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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119/270)

119화

[크륵……?]

[크르륵……!!! 크륵!!]

호수 아래에 있던 아이스 트롤들이 잠시 주춤하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서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도착한 모양이군.”

창환은 놈들이 반응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도 슬슬 여기 마무리하고 어서 움직이자.”

“네, 알겠어요.”

아이스 트롤 무리를 상대하던 두 사람은 처음과 달리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철컥-

창환이 총구를 들었다.

▶ 칭호 : 마안 사냥꾼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 육시(六視)의 은총 중 하나를 얻습니다.

머리 위로 다시 한 번 6개의 탄환이 든 금빛 룰렛이 빠르게 회전했다.

▶ 연쇄탄(連鎖彈)을 획득하였습니다.

촤르륵……!!

창환의 머리 위로 수십 개의 탄환들이 떨어져 내리며 그의 총 안으로 스며들었다.

퉁! 투퉁!! 투투퉁!!!

저격총임에도 불구하고 창환의 총구가 빠른 속도로 불을 뿜었고, 탄환은 주위에 있던 트롤들의 머리에 정확히 박혔다.

[……케에에엑!!]

녀석들은 창환의 공격에 맥없이 쓰러졌다.

힘든 싸움이 예상되었던 처음과 달리, 트롤들은 겁에 질린 듯한 모습으로 둘에게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아 있는 트롤들 중 몸이 성한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단단한 얼음 비늘이 무색하게 녀석들은 여기저기 살점이 뜯겨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꽈드드득-

경인이 시위를 당겼다.

파앙-!!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시위를 벗어난 화살이 트롤의 가슴을 관통했다.

[크륵…… 크르륵…….]

이상한 일이었다.

맹렬하게 달려들던 놈들이 이제는 오히려 빨리 죽여달라는 듯, 두 사람의 공격에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저씨도 이런 결과를 아셨을까요?”

그 이유를 눈으로 직접 보고 있던 경인이 화살을 다시 메기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지금까지 쓰는 걸 본 적은 없는데…… 야차계에 갔을 때 얻은 모양이야. 뭐, 알지 않을까?”

“진짜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지고 오셨네요.”

경인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창환에게 말했다.

콰악-!!!!

조금 전 죽은 아이스 트롤의 시체가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지더니 바닥에서 뼈밖에 남지 않은 팔이 튀어나왔다.

[키릭…… 키릭…….]

[케에에엑!!!]

언데드가 된 트롤이 살아 있는 다른 트롤에게 달려들어 여기저기 살점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우적- 우적- 우적-

그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트롤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언데드들의 모습이 두 사람의 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희가 죽인 트롤보다 저 녀석들이 먹어치운 것이 더 많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놈들은 계속해서 불어났으니까. 처음엔 열 마리 남짓이었던 것이 어느새 트롤의 절반이 넘어버렸는걸.”

영혼 지대에서 부활한 언데드들은 처음에는 소수일 뿐이었지만, 트롤들이 한 마리, 두 마리 죽어갈수록 전세는 서서히 역전되었다.

“아군은 죽지 않고 죽은 적군마저 아군이 되니…… 저 능력이면 질 수가 없는 싸움이네요.”

“모르지. 어떤 것이든 완전무결(完全無缺)이란 건 없어. 설령 위상이라 할지라도.”

“그럴까요?”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지려는 거고…….”

철컥- 타앙-!!

창환은 마지막 남은 트롤을 끝내며 말했다.

“만에 하나 있을 결점을 위해 내가 형님 곁에 있는 것이기도 하지.”

그는 총을 고쳐 메며 경인에게 말했다.

“가자.”

* * *

[믿을 수가 없군…… 【현자의 돌】이라…… 그래, 그게 있었지. 과연 불가능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무명은 남궁의 말에 놀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이 간다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가능한 것도 아니지. 그리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진즉에 수많은 마법사들이 도전했을 터.]

[크르르르르…….]

이마에 검이 박힌 채로 샬룸이 비틀비틀 일어서기 시작했다.

“싸우고 싶다면 막지 않아. 언제든 덤벼도 좋다. 계획을 짜고 함정에 빠뜨려도 상관없어.”

파앗-

남궁은 샬룸을 향해 달려갔다.

[크아아아아!!!]

마물은 거센 포효와 함께 도끼를 들어 그를 향해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공격을 피한 남궁은 샬룸의 어깨를 타고 올라 이마에 박힌 검을 뽑았다.

촤아아악……!!!

그 순간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얼음 심장이 덴에게 흡수될수록, 단단하게 자신을 지켜주던 비늘이 사라진 트롤의 모습은 그저 노쇠하기 짝이 없었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나도 몰라. 전생의 덴 하울도 얼음 심장을 얻긴 했지만 【현자의 돌】을 만들지는 못했으니까.”

남궁은 에이라 미쉘을 힐끔 보고는 조금 더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왜……? 성공할 수 없는 도박을 이번에 또 하려는 거지?]

“시간(時間).”

촤아악……!!

남궁은 샬룸의 허리에 박힌 검을 있는 힘껏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케에에엑……!!]

검날이 트롤의 피부를 깨끗하게 잘라내자, 비명과 함께 갈라진 상처 안에서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툴썩-

샬룸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무릎을 꿇고 바닥에 쓰러졌다.

[……시간?]

‘나의 회귀로 좋든 싫든 그때와는 모든 것이 빨라졌다.’

전생에서는 수년이 지나 일어났던 일들이 지금은 고작 1년도 되지 않아 일어나고 있으니까.

물론, 그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소수의 정예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로 인한 변화는 그저 강한 마물을 더 빨리 조우하게 된 것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 소수의 정예에게 앞당겨진 시간은 전생보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남궁은 그 성장의 대상을 덴 하울로 정한 것이다.

전생의 덴 하울 역시 설귀산에서 얼음 심장을 얻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흘러 마력의 체계가 완성된 그는 얼음 심장의 마력에 새로이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낭비된 시간만큼 뒤처질 수밖에 없었으니, 오히려 얼음 심장을 얻은 것이 그에게는 득보다 실이 된 셈이었다.

[네 말은 앞당겨진 시간만큼…… 얼음 심장에 적응할 시간이 생긴 것인다?]

남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변동성으로 인해 얻게 될, 시간이라는 요소.

그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려 했다.

그러기 위해 강해질 기회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더 큰 기회를 위해서.

“대신 덴 하울은 내가 만들어낸 시간의 간극으로 전생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를 것이다.”

[……켁! 케켁!!!]

남궁은 주문을 외우려는 샬룸의 입에 주먹을 박아 넣으며 말했다.

우드득……!!

그는 샬룸의 혀를 뽑아내었다.

[크륵…… 크륵……!!!! ÆÞÔÆÞÆ……!!!]

혀가 뽑힌 샬룸은 남궁을 향해 뭐라 소리쳤지만 제대로 된 발음을 낼 수 없어 그저 비명처럼 들릴 뿐이었다.

“미친…… 결국 저질렀어.”

그 모습을 본 에이라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은 결국 자기 손으로 경쟁자를 강하게 만들어준 꼴이 된 거야. 세상에 영원히 착한 놈은 없어.”

그녀는 남궁을 바라봤다.

“인간은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는 동물이니까. 지금은 고맙게 여길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가 당신에게 저 지팡이를 들이 댄다면?”

에이라 미쉘의 냉소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일종의 불신이었다.

“당신은 오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할 거야.”

“경쟁자라…… 그래, 그럴 수 있지. 카니발은 결국 승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될 테니까.”

“그러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승자가 나온다고 해서 카니발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계시자 중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 한들…… 지옥문은 계속 열릴 거다.”

“……뭐?”

“그러니까 혼자서 강해지기만 해서는 안 되지.”

에이라 미쉘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일전에도 말했을 텐데. 카니발을 끝내는 것이 단순히 승자 독식의 규율로서 행하려는 것이라면…….”

오싹-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이미 너희들 모두 다 내 손에 죽었어. 그럼에도 너희들의 힘을 빌려 싸우려는 것은, 우리의 경쟁은 카니발이 모두 끝난 뒤에 해도 되기 때문이다.”

“…….”

남궁은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난 뭐야? 나보고는 제물이 되라며? 그건 죽으라는 소리잖아.”

“응. 아직은 네가 제물 후보야. 그러니 엄한 데서 죽지 마라. 성물을 완성시키고 내가 죽일 거니까.”

에이라는 대답을 하려다 머뭇거리고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재수 없는 인간.”

쩌적……! 쩌저적……!!

그때였다.

[크륵?]

샬룸의 가슴 언저리가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새하얀 서리가 가슴부터 놈의 전신을 뒤덮기 시작하자 남궁은 뒤로 물러섰다.

푹! 푹! 푸푸푸푸푸푸푹……!!

새하얗게 변한 가슴에서 튀어나온 얼음 가시들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뼈와 살을 뚫고 튀어나온 얼음 가시들은 샬룸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파앗-!!!

얼음 가시들이 터지듯 부서지자 핏물이 얼어붙은 붉은 가루들이 사방으로 마치 꽃잎처럼 흩어졌다.

[커…… 커컥…….]

샬룸은 고통에 신음도 제대로 내뱉지 못한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얼음 꽃이 피었던 가슴은 마치 벌집처럼 수십 개의 구멍이 뚫린 채, 멈추지 않은 피가 주룩주룩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홍련(紅蓮).’

남궁은 샬룸의 피로 만들어진 붉은 얼음 꽃을 감회가 새로운 듯 조용히 바라봤다.

전생에서 덴 하울의 특기이자 궁극의 기술이었던 이것을 벌써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고개를 돌리자 차분한 표정으로 서 있는 덴의 모습이 들어왔다. 잔잔한 호수의 수면처럼 덴의 마력은 처음보다 더 갈무리되어 있었다.

저벅- 저벅-

하지만 그가 걸음을 옮기는 순간, 마치 컵에 가득 담은 물이 출렁이는 것처럼 마력이 요동쳤다.

어쩌면 지금 시점만 놓고 본다면 남소민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 한 것일지 모른다.

‘빌어먹을…… 숨이 막힐 것 같은 마력이야…… 제길!! 저걸 내가 가졌어야 했는데!!’

꽈악-

속이 타들어가는 에이라였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개중에는 정말로 죽여야 할 자가 있을지도 모르지.”

남궁은 진웨이를 떠올렸다. 【레아의 은총】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의 연금술이 필요하지만, 그는 명백한 악인이니까.

스윽-

남궁은 피투성이가 된 샬룸을 집어 들어 덴 하울의 앞에 내던졌다.

“하지만 그 힘조차 필요한 일이라면, 나는 쓸 것이다.”

쩌적·…… 쩌저적…….

덴의 손 위로 얼음 송이 같은 마력의 결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앞에 작은 싸움만을 보지 마라. 그것이야말로 위상이 원하는 것이니까.”

마치 남궁의 말을 따르는 것처럼, 덴 하울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우우우우웅…….

그의 두 손에 짙은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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