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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104/270)

@104화

-속보입니다. 타지마할에 숨어 있던 마지막 마족이 섬멸되었습니다.

마족 사냥이 시작된 지 열흘.

결국 마지막 마족의 시체를 각종 언론에서 실시간으로 보도하며, 전 세계는 보름 동안의 지긋지긋한 마족과의 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불사의 영웅 알렉 트라만의 마왕 격퇴 이후, 이로써 인류를 습격했던 모든 마족이 섬멸되었습니다.

-인류의 승리입니다!!

-전 세계는 드디어 공포에서 벗어나 평온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문이 열리고 그다음엔 이보다 더 힘든 적이 나타날 것을 알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승리를 만끽하려는 듯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욱 열렬히 환호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건 단순히 마물을 사냥하는 것이 아닌 처음으로 지능을 가진 존재와 싸웠다는 것.

즉, 전쟁(戰爭)이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마왕을 사냥하고 나온 전리품이다.”

한강대교 아래, 노들섬.

그리고 전 세계가 열광하는 축제 분위기와 달리 조금은 가라앉은 침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알렉 트라만이었다.

마왕과의 일전 후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전신에 붕대와 깁스를 하고 있는 알렉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하지만 본인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역시 그의 상태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쿨럭, 쿨럭…….”

기침을 할 때마다 통증이 심한 듯 인상을 찡그렸지만 남궁의 앞이기 때문일까, 자존심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꽤나 힘들어 보이네.”

“당신이 관심을 가질 줄 몰랐는데. 회복이 쉽지 않아. 에이라 미쉘의 회복 능력으로도 마왕의 독기를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더군.”

알렉이 어깨를 으쓱했다.

“관심? 전혀 아닌데. 꼴을 보니 아직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은가 보지? 불쌍한 척하지 마.”

움찔-

차가운 남궁의 반응에 알렉의 눈썹이 씰룩였다.

“마왕의 독기는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위상의 가호를 받는 계시자라면 엘릭서로 치유할 수 있다. 너라면 그걸 살 만큼의 헤드는 충분히 있을 텐데?”

남궁은 알렉을 향해 말했다.

“마음먹으면 살 수 있는 걸 하지 않는 건, 아직도 그 머릿속에 허영심이 남은 거겠지. 언론 플레이라도 하려고?”

“……그런 거 아냐.”

신랄한 남궁의 말에도 알렉은 어쩐지 발끈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헤드는 모두 포션과 필요한 지원품을 구매해서 런던의 복구를 위해 사용했다. 남은 건 없어.”

“그래?”

“당신이 내게 마왕을 죽일 기회를 준 순간부터 내 자존심은 이미 깡그리 짓밟혔으니까. 이 이상 쪽팔리는 짓은 하지 않아.”

알렉 트라만은 창백한 얼굴로 두 개의 상자를 남궁에게 밀며 말했다.

“확실히…… 그런 거 같군. 상자, 열어보지 않은 모양이지?”

“내 것이 아니니까.”

남궁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가져가. 마왕을 죽인 건 너잖아. 그러니 네 것이다. 애초에 저걸 열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잖아. 카니발의 규율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답지 않게 웬 고집이야?”

“빌어먹을……!! 도대체 어디까지 날 비참하게 만들 생각이야?!!”

알렉은 쥐고 있던 목발을 집어 던지며 남궁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어째서…… 의식을 찾아 마왕이 있는 곳에 갔을 때 네 딸은 충분히 마왕을 죽일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왜 내게 기회를 넘긴 거지?”

“연극이 필요했으니까.”

“……뭐?”

“지금껏 겪어봤으니 너도 알겠지. 보스를 죽이면 문이 닫힌다. 하지만 문에서 나오지 못하고 남아 있던 마물들이 웨이브라는 형태로 한꺼번에 소환되지.”

모를 리가 없었다.

고블린부터 리자드맨까지…….

소환수의 밤으로 인해 위상의 힘으로 닫은 세 번째 문을 제외하곤, 보스를 사냥한 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으니까.

“지옥문을 통해 넘어온 마족의 수는 60만이 넘는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마족의 수일 뿐. 차원문 너머에는 마족들이 부리는 마물들도 존재한다.”

알렉은 그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보스가 죽으면…… 그 마족뿐만 아니라 차원문 뒤의 나머지 마물들도 소환된다는 말인가?”

“그래. 그리고 그 숫자는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마족의 수보다 더 많겠지.”

남궁은 말했다.

“말도 안 돼…… 60만이 넘는 마족이었다. 그런데 남아 있는 마물이 그보다 더 많다고? 지금까지는 기껏해야 몇천…… 몇만에 불과했어. 난이도가 너무 다르잖아.”

“그전과 같아야 한다고 누가 약속이라도 했나?”

“…….”

“영웅 놀이에 심취해 있었겠지만 세상을 바로 봐라. 카니발로 인해 이미 전 세계엔 백만 단위가 넘는 인명 피해가 일어났다.”

남궁의 말에 알렉은 얼굴을 구길 뿐 대답하지 못했다.

“단, 문이 닫혀도 웨이브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게 바로 그 문을 소환된 마물이 스스로 닫을 때다.”

“마물이 스스로 문을 닫는다라…….”

“고블린 로드나 리자드맨처럼 지능이 낮은 녀석들을 가능할 리 없지만, 마족은 인간과 같은 수준 높은 지성체거든. 그리고 앞으론 그런 놈들과 싸워야 한다. 단순히 사냥이 아닌…… 그야말로 전쟁이지.”

꿀꺽-

알렉은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통하는 것도 있다.”

바로, 전략과 전술.

남궁은 마족을 속이기 위한 작전을 계획했다.

“과연 대마법사야. 덴 하울이 만든 마왕의 가짜 머리는 마족들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덕분에 녀석들은 알아서 문을 닫았지.”

남궁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문을 닫고 고립된 마족들을 처리한다. 그게 내가 생각한 계획이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 뭐, 따지고 보면 너도 네 역할을 잘 해낸 거지.”

“……내 역할?”

“한국에 세계연합을 세우겠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알량한 욕심에 나댄 점. 덕분에 마왕의 타깃이 되었지.”

빠득-

“덕분에 대전의 사람들을 대피 시킬 수 있었고, 마족군과의 전쟁을 위한 전장을 마련할 수 있었으니까.”

남궁은 알렉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지만 알렉의 입장에선 그저 비참할 따름이었다.

탁!!

알렉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

“적색지대에서부터 런던의 일까지…… 너는 내 행동들을 부정하면서 보란 듯이 마물들을 잡았지. 이제 만족해? 나를 허수아비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 바보로 만드니 좋으냔 말이다!”

퍼억-!!!

그때였다.

남궁은 소리치는 알렉의 뺨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컥!!”

알렉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깁스를 한 다리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그대로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아무것도 하지 못해? 말은 바로 해야지. 그냥 뒀더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뛴 게 누군데? 지금 내가 널 칭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건 바보라도 알 텐데.”

남궁은 쓰러진 알렉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눈엔 분노를 뛰어넘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네가 그 많은 런던의 시민들을 죽인 거다. 자신을 구하러 와주길만을 기다리며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던 그들을 넌 네 유명세를 위해 이용한 거라고.”

퍼억-!!!

그는 다시 한 번 알렉의 복부를 발로 세게 찼다.

“그래도 네놈은 또 살아 있지.”

퍼억-!!

다시 한 번, 또 한 번.

남궁은 알렉을 향해 있는 힘껏 발길질을 해댔다.

“그런데 무슨 세상 자기가 가장 슬픈 것처럼 도리어 내게 화를 내는 거야?”

“쿨럭, 쿨럭…….”

아직 몸이 회복이 되지 않은 알렉의 입에서 핏덩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

그 광경을 요한나와 한슨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휠체어에 타고 있는 한슨은 양팔과 한쪽 다리가 없었다.

운이 좋다면 좋은 걸까.

사지를 모두 절단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는 한쪽 다리를 남길 수 있었다.

그래 봐야 평생 휠체어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

“말리긴 뭘 말려.”

한슨의 물음에 요한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이젠 인정해야지. 우리는 세계의 중심이 아냐. 죽었다 깨어나도 남궁을 이길 수 없어. 그렇다면 선택을 해야겠지.”

“…….”

“그를 따르든지, 혹은 온전한 적이 되든지. 물론, 알렉이 후자를 택한다면 나는 빠질 거야.”

“결국 선택지는 하나라는 건가…….”

한슨은 그녀의 말에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게 바라는 게 뭐지?”

바닥에 대자로 뻗어 누운 알렉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네가 더 잘 알 텐데. 너는 평생 런던의 수많은 목숨을 짊어지고 살아야 할 거다.”

남궁은 그런 그의 뺨을 검지와 엄지로 꼬집듯 잡아 누르며 말했다.

“진짜 영웅이 되라. 타인의 절망을 기다리지 말고 네가 먼저 절망에 들어가.”

그는 알렉을 바라봤다.

“영웅도 결국 찬양해 줘야 할 사람들이 있어야 될 수 있는 법이니까.”

남궁은 잡고 있던 알렉의 머리를 다시 한번 바닥에 짓눌렀다.

“크, 크윽……!!!”

아침 이슬로 젖은 잡초들 탓에 알렉의 얼굴은 진흙범벅이 되고 말았다.

“절망에 들어가……? 어차피 이미 죽은 사람들이야! 그들을 위해 내가 뭘 더 하라는 거야!!”

알렉은 소리쳤다.

“그래, 나도 같이 죽기라도 할까? 내가 죽길 바라는 거지? 어? 그렇게 해야 만족하겠냐고!!!”

“맞아.”

“……뭐?”

생각지도 못한 남궁의 대답에 소리치던 알렉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꿀꺽-

뺨에 묻어 있던 진흙이 흘러 그의 입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는 놀란 나머지 진흙을 삼킨 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잠깐……!! 남궁, 부디 그만하십시오!”

두 사람을 보며 한슨이 소리쳤다.

“그는 분명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지만 절대로 악인은 아닙니다. 부디 그를 용서하십시오.”

“내가 저놈을 용서하고 말고가 어디 있나? 나는 그저 사실을 얘기할 뿐이다.”

“사실이라니…….”

“다음 문이 열리면 계시자들 중 한 명이 죽어야 한다. 그 역할을 네가 해라. 알렉 트라만.”

“……!!!”

남궁의 말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 잠깐!! 아무리 그래도 알렉에게 죽으라니……!”

한슨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무하잖소! 결국 희생자로 쓰려고 그를 살려둔 겁니까?”

“자신의 등장을 위한 공포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런던의 시민들이 희생되는 동안에도 시간을 끌던 놈은?”

“그, 그건…….”

“이목을 더욱 집중시키기 위해 녀석은 자신의 동료가 위험한데도 움직이지 않았지. 어때? 기분이?”

남궁의 물음에 한슨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를 리더로 결정한 이후부터 이미 미래는 정해졌던 겁니다. 그의 뜻이 그러하다면…… 알았어도 따랐을 겁니다.”

“허접한 놈 주위에 그래도 강단이 있는 녀석이 있긴 하군. 제일 쓸 만한 놈이 반병신이 되어버렸지만.”

남궁은 굳은 얼굴의 한슨을 지나쳐 갔다.

“말했듯이 상자는 너희 거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라도 가지고 어디 발버둥 한 번 쳐봐.”

콰앙-!!

알렉은 신경질적으로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치며 그를 노려봤다.

“나머지 계시자들도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너를 지지할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군.”

남궁은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죽기 전까지 남은 시간이라도 소중하게 여겨라. 알렉.”

“으아아아아악---!!!”

뒤에서 울음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묘한 알렉의 포효가 들렸다.

* * *

“굳이 알렉 트라만에게 마왕의 보상까지 넘길 필욘 없지 않았을까요.”

노들섬에서 돌아오던 차 안에서 명훈이 남궁에게 물었다.

“놈은 런던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동안 방관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비난을 받아도 모자랄 놈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형님이 짜놓은 판에 살아남았네요. 하여간 운도 좋은 녀석…….”

명훈의 말에 호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형님께서 왜 이렇게 알렉에게 기회를 주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들었잖아. 다음 문이 열리면 계시자 중에 한 명이 죽게 된다. 그 역할을 하라고 살려뒀다고.”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형님이 정말 죽을 사람을 고른다고요? 작전 중에서도 오히려 자기가 총알받이가 되려 하던 사람이 무슨…….”

“딱히 보상을 받는다고 녀석이 반성을 할 것 같진 않은데…… 알렉 트라만이 저희와 뜻을 같이할 수 있을까요?”

“다들 무슨 소리야. 정말 죽이기 위해서 남겨둔 거라니까.”

명훈과 호준의 추측에도 불구하고 남궁은 딱 잘라 대답했다.

“형님, 냅두세요. 도통 속을 모를 사람이라 우리 같은 범인들은 때가 돼야 아~ 그랬구나 한다니까요.”

명훈은 호준의 핀잔에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괜한 불안을 남겨둔 것이 아닐까 걱정됩니다.”

남궁은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전 불만입니다. 이제야 세상이 형님을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왜 자꾸 영광을 남에게 넘기시는 겁니까?”

“영광? 그런 빛나는 자린 내가 있을 곳이 아냐. 너희들이 있어야 할 자리지.”

“그게 무슨…….”

“앞으로 내 손엔 마물의 피만 묻히게 되지 않을 테니까.”

오싹-

그 순간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만신전(萬神殿).”

남궁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섯 번째 문의 이름이자 우리가 준비해야 할 다음 전장이다.”

“어떤 마물이 나오는 겁니까?”

“이름 그대로야. 그 문을 통해 나오는 것은 사냥해야 할 마물이 아니야.”

“설마……?”

“신(神)이다.”

그의 말에 명훈과 호준은 굳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다음 문이 열리면 세계는 다시 한번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긴장한 걸까.

남궁은 잠시 숨을 골랐다.

“위상의 힘은 오직 선택받은 8명의 계시자만이 사용할 수 있었지.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지만, 이제 다섯 번째 문이 열리면 위상의 힘이 담긴 보구들이 세상에 나타난다.”

“신의 무구…….”

“그리고 그것을 얻게 된 주인은 계시자만큼은 아니지만 위상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

위상의 힘을 가진 무구는 각각 2개씩.

총 열여섯 개의 무구.

그것을 가진 자들을 가리켜 추종자라 불렸다.

“그것을 얻는 쟁탈전이 바로 만신전이다.”

“대리 경매를 통해 일족의 계약자가 가진 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만신전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겠군요. 경매와 달리 실패한다고 해서 무조건 죽는 그런 리스크도 없고 말이죠.”

명훈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계시자나 계약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추종자들 역시 카니발을 살아남기 위한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

“와…… 그거 엄청난 거 아닙니까? 형님처럼 사령술을 쓴다든지 뭐 에이라 미쉘처럼 치유를 할 수 있다든지 그런 거잖습니까!”

“그래.”

“하나만 얻어도 대박이겠는데요?”

호준은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며 남궁에게 말했다.

“그렇겠지. 그리고 다들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네?”

“호준아. 적색지대의 일을 벌써 잊은 거냐.”

그런 그를 향해 명훈이 말했다.

“다행히 마찰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적색지대는 사람들이 안전지대를 쟁탈하게 만들려는 함정이 있었어.”

“그래. 결국 위상의 무구는 결국 미끼다. 놈들은 집요하리만치 인간을 유혹하지.”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의 무구를 발동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바로 계시자 중 한 명의 목숨.

한 명의 목숨을 대가로 열여섯 개의 무구를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인류를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무구를 얻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노리고 시작된 쟁탈전은 결국 마지막에 가서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세우게 만든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살아 있는 자를 죽이도록 하는 것.

그것이 만신전의 진짜 모습이었다.

“…….”

“무슨 생각 하십니까?”

“그냥.”

명훈은 남궁의 표정을 살폈다.

“언제까지 놈이 관망만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

“어디 한번 지켜봐야지. 자신의 계시자가 죽게 되는 걸 그저 지켜만 볼지 말이야. 몰아세우는 건…… 이쪽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모두가 위상의 힘이 담긴 무구를 노릴 때, 남궁은 다른 것을 노리고 있었다.

첫 번째 위상.

해와 달의 관망자.

위상 그 자체, 그것이 남궁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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