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124/270)

124화

“무, 무슨 말씀이신지….”

“그대로 계속 몰아.”

남궁이 잡아당긴 무스타파의 머리를 다시 앞으로 밀었다.

꿀꺽-

무스타파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자신의 정수리를 움켜쥔 남궁의 손힘에 정면만을 바라보며 핸들을 잡았다.

“도, 도착했습니다.”

끼이이익-

소도시, 자블라에 도착한 무스타파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며 차를 멈춰 세웠다.

“안내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시 안의 작은 상점 안으로 걸어갔다.

이곳 역시 피해를 입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라타키아보다는 나은 상황인 듯, 군데군데 도망치지 않은 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긴 그래도 사람들이 많네요.”

“그래서 더 문제죠. 차라리 라타키아가 나은 편인 겁니다.”

“무슨 의미지?”

“거긴 이제 거의 생존자가 없으니까요. 그 말은 전투가 마무리되어 간다는 뜻이죠.”

“……그게 나은 겁니까?”

그의 말에 박효주는 인상을 찡그렸다.

“적어도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진 않으니까요.”

“…….”

“중동은 처음부터 버려진 곳이었습니다. 중동의 많은 국가들이 3번째 차원문이 열린 뒤 정부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혼란을 추스르기도 전에 마왕이 나타났고 전 세계의 관심은 마족들에게로 쏠렸죠.”

상점의 문을 열던 무스타파의 손이 멈춰 섰다.

“아무도 모를 겁니다. 사실 런던에 대참사가 일어났던 당시에도 사실 이곳에서 더 많은 사망자들이 나오고 있었다는걸요.”

그는 말했다.

“그렇기에 이곳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버림받았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계시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ISR이 말한 성전을 오히려 지지한다고?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콰앙-!

그 순간 남궁은 그가 서 있던 상점의 문을 거칠게 발로 부숴 버렸다.

“당신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퉁- 퉁- 퉁-

상점의 문이 열리자 지하로 들어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부서져 가던 건물의 외관과 달리 내부에 단단한 강철이 덧대어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

무스타파는 뭔가 말을 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이내 곧 남궁을 지나쳐 바닥에 숨겨놓은 지도 한 장을 꺼냈다.

“현재 ISR의 거점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중해에 있는 키프로스 섬입니다. 아마도 성물은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궁은 지도 위에 표시된 시리아 서쪽 섬을 바라봤다.

“그런데 지금 이상한 소문이 돕니다.”

“뭐지?”

“ISR이 보유하고 있던 성물이 없어졌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지금 그걸 찾기 위해 도시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다고요.”

그는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ISR이 무차별적으로 학살을 계속 이어가는 이유인 것이죠.”

그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공세의 규모는 더 커질 겁니다. 이집트뿐만 아니라 위로는 터키까지 위협하고 있거든요.”

“EU에서 지원을 요청한 이유도 터키의 피해가 점점 심해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박효주는 남궁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무스타파의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

남궁은 물끄러미 지도를 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위상들이 전장을 여기로 잡은 모양이로군.’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더 나아가 아시아까지 이어지는 중심이자 가장 위험한 자리가 바로 이곳이었다.

‘만신전이 시작되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 성물들은 결국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마치 검투사들이 콜루세움 안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것처럼 성물은 다른 성물을 이끌어 주인들을 모이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의외네요. 키프로스라면 영국 해군도 주둔하고 있지 않나요? 섬의 일부는 영국의 영토니까요.”

박효주는 남궁에게 말했다.

“제가 알렉 트라만이라면 실추 된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더 나서려고 할 텐데 말이죠.”

“나설 수 없는 이유라도 있는 모양이지.”

“정말…… 그가 계시자의 힘을 박탈당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진실은 성물을 찾고 난 뒤에 알아내도 늦지 않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존 키프로스 공화국의 시민들을 제외하고…… 약 1만 명의 ISR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스타파는 섬의 남쪽, 튀어나온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위치는 영국 해군의 주둔지였던 아크로티리 앤 데켈리 지역입니다.”

“1만이라…… 괜찮을까요?”

“60만이 넘는 마족도 상대했는데 고작 1만에 겁이 나는 건 아니겠지.”

박효주는 남궁의 물음에 머쓱한 듯 어깨를 들어 올렸다.

“마물을 죽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건 좀 느낌이 다르니까요.”

“테러범들을 상대로 인간성을 논하자고? 놈들은 마족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어.”

“살인자에게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인 거죠.”

“……바보 같은 소리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궁은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도 그 이념이 무너지진 않았으면 좋겠군. 나는 지키지 못하겠지만 한 사람이라도 지킨다면 내 동료가 좋아하겠어.”

“동료요?”

“예전에 함께했던 녀석이 부탁했거든. 웬만하면 살인을 저지르지 말아달라고.”

“……네?”

의외의 이야기에 박효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덕분에 예전에 공원에서 놓아 준 여자가 있었지. 마음에 썩 드는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는 방해가 될 요소도 아니니 상관없지.”

“모르죠. 오히려 도움을 받을지.”

“행여나 만나도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좋겠군.”

그의 냉정한 대답에 박효주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아버지가 보이십니까?”

“왜? 아버지가 알면 안 될 일이라도 한 건가?”

“그, 그럴 리가요.”

무스타파는 말을 더듬었다.

“본론이나 얘기하지.”

“……본론이요?”

“황금가지의 입장 말이야. EU에서 협조 요청이 왔을 때를 맞춰 네가 왔지. 그 말은 EU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너희가 움직였단 뜻이잖아.”

“아, 네. 그렇죠.”

무스타파는 잠시 머뭇거리다 더 이상 물어봤자 얻을 것이 없다고 여겼는지 브리핑을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저희 황금가지는 이집트에 거점을 둔 주술사들입니다. ISR이 중동을 장악하고 이제 이집트를 노리고 있어 남궁 님께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이봐, 바겐의 아들.”

무스타파는 남궁이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을 거론 하는 것이 경고의 의미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네?”

“네 아버지를 핑계로 나를 데리고 온 것까진 용서한다. 하지만 그 이상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한다면 곧 그리운 아버지를 보게 될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내 도움을 받으려는 이유가 ISR로부터 이집트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턱-!

순간 남궁이 무스타파의 발목을 걷어찼다.

그러고는 그의 일격에 몸이 휘청거리며 고꾸라지는 무스타파의 손목을 낚아채 그대로 꺾어 탁자 위에 내리쳤다.

“큭!!!”

손등 위로 박히는 검.

무스타파는 너무 놀라 신음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주르륵…….

하지만 이내 손등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에 창백해진 얼굴로 남궁을 바라봤다.

“명령을 받은 건지 아니면 너 혼자 머리를 굴린 건지는 몰라도, 평생 주술을 쓰지 못하고 싶으면 계속 그런 식으로 해봐.”

스윽-!

남궁이 검을 뽑자 그제야 무스타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집트가 뚫리면 그다음 목표는 아프리카가 될 거라는 시답잖은 말은 하지 마. ISR의 목표는 적어도 아프리카는 아냐.”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내게 질문을 하는 건가? 답은 네가 알고 있을 텐데.”

남궁은 빤히 그를 바라봤다.

“황금가지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지?”

무스타파의 목젖이 떨렸다.

“……이제 막 3년이 되었습니다.”

“햇병아리군. 고작 그 시간으로는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알 리 없겠어.”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머뭇거리는 그에게 남궁은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난 ISR 소탕 작전이었던 프로젝트 임펄스에 참가했다. 그 당시 ISR의 정보를 준 것이 이집트의 하산 대통령이었어.”

움찔-

무스타파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제공한 정보 덕분에 ISR을 소탕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어째서 이집트 대통령이 중동 무장단체의 정보를 그렇게 세세히 알고 있는지 의구심도 들더군.”

“그 얘기를 왜 갑자기…….”

“다에시 아드나니. ISR의 천재 참모라 불리던 그가 사실 하산 대통령이 심어놓은 내부 첩자이자 그에게 정보를 제공한 자였으니까.”

“그, 그렇습니까?”

“그런 다에시가 압델 시야프가 죽고 사분오열이 된 ISR을 다시 재건했다?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어.”

“남궁 님의 말씀이 사실이면…… 딱히 걱정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요? ISR이 이집트와 손을 잡은 거라면 말이죠.”

“아니. 다에시는 이집트의 첩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외부 세력에 우호적인 자는 아니었어. 오히려 ISR의 신임을 얻기 위해 임펄스에 참가했던 연합군을 괴멸시키기도 했으니까.”

박효주는 그의 대답에 굳은 얼굴이 되었다.

“누가 봐도 지금 상황은 구린 냄새가 날 수밖에 없지. 적어도 다에시가 ISR을 부활시킨 거라면 중동을 위해서 한 일은 아닐 테니까.”

남궁은 차갑게 웃었다.

“내가 원하는 건 진실이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기껏해야 짜고 치는 연기에 불과해.”

꿀꺽-

무스타파는 더 이상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너희가 바라는 목적.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까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느냐는 건데…….”

화악-!!

동시에 남궁이 무스타파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사건의 뒤엔 이집트 정부가 아닌 너희 황금가지가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거든.”

“마,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탁자에 위에 엎어진 무스타파는 남궁을 향해 소리쳤다.

“말이 안 되는지 되는지는 가서 판단할 일이지. 박효주, 준비해. 우리는 ISR의 거점이 아닌 황금가지가 있는 곳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박효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전가옥에서 나와 즉시 시동을 걸었다.

“저희 황금가지는 이집트 정부와 아무런 연이 없습니다. 이집트에 거점을 두고는 있지만, 그곳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활동하는 주술사 단체란 말입니다!!”

“그렇겠지. 지금 사건이 ISR과 이집트 정부가 손을 잡고 벌인 것이라면 황금가지는 관계가 없겠지.”

“그러니까요!”

“그런데 지금 황금가지와 관련된 네가 내 앞에 있지.”

“그, 그건…….”

“일을 벌인 것은 아닐지라도 황금가지가 전쟁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건 있지 않나?”

남궁은 억울하다는 듯 소리치는 무스타파를 두고 가옥의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철컥-

“황금가지가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거라…… 그게 뭔가요?”

박효주가 남궁의 마지막 말을 들었는지 차에 올라타는 그에게 물었다.

“시체.”

“……네?”

그녀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다시 한번 되물었다.

“황금가지의 수장, 키만 얀…….”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네크로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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