡한 컨테이너 박스 사이를 뚫고 다시 부두 쪽을 향해 달려가는 창환을 내려다보며 규류가 갈채를 보냈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그 순간 연기 속에서 남궁이 튀어나왔다.

[왜냐니요. 일족의 계약자가 카니발에 참가했는데 당연히 보러 와야죠.]

“네가 도움이 되긴 해?”

[으흠…… 응원?]

규류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남궁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계셔도 괜찮으십니까? 저 사람 위험한 거 아닙니까? 보아하니 보따리에서 물건도 아무것도 안 산 것 같은데. 잘못해서 골렘에게 한 번이라도 걸리면 그야말로 즉사라고요.]

“네 눈엔 저게 위험한 걸로 보여? 그럼 아직 멀었다.”

남궁은 도망치는 창환을 보며 말했다.

“711부대에서 나를 제외하고 남은 7명 중, 대인전으로 본다면 호준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 덩치요? 하긴, 그냥 봐도 괴물이더니…….]

“그 녀석이 유일하게 이기지 못한 게 저 녀석이야.”

[에이, 설마요.]

규류는 남궁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투는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니까.”

슈우우우욱---!!!!

그때였다.

부두 근처에 도착한 창환이 그대로 바다로 뛰어내렸다. 목표물을 놓친 골렘이 잠시 멈칫하는 순간, 녀석의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졌다.

콰아아앙!!!

맹렬한 불꽃과 함께 골렘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크게 휘청거리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함포 발사!!!]

펑-! 펑! 퍼어엉---!!!

해군 제1함대의 광개토대왕함 2척의 장착되어 있는 함포가 불을 뿜었다.

넘어진 골렘 위로 연달아 포탄이 떨어졌다

[우아…… 미친! 사람이 있는데?]

규류는 반파된 부두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부릉……!!

하지만 그때, 무너지는 부두를 뚫고 구명정이 빠른 속도로 파도를 가르며 해협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그 위로 함선에서 날아온 2대의 슈퍼링스 헬기가 골렘을 향해 기관총을 뿜어냈다.

창환은 어느새 구명정에서 내려 헬기의 사다리에 올라타 부두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야…… 보트를 언제 숨겨놓은 거야?]

“작전지가 결정된 순간 이미 녀석이 모두 판을 짜놓았을걸. 녀석은 자기가 만들어놓은 무대가 아니면 절대로 싸우지 않아.”

초일류라 불리는 저격 능력도 대단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대단한 건 바로 그의 전술성이었다.

절대로 지지 않는 판을 만드는 것.

남궁이 창환을 혼자 둔 것은 단순히 그를 미끼로 삼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가 어떤 식으로 골렘과 싸우려는 계획인지 보기 위함이었다.

쿠그그그그……!!

함선의 포격이 끝나자 여기저기 움푹 파인 부두의 바닥은 골렘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콰아아아앙!!

결국 부두가 무너지고, 쓰러져 있던 골렘이 그대로 바다로 빠지고 말았다.

[오호?]

엄청난 무게였기에 바다에 빠진 골렘은 허우적거리며 발버둥 쳤지만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창환이 외침과 동시에 함선에서 어뢰가 발사 되었다.

쾅! 콰앙!!!

부르르르르르……!!

거센 물보라와 함께 수면 아래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골렘의 핏물인 양 해수면에 새까만 기름들이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야…… 잘 싸우는데요?]

규류는 마치 태엽이 돌아가는 것처럼 탁탁 맞물려 이어지는 공격에 순수하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3번째 문이 열리면 인류는 멸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규류는 그렇게 말하며 남궁을 힐끔 바라봤다.

[아뇨. 아니죠. 저도 인간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말을 바꾸는 규류를 보며 남궁은 쓴웃음을 지었다.

“투갑술이나 풀어. 쫄지 말고.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네?]

‘실제로는 그보다 더했지. 적색지대가 열리고 거기에 눈이 팔려 4번째 문까지 동시에 열렸을 때는…….’

그야말로 지옥을 방불케 했다.

물론 자신의 영향으로 인해 미래가 바뀌었고, 각국의 전력들이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상황임은 전생과 분명 달랐다.

하지만 아이언 골렘을 몰아붙이는 모습은 단순히 전력이 살아 있기 때문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기세의 변화.’

남궁은 조금 전 자신들을 이끌었던 중사를 떠올렸다. 과거였다면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오히려 자신과 함께 싸우려 했다.

‘그래도 그들은 무력하다.’

카니발이 시작되고 소민이나 경인이처럼 자질을 개안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능력을 깨우치지 못한다.

획득한 룬이나 마물을 사냥하고 얻은 헤드로 구입하는 무구들로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결국 자질을 깨우친 자들과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은 짐짝 취급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 사냥의 기회도 얻지 못하니, 강해질 기회도 잃게 되어 그 격차는 더욱더 심해진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전의(戰意)는 사라지고 만다.

‘자질을 얻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앞으로 있을 수많은 전투를 위해서라면 소수의 능력자가 아닌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할지도 모른다.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리더.’

남궁은 그것을 명훈에게 시키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대로라면 명훈 역시 시간이 흐르면 자질을 개안하게 될 터였다.

‘무장수호의 리더로서 명훈이는 오히려 자질을 깨우친 능력자들을 이끄는 자가 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는 창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삐뚤어진 성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창환은 룬과 같은 위상이 준 이세계의 보상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야말로 본연의 모습 그대로 싸울 것이다.

‘계획을 조금 수정할 필요도 있겠어.’

평범한 세계였다면 김창환은 어쩌면 가장 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자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능의 힘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금, 그의 능력은 아이러니하지만 오히려 가장 인간다운 것일지 몰랐다.

“천하의 미치광이인 김창환이 리더라…… 볼만하겠군.”

그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무휘의 답은? 그거 때문에 온 거지?”

남궁이 규류에게 물었다.

야차 일족을 떠나기 전 그는 계약자로서 한 가지 부탁을 그에게 했었다.

쉽게 결정을 할 일이 아니었기에 호탕한 성격의 무휘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달라고 했던 것.

[그리 하시라 했습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대리자 일족의 계약자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카니발이 끝나기 전까지 모두 3번에 불과합니다.]

그중에 하나는 계약자가 되면서 소진하게 된다.

소민의 경우【세계수 지팡이】가 그러했고, 남궁의 경우는【무아경】이었다.

[아직 카니발은 많이 남았습니다. 2번밖에 남지 않은 기회를 벌써 쓰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스르릉-

남궁은 천천히 검을 뽑으며 낮게 숨을 토해냈다.

“기회도 살아 있을 때나 쓸 수 있는 거지. 죽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수아아아악……!!

그때였다.

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물보라가 일어나며, 바닷물이 딸려 올라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쿵……! 쿵……!!

함선의 포격을 맞고 쓰러졌던 아이언 골렘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럴 수가…….]

[어, 어떻게?]

함선의 조타실에 있던 함장을 비롯한 병사들은 생채기 하나 없는 골렘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촤아악……! 촤악……!!

녀석이 바다를 가로질러 함선이 있는 해안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부두 쪽으로! 놈은 날 노리는 거야. 함선들이 선회할 수 있도록 놈을 유인해야 해!”

창환의 외침에 헬기가 다시 부두로 향했다.

“……빌어먹을 괴물 새끼.”

헬기에서 뛰어내린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함포에도 멀쩡한 놈이라니…… 더 강한 화력이 필요한데…… 아오!! 뭐 없나?!”

[쿠그그그그그…….]

부두로 올라온 골렘이 창환을 향해 거대한 발을 내디뎠다.

순식간에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젠장!!!”

반파된 부두를 달리며 창환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콰작-!!

그때였다.

콰가가가가가강---!!!

거대한 골렘의 허리가 꺾이더니 마치 몸 안에서 폭발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연쇄적으로 녀석의 갑옷이 들썩였다.

“……?!!”

서걱-

“더 강한 화력이야 있지.”

섬뜩한 검격의 소리가 들리고, 놀랍게도 포격에도 끄떡없이 창환을 짓밟으려던 녀석의 다리가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여기.”

남궁은 창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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