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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116/270)

116화

“역시…… 회귀자답네. 설귀산에 있는 비밀 장소를 단박에 알고 오다니 말이야.”

얼음 심장을 들고 있던 에이라 미쉘이 남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회귀자라는 건 이제 믿고?”

“응. 믿고말고. 당신이 이뤄낸 일들이 증거니까.”

“오히려 너무 순순하게 인정하니까 더 이상한데.”

에이라 미쉘은 어깨를 으쓱하며 씨익 웃었다.

‘이상한 일이군.’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한다면 그녀는 설귀산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었다.

‘당시 덴 하울과 알렉 트라만이 설귀산을 공략하러 갔을 때 나머지 계시자들은 각자 다른 던전을 공략했었어.’

더욱이 아이슬란드에도 던전이 생성된 상황.

굳이 이곳까지 넘어올 이유가 없었다.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한데.’

남궁은 날카롭게 그녀를 바라봤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 나는 당신을 도와주러 온 거니까.”

“에이라 미쉘이 나를 도와? 지나가는 개가 웃겠군.”

“흥, 그렇게 경계할 것까진 없는데. 나도 노선을 조금 바꿔볼까 싶어서 그런 거니까.”

“무슨 의미지?”

“저 사람들. 백악관에서 덴 하울과 짜고 당신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는 거 알고 있어?”

“…….”

“거봐. 몰랐지? 내가 이래서 뒤를 쫓아 여기에 온 거라고.”

에이라 미쉘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

하지만 남궁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쓰러져 있는 대원들을 바라봤다.

“크르…… 크르륵…….”

“크르르르…….”

그들은 동굴 안에 있던 아이스 트롤들을 사냥한 듯 마물의 시체 위에 너부러져 있었는데, 트롤만큼이나 그들 역시 끔찍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차릉-

하지만 그 순간, 에이라의 팔찌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러자 그들의 상처가 말끔하게 치유되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있으면 죽을 리 없으니까.”

그녀는 남궁에게 보란 듯이 물었다.

‘회복술의 능력이 더 오른 건가.’

위상의 선택을 받은 계시자인 만큼 그들 모두 뛰어난 자질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에이라 미쉘의 자질은 특별했다.

단순히 회복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남들보다 뛰어난 것은 바로 적응력이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간도 아무렇지 않게 쓰고 버리는 냉혹함이야말로 카니발에 가장 어울리는 것이었으니까.

‘지금 저들처럼.’

남궁은 초점 없는 대원들의 눈을 바라봤다.

그들은 하나같이 크륵거리는 동물의 신음 같은 것을 뱉어내고 있었다.

상처가 회복되었다 한들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광신술(狂信術).’

회복술의 2번째 영역.

에이라 미쉘은 단순히 신체의 외상을 치유하는 회복술뿐만 아니라 정신계를 방어하는 방어술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방어술을 이용해, 반대로 타인을 꼭두각시로 만들 수도 있었다.

한도를 뛰어넘는 회복력을 주입하면 정신계가 마비되고 잠시 동안 모든 육체적인 능력치가 극대화된다.

하지만 그 반발로 인해 대상의 인지 능력은 지워지고 마치 꼭두각시처럼 에이라의 명령만을 따르게 된다.

스르릉-

“지금부터 네게 몇 가지 질문을 하지.”

남궁은 검을 뽑았다.

“질문에만 신중하게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대답 여하에 따라 네가 여기서 나갈지 네 목만 나갈 지 정해질 테니까.”

“잠깐. 위험을 알려주러 온 사람에게…… 뭐라고?”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래. 그거야. 네가 어떻게 덴의 계획을 알고 있는 거지?”

“궁금해? 그걸 알려주면 나와 손을 잡을 건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콰앙―!!!!

그 순간 남궁이 있는 힘껏 검을 던졌다.

“……!!!”

에이라의 뺨을 스쳐 지나가 벽에 박힌 검이 힘을 이기지 못한 듯 파르르 떨렸다.

“내가 분명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고 했을 텐데.”

주륵…….

에이라의 뺨에 날카로운 상처와 함께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굳은 채 마른침을 삼키는 것뿐.

빠득―!!!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구겨졌다.

파앗-!! 파밧-!!

동시에 4명의 대원들이 일제히 남궁을 향해 달려들었다.

“…….”

남궁은 그들을 바라봤다.

카앙-!!!

대원 하나가 벽을 타고 달려와 남궁을 향해 단검을 찔러 넣었다.

동시에 양쪽에서 쇄도하는 또 다른 단검들.

캉-! 카강-!!

남궁이 날아오는 단검을 피하며 대원의 팔을 꺾었다.

우드득!!!

부러진 팔에 단검들이 박히고.

퍼억!!!

남궁이 대원의 가슴을 있는 힘껏 쳐올렸다.

솨아아악―!!!

그가 손을 뻗자 사슬이 튀어나와 벽에 박힌 검을 뽑았다.

사슬에 묶인 검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부우웅……·!!!

캉!!

묵직한 무게가 실린 공격에 대원들이 튕겨져 나갔다.

“잘도 이런 짓을 하는군.”

광신술의 효과로 신체 능력이 증가된 상태였지만 차이는 극명했다.

결국 인간의 수준에서 뛰어난 정도일 뿐이니까.

퍼억-!! 쾅!!

남궁이 검 손잡이 뒷부분으로 자신의 영역 안으로 파고든 대원의 턱을 후려쳤다.

부웅-!!

대원의 몸이 위로 튕겨 오르자 동시에 발을 건 그의 몸이 물레방아처럼 빙그르 돌았다.

“……컥!!”

그렇게 남궁이 발로 대원의 가슴을 찍어 누르자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어냈다.

“광신술을 걸면 다시는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힐러란 작자가 멀쩡한 사람들을 광전사로 만드나?”

“……놈들은 당신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니까?”

“날 위해서 이런 짓을 했다? 그런 인간이 히든 스팟에 몰래 들어왔나?”

콰직……!!!

남궁의 발에 밟혀 있던 대원이 마치 개처럼 그의 정강이를 물어 뜯었다.

선명한 이빨 자국.

“…….”

그는 굳은 얼굴로 대원의 가슴을 밟고 있던 발에 힘을 주었다.

우드득-!!!

“……커억! 헉, 헉!!”

일격에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뼈가 폐를 찌르는 듯 대원은 거친 숨소리를 뱉어냈다.

“……큭!!!”

그 모습을 본 에이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우우우우웅……!!

대원의 주위로 다시 빛 가루가 흩어졌다.

상처는 순식간에 치료되었지만 남궁이 대원의 가슴에 다시 검을 찔렀다.

검은 가슴을 관통해서 땅에 박혔고, 대원은 쐐기가 박힌 듯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나지 못했다.

“크악……! 크아아악!!”

하지만 에이라의 회복술은 멈추지 않았다. 서서히 차오르는 살점들은 오히려 박힌 칼날에 계속해서 베어졌다.

대원은 괴로운 듯 소리쳤다.

“지랄 맞군…….”

남궁은 쓰러진 대원을 뒤로한 채 에이라를 향해 걸어갔다.

“크아아악!!!”

“카악!”

끈질기게 나머지 대원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그 순간, 거대한 입이 튀어나와 동굴의 통로를 가득 채우더니 그들을 삼키고 사라졌다.

“……!!!”

에이라는 갑자기 튀어나온 소환수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 잘도 죽였군. 저러면서 내가 뭐?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지금 당신이 소환수로 저들을 다 죽여 버렸으면서.”

“삼켰을 뿐 죽이지 않았다. 뭐, 계속 용아의 입에 들어가 있으면 독에 녹아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저벅- 저벅- 저벅-

꽈악-!!

에이라를 향해 걸어간 남궁이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

“이걸 받아 갈 시간은 충분하겠지.”

그녀의 품 안에 숨겨져 있던 얼음 심장이 남궁의 손에 들렸다.

콰아아앙---!!!

그때였다.

에이라 미쉘이 남궁을 거칠게 밀치며 뒤로 물러섰다.

우우웅…!!

그녀가 두 팔을 들어 올리자 손목에 감겨 있는 팔찌에서 황금빛의 창날이 튀어나왔다.

스악―!!!

창이 원을 그리며 남궁을 향해 쇄도했다.

캉! 캉! 카앙!!!

연속으로 찔러대는 창을 회수하며 왼팔을 들어 올리자, 팔찌의 줄이 늘어나며 그녀의 손등 위로 둥근 방패가 만들어졌다.

“흐아아압!!!”

창과 방패가 황금빛으로 빛나자 그녀의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내가 힐러라고 싸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에이라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튀어나가며 남궁을 향해 다시 창을 내질렀다.

퍼억-!!

남궁의 주먹이 에이라 미쉘의 복부에 꽂히고, 그녀의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어. 너 싸움 못해.”

그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꽈악-

“……컥!!”

복부를 찌른 주먹을 비틀자 에이라의 입에서 주르륵 피가 섞인 침이 흘러내렸다.

“남들이 성녀라고 떠받들어 주니 모두가 그럴 거라고 생각했나?”

남궁이 그녀의 옷을 잡아당기자 허리가 꺾였던 에이라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으으윽…….”

남궁의 일격에 갈비뼈가 으스러진 그녀는 호흡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듯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꿈틀거렸다.

“회복해. 죽고 싶지 않으면.”

“크, 크흑…….”

그가 부러진 갈비뼈에 힘을 주자 에이라는 엉망이 된 얼굴로 황급히 회복술을 일으켰다.

“헉, 헉!! 헉!!”

폐를 찌르는 고통이 사라지자 그녀는 간신히 숨을 토해냈다.

우드득-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남궁은 이번엔 에이라의 손목을 부러뜨렸다.

“아아아아악!!!”

“이제 대화를 좀 나눠볼까?”

“미친!! 대화 같은 소리 하고 있…… 아아악!!!”

“대답.”

서걱-

남궁의 검이 움직였다.

그 순간, 에이라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잡소리 말고 영양가 있는 얘기만 하자고.”

“컥, 커헉……!!”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잘려 나간 한쪽 다리가 바닥을 굴러갔다.

“아아아악!!!”

푸욱-

하지만 고통에 뒹구는 그녀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궁은 포크로 고기를 찍듯 검으로 잘린 다리를 찔러 그녀의 앞에 던졌다.

“회복해.”

“미, 미친놈……!!”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에이라는 떨리는 손으로 절단된 자신의 다리를 붙였다.

푸욱……!!

“으아아아악!!!”

남궁의 검이 이번엔 그녀의 어깨에 박혔다.

“죄, 죄송합니다…… 제발…… 그만하세요.”

에이라는 고개를 숙이고 애원하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남들에겐 네 회복술이 성스러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남궁은 허리를 숙여 그런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 있어 회복술은…….”

꽈악―

검을 뽑아 낸 어깨의 상처를 그가 움켜잡았다.

“그저 내가 널 끝없이 고문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이지.”

흠칫―

그의 눈빛을 본 에이라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농담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 이제 대답할 시간 인 것 같은데.”

남궁은 에이라의 머리를 움켜잡으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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