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조금 전 그건…… 육방 다리의 계시자였나. 여전히 촐랑거리는 능력이로군. 놈이 관망자의 계시자를 구하러 올 줄이야. 예상 밖인걸.]
마왕은 시커멓게 그을린 손등을 털어내며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저 힘은…….’
남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알렉 때와는 달리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썩 곱지 않았다.
[게다가 일곱 뱀의 계시자까지? 계시자들은 서로 경쟁을 하는 게 아니었던가? 이번 카니발의 참가자들은 사이가 좋나 보지?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서로 돕고 말이야.]
“그러는 너야말로 급하긴 급했나보군. 소환수의 밤이 끝나기도 전에 차원문을 뚫고 나오다니.”
압박하는 마왕의 기운에도 불구하고 남궁은 태연하게 팔짱을 낀 채 말했다.
“회귀자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지?”
[…….]
“그 회귀가 바로 베어낸 네 부하들의 목으로 완성되었다는 것도 말이야.”
마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조심해야 할 거야. 4번째 문이 닫혀 소멸되면 아마 가시덩굴의 미망인이 널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뭐?]
“그녀는 널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걸. 위상이 준비한 첫 번째 이벤트다. 네가 그걸 제대로 마무리하기도 전에 기어 나왔으니까.”
저벅-
오히려 남궁은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무시당하는 기분이겠지. 자신이 준비한 이벤트를 고작 마물 따위가 망쳤으니까.”
콰아아아앙---!!!!
그 순간 마왕의 일그러진 얼굴과 동시에 남궁의 주위에 폭음이 터졌다.
[마물……? 감히 나를 마물이라고?!!]
“그럼? 뭔데? 위상이 만들어놓은 규율 아래 4번째 문이라는 제약이 없다면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놈들이.”
[……닥쳐!!!]
마왕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자 순간 남궁은 어둠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오싹…….
전신을 감싸는 전율(戰慄).
캉!! 카아앙-! 카카칵!!!
날카로운 갈퀴가 돋아난 마왕의 주먹이 남궁을 노리고, 그의 공격을 막을 때마다 남궁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카강!! 캉!!
불꽃이 튀었다.
카앙!!!
마왕의 꼬리가 남궁을 노리자,
핑그르르르-
쥐고 있던 검이 남궁의 손을 벗어나 공중에서 핑그르 회전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파삭……!!!
지면에 닿는 순간 남궁의 검이 가루가 되어 산산조각이 났다.
[어이가 없군. 고작 그런 검으로 내 앞에 나타난 거냐. 배짱 하나는 대단한 놈이구나.]
마왕은 부서진 검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장식 하나 없는 평범해 보이는 장검.
기껏해야 매직 등급의 물건이었다.
[무기가 아쉽군. 무기라도 쓸 만했다면 조금 더 오래 발버둥 쳤을 텐데.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네가 선수만 안쳤어도 검묘를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
남궁은 빈손이 된 주먹을 펼쳤다 쥐었다 하며 아쉬운 듯 말했다.
“쯧…… 그래도 있는 헤드 다 써서 산 건데. 덕분에 헤드를 모두 날렸군.”
[아쉬울 필요 없다. 어차피 더 이상 헤드를 쓸 일도 없을 테니까.]
“글쎄. 그럴까.”
[무기도 없는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그 순간 남궁이 마왕을 바라봤다.
“무기가 왜 없어?”
솨아아악……!!!
그의 앞에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소환된 아스의 손에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
그제야 마왕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시간 벌기라지만 일반 등급의 무기로는 네 일격도 버티지 못할 테니까. 투자라고 생각해야지.”
남궁은 알렉이 놓고 간 별해검을 잡았다.
우우우웅…….
어쩐지 그의 손길을 거부하는 듯 검날이 떨렸다.
“널 사냥하면 더 많은 헤드를 얻을 수 있을 테니. 안 그래?”
꽈악!!
하지만 손잡이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자 반항하던 검은 잠잠해졌다.
촤아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로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졌다.
스각……!
들리는 것은 공기를 가르는 검격(劍擊)뿐.
-마왕과 남궁의 격돌!!!
-초고속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는 드론으로도 아무것도 포착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펑! 펑!! 퍼버버벙……!!
그 순간, 드론들이 일제히 터져 나갔다.
[왱왱거리는 날파리 새끼 같은……!]
남궁과의 전투에 집중하려는 듯 마왕의 날개가 움직였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살피는 눈은 존재하지 않았다.
키아아아악!!!
채찍을 휘두르는 것처럼 마왕의 꼬리가 사방으로 그의 사각을 노렸다.
치직…… 치지직…….
별해검의 검날이 남궁의 사령술로 인해 백색의 전격이 아닌 자줏빛의 전격을 뿜어냈다.
콰드득!!!
마왕의 꼬리를 검을 막아내며 남궁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무아경(無我經) - 1서(書)
그의 검이 마왕의 가슴을 노렸다.
사령의 전격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마왕의 주위를 감쌌다.
남궁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일격(一擊)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일곱 뱀의 사술뿐만 아니라 인간이 야차의 술법까지? 먹어치울 맛이 나는 놈이구나!!!]
콰아앙---!!!!!!
혼신의 공격이었지만 마왕은 이미 남궁의 생각을 읽은 듯 그의 검이 뻗기 직전 오히려 그와의 거리를 더욱 좁히며 주먹을 내질렀다.
콰강!!
요란한 굉음과 함께 그의 가슴 아래에 마력의 폭발이 일어났다.
[크, 크큭…….]
그가 서 있던 바닥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고, 궁전과 그 앞에 쌓여 있던 시체들이 형체도 없이 소멸되었다.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엄청난 위력.
[끄륵…… 크르륵…….]
[……!!!]
하지만 폭발의 연기가 걷히는 순간, 자신의 앞에 있어야 할 남궁 대신 소멸 직전인 아스의 모습이 마왕의 눈에 들어왔다.
“……잡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살의(殺意).
[크아아아아악!!!!]
마왕은 황급히 두 손을 뻗었다.
촤아악!!
하지만 도리어 그의 손목에 날카로운 혈흔이 생겨났다.
[크윽!!!]
처음이었다.
인간계로 와 지금까지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던 그의 몸에 처음으로 상처가 났다.
우우웅……!!
그 순간 마왕의 등 뒤로 마법진이 나타났다.
1개였던 마법진은 2개가 되었고, 2개는 다시 4개가 되었다. 그렇게 분열되는 마법진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
‘연쇄마법진.’
남궁은 공작의 깃처럼 순식간에 펼쳐진 검은 날개 위에 나타나는 수많은 마법진을 보며 살짝 얼굴을 굳혔다.
드래곤이라도 이 정도의 마법진을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낼 순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환술계 종족 중 최상위.’
사령술을 쓰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자신의 무위(武威)로 사냥하는 남궁에게는 상성이 좋지 않은 상대였다.
그것이 전생에 그가 결국 마왕을 사냥하지 못했던 이유기도 했다.
[죽어라……!!!]
솨아아아악---!!!!
마법진 속에서 수백 다발의 검은 가시들이 뿜어져 나왔다.
푸욱!!!
“……!!”
뒤를 노렸던 남궁이 황급히 물러나며 검은 가시들을 피했지만 엄청난 속도에도 가시들은 집요하게 그를 노렸다.
펑! 펑!! 퍼펑……!!!
영혼 병사들이 나타나 그를 보호했다.
[크륵……! 크큭!!!]
하지만 그들의 몸에 가시들이 닿자 순식간에 병사들의 몸을 잠식했다.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박힌 병사들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소멸되고 말았다.
퍼억!!!!
남궁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쿨럭!!”
충격으로 아스팔트의 조각들이 튕겨 오르며 바닥에 떨어졌다.
[제법 놀랐다. 내가 마력을 쓰게 만들다니. 과연 관망자의 계시자 놈보다 쓸 만하구나.]
콰앙!!!
마왕이 튕겨 오른 남궁의 이마를 움켜잡아 다시 한번 바닥에 내려치며 말했다.
[키키킥…… 하지만 여기까지지.]
“숨소리가 거칠다.”
[……뭐?]
“마력을 쓰게 만든 게 아니라 마력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의 상황이었던 거겠지.”
[무슨 헛소리…….]
“얼굴이 좀 굳었는데? 말해봐. 조금 전에 좀 쫄았냐?”
움켜진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남궁의 눈동자에서 묘한 웃음이 느껴졌다.
[이 새끼가……!!!]
마왕은 분노에 찬 모습으로 남궁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콰앙!!!
둔기로 내려치는 것 같은 육중한 소리.
마왕이 남궁을 내려칠 때마다 바닥의 금은 거미줄처럼 수백, 수천 개로 갈라졌다.
치직…… 치지직…….
남궁의 손에 있던 별해검을 감싸던 사령의 기운이 흐릿해졌다.
[감히 인간 따위가……!! 나를 욕보여? 어째서 네놈들 따위가 카니발의 참가자가 되어 보상을 받을 기회를……!! 우리 마족도 받지 못한 것을!!]
우우웅……!!
마왕의 뒤로 다시 한번 마법진들이 나타났다.
“흐아아아아!!!”
그 순간 남궁이 【써펀트의 부서진 비늘 조각】을 발동시켰다.
[어딜!!!]
잔상을 남기며 그의 모습이 흐릿해지려는 찰나 마왕이 눈을 부라리며 팔을 뻗었다.
“컥!!!”
그의 손이 정확히 남궁의 목을 움켜잡자 흐릿했던 남궁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내 앞에서 이따위 저급한 술법을 쓰다니!!]
콰앙!!!!
발버둥치는 남궁을 마왕이 다시 한번 바닥에 찍어 눌렀다.
“쿨럭!!”
충격에 남궁의 입에서 붉은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네 목을 비틀어 제물로 쓰마. 저 시체들의 산 맨 꼭대기에 너를 두겠다. 나의 군세가 너희들을 유린하는 것을 가장 정확히 볼 수 있도록.]
마왕은 웃음과 함께 남궁의 목을 비틀었다.
아니, 비틀려 했다.
“……시체들의 산? 네놈 눈엔 그렇게 보이겠지. 하지만 난 달라.”
[……!!]
꽈악-
남궁이 자신의 목을 움켜잡고 있는 마왕의 손목을 꺾었다.
우드득……!!
그러자 놀랍게도 단단하기 그지없던 마왕의 팔목이 기묘한 방향으로 꺾였다.
[크아아악!!!!]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왕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다 죽어가는 놈이…….]
생각지도 못한 고통에 마왕은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남궁을 밀어냈다.
콰강!!!
그의 몸이 그대로 수 미터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이, 이게 무슨…….]
마왕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오싹함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저건…….’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남궁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 순간 그를 바라보던 마왕이 눈빛을 흘겼다.
“……아쉽네.”
그가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닦아 내던 손등을 내리자 놀랍게도 조금 전 마왕에 의한 상처들이 깨끗하게 아물어 있었다.
“팔을 뜯어버릴 수 있었는데.”
▶ 영혼 감지 Lv2이 발동됩니다.
▶ 주위 우호적 영혼들이 당신에게 동조합니다.
“내 눈에 저들은 제물이 아니라…….”
▶ 주위의 영혼이 당신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널 죽이고 싶어 이를 가는 사람들로밖에 안 보이는데?”
▶ 사역하지 못한 영혼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 영혼 흡수 Lv2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우호적 영혼의 경우 당신에게 더 큰 효과를 일으킵니다.
[……!!!]
그 순간 마왕의 눈동자가 커졌다.
쿠그그그그그……!!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런던의 희생자들이 당신에게 스며듭니다.
현(現) 추정 사망자 수 : 670만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