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조금 전 의뢰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뒤가 구린 것 같은데요.”
덴 하울이 떠난 뒤 박효주는 돌아가려는 남궁을 배웅하며 말했다.
“던전 공략이 퀘스트라고 하지만…… 단순히 그게 끝일까요? 제 생각엔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남궁 님의 실력이야 자타공인 계시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래서 문제라는 겁니다.”
“계속해 봐.”
남궁은 박효주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퀘스트의 내용은 모르겠지만…… 던전 공략의 가장 주요한 부분은 누가 뭐라 해도 보상일 겁니다.”
“보통은 그렇지.”
“공략에 성공했을 때 자신보다 더 높은 공헌도를 낼 수 있는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일일까요? 보상을 노린다면 자신보다 약한 사람과 함께하는 게 나을 텐데요.”
“나는 보상 템을 양보하겠다고 미리 얘기했는데?”
“그랬죠.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당장에 욕심이 나면 뺏고 빼앗는 게 지금 상황인데요.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보다 강한 사람과 대동한다는 건 분명 리스크가 있는 겁니다.”
“내가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인가? 나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닌데.”
복도의 끝에 선 박효주가 남궁을 바라봤다.
“그거야 모르는 일 아닙니까. 남궁 님도 꿍꿍이가 있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순순히 허락할 리가 없죠.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래?”
남궁은 피식 웃었다.
“당신 말대로 덴 하울의 목적은 아마 단순히 던전 공략만은 아닐 거야. 보스를 사냥하고 얻는 보상템이 아닌 다른 것일 가능성이 높겠지.”
박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던전 공략 자체가 미끼라면요?”
“무슨 의미지?”
“저라면 남궁 님이 아닌 다른 계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겁니다. 만에 하나 마찰이 생겼을 때 좀 더 승률이 높을 테니까요.”
“그런데 왜 녀석은 날 찾아왔을까?”
“처음부터 목적이 다른 걸 수도 있죠. 그가 노리는 게 던전이 아니라 남궁 님이라면…… 말이죠.”
“눈썰미가 쓸 만해졌는걸.”
“이 바닥에서 구르다 보니 느는 건 그것뿐이네요.”
그녀는 남궁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정말일까요? 뜬금없이 그가 남궁 님을 노리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요. 자칫 잘못하면 국가적 분쟁으로까지 퍼질 수도 있고요.”
지금까지 우방(友邦)의 관계에 있는 미국이었기에, 덴은 마왕전에서도 남궁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더욱이 현 상황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걷고 있는 남궁이 있는 한국을 적대시할 국가는 없을 것이다.
“글쎄. 그건 모르지.”
아니, 없을 것이라 여겨질 뿐.
“……네?”
“위상들의 꿍꿍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음흉하거든. 퀘스트를 받았다고 말하면 당연히 위상과 가장 밀접한 계시자들을 떠올리겠지.”
“그렇죠.”
“하지만 덴은 단 한 번도 퀘스트를 받았다고 하지 않았다. 녀석은 퀘스트가 있다고 했지.”
그 순간, 박효주는 덴 하울과 함께 온 백악관의 밀러드를 떠올렸다.
“설마…… 이번 일이 그가 아닌 미 정부와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건가요?”
“뭐, 위상이 내린 퀘스트가 덴 하울에게 내린 것인지…… 아니면 덴 하울조차 움직일 수 있는 누군가에게 내려진 것인지는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계시자인데…… 휘둘릴 위치는 아니지 않을까요?”
“모르지. 계시자라고 해도 결국은 사람이니까. 약점 없는 인간은 없거든.”
“으음…….”
“중요한 건 정말 녀석이 아닌 제3자가 퀘스트를 받았다면…….”
순간, 남궁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덴 하울의 동참이 자의인지 타의인지에 따라 이번 던전 공략의 결말이 달라질 거다.”
“만약 이번 던전행이 정말로 남궁 님을 노리는 것이라면요?”
“뭐, 그 결말은 달라지지 않겠지.”
날카로웠던 눈빛 대신 남궁은 오히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되었든 날 노린 놈은 죽는다.”
* * *
“브리핑은 여기까지. 목표는 단순하다. 오리건주에 생성된 던전을 공략하는 것. 김창환하고 경인이랑 성우까지. 셋이 이번 던전 공략에 나와 함께 간다.”
“알겠습니다.”
“심심했는데 잘됐네요. 준비하겠습니다.”
성채로 돌아온 남궁은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아빠, 나도 같이 가.”
“넌 여기 남아.”
“왜? 50명이나 죽었다면서. 위험 할수록 내가 가야지. 설마 아직도 날 못 믿어?”
원정대의 전멸에 대해서 들은 소민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그럴 리가. 이젠 누구보다 우리 딸을 믿지. 그렇기 때문에 더 여기 남아야 해.”
남궁은 그런 딸을 보며 옅게 웃었다.
“……왜?”
“내가 야차계에 있는 동안 16개의 던전이 소환됐어. 그중에 하나가 한국에 있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거야.”
“삼척에 있는 환선굴에 생성된 던전 말씀이시군요.”
“맞아.”
“제가 알기론 현재 23경비여단의 병력들이 그곳에 주둔하고 있다던데…….”
“네.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핫라인으로 바로 연결되도록 조치를 취해놨습니다.”
호준이 박효주를 슬쩍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들었지? 나머지도 그냥 있는 게 아냐. 모두 그곳에 가서 대기하도록 해.”
남궁이 딸을 바라봤다.
“너희는 던전의 변화에 대비해야 해.”
“변화요?”
“16개의 던전 중 하나라도 공략이 끝나면, 그것을 신호로 나머지 던전들이 모두 사라진다.”
“사, 사라진다고요?”
“그럼 안에 있는 마물은요?”
“설마……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죠.”
경인을 비롯한 아이들이 불안한 듯 물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파괴 된 던전엔 마물 대신 다른 게 나타날 거다. 너희들은 그걸 회수하면 돼.”
“그게 뭔데요?”
“성물(聖物).”
남궁은 대답했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름 그대로야. 위상의 힘이 단긴 무구지. 그걸 얻게 되면 위상의 힘을 일부 쓸 수 있게 된다.”
“위상의 힘이요? 그럼 엄청난 거 아닌가요? 와…… 나 삼척 가면 안 돼요?”
성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응. 안 돼.”
“…….”
“삼척에서 어떤 위상의 성물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1개를 얻어봐야 의미가 없어. 성물은 1쌍을 모두 모아야 비로소 힘을 발휘하니까.”
“형님, 한국에 소환된 던전은 하나뿐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나머지 한 쪽이 다른 곳에 있다는 건데…….”
“저희가 가야 할 이유가 그거군요.”
“그래. 성물을 빼앗으려는 습격자들이 곧 여기저기서 들이닥칠 거야. 너희는 그자들로부터 성물을 보호하도록 해.”
남궁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놈들이 어디에서 온 건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그래야 나머지 성물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무리하게 녀석들을 쫓을 필욘 없어. 우리는 성물을 모으는 게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모이지 않도록 하는 게 목적이니까.”
“네? 왜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형님.”
묻는 그들을 바라보며 남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건 돌아와서.”
“알겠습니다. 삼척까지는 머니 서둘러야겠네요. 호준아, 준비하자.”
“네? 아, 네.”
눈치 빠른 명훈이 먼저 그의 안색을 살피고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먼저 대답했다.
“명훈아. 네가 애들을 잘 이끌도록 해. 전 선수께서 잘 도와주십시오.”
“알겠네. 걱정 말게. 자네도 잘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전태호의 대답에 남궁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을 겁니다. 마물을 사냥하는 것과 사람을 상대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니까. 명훈이랑 호준이가 두 사람을 잘 이끌어 줘.”
“네, 명심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부대 출신인 두 사람의 대답 뒤에, 남궁은 소민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소민아. 성물은 네가 다루도록 해. 위상의 힘은 강한 정신력이 없으면 다루지 못하니까. 할 수 있지?”
“응. 알겠어.”
그녀는 조금 전과 달리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아니. 당신도 남아 있어. 던전 공략보다 성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니까. 참악부대뿐만 아니라 장길수와 진수혁의 세력도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대기하라고 하고.”
“그렇게나요? 그 정도면 거의 전쟁 수준인데…….”
“나머지는 돌아와서.”
다시 한번 말을 아끼는 남궁의 모습에 박효주 역시 다른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일행이 모두 빠져나간 뒤 방 안에는 김창환만이 남았다.
“너는 준비 안 해도 돼?”
“준비할 게 뭐 있나요. 총 하나 들고 가면 되지.”
창환은 남궁의 옆에 앉았다.
“형님.”
“왜?”
“저 꼬맹이 둘로 괜찮겠습니까.”
“덴 하울도 있고, 미국 측에서도 사람을 보낼 거니까. 게다가 내가 가니 크게 어렵진 않을 거다.”
“아뇨. 그게 아니라요. 제가 말하는 건 던전 공략이 아닙니다.”
“그럼?”
“던전 공략이라면 차라리 명훈이 형이나 호준이가 더 어울리죠. 그런데 그 둘이 아니라 저를 부른 건…… 그냥 마물 사냥이 아니라는 것이잖습니까.”
“…….”
“제 전문은 마물 말고 다른 걸 죽이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제가 삼척에 가야 맞을 겁니다. 그런데 절 불렀다는 건…….”
창환이 남궁을 바라봤다.
“마물 말고 다른 걸 잡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하여간 쓸데없이 눈치는 빨라서는.”
남궁은 쯧- 하고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던전 공략과는 별개로 덴 하울을 비롯한 미국의 능력자들과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 그들이 노리는 게 어쩌면 나일 수도 있거든.”
“형님이 보호를 받으려고 부른 것은 아닐 테고…… 경험을 쌓으려는 것이군요.”
“맞아. 앞으로는 단순히 마물을 사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살인에 익숙해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도망치진 않아야 하니까.”
“가혹한 시간이 될 수도 있겠네요.”
창환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이 변했으니까. 언제까지 우리가 살아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 대비를 해야지.”
꿀꺽-
남궁의 말에 창환은 처음으로 긴장한 듯 자마른침을 삼켰다.
“에이,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형님.”
“가자.”
불안한 목소리를 뒤로한 채 남궁은 천천히 몸을 이끌었다.
* * *
“고생하셨습니다.”
“딱히.”
“그럼, 그럼. 고생은 내가 했지.”
던전 앞에 모인 일행 사이로 미카엘이 너스레를 떨었다.
“형님, 저도 같이 갈까요?”
“넌 네가 있는 곳의 던전을 감시해. 멕시코엔 던전도 2개나 생성됐잖아. 우리들 중에 네가 제일 바쁠 거다. 얘기해 준대로 잘 처리하고.”
“쩝, 알겠습니다. 무사히 돌아오세요.”
“너도.”
남궁 일행을 데리고 온 미카엘은 그의 말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는 공간을 뛰어넘었다.
치지직……!! 치지지직……!!
찢어진 아공간 사이로 미카엘이 뛰어들자, 던전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신기한 듯 그가 있었던 빈자리를 바라봤다.
‘경계하고 있군.’
남궁은 덴 하울의 뒤에 서 있는 자들을 힐끔 바라봤다.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기운.
한눈에 봐도 제법 실력이 있는 자들임은 분명했다.
“저들은?”
“네. 이번에 저희와 함께 갈 인원입니다. 저기 다섯 명 모두 A급 능력자입니다.”
“A급?”
“정부에 로사 산티아고라는 분이 계십니다. 각종 능력들을 수치화해서 추산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지셨습니다.”
“……능력을 수치화해?”
남궁은 덴의 말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지금 독자적인 기준으로 계속해서 능력자들의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정예들입니다.”
덴 하울의 말에,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어쩐지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빳빳히 들었다.
“그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지?”
“……네?”
하지만 그들은 본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걸리적거리지 말고 비켜.”
턱-
그는 거들먹거리는 사내의 얼굴을 손으로 가볍게 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