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270)

101화

콰앙---!!!!

진수혁이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쳤다.

“당신…… 제정신이야? 지금 딸을 그 끔찍한 전장에 내몰겠다고? 어떻게 아버지란 인간이……!!”

그는 남궁을 노려봤다.

“711부대가 해체되었던 사건에서 당신 부대원 중 절반이 죽었지? 부하들의 목숨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니 제 딸도 그렇게…….”

퍼억!!!

그때였다.

창환의 주먹이 진수혁을 향해 날아갔지만 오히려 신음을 뱉어낸 건 그였다.

“그딴 공격이 통할 것 같아?”

“컥……!!”

“너, 지금까지 룬도 하나 먹지 않았지? 이능의 힘 없이 인간의 역량으로만 싸우겠다고?”

“이 새끼…….”

“네가 했던 잡소리는 나도 들었다. 기사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더군. 하지만 알아? 너같이 말만 번지르르한 놈들이 가장 먼저 시체가 되는 거다.”

숨이 막힐 것 같은 통증에 창환이 옆구리를 움켜잡으며 주저앉아서 그를 올려다봤다.

“그야말로 그 대장에 그 부하로군. 청와대도 인물이 없어. 차라리 국정원에서 창설한다는 팀이었다면 모를까. 자신의 부대를 망하게 만든 저런 놈을 믿고 있으니 말이야.”

“……뭐라도 알고 좀 지껄여. 그때 형님은!”

“진수혁. 당신 말대로 아이들은 보호해야 할 대상인 건 맞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남궁이 창환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조용히 하라는 그의 눈빛을 알아 챈 듯 창환은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하지만 아이들은 절대로 보호만 받아야 하는 대상은 아니야.”

“추잡한 핑계로군. 어린아이들을 전장에 내모는 게 당연하다는 소린가?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지켜야……!!”

“그럼 당신이 싸울 텐가?”

“……뭐?”

그의 말에 진수혁은 멈칫했다.

“웅크려 있다고 해서 적은 알아서 죽어주지 않아. 너야말로 허울 좋은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다. 결국 뒤에 숨어서 남이 해결해 주길 바라는 거니까.”

빠득-

이를 바득 갈았다.

“카니발이 시작되고 힘을 각성하는 능력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사람들은 단순히 자질을 논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태도가 바뀌었어?’

진수혁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존대하던 남궁이 말을 놓았음에도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설마 내가…….’

그는 자신의 무릎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게 뭐지?”

“바로 염원(念願)이다. 능력은 곧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이 발현되면서 생기는 것이니까.”

남궁이 그를 바라봤다.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마음은 당연히 높이 살 일이야. 그 바람이 당신에게 능력을 준 것이겠지. 하지만 언젠가 당신도 알게 될 거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자라고 그들에게 당신의 등을 맡기게 될 거라는 것을.”

꿀꺽-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남궁을 바라봤다.

“새끼를 벼랑에 내미는 사자처럼 몰아세울 필요는 없지만, 부둥켜안고 있는 것 역시 아이들이 성장 할 기회를 막아 세우는 거다.”

남궁은 소민을 떠올렸다.

“내 딸은 밑바닥에서 발버둥 쳐 기어 올라오는 나 같은 것과는 달라.”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와 함께거든.”

그것은 기대감이었다.

* * *

티탄을 물리치고 난 직후,

라칸하임의 보고 안.

-요, 요정족을 야차왕도 아닌 저런 애송이에게 넘기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차라리 무휘에게 야차 일족의 수장 자리를 그에게 주라고 하시죠!

남궁의 말에 여왕은 당황스러운 듯 소리쳤다.

“그래서는 늦어. 야차 일족의 왕위 수여식은 일주일이나 거행된다고. 이제 곧 4번째 문이 열릴 거다.”

-그, 그렇지만…….

“4번째 문의 보스를 잡지 못하면 팔각전쟁이고 나발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 모두 죽을 테니까.”

남궁이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거인족을 무너뜨린 이유가 단순히 규류에게 감투를 씌워주려는 것이 아님을 알 텐데.”

그는 【태초의 씨앗】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걸 꺼내기 위함이었어. 메멜, 이걸 당신이 요정계로 가져가면 좋겠군.”

-제, 제가요?

여왕은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조금 전 역정을 낸 것도 잊고 씨앗을 받아 들며 물었다.

“이상하지 않아? 세계수의 지팡이나 이 씨앗이나 모두 일족의 보구야. 그러나 지팡이에 비한다면 씨앗의 효과는 너무 빈약하지.”

그런 그녀를 향해 남궁이 피식 웃었다.

“거인족의 보물이 단순히 방어력을 올리는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설명 마지막에 적혀 있는 한 줄.

▶ 뭔가 숨겨진 힘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궁은 그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 소민이에게 가져가도록 해. 요정 계약이 끝나면 그 아이가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 거야.”

-설마…… 4번째 마물을 소민 양에게 맡기시려는 겁니까.

여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맞아.”

-너무 위험합니다!! 당신이 회귀자라면 아실 텐데요. 4번째 문이 열리고 나타난 마물의 정체를요!!

“알다마다.”

남궁의 대답에 여왕은 입을 다물었다.

“마왕(魔王).”

-그 그럼…….

“그렇기 때문이야.”

-……네?

“난 놈을 이기지 못할 거다. 그전에도 그랬으니 지금은 더더욱 힘들 테지.”

여왕은 반박을 하지 못했다.

‘놈을 피해 가까스로 대마족들을 사냥한 것이 고작이니까.’

25년의 시간 동안 그가 단 한 번도 마왕과 마주치지 않았을 리 없었다.

몇 번이고 놈과 부딪쳤고, 그때마다 남궁은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도망칠 뿐이었다.

“놈의 강함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남궁은 생각했다.

‘놈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은 나도 없다. 다만 덴 하울이 죽기 전에 남겼던 가설에 도전하는 것뿐.’

마법계의 계시자였던 그만이 마왕의 사살법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전생의 그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인 소민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확률은 반반.

“마족은 마력을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마력은 자연계의 힘이야. 정확히 놈들의 힘을 구분하자면 마력이라기보다는 환술에 가깝다.”

여왕은 남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환술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순수한 마력이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남궁 님께서 소민 양에게 기대하시는 것인지도 알겠습니다. 다만…….

“다만?”

-소민 양이 마력에 관해서야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천재적인 자질을 가졌다는 것에 이견은 없습니다. 하지만 환술을 파훼 하는 것은 단순히 마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왕은 그를 바라봤다.

-환술을 마력으로 파쇄한다. 그것은 단순히 이론적인 것에 불과 하니까요.

하지만 의미심장하게 대답하는 그녀와 달리 남궁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론에 불과하다…… 확실히 내가 아는 것도 그래. 누구도 확인해 본 적 없는 것이지. 하지만 당신은 설마 내가 내 딸을 그저 이론만 믿고 위험에 빠뜨릴 거라고 생각하나?”

-그럼…….

“자질이란 태생적인 거라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땅에 꽃이 필 수 없듯, 태생이란 것도 결국은 원류(源流)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남궁은 여왕에게 말했다.

“보다시피 나는 마력이 전무하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어째서 그런 자질을 얻게 될 수 있었을까?

-……설마.

“소민이의 엄마. 그 아이는 내 아내에게서 자질을 물려받은 것이겠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그런 엄청난 마력의 자질을…….

하지만 여왕의 물음에 남궁은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어. 단지 꽤 오랫동안 아팠지. 병명조차 알지 못하는 불치병으로.”

그 미소는 쓸쓸하다 못해 시리게 느껴져 여왕의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그녀의 죽음과 부대의 해체까지.

어쩌면 지옥문이 열린 지금보다 그에겐 아내를 잃었던 순간이 더 절망적인 삶이었을지 모른다.

“백방으로 그녀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었지. 그런데 우습게도, 이런 세상이 되고 나서야 그녀의 병명이 뭔지 알 것 같더군.”

-설마…… 마력으로 인한 병이라면…….

“그녀는 절맥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이곳에서 누구도 원인을 밝혀낼 수 없었겠지.”

[절맥증…… 허허, 카니발도 없는 이 세계에 그 병을 가진 분이 계셨을 줄이야.]

규류는 남궁의 말에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선지자의 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저희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일인데 말이죠.]

-너무나도 마력이 강렬해 몸 안을 순환하지 못해 몸속에서 쌓여 일종의 마력 폭풍을 일으키는 마법 병의 일종.

여왕은 조용히 절맥증에 대해 읊었다.

-그리하여 마력이 흘러야 할 혈맥이 끊기고 더 나아가 장기까지 서서히 갉아먹는…… 너무 뛰어난 재능 때문에 생기는 불운한 병이죠.

[그 병에 대한 정보가 마력도 없는 이 세계에서 전무한 건 당연한 일이겠군요.]

-그럼 그 병으로 인해 돌아가신 겁니까?

남궁은 여왕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갑작스러운 재해였어. 지진으로 그녀를 잃었지.”

-안타까운 일이네요. 그렇지 않았다면 누구보다 위대한 마법사가 탄생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 안타까운 일이지. 서울 한복판에 그렇게 끔찍한 지진이 일어날 거라곤…….”

영등포에 일어났었던 강도 6.8의 대지진.

유례없던 그 끔찍한 사고는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소민 양이 어째서 그런 엄청난 마력을 가진 건지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왕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왕을 상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입니다.

“알아. 소민이 혼자였다면 실패하더라도 내가 놈을 상대했을 거야. 내가 믿는 건 단순히 딸의 재능만이 아냐.”

오싹-

그 순간, 여왕은 남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자신의 전신을 베는 듯한 저릿함을 느꼈다.

“부모란 존재지.”

* * *

[……재밌는 기운이로군. 사령술을 쓰는 것도 아닌데 작은 몸 안에 또 다른 영령이 깃들어 있어.]

런던교 아래 가려진 지하 수로 안에서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

오물의 악취가 코를 찌르는 지저분한 이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자의 정체가 마왕일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놈의 혈육이냐.]

마왕은 냄새를 맡듯 코를 들썩이며 소민을 향해 말했다.

[놈과 달리 달콤한 향이 나는구나. 그래, 최상급 마력의 향기야. 제 발로 찾아오다니…….]

콰아아아앙---!!!

마왕이 입을 쩍 벌리자 뱀과 같은 기다란 혀가 파르르 떨렸다.

[네년을 먹어 치우면 되겠어!!!]

요란한 폭음과 함께 순식간에 그가 소민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소민의 앞에 푸른 장막이 나타났다.

쾅! 쾅!! 콰아앙!!

실크 커튼처럼 여리여리한 막에 불과했지만, 놀랍게도 마왕의 공격은 장막에 가로막혔다.

콰아앙!!

오히려 흔들리던 장막이 고스란히 마왕의 공격을 튕겨냈다.

그 반발에 마왕의 몸이 뒤로 밀려나 오물이 흐르는 수로에 처박혔다.

[쿨럭……! 쿨럭……!!]

마왕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하수구 바닥에서 기어 올라오며 그녀를 바라봤다.

사르륵…….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어두운 하수구에서 마치 반딧불처럼 소민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빛.

[……계약 요정?]

마왕은 그녀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세 마리의 요정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제 갓 꽃망울에서 태어난 어린 요정들은 마왕이 두렵지도 않은 듯 까르르 웃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소환수의 밤이라 할지라도 계약은 단 하나와 맺을 수 있을 텐데……?]

“내가 계약한 건 저 아이들이 아냐. 얘네들은 그냥 따라온 것뿐이지.”

소민은 그런 마왕을 향해 말했다.

쿵-!!

그녀의 손에 있던 지팡이가 바닥에 닿자 마치 심장이 울리는 것 같은 고동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날아다니던 요정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소민에게서 풍기는 향긋한 숲 내음은 오히려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

솨아아아악……!!

미풍(微風)이 불었고 마왕의 얼굴은 굳어졌다.

[위그…… 라시온?]

세계수의 요정이자 요정족의 시초.

가장 위대한 요정.

그녀의 뒤에 나타난 하나의 형상을 보며 마왕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미친…… 그놈이나 그 딸이나 멍청하긴 매한가지구나. 강력한 힘에 눈이 멀어 자신의 그릇도 살피지 못하니 말이야.]

하지만 이내 곧 그는 차갑게 웃었다.

[인간이 세계수의 요정을 감당 할 수나 있을 것 같으냐!! 네 작은 육신이 터져 버리기 전에 내가 먹…….]

멈칫-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마왕의 발걸음이 굳어졌다.

‘아냐…… 달라.’

그는 소민의 뒤에 있는 여인의 형상을 바라봤다.

코가 아플 정도로 짙은 요력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요정의 것이 아니었다.

[……누구냐.]

여인이 소민을 감싸자 그녀의 몸에서 따뜻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히려 소민의 몸 안에 마력이 더욱더 충만해지기 시작했다.

[저만한 마력을 어떻게…….]

마왕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직 복수를 위해 마구잡이로 힘을 밀어 넣던 사령들과 달랐다.

강대한 요력은 그녀를 몰아세우기보다 오히려 보호하고 있었다.

[소환자의 육신을 보호하는 소환수라고? 그런 게 있을 리가……!!]

그 순간 소민의 뒤에 있던 여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크아아아아!!!]

마왕이 다급히 소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우웅……!!

그리고 여인의 두 손에 들려 있던 광석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소민의 주위로 단단한 방벽이 세워졌다.

넘버링 3.

이름 : 태초의 씨앗

등급 : 레전더리(최초)

▶ 발동 시 30초간 전신에 모든 공격을 무효화하는 광석을 두르게 된다.

쾅! 쾅!! 콰아앙!!

마왕이 다급한 모습으로 미친 듯이 방벽을 두들겼지만 두터운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 뭔가 숨겨진 힘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민은 【태초의 씨앗】의 설명란에 있는 마지막 줄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부모란 죽어서도 자식을 지키는 존재다.’

아빠의 말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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