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켁……!!! 케켁……!!]
마족의 목을 감은 사슬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졌다.
“후읍, 후읍.”
놈의 등 뒤에서 있는 힘껏 사슬을 잡아당기며 남궁은 거친 숨을 토해냈다.
꽈아악-!!!!
사슬이 마족의 목을 점점 파고들었다.
우득……!!!
남궁이 사슬을 잡아당기며 마족의 목을 비틀었다. 사슬에서 벗어나려던 마족은 몸을 부르르 떨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뭐 해? 들어오라고 했을 텐데.”
그는 쓰러진 마족 위에 한쪽 발을 얹고는,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로 숨을 토해내면서도 마족들을 향해 오만한 태도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수십 마리가 넘는 마족들이 그의 앞에 쓰러져 있었다.
[제법이군.]
그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지만, 사실 현실은 참혹했다.
마족들은 동족을 쓰러뜨린 그를 바라보며 오히려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그가 쓰러뜨린 마족의 수에 수십 배가 넘는 숫자가 여전히 그를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우의 사슬이라…… 저걸 인간이 가지고 있는 걸 보다니 놀랍긴 하지만, 어떻게 쓰는지를 모르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네겐 그저 조금 더 튼튼한 사슬에 불과하겠지.]
마족의 무리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나타스 님을 당혹케 했던 그 힘은 어디 갔지? 듣자 하니 일곱 뱀의 계시자라던데. 흡수한 사령의 힘은커녕 영혼 병사들도 보이지 않는군.]
“그건 네가 알 바 아닐 텐데? 그런 게 없어도 네 목숨을 따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다 죽어가는 놈이…….]
남궁의 대답에 마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루터기의 악마.”
그 순간, 남궁이 그를 불렀다.
자신의 이명을 듣자 마족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령 다 죽어간다 해도 그건 죽은 건 아니지. 하지만 난 네 녀석의 죽음을 똑똑히 기억한다.”
남궁은 오히려 놈을 향해 묘한 웃음을 지었다.
“널 가장 마지막에 죽였거든. 어때? 내가 어떻게 널 죽였는지 알려줄까?”
[이 새끼…….]
그의 도발이 먹힌 걸까.
솨아악……!!!
마족들이 저마다 검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순간 어둠이 깔렸다.
* * *
[아버님……!! 당장 검묘에 다녀오셔야 합니다!! 저러다 남궁 님이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방방 뛰며 소리치는 규류의 목소리로 무휘의 방은 소란스러웠다.
[벌써 3일째입니다……!! 멀쩡한 사람도 3일 동안 밤낮으로 싸우기만 하면 제풀에 지쳐 쓰러질 겁니다. 그런데 상대가…….]
[진정하거라. 네 녀석도 이제 한 일족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는데 아직도 어린애처럼 방정이더냐.]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아버님! 그는 야차 일족의 계약자이지 않습니까. 그뿐입니까? 아버님을 살린 생명의 은인이기도 합니다요!]
하지만 소란스러운 규류와 달리 무휘는 턱을 괴고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우물을 바라볼 뿐이었다.
솨아아악…….
우물의 표면은 마치 유리처럼 깨끗했고, 그 위로 마족들과 싸우는 남궁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절했다.
성한 곳 하나 없이 전신에 피투성이가 되어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에 가까운 마족들의 시체 위에 서 있는 그는 한편으로는 악귀(惡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네 녀석이 그에게 야차 일족의 회복약을 주지 않았더냐. 대리자 일족으로서 아무리 계약자라 하더라도 무상으로 돕는 건 규율 위반이다. 이만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됐습니다!! 아버님, 명예를 아는 야차가 도움을 받고도 나 몰라라 하다니요! 이제부터는 아버님과는 별개의 일입니다. 제가 행하고 죄도 제가 받겠습니다!]
콰앙-!!!
규류는 씩씩거리며 방문을 거세게 닫았다.
[녀석…… 여전히 감정이 앞서네요. 아버님께서 일부러 그를 2위계로 내려놓은 것도 좀 더 차분히 상황을 보는 눈을 기르라는 의미셨을 텐데요.]
현류는 방을 나가 버린 규류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저대로 두면 혼자서라도 검묘에 갈 기세인데.]
[걱정 말거라. 검묘는 수장의 명패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니까. 결계에 혼이 나면 녀석도 조금은 맑은 정신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겠지.]
급박한 규류와 달리 어쩐지 무휘와 현류는 이런 상황에서도 느긋한 모습이었다.
[사령술을 쓰지 않는 건…… 아무래도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쓰지 못하는 게 맞을 겁니다. 마왕과 먼저 일전을 벌였을 때 너무 많은 사령들을 흡수해 오히려 반발력이 그의 몸을 망가뜨린 것일 테죠]
[그렇겠지.]
[일곱 뱀의 계시자가 사령술을 쓰지 못한다면 그건 가장 주요한 무기가 부서진 것과 같습니다. 솔직히…… 그의 무위는 뛰어나지만 사령술도 없이 저 많은 마족을 과연 어찌 상대할지 저도 예측이 되지 않습니다.]
[너도 그리 생각하느냐.]
무휘는 현류의 말에 피식 웃었다.
[네 눈에는 저자가 위험해 보이느냐.]
대전의 요새 방벽을 중심으로 안과 밖에서 전투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남궁 혼자 있는 도시 안과 달리, 밖의 상황은 제법 희망적이었다.
진웨이와 에리카의 병력이 투입되고 이틀 뒤, 적색지대에서 소환수의 밤을 마친 록산느가 마족전에 합류하게 됨으로써 외부의 전세는 조금씩 인간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요새 내부였다.
[상황을 놓고 본다면…… 열에 아홉은 그가 위험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뭐지?]
[그가 어째서 혼자 남았느냐는 것입니다. 단순히 외부의 마족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스스로 미끼가 된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그는…… 준비 없이 무모하게 싸우는 자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 덕분에 네가 대리 경매에서 제대로 물을 먹었지.]
현류는 무휘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글쎄요…… 어떤 준비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닙니다. 규류가 걱정하는 것도 그것일 테죠.]
[말해보거라.]
[지금이야 격렬한 전투에 눈이 팔려 다들 전장에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 저 마족들은 그저 4번째 문이 만들어낸 졸에 불과합니다. 결국 문을 닫기 위해 사냥해야 할 것은 보스. 즉, 마왕입니다.]
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반대로 생각한다면 마족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하는 상황에서 마왕이 등장하게 된다면…… 남궁에겐 승기가 없어 보입니다.]
[네 말이 맞다. 과연 전황을 잘 살피고 있구나. 확실히…… 이대로 둔다면 전세는 기울어지겠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현류가 무휘의 마지막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만약 그것 역시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무휘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마왕과의 일전으로 그의 몸이 엉망이 되었지만 그건 마력을 소모한 마왕 역시 마찬가지. 그 말은 남궁이 약해진 것처럼 마왕도 약해진 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그가 보낸 티탄의 심장에 놀랍게도 작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마왕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
[미끼가 된 건 지금이 아니야. 마왕과 처음 싸웠던 그 순간부터 이미 그 자신이 이번 4번째 문의 미끼가 된 것이었다.]
현류는 그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그럼 누가 마왕을 잡는단 말씀이십니까?]
* * *
4번째 차원문이 열리기 하루 전.
마왕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워진 기차가 남궁과 창환을 태우고 대전역에 도착했다.
“우아…… 이거 뭐야? 여기가 진짜 대전이라고요?”
기차가 도시를 통과하는 동안 창밖을 보던 창환은 역에 내리자마자 놀란 표정과 함께 소리쳤다.
“소문을 듣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도대체 몇 겹으로 방벽을 둘러친 거지?”
“3개다. 딱히 세지 못할 만큼 많은 것도 아닌데.”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남궁의 말에 창환은 핀잔을 주며 그를 향해 입술을 씰룩였다.
“곳곳에 방어 시설도 되어 있고…… 마물 침공 덕분에 진수혁의 능력치도 제법 오른 모양이군. 이정도면 쓸 만하겠어. 그리고 4번째가 끝나고 다면 아마 대전은 훨씬 더 단단해질 거야.”
그의 요새화 능력은 아이러니하지만 도시가 공격받으면 받을수록 성장하는 것이었으니까.
“변태 같네요.”
창환의 단출한 감상평에 남궁은 피식 웃었다.
“뭐, 어찌 되었든 간에 대전이 대한민국 최고의 요새 도시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아니,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일 수도.”
“형님께서 그 인간을 영입하려는 이유를 이제는 납득할 수 있겠습니다. 도시를 강화하는 능력이라니…… 이건 단순히 개인의 수준이 아닌데요.”
철컥-! 철컥-!!
치이이익……!!
도시 뿐만 아니라 역 주위에도 자동화된 바리게이트가 작동하고 있었다.
“맞아.”
남궁은 단단하게 닫혀 있는 철문이 열리자 역 밖으로 걸어 나오며 도시를 바라봤다.
“…….”
4번째 문이 열리기 전에 나타난 마왕(魔王).
지금까지 다수의 마물이 소환되고 일어났던 전쟁과 달리 놈은 1명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1명을 상대하기 위해 지금까지 요청하지 않았던 요새화의 진수혁의 힘이 필요하다는 건, 오히려 그만큼 마왕이 강력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반갑습니다.”
남궁은 역 앞 광장에 서 있는 한 남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진수혁입니다.”
그의 손을 가볍게 움켜잡은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그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바삐 움직이는 요새와 같이 꽤 피곤해 보이는 듯한 얼굴을 한 진수혁이 남궁을 바라봤다.
“살면서 처음이군요. 청와대에서 직접 연락이 오다니 말입니다. 회사에서 일할 때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뒤늦게 이런 대우라니 가당치도 않군요.”
“이런 대우를 받지 않는 삶이 더 낫겠지만.”
평범한 척하지만 그가 말하는 회사가 국군정보사령부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남궁은 진수혁을 향해 대답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대전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더욱이 당신이 주도하는 계획이라면 더더욱 따르지 않을 생각입니다.”
마주 잡은 손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힘.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모양이군요.”
하지만 남궁은 그의 압박에도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저 사람과 함께 왔으니 아마 제가 회사를 그만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잘린 이유가 당신과 관련된 사항 때문이라는 건 잘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작전 도중 일어난 갑작스러운 711부대의 해산은 누가 봐도 의심쩍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에 대해 조사를 하려 하지 않았죠.”
남궁은 쓴웃음을 지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건을 조사한 저를 회사가 내쫓더군요. 비밀 유지 조건과 함께 말입니다. 뭐, 좋습니다. 어차피 과거의 일이니까. 그냥 묻어두고 살려고 했는데…….”
진수혁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렇게 찾으려고 했던 사람이 다시 나타나더니 구국(救國)의 영웅? 제가 이걸 어떻게 받아여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봐!! 그 일은……!!”
“711부대는 왜 해체된 겁니까.”
“아저씨!!!!!”
그때였다.
광장의 입구에서 들여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냉랭했던 분위기가 깨졌다.
“아저씨!!!!”
남궁을 향해 신나게 달려온 소년이 그에게 와락 안겼다.
“……호성이? 이거 몰라보겠는걸.”
일전에 현충원에서 구해줬던 꼬마는 어느새 키가 제법 자라 건강한 모습이었다.
남궁은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겼다.
‘다행이군. 현충원에서 했던 말을 잘 지킨 모양이야. 진수혁이 이 아이를 거둬줬지.’
“망아지 같은 녀석…… 담호 씨랑 같이 동쪽 방벽 수리를 다녀오라고 했을 텐데?”
“에이, 그거야 벌써 끝냈죠! 제가 있는데. 지하철을 타려는데 보여서 인사나 할 겸 왔는데…… 아니, 글쎄 남궁 아저씨가 있을 줄이야!!”
호성은 진심으로 기쁜 듯 신나게 웃으며 방방 뛰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나중으로 미루죠.”
진수혁은 호성을 안아 든 남궁을 보며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했다.
* * *
-런던의 사망자가 100만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도시 내의 시민들이 대피하려 해도 알 수 없는 힘에 누구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군 병력이 런던을 포위하고 있으나 탈출과 마찬가지로 진입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시민들은 극도의 불안에 빠져 있으며…….
“모두 죽을 겁니다.”
대전 요새의 중심인 대전광역시청에 마련되어 있는 요새 본부에서 남궁이 진수혁에게 말했다.
TV에서는 사망자의 숫자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1초에 100명.
그야말로 숨을 쉬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설마요. 런던 시민 800만이 모두?”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약 7,000만 명 가까이 되는 영국의 사람들 모두가 말입니다.”
“…….”
진수혁은 그의 말에 마른침을 삼켰다.
“이상하군요. 영국엔 알렉 트라만이 있잖습니까. 거기에다가 유니버스 클랜까지. 영국엔 능력자들이 많습니다. 설마 그들이 있는데?”
“그들로는 못 막습니다. 시체의 숫자만 더 늘어날 뿐이지. 마왕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1초에 100명이라지만 런던이 끝나고 나면 사망자가 늘어나는 속도도 빨리질 겁니다.”
남궁은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
“5일.”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진수혁은 불안한 얼굴로 기다렸다.
“영국이 완전히 멸망하는 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미친. 그건 그것대로 더 말도 안 되는 소리군요. 지금 그런 괴물을 상대로 싸우겠다는 말입니까?”
“네.”
“도대체 왜요?”
“영국에서 그치지 않을 테니까. 누가 그럽니까? 영국을 제물로 주면 저놈이 순순히 물러갈 거라고.”
“그야…….”
“인간이 규명해 놓은 국경은 놈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놈은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힐 거고 결국 대륙 전체를 먹어 치울 겁니다.”
“생각해 둔 계획은 뭡니까?”
“다행이라면 아직 지옥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말은 마왕이 아직 자신의 군단을 끌고 오지 않았다는 것이죠. 마족들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마왕을 먼저 잡는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이 뭔지 알겠군요. 요새화를 통해서 마왕과 싸울 수 있는 장소를 만들라는 거군요.”
남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진수혁이 낮게 숨을 토해냈다.
“불가능합니다.”
“너무한 거 아닙니까? 사람을 몰아세울 땐 그렇게 집요하더니 당장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나 몰라라 하려고?”
창환이 과거의 앙금이 아직 남아 있는 듯 진수혁을 향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경질적인 그와 달리 진수혁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시를 정해서 다시 요새화를 하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이제 와서 영국으로 날아간다 한들 너무 늦다는 말입니다.”
“영국으로 가는 게 아닙니다.”
“……그럼?”
“제가 놈을 유인할 겁니다. 전장은 영국이 아니라 한국이 될 테죠.”
“당신은 알렉 트라만이 절대로 마왕을 막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이로군요. 그건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심 아닙니까?”
솨아아악……!!!
그때였다.
“……!!”
진수혁은 연기와 함께 나타난 자신을 둘러싼 영혼 병사들을 바라보며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이거로군…… 3차 마물 침공에서 그가 썼던 능력이. 확실히 하나하나가 대전에서 최상급 능력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웃도는 기운이야. 특히…….’
그는 아스를 바라봤다.
‘저 병사는 다른 셋보다 훨씬 강한 영압을 가지고 있군.’
“어떻습니까. 당신이 보기엔.”
“무엇을 말입니까?”
“제가 알기로 요새화를 시킬 수 있는 능력은 단순히 성을 짓는 개념이 아닙니다. 무구를 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능력치의 등급을 볼 수 있는 ‘간파(看破)’의 힘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서울에도 당신과 비슷한 힘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무구가 아닌 도구 제작에 특화되긴 했지만…… 그 이외에 나머지 본질적인 힘은 비슷하니까요.”
광안대교에 세워졌었던 방벽을 떠올리며 진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대단합니다. 지금까지 당신만큼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다만…….”
“다만?”
“마왕에겐 역부족일 겁니다. 상성이 좋지 않으니까요. 단순히 육체적인 능력만 보였지만, 그의 진짜 힘은 런던을 둘러싼 돔 형태의 결계.”
진수혁이 말했다.
“환술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에 비해 당신은 소환수를 쓰긴 하지만 물리계에 가까우니까요.”
남궁은 의외로 그의 말에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제야 진실을 말씀하시는군요. 당신 말대로라면 물리계의 특화 된 알렉 트라만이 이길 수 없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테니.”
“…….”
진수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 사람의 역량만을 놓고 본다면 그렇겠지만, 영국엔 제가 확인하지 못한 강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모두 힘을 합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죠. 하지만 저흰 다릅니다.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니까요.”
“왜 전력이 형님뿐이야? 나랑…….”
“강호준, 최명훈?”
“뭐?”
“아니면 전태호, 전경인 부자를 말하는 건가? 남궁을 따르는 인원들은 이미 모두 파악했다. 마왕을 상대로 그들을 전력이라 부르는 건 우스운 일이지.”
진수혁이 창환을 바라봤다.
“당신은 더더욱.”
“뭐, 뭐라고? 이 인간이 보자 보자 하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형님……?!!”
“저로서는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창환이 어이없다는 듯 남궁을 바라봤지만 오히려 그는 진수혁의 평가가 마음에 드는 표정이었다.
마왕(魔王)은 강하다.
‘놈은 전생에 내가 결국 잡지 못했던 마족이니까.’
물론 남궁이 강해지는 시간만큼 마왕 역시 강해졌으니 그 격차를 좁힐 수 없었다는 것도 있지만, 시작선상 자체가 달랐다.
“한국에 당신보다 더 강한 사람이 없다면 놈을 잡는 건 불가능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 손으로 이곳을 전장으로 만들라고? 그건 미친 짓이죠.”
진수혁의 말엔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다.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의 표정은 시종일관 달라지지 않았다.
“……누구?”
아니, 오히려 그의 물음을 기다린 듯 보였다.
* * *
우우우웅…….
4번째 차원문과 달리 푸른빛이 가득한 작은 공간의 틈이 아주 잠깐 상공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빨리!!!”
“여기 사람이 있다!!”
“잔해들 치워!”
하지만 구조 작업이 한창인 그곳에서, 사람들은 이 작은 변화에 눈길을 줄 여력이 없어 보였다.
사박- 사박-
그런 그들을 뒤로, 부서진 수십 가호의 잔해 위를 걷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툭-
그러다 발걸음이 멈췄을 때,
아직 꺼지지 않은 매캐한 연기와 시체들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이곳에서 놀랍게도 숲속에서나 있을 법한 맑은 향기가 풍겼다.
“찾았다.”
그리고 그 향기만큼이나 맑은 목소리가 옅게 들렸다.
남소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