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부우우웅---!!
아스의 거대한 도끼가 트롤의 머리를 부쉈다.
캉! 캉! 카가강……!!
그 주위로 소환된 영혼 병사들이 1조가 되어 트롤들을 상대했다.
퍼억!!
그 순간, 아이스 트롤의 해머가 영혼 병사를 후려쳤다. 병사는 트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쾅! 쾅! 콰강!!!
수십 차례 내려치는 해머에 영혼 병사의 몸이 들썩이며 순식간에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저들로는 역부족인가?’
남궁은 순식간에 사라진 영혼 병사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캬악!!]
하지만 그때, 나머지 영혼 병사가 해머를 휘두르던 아이스 트롤의 뒤에 매달려 있는 힘껏 검을 찔러 넣었다.
얼음 비늘의 효과가 사라진 트롤의 쇄골에 병사의 검이 박혔다.
까득…… 까드드득……!!
뼈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영혼 병사는 자신의 검을 두 손으로 꽉 움켜잡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푸욱-!!!!
트롤은 등에 달라붙은 병사를 떼어 내려 했지만, 병사는 박힌 검을 밟고서 거대한 트롤의 머리 위에 매달려 양손으로 녀석의 눈을 찔렀다.
[캬아아악!!]
두 개의 눈알이 동시에 터지면서 피가 섞인 진득한 액체가 영혼 병사의 팔을 타고 흘렀다.
요동치는 트롤의 등에 매달려 있던 영혼 병사가 쇄골에 박혀 있던 자신의 검을 뽑으며 바닥에 착지한 후, 마물의 옆구리를 향해 수차례 검을 우겨 넣었다.
[크륵……. 크르륵…….]
처절한 전투 끝에 아이스 트롤이 신음을 뱉어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
치열한 승리에 영혼 병사는 숨을 고르듯 잠시 동안 아이스 트롤의 시체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콰직-!!!
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아이스 트롤이 휘두르는 도끼에 병사의 몸이 수십 미터를 튕겨 밀려 나갔다.
타다다닷……!!
도끼를 든 트롤을 향해 다른 영혼 병사가 검을 휘둘렀지만 이미 경계를 하고 있던 녀석은 공격을 손쉽게 막아냈다.
[크르르르…….]
마치 곧 처리하고 가겠다는 것처럼 비릿한 웃음과 함께 커다란 송곳니를 들썩이는 트롤의 눈빛이 남궁을 향했다.
‘하나, 둘, 셋…….’
하지만 마물의 도발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남궁은 쓰러진 트롤의 시체를 살폈다.
슉! 슈슉-!!!
타앙-!!
영혼 병사들은 열세지만 창환과 경인의 엄호에 그래도 하나씩 줄어들고 있었다.
“형님, 이렇게 해서는 답이 없을 것 같은데요.”
저격을 하던 창환이 여전히 기세가 꺾이지 않고 다가오는 트롤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조금만 더.”
“네?”
“몇 마리만 더 잡아!”
남궁은 그 말을 끝으로 아이스 트롤의 무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런, 미친……!!”
벌떼처럼 남궁을 향해 달려드는 마물들을 보며 창환이 황급히 총구를 겨누었다.
[케에에엑……!!]
[캬아악!!!]
여기저기 트롤들의 비명과도 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트롤의 피를 머금은 【계명검】의 날이 점차 더 예리해질수록 바닥에 쓰러지는 트롤의 시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와…….”
경인은 활을 쏘면서 트롤의 무리를 휘젓는 남궁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전에서도 요새 안에서 혼자 싸웠던 그였기에, 경인은 남궁이 싸우는 모습을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정도면 아저씨 혼자서 다 쓸어버리겠는데요?”
“모르지. 하지만 혼자서 상대할 거면 형님이 우리를 부르지 않았을 거다.”
콰직……·!!!
퍽!
그때였다.
창환의 말에 대답하듯 요란한 굉음과 함께 영혼 병사 한 명이 그대로 폭사하며 흩어졌다.
“저건…… 뭐야?”
경인은 들고 있던 활을 잠시 내려놓으며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트롤을 바라봤다.
일반적인 아이스 트롤도 성인 남성보다 더 큰 체구였지만, 그런 놈들조차 어린애처럼 보일 만한 엄청난 크기.
“저기 있네. 우리를 부른 이유.”
꿀꺽-
창환의 말에 경인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정신 바짝 차려라. 딱 봐도 한 대 잘못 맞으면 골로 가게 생겼으니까.”
하지만 이내 곧 경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창환은 그런 그의 모습에 씨익 웃었다.
대전에서 경인이 싸우는 모습을 본 창환은 까불거리는 성우에 비하면 유약(柔弱)해 보이지만, 사실 그가 누구보다 전황을 읽는 눈이 밝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덩치가 큰 놈을 상대할 땐 어떻게 하라고 했지?”
“눈을 맞힐 수 있으면 시야를 차단한다. 그럴 자신이 없거나 불가능하다면 다리를 노려서 이동력을 감소시킨다.”
창환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다리를 맡죠.”
“흥, 네 실력에 저 정도 크기면 눈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면 칭호를 얻을 수도 있고.”
“괜찮습니다. 칭호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걸 하려고요.”
활을 고쳐 메며 경인은 말했다.
“맘에 든다.”
두 사람은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의 설명 없이 반대편으로 갈라졌다.
* * *
‘저놈이군.’
아이스 트롤의 무리를 뚫고 달리던 남궁이 거대한 대형 트롤을 바라봤다.
크기는 오우거급.
하지만 기형적으로 기다란 팔과 다리는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날렵함을 가졌다는 증거였다.
[쿠어어억……!!]
고막을 찢을 듯한 포효와 함께 둔탁한 방망이를 쥐고 있던 대형 트롤이 남궁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스!!”
남궁이 외치는 순간 아스가 놈을 막았다.
탁! 타탁! 탁!!
동시에 남아 있는 영혼 병사들이 놈의 뒤를 노렸다.
콰아앙!!!
정면으로 부딪힌 아스와 대형 트롤이 힘겨루기를 하며 서로 맞부딪혔다.
크극…… 크그그극…….
과연 영웅급 영혼답게 자신보다 훨씬 큰 트롤을 상대로 아스는 쉽게 밀리지 않았다.
[카아아아아아!!!]
▶ 거대 트롤이 포효를 지릅니다.
▶ 1분간 모든 신체 능력이 2배 상승합니다.
▶ 얼음 비늘의 강도가 3배 증가하며 지속 시간이 추가적으로 1분 증가합니다.
대형 트롤의 전신이 단단한 얼음으로 뒤덮였다.
캉! 카강! 카카캉!!
어깨와 다리, 팔 그리고 목의 관절을 노린 영혼 병사들의 검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부우우웅……!!
그 순간 트롤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영혼 병사들이 뒤로 물러나며 놈의 공격을 피했지만 휘두른 거대한 방망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풍압만으로도 병사들의 몸이 휘청거리며 밀려났다.
퍼억-!!
중심을 잃고 쓰러진 병사 하나의 머리 위로 트롤의 방망이가 직격했다.
츠즈즈즈즈…….
지면에 박힌 방망이의 틈 사이로 검은 연기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키륵…….]
영혼 병사를 잡은 트롤은 마치 놀리는 것처럼 히죽거리며 남궁을 바라봤다.
콰직---!!!
그때였다.
[……케에에엑!!!]
대형 트롤의 한쪽 눈알이 터지면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녀석은 들고 있던 방망이조차 내팽개치고선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 영혼 지대 Lv3이 발동되었습니다.
▶ 영역 안에 시체들이 당신의 사령술에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 군단 소환 Lv1이 발동되었습니다.
▶ 문턱에서 시체들이 깨어납니다.
그 순간, 남궁이【계명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검을 중심으로 검은 연기와 함께 영혼 지대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썩은 뼈로 된 언데드들이 삐걱거리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형님께서 사냥한 마물의 숫자를 살핀 이유를 알겠군. 저것들 모두 조금 전에 죽인 아이스 트롤들이구나.’
창환은 탄환을 장전하며 남궁의 주위를 둘러싸는 언데드들을 바라봤다.
“가라.”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놈들에게 명령했다.
[크르르르르…….]
그러자 부활한 스무 마리 남짓의 아이스 트롤들이 거대 트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와그작……! 와그작……!
와그그그극……!!
마치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맹수처럼, 언데드들은 무기를 쓰는 법도 잊은 듯 거대 트롤의 사지를 이빨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카아아아아!!!]
거대 트롤이 언데드들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놈들은 오히려 더욱 달라붙으며 놈의 살점을 갈기갈기 뜯어버렸다.
[커걱…… 컥…….]
여기저기 뜯긴 피부 아래 새하얀 뼈가 보일 정도로 넝마가 된 거대 트롤이 몸을 부르르 떨며 쓰러졌다.
솨아아악……!!
영혼 지대의 검은 연기가 쓰러진 놈을 휘감기 시작했다.
[크르르…….]
너덜거리던 피부와 살점들이 사라지고, 새하얀 뼈만 남은 거대 트롤이 연기 아래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나머지 트롤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뒤를 부탁한다.”
남궁은 서로 뒤엉켜 싸우기 시작하는 마물들을 보며 창환에게 말했다.
‘성우가 있긴 해도 덴 혼자서 샬롬을 막는 건 쉽지 않겠지.’
서둘러야 했다.
아이스 트롤들을 하나하나 사냥한다면 못 잡을 것도 없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호수에 있는 성우와 덴이 위험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남궁의 말에 창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크헉……!!”
“으아아악……!!!”
호수 아래 있는 동굴에 들어서자 비명 소리가 들렸다.
“설마…….”
남궁은 그 소리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그런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쯧, 분명 돌아가라고 했을 텐데…….”
비명의 주인공은 열이면 열 덴과 함께 왔던 대원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빙벽을 정리하는 동안 용케도 동굴의 입구를 찾은 건가? 쓸데없는 짓을 해서 명을 재촉하는군.’
동굴의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길이 울퉁불퉁해서 그렇지 동굴 안은 그냥 하나의 길로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그때였다.
남궁은 불현듯 뭔가 자신이 놓친 것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자신이 가로채려는 얼음 보상은 사실 전생에 덴 하울을 위해 숨겨진 보상이었다.
‘녀석은 이곳에 대해서 모르는 눈치였어.’
계시자도 모르는 비밀 장소를 계시자는커녕 계약자도 아닌 일반인들이 알고 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이상해.’
길을 따라 달리던 남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덴 하울이 알지 못한다…… 그 말은 사계절의 방랑자가 이 일을 꾸민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럼 누구지?
콰아앙---!!!
그 순간, 동굴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굉음이 들렸다.
타닥……! 타다닥……!
남궁은 불안한 마음과 함께 있는 힘껏 발을 내디디며 동굴의 안쪽으로 달려갔다.
“……!!!”
이윽고 그의 걸음이 멈췄을 때, 남궁은 자신을 감싸던 불안함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덴 하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연에 불과했던 것이군.”
이 일을 꾸민 건 사계절의 방랑자가 아니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남궁은 그 안에서, 얼음 심장을 가지고 서 있는 한 여인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에이라 미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