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270)

99화

-런던 상공에 나타났던 차원문이 대전 상공에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마치 이 상황을 계획했던 것처럼 대전의 시민들은 모두 대피가 완료된 상황입니다.

-그러나 대피한 대전 시민들뿐만 아니라 런던의 끔찍했던 상황을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런던 상공에 나타났던 차원문이 대전에 나타난 뒤, 문은 당장에라도 열릴 듯 낮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폭풍 전야 같네요.”

박효주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남궁에게 말했다.

“준비는?”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습니다. 이번에 신설된 참악부대원들의 8할을 이곳에 투입, 배치해 뒀고요.”

그녀가 대답했다.

“만덕수 씨의 공방 능력으로 대전을 두르고 있는 3중 방벽에 기공포대를 장착했습니다.”

“그가 벌써 포대까지 만들 수 있게 되었나?”

“저도 몰랐던 일입니다. 대전에 오셔서 처음으로 말씀하셨어요.”

“흐음…… 그렇군.”

남궁은 뜻밖의 좋은 소식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전 이후에도 딱히 그런 말은 없었는데…… 오히려 고블린 성채를 증강시키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되었던 건가?’

정확한 건 만덕수에게 확인해 봐야겠지만 오히려 부산전에서의 싸움보다 성채가 도움이 되었다는 건 의외의 정보였다.

‘기존에 만들 수 있는 물건을 여러 개 만드는 것보다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살피는 게 능력 상승의 지름길일 수도…….’

부산에서 같은 방벽을 여러 개 세우는 것보다 유일무이한 성채를 살피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일지도 몰랐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야. 기공포대라면 마족들에게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장길수 씨의 마장동 연합과 진수혁 씨를 따르는 약 30여 명의 능력자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숫자는?”

“모두 다 하면…… 대략 150명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박효주는 말하면서도 그 숫자가 60만이 넘는 마족들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형님, 걱정 마십시오. 능력자들이 주를 이룬다 해도 결국 전쟁은 군인의 몫이니까.”

그들의 옆에 서 있던 창환이 말했다.

“맞아요. 저번처럼 분산되어 마물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대전에 한정돼 있으니까요. 총리께서 동원 가능한 모든 병력을 투입하라 허가하셨습니다.”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저들을 뜻하는 건가?”

그녀의 말대로 대전 상공에 날고 있는 전투기를 비롯해서 요새의 입구에 전차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박효주.”

“……네?”

자신의 이름을 부른 남궁의 목소리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3번째 침공에서 봤을 텐데. 군 병력의 무기들은 단계를 거듭할수록 더 마물에게 피해를 주기 어렵다.”

“그래도 지금 할 수 있는 최선…….”

“최선? 글쎄.”

남궁의 반응에 박효주는 멈칫했다.

“군대야 없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겠지만 기껏해야 시간 벌기에 불과해. 당신도 저들을 고기방패로 쓸 생각으로 부른 건가?”

“그럴 리가요!”

“마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능력자들의 힘이 중요하다.”

“그래서 참악부대와 장길수 씨의…….”

“이번 차원문은 단 한 곳에만 열려. 비록 내가 차원문을 유도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번 문을 막는 것이 온전히 우리들의 의무는 아니지.”

그는 그녀를 바라봤다.

“물론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다른 국가들의 병력을 동원시키도록 국가적 압박을 하라는 것까진 아냐. 단지 내가 당신에게 묻고 싶은 건 정말 최선을 다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다.”

“…….”

“남아 있는 계시자들에게 연락을 취해봤나?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우리를 지원한다면 저기 있는 많은 군인들의 목숨을 희생하지 않아도 돼.”

그 순간 박효주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남궁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참악부대는 앞으로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민간인인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들을 이끄는 당신은 특히 타국뿐만 아니라 계시자들과 능력자들을 아우르는 다리가 되어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박효주는 남궁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단순히 마물을 사냥하는 것 이상으로, 이 끔찍한 아포칼립스 속에서 국가의 존속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제시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남궁 씨께서 팀을 맡으셨어야 하네요.”

“쓸데없는 소리.”

박효주의 말에 남궁은 피식 웃었다.

“삼합회의 진웨이와 니나가와 가문의 비월의 무리가 인천과 부산을 통해서 넘어올 거야. 그들의 입국을 허가해 주도록 해.”

“사…… 삼합회요?”

“응. 껄끄러운 녀석들이긴 하지만 진웨이의 버프를 받을 수 있는 놈들이라 전투에 있어선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쓸 만할 거야.”

“알겠습니다.”

“한국이 무너지면 그다음 차례는 당연히 주변국이라는 걸 알 테니까. 아시아에 남아 있는 계시자가 그 둘이니 필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겠지.”

‘2명의 계시자가 추가적으로 국내로 들어오게 되면 미카엘까지 이곳에만 4명의 계시자가 집결한다.’

8명의 계시자 중 4명이 모이는 그야말로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전장은 녀석들의 나라가 아닌 이곳이다. 녀석들은 호시탐탐 우리의 전력을 살피려고 할 거야. 얕보이지 마라. 당신은 충분히 강하니까.”

마지막 말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녀가 방을 나선 뒤 남아 있던 창환은 팔짱을 낀 채 묘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이네요. 형님께서 누구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는 건 말입니다.”

“녀석아. 난 711에 있던 너희들을 애송이 때부터 모두 가르쳤어.”

“뭐, 그렇다고 해두죠.”

“가서 준비해.”

입술을 씰룩이는 창환의 뒤통수를 가볍게 때리며 남궁이 말했다.

“하하, 알겠습니다.”

끼이익-

창환이 문고리를 돌렸다.

“형님. 그런데 정말 하실 겁니까.”

조금 전 따뜻한 웃음도 잠시, 그는 남궁에게 보이지 않는 굳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 마왕(魔王) 나타스의 차원문이 완전히 열렸습니다.

▶ 지금부터 문 너머 마족들이 당신들의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 살아남으십시오.

쿠그그그그…….

폭풍 전야 같았던 짧은 평화는 끝나고, 대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포가 울렸다.

“물론.”

하지만 그 공포의 압박 속에서도 남궁은 창환의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번엔 진짜 죽을지도 모릅니다.”

창환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해야 할 일이니까.”

* * *

“각 부대는 제 위치로!!”

“모두 준비!!”

대전을 두르고 있는 요새 성벽에 세워진 기공포대에 병사들이 포진되었다.

“발사!!!”

지이이잉……!!

쾅! 쾅! 쾅! 콰아앙!!!

기공포대의 포신에서 평범하지 않은 푸른 불꽃이 일었고, 날아간 포탄들이 상공에 열린 문을 향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키에에엑……!!!!]

[카아악!!!]

차원문에서 넘어오려던 마족들이 기공포대의 탄환에 비명을 질렀다.

“오오……!!”

“이거라면…….”

포대의 위력을 확인한 병사들은 조금 전까지 전신을 짓눌렀던 불안감에서 벗어나 싸울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슈우우우우우……!!!!

쾅! 쾅! 쾅!!!

불이 붙은 전의(戰意)는 순식간에 번졌고, 병사들의 사기를 증명하듯 전차의 미사일들이 상공을 향해 솟아올랐다.

콰직-!!!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까마득하게 낙하하는 마족들은 그야말로 하늘을 뒤덮었다.

우우우웅……!!

선두에 선 마족들이 수인을 맺자 그들의 주위로 일렁이는 방벽이 만들어졌다.

콰앙!!!

쿠그그그그…….

전차의 미사일은 마족의 실드에 막혀 검은 연기만을 뿜어낼 뿐.

반면 하늘에서 내려온 마족들은 순식간에 대전에 포진되어 있던 전차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이따위 벌레 같은 것들을 상대 할 필요 없다!!]

[……놈을 찾아라!!!]

[복수를……!! 죽음보다 더 끔찍한 마계로 놈을 데려가 영원히 고통받게 하리!!]

전차들을 부수며 대전으로 밀려들어 오는 마족들은 저마다 붉은 안광을 뿜어내며 비명과도 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

그때였다.

대전 요새의 문을 부수고 마족들이 밀어 닥친 순간,

“지금이다.”

진수혁이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손을 들어 내렸다.

철컥……!! 쿵! 쿵!!

그러자 요새의 방벽이 마족군의 사이를 가르며 닫혔다.

▶ 무장 요새 Lv2의 방호령이 시작되었습니다.

▶ 모든 출입문이 봉쇄되며 상공에 특수한 플라즈마가 형성됩니다.

▶ 방벽과 플라즈마는 4등급 이하의 모든 공격을 막아냅니다.

[이, 이게……!!]

마족들이 자신을 막은 방벽을 향해 있는 힘껏 공격했지만. 조금 전 부서진 문과 달리 방벽은 그들의 공격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함정이다.]

마족들은 부서진 문의 잔해를 보며 일부러 약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싹한 기분과 함께 놈들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공격하라!!!!”

장길수의 외침과 함께, 방벽 위에서 마장동 연합이 요새로 들어오지 못한 마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돌격!!!”

동시에 박효주의 단검이 날아오르며, 그녀의 뒤를 따라 참악부대가 방벽의 비밀 문을 통해 마족들의 옆을 급습했다.

“사격 개시!!”

“네!”

전태호의 구령에 방벽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활과 총을 쏘기 시작했다.

“야, 죽지 마라.”

“……너도.”

연신 활을 쏘는 경인의 옆으로 성우가 지나가며 씨익 웃었다.

“흐아아아아!!!”

방벽 아래로 뛰어든 성우가 교차한 두 손으로 있는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콰앙!!

푸른 원이 둘러진 주먹이 지면을 울리자, 마치 파동이 떨리는 것처럼 그의 주위로 순간 새하얀 빛이 흩어졌다.

▶ 군신화 Lv3이 발동되었습니다.

▶ 반경 300m 내에 있는 모든 우호적인 존재들의 신체 능력을 상승시킵니다.

▶ 군신화의 효과는 거절할 수 있습니다.

“이, 이건……?”

방벽을 두른 채 싸우던 군인들은 밀려오는 힘에 놀란 듯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들은 이내 곧 마족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 있는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

캉-!! 카강---!!!!

무기들이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두 세력을 필두로 후퇴하던 군부대들이 다시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감히 이따위 술책을 부려?]

[뭐 하는 거야!! 당장 문을 부숴!!!]

2중으로 된 방벽의 문이 닫히면서 대전 안에 갇힌 마족들은 신경질적으로 방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진정해. 놈들은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이런 짓을 꾸민 거다. 그렇다면 분명 이 밖에도 놈들이 있을 터.]

[설마 우리를 그냥 도시 안에 둔 것으로 끝날 리 없어. 이곳에도 분명 병력이 있을 거야.]

[잔머리를 굴렸지만 결국 놈들도 병력을 나눈 것에 불과하단 거군.]

[그래. 찾아라. 건방진 인간들의 시체를 차곡차곡 쌓아서 저 벽을 넘어주마!!]

마족들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소리쳤다.

그 순간,

[가……!!!]

선두에 서 있던 마족이 말을 끝까지 뱉어내지도 못한 채 머리가 날아갔다.

“시체를 쌓아서 넘긴 글렀다.”

갑작스러운 일격과 머리가 사라진 몸이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쓰러진 순간, 30만에 가까운 마족들이 일제히 그곳을 바라봤다.

“나 혼자거든.”

남궁은 박살 난 마족의 머리를 발로 대충 치우면서 놈들을 향해 말했다.

“대신 네놈들의 시체를 쌓아줄게.”

마족들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할 말을 잃은 듯 잠시 정적이 흘렀다.

“들어와.”

그런 놈들을 향해 남궁은 조금 전 머리가 터진 마족의 시체에 걸터앉아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죽여!!!!!!]

촤르르르륵……!!!

그 순간, 남궁의 사슬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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