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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118/270)

118화

“조금만 더……!!!”

“제길, 이제는 한계라고요! 좀 잡아봐요!!!”

콰아아아앙--!!!

호수 위 수면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물보라가 일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호수의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물을 맞으며 달리던 덴과 성우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할 줄 아는 게 파이어볼밖에 없어요?”

“……내가 쓸 수 있는 화 속성 마법은 그것뿐이야. 저 괴물이 얼음 마법에 내성이 있을 줄은 나도 몰랐지.”

맹추위에도 불구하고 땀이 송골송골 맺힌 덴은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추위로 얼음 마법의 위력이 강해져서 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의 피부를 뚫을 방법이 없어.”

“무슨 계시자가 그래. 소민이는 막 이상한 불꽃 같은 거도 쏴대던데.”

“……같이 목숨 걸고 싸우는데 여기서도 그 아이랑 비교당해야 하나.”

호숫가에 솟아나 있는 바위에 몸을 피한 덴 하울은 성우의 핀잔에 쓰게 웃었다.

쿵- 쿵- 쿵-

샬룸의 발소리가 들렸다.

[크르르르…….]

호수에 잠들어 있던 마물은 낮은 으르렁거림과 함께 먹잇감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아이의 마법이 특수한 거지 마법사들은 자신만의 기질이 있어. 내가 계시자라 하더라도 모든 속성에 뛰어난 것은 아니고, 내 특기는 빙계…….”

“피해요!!!”

성우가 덴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쭈그려 앉아 있던 덴의 몸이 앞으로 쏠리며 두 사람이 호수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큭……!”

덴이 자갈에 쓸린 뒤통수를 끌어안으며 곡소리를 내는 순간,

콰강!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조금 전 두 사람이 있었던 자리가 사정없이 날아갔다.

“지금은 설명 같은 거 들을 시간 없고 무슨 마법이든 상관없으니까 저 녀석을 묶어둘 방법을 찾자고요!”

덴 하울은 성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쿨럭.”

그때였다.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덴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제길…… 이런 세상이 올 줄 알았으면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운동이라도 할 걸.”

덴은 차오르는 숨에 헐떡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할 수 있을까?’

그는 덜덜 떨리는 손바닥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성우의 가호를 받았지만 점점 줄어드는 마력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차가운 냉기 속에서도 그의 몸은 지친 듯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한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이곳은 내게 최악의 곳이구나.’

냉기 마법을 쓰는 그였기에 설귀산의 추위는 분명 마법의 위력을 증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의 마물들 역시 그 추위 덕에 월등한 냉기 저항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마법이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크륵-]

그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샬룸을 긴장한 얼굴로 바라봤다.

“……사계절의 방랑자께서는 어째서 이런 곳을 나의 전장으로 삼으신 것인지.”

꽈악-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에 그는 가슴 언저리의 로브를 움켜잡았다.

그 순간, 샬룸이 두 사람의 앞에 섰다.

튀어나온 두 쌍의 어금니가 마치 그를 비웃는 것처럼 씰룩거렸다.

[캬아악!!!]

동시에, 샬룸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쥐고 있던 두 자루의 도끼를 서로 부딪쳤다.

카앙!!

치직……! 치지지직……!!

그러자 도끼의 날에 시퍼런 전격이 뿜어져 나왔다.

우우우웅-!

덴이 앞으로 모은 손 위로 녹색의 방벽이 나타났다.

퍼억-!!

하지만 샬룸의 도끼가 닿는 순간, 덴의 실드는 허무할 정도로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충격으로 인해 두 사람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크, 크윽……!!”

샬룸이 쓰러진 덴의 다리를 붙잡았다.

덴은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오히려 놈은 그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며 호수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안 돼……!!”

성우가 황급히 몸을 날렸지만 그 순간 샬룸의 도끼가 날아왔다.

퍼억-!

날아간 도끼가 바위에 깊게 박혔다.

꿀꺽-

운 좋게 덴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설귀산의 디버프로 몸이 느려진 그는 샬룸의 도끼를 두 번은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젠장!!”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경고하는 듯 자신을 노려보는 샬룸의 눈빛을 본 순간, 그는 놈이 일부러 도끼를 비껴 던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흐아아아!!!”

질질 끌려가던 덴이 안간힘을 쓰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쩌적……!

쾅! 쾅!! 콰강!!!

바닥이 갈라지며 그 안으로 얼음 가시들이 튀어나와 샬룸의 다리를 노렸다.

파슥……!!

하지만 날카로운 가시들은 허무하게 샬룸의 비늘에 부딪치며 부서졌다.

우드득-!

“아아아아악!!!”

샬룸은 덴의 반항이 가소롭다는 듯 잡 끌고 가던 다리를 비틀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덴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부글부글.

정상에 다가서자 눈보라가 치는 기후와 달리, 호수는 마치 끓는 물처럼 수포를 터뜨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크륵…… 크클…….]

샬룸은 덴을 향해 씨익 웃었다.

덴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퍼억-!!

놈이 호수 아래로 덴을 집어 던지려는 순간, 샬룸의 머리가 뒤로 획 젖혀지면서 잡고 있던 덴의 다리를 놓치며 자빠졌다.

“……!!”

대자로 뻗은 샬룸의 이마에 정확히 박힌 검이 파르르 떨렸다.

“위상을 너무 원망하지 마라. 이 빌어먹을 장소를 결정한 건 사계절의 방랑자가 아니니까.”

자신의 뒤에 나타난 남궁의 모습에 덴은 안도와 함께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안 그래도 속으로 욕하던 참이었습니다.”

“우는 소리 하긴.”

남궁은 그런 덴을 보며 피식 웃었다.

“뭐 해?”

“……?”

남궁의 말에 덴은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순히 체력 문제가 아니에요. 마력 고갈로 인한 대미지가 쌓인 거지.

“당신이 왜 여기에……?”

덴은 생각지도 못한 에이라 미쉘의 등장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지금 걸려 있는 버프…… 군신화의 능력이죠? 대단한 능력이긴 한데 이건 만능은 아니에요.”

우우우웅…….

덴의 주위로 빛가루가 스며들었고, 놀랍게도 고통스러웠던 호흡이 순식간에 돌아왔다.

“오히려 마약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실제로 신체 능력을 향상 시킨다기보다 한계의 고통을 망각하게 만드는 쪽에 더 가까우니까.”

그녀가 손을 거두며 말했다.

“호흡이 돌아온 건 잠시뿐이에요. 몸은 치료해도 마력까지 회복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 이상 무리하게 되면 당신 몸 안에 있는 마력 핵이 부서질지도 몰라. 그때 돼서 내게 고쳐달라고 하지 말고.”

미리 선을 긋듯 에이라는 헛기침을 하고는 남궁을 슬쩍 바라보고 고개를 돌렸다.

“가, 감사합니다……?”

대답을 하던 덴은 고개를 돌린 그녀의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감사는 됐고 저거나 마무리해요.”

“아직 죽은 게 아닙니까?”

“죽긴요. 지금도 버젓이 심장이 뛰고 있는데. 머리에 칼이 꽂혀서 잠시 기절한 것뿐입니다.”

“저게 기절이라고요……?”

에이라의 말에 성우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샬룸을 상대한 기분이 어때?”

“끔찍했습니다. 일단 저 마물…… 마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물리 공격이 딱히 유효한 것도 아니고요. 아이스 트롤의 얼음 비늘과 비슷한데, 훨씬 더 강도가 높을 뿐더러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럴 거야. 고대 트롤은 위대한 주술사이기도 하니까. 아이스 트롤의 특징인 얼음 비늘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 뿐더러 마법에도 내성이 높지.”

“그럼 어떻게 잡아야 하죠?”

“아무리 대단한 주술사도 무한한 술법을 쓸 순 없어. 그게 가능하다는 건…… 근원이 있다는 거지.”

“근원이요? 그걸 어떻게…….”

“그래서 내가 온 거잖아.”

그 순간 남궁이 푸른색의 돌을 들어 그에게 보였다.

“이, 이걸 어디서…….”

마법사인 덴은 얼음 심장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마력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같이 진득한 마력은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매혹적인 것이 틀림없었다.

“얼음 심장 안엔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마력이 정제되어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것이지.”

심장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름 돋을 만큼 깨끗한 마력.

‘저걸 사용한다면…….’

지금까지 가로막혀 있던 자신의 벽을 허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꿀꺽-

덴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어쩌면 【레아의 서(書)】 2번째 페이지를 열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이 아니다.

확실하다.

사계절의 방랑자의 계시자가 되었을 때, 덴 하울의 머릿속엔 하나의 책이 심어졌다.

위상의 신명(神名)을 딴 마도서는 대마법사로서의 그의 자질임과 동시에,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힘이었다.

총5장으로 되어 있는 마도서였지만, 그가 여태껏 넘긴 페이지는 첫 번째 장이 고작.

“이걸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명이다. 너와 나. 알다시피 네가 이걸 사용하게 되면 마력이 증폭 될 거고, 내가 사용하게 되면 내 몸 안의 혈맥들이 순환하게 되어 환골탈태에 버금가는 효과를 얻겠지.”

그의 말에 ‘나는?’이라는 표정으로 에이라 미쉘이 바라봤지만, 남궁은 그녀에게 관심도 주지 않고 다시 덴에게 말했다.

“누가 쓰는 게 맞을까?”

‘저걸 얻으면…… 마력을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샬룸을 내가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다면 나도 기회가…….’

꽈악-

하지만 덴 하울은 입술을 깨물었다.

“……짓궂은 질문이시네요.”

그는 잠시였지만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덴 하울…… 어디까지 밑바닥으로 떨어지려는 거냐. 누명을 씌우려고 했던 주제에 그가 가져온 심장을 탐내고 있다니.’

남궁의 말처럼 조모께서 이런 한심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봤다면 차라리 기억을 잃고 싶다 했을지 모른다.

“당신이 써야 마땅합니다.”

덴 하울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금 시점에서 이것보다 더 좋은 영약은 없으니까. 그러려고 온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남궁은 고민 끝에 대답하는 그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가 써라.”

“……네? 우웁?!”

그 순간 덴 하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남궁이 그의 입안으로 들고 있던 얼음 심장을 쑤셔 넣었기 때문이었다.

“먹어.”

꿀꺽-

커다란 보석은 놀랍게도 입안에 들어서자마 솜사탕처럼 녹아버렸다.

화아아악……!!!

그 순간, 보석을 삼킨 덴 하울은 심장 언저리가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헉……!!”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터뜨리자 남궁이 그의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마력을 다스려라.”

덴 하울은 눈앞에 마물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몰아치는 마력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군.]

무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음 심장을 네가 먹었다면 샬룸을 죽이는 건 일도 아냐. 강해질 수 있는 길을 놔두고 왜 저런 녀석에게 양보하는 거지?]

‘어쩌면 도박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을 가능케 한다면 미래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어.’

남궁은 그에게 대답했다.

‘얼음 심장은 분명 엄청난 영약이야. 그걸 먹으면 강의 단계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겠지. 하지만…… 당신이 말했을 텐데. 강의 단계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그래서?]

‘얼음 심장이 영약이라도 결국은 5번째 문에서 나오는 아티팩트에 불과해. 취할 것이라면…… 최고를 가질 것이다.’

[클클, 훌륭한 대답이다.]

무명은 만족스럽다는 듯 그를 향해 웃었다.

[물론, 눈앞의 강함에 취해서 서투른 짓을 했더라도 나는 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네 그릇이 거기까지인 것이니까.]

‘의지하라면서 날 시험하기나 하다니. 재미없는 장난이야.’

[그래, 네가 노리는 것은 무엇이냐.]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영약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영약.’

[설마…… 【레아의 은총】을 말하는 거냐.]

‘맞아.’

[그건 욕심이다. 그건 연금술로 만드는 영약이니까. 이론에 그칠 뿐이야.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영약과도 비교할 수 없다 칭해지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지.]

무명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지금껏 내가 봐왔던 그 어떤 연금술사도 현자의 돌을 만들지 못했어.]

‘당연하지. 야차계에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니까. 거기엔 마법사가 없잖아.’

[……뭐?]

‘어째서 연금술로 만드는 영약에 사계절의 방랑자의 신명(神名)이 붙었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의외로 답은 쉽게 나오지.’

[설마…….]

‘본디 영약의 창조는 연금술의 영역이 맞아. 【레아의 은총】 역시 연금술로 만들어지니까. 하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선 하나가 더 필요해.’

남궁은 말했다.

“오직 대마법사만이 만들 수 있는 단 하나의 보구.”

바로, 【현자의 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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