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마, 마왕의 머리……?]
눈앞에 너무나도 명확한 증거가 있었기에, 일말의 의혹도 없이 마족들은 소리 쳤다.
[안 돼!!!!![
[마…… 마왕이 죽었다!!!]
“진수혁!!!! 요새의 결계를 해제해!!!”
마족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남궁은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도시를 두르고 있던 방벽들이 일제히 아래로 내려갔다.
쿵! 쿵! 쿠우웅……!!
반으로 갈라졌던 마족군들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봐라……!!! 마왕의 목이 떨어졌다. 더 이상 네놈들을 이끌 수장은 없다!!”
남궁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인간의 승리다!!!”
그리고 그 외침이 쐐기가 되어 마족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저건…… 마왕의 머리?”
“마왕이 죽었다!!! 마왕이 죽었어!!!”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양 진영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제, 제길……!!]
[다 틀어졌어!! 마왕이 죽었으니 끝이야!!]
[모두 후퇴하라!!!]
특히 안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방벽 외부의 마족들은 인간군의 환호 소리로 순식간에 이성을 잃었다.
화아아악……!!
마족들의 날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도망치듯 차원문 안으로 들어가자 마족들은 너도나도 부랴부랴 흩어지기 시작했다.
“저것들 뭐지? 갑자기…….”
아직 군세가 훨씬 더 많은 쪽은 여전히 마족이었지만 그들은 이제 도망가기 바빴다.
“공포가 머리를 지배한 것이겠지.”
물러가는 마족들을 보며 어리둥절한 성우의 어깨에 팔을 걸며 호준이 말했다.
“차라리 본능만 있는 짐승 같은 마물들이었다면 수장이 죽더라도 그냥 다짜고짜 공격했을 텐데…….”
“오히려 지능을 가지고 있어 가장 강한 수장이 죽었다는 공포가 그들을 짓누른 것이군요.”
“그렇지. 뭐, 수장의 죽음으로 전세가 역전된 건 과거의 전쟁들에서도 많았으니까.”
“어쨌든…… 이긴 건가?”
방벽 외부에서 싸우던 장길수와 박효주, 최명훈 등은 도망치는 마족들을 바라보며 드디어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감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
“저 안에서 살아남은 형님도 대단하지만…….”
“응. 그보다 더 대단한 건 저기 있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열린 마법진 안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며 명훈은 호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지면에 착지하자 소민은 쓰러져 있는 남궁을 향해 달려갔다.
우우우웅……!!
그녀의 주위에 있던 세 마리의 요정들이 남궁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파르르 떨리는 날개에서 분가루 같은 것이 떨어지자 남궁은 고통이 옅어지는 걸 느꼈다.
“물망초의 요정이 셋? 꽃망울 하나를 개화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세 마리나 모두 망울을 터뜨리다니…….”
남궁은 주위를 날아다니는 요정을 보며 말했다.
“말하지 말고 있어. 요정의 분으로도 이건 쉽게 치료할 수 없어.”
하지만 날아다니는 요정들을 보며 남궁은 소민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겼다.
“과연 내 딸답다.”
그의 칭찬에 소민은 멋쩍은 듯 입술을 씰룩였다.
“아니지. 아빠 딸이 겨우 요정들을 부리는 정도로 끝났을까 봐? 여왕님께 받았어. 아빠가 전해주라는 거 말이야.”
소민은 품 안에서 【태초의 씨앗】을 꺼냈다.
촤르르르륵……!!
그녀의 손에 있던 씨앗이 새하얀 빛을 뿜어내더니 순식간에 【세계수의 지팡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지팡이의 끝에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씨앗이 박혀 반짝거렸다.
“요정들이 태어날 때 씨앗이 빛나는 걸 봤어. 덕분에 씨앗에 숨겨져 있던 특수한 효과를 찾아냈지.”
“생명의 부화.”
“역시…… 아빠는 알고 있었구나?”
“네가 요정족의 계약자가 되었을 때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아빠가 씨앗으로 엄마를 부활시키라는 건 줄 알았어.”
남궁은 소민이가 아내의 말을 들을 수 있단 얘기를 들었을 때 하나의 기대를 걸었다.
거인족이 가진 보물의 힘으로 아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하지만 그건 죽은 아내를 되살리라는 뜻이 아니었다.
“여왕은 카니발이 시작되기 전에 죽은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도 살릴 수 없다고 했어. 그럼…… 이걸 아빠가 왜 내게 줬을까.”
소민은 그녀는 지팡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리고 알았지. 내 곁에 있는 이들 중 또 다른 죽은 자가 있었다는 거.”
우우우웅…….
씨앗이 박힌 세계수의 지팡이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위그라시온.”
남궁은 딸을 감싸고 있는 강렬한 요정의 기운을 느끼며 말했다.
사상마법은 영혼의 힘과 마법의 힘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 쿠후란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위험한 힘이었다.
남궁은 그것을 알고 아내의 영혼의 힘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을 찾고 있었다.
그녀에게 우호적이며, 누구보다 강력한 요력을 가진 그릇을 말이다.
“무리하게 해서 미안하다.”
그리고 지금, 위그라시온의 얼굴에 흐릿하게 아내의 얼굴이 투영되는 것을 보며 남궁은 두 사람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딸에게도 아내에게도.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4번째 문을 닫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그녀를 보호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무리라니…… 바보 같은 소리 마. 아빠야말로 혼자서 런던에 갔었잖아.”
소민은 알고 있었다.
단순히 런던의 시민들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만에 하나 있을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자신의 육신을 갉아먹을 것을 알면서도 죽은 시민의 힘을 흡수해 마왕에게 피해를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조급해진 마왕이 차원문을 앞당겨 열기 위해 남은 마력까지 모두 소진하고 말았으니까.
“모두 아빠가 한 거야.”
▶ 미약한 영혼이 당신을 향해 고개를 젓습니다.
남궁은 위그라시온 속에 스며들어 있는 아내의 영혼이 자신을 다독이는 것을 알았다.
“…….”
지금까지와는 달리 마치 강제로 지운 것처럼 수식어 부분이 흐릿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더 이상 약하지 않다는 아내의 의지라는 것을 말이다.
남궁은 옅게 웃었다.
“싸우자.”
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
남궁의 읊조린 작은 목소리가 들릴 리 없었을 텐데, 그 순간 놀랍게도 대전을 지키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대답하듯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포격 개시!!!”
대전 요새의 방벽이 해제되자 주둔하고 있던 군부대들이 일제히 마족들을 요격하기 시작했다.
“마족들을 몰살하라!!!!”
“가자!!!”
그리고 마장연합, 참악부대 등 능력자들이 마족들을 습격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을 몰아붙이던 마족들이 전의를 잃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후퇴하려던 올가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거짓말이다.]
차원문을 통과하기 직전, 그는 오싹한 기분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카니발의 막이 내렸다는 알림이 울리지 않았어…….]
그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소리쳤다.
[……거짓말이다!! 빌어먹을 머저리들아!! 저 건방진 어린년에게 속아 넘어간 거라고!!]
올가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아직 카니발이 끝나지 않았다!! 마왕은 아직 살아 있다!! 도망치지 마라!!!]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이미 마족들은 차원문에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제길……!!!!]
올가는 이를 바득 갈며 손을 들어 올렸다.
파앗……!!
그때였다.
4번째 문이 닫혔다.
[무, 무슨……?]
도망치던 마족들은 갑자기 차원문이 사라지자 그제야 어리둥절한 얼굴로 올가를 바라봤다.
서걱-
그리고, 올가의 옆에 있던 마족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마족들은 이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고개를 돌렸다.
[잘 들어라. 카니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딘가 마왕은 살아 있다. 이대로 빈손으로 도망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올가는 마족들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에게 뒤는 없다. 지금 당장 모두 흩어져 마왕을 찾아라!! 마왕의 신변을 보호하고 후일을 도모하라……! 우리는 아직 지지 않았다!!]
그의 명령에 마족들은 잠시 머뭇거리다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 마왕만 찾으면…….]
[서둘러……!!!]
그들은 뭔가에 홀린 듯 올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날개를 펄럭였다.
하늘을 까맣게 채웠던 수만의 마족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치열했던 대전엔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뜻대로 움직여 줘서 고맙다.”
남궁은 깨끗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뭐?]
“솔직히 수십만 대군인 너희 마족들을 우리들로만 상대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거든.”
저벅- 저벅- 저벅-
남궁은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알아서 흩어져 준다니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어? 게다가 더 나아가 도망칠 차원문까지 스스로 닫아버렸으니…….”
남궁은 올가의 멱살을 잡아당기며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야말로 독에 든 쥐새끼. 그리고 쥐새끼는…… 한 놈, 한 놈…… 잡아 족치는 게 제맛이지.”
[네, 네놈……!!!]
쾅! 쾅! 콰가가가강……!!
올가는 악을 쓰며 남궁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찰나의 순간 그의 앞으로 붉은 번개가 떨어졌다.
[죽여 버리겠다……!!!]
“어딜!!!”
콰아아아앙---!!!
올가의 앞을 가로막는 명훈과 호준.
슉……! 슈슈슛!!!
동시에 그를 향해 날카로운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오히려 전생의 네가 좀 더 나았군. 회귀자의 존재. 그리고 그 이유가 자신들의 죽음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는 너희는 이미 시작부터 공포에 짓눌려 있었어. 죽어 보지 않았던 마왕은 복수를 부르짖었지만…….”
남궁은 올가의 멱살을 낚아채듯 잡아당겼다.
“죽음을 겪어봤던 네놈들은 시작부터 겁에 질렸던 거야.”
푸욱-!!!
그 순간, 올가의 등에 3자루의 검이 박혔다.
“나를 만나는 걸.”
[……쿨럭.]
영혼 병사들이었다.
소민의 도움으로 체력을 회복한 남궁이 지금까지는 사용할 수 없었던 병사들을 소환한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올가가 핏물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제길.]
머리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
자신의 목을 향해 떨어지는 아스의 거대한 도끼를 바라보며 올가는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전생의 기억인 걸까.
그럴 리 없는데, 올가는 주마등처럼 자신이 죽었던 마지막 순간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랬군…….]
사실 알고 있었다.
어째서 마족들이 마왕이 죽었다는 거짓말에 이리도 쉽게 흔들렸는지.
그리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차원문을 닫아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린 건 오히려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이 흔들렸다는 의미였다.
[마왕께서 나를 믿고 선봉의 지위를 내리셨는데…… 나는 오히려 마왕의 퇴로마저 막아버렸다니.]
“잘 가라.”
남궁은 마족의 감상 따위 가치 없다는 듯 차갑게 작별을 고했다.
[그럴 수 없다……! 나는 또 죽을 수 없……!!]
쿠웅-!!!!
아스의 도끼가 깨끗하게 올가의 목을 잘라 버렸다.
자신의 죽음을 부정이라도 하는 듯 눈을 부릅뜬 채 떨어진 올가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
남궁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끝내.”
아무도 없는 상공을 향해 그가 말했다.
▶ 네 번째 축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카니발의 종료를 알리는 알림이 울렸다.
스으으으으으…….
마왕의 가짜 머리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웅성- 웅성- 웅성-
“도대체 누가 마왕을……?”
“어떻게 된 거지?”
사람들은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멍하니 있지 마라.”
그런 그들을 향해 남궁이 말했다.
“우리의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은 마족의 수 580,987마리.
“사냥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