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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128/270)

128화

부우우우웅…….

컨테이너 박스가 한가득 실려 있는 화물선이 웅장한 엔진 소리와 함께 수에즈 운하를 지나 홍해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남궁을 따라 갑판 위로 올라온 박효주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스윽-

그녀는 단검을 뽑아 양손에 쥐고서 경계를 했다.

“이거 정말 유령선인 거 아냐?”

주사인은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장비들을 꺼내고서 고글을 끼며 말했다.

우우우웅…….

조종기 전원을 켜자 드론의 프로펠러가 작동했다.

손목 위로 조종기를 장착한 그가 미니 키보드를 두들기자 그의 앞으로 대여섯 개의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유령이 있는지 괴물이 있는지…… 살펴보면 알겠지.”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드론들이 일제히 화물선을 훑기 시작했고, 홀로그램 위로 화물선의 도면이 나타났다.

“이상한데.”

“왜?”

“진짜 유령선인가? 생명체가 반응이 아무것도 없어.”

“정령들도 보이는 게 없다는데요?”

박효주의 주위로 불어오는 바람에 주사인은 흥미로운 듯 그녀를 바라봤다.

“느낌이 어째 싸한데…….”

“조종실은?”

“저기 위에 보이는 곳.”

주사인이 전방에 유리로 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에 남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뽑아 있는 힘껏 갑판 위에 박아 넣었다.

솨아아악……!!!

영혼 병사들이 소환되었고, 선두에 있던 아스가 순식간에 컨테이너 박스들을 뛰어올라 조종실을 향해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콰아앙!!!

그 순간, 조종실의 외벽에 검은 안개가 뭉치더니 아스의 도끼를 튕겨냈다.

솨아아악……!!

안갯속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팔들이 길게 늘어나더니 아스의 사지를 움켜잡았다.

[크륵……?]

그러고는 꼼짝 없이 붙잡힌 아스를 그대로 안갯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

아스가 완전히 사라지자 남궁은 그의 기운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소환이…… 끊겼다?’

소환체가 부서져도 영력이 이어지고 있다면 언제든 다시 소환할 수 있다는 것이 사령술의 장점이다.

“…….”

하지만 남궁은 안갯속으로 사라진 아스를 다시 불러낼 수가 없었다.

‘영혼 병사가 사라지는 건 2가지 경우뿐.’

▶ 사역 가능한 사령의 수 4/4

사령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 말은 아스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는 조종실 앞에 떠 있는 검은 안개를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계(界)가 갈라졌어.’

즉, 저 검은 안개는 자신의 영력이 아스에게 닿지 않게 하는, 일종의 봉인과 같다는 의미다.

그것도 자신과 영혼 병사들의 연결을 강제로 끊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봉인.

‘키만 얀도 네크로맨서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가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어.’

남궁은 황금가지의 수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가 바로 전생에서 일곱 뱀의 계시자였던 최휘수의 추종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내가 최휘수의 실험쥐가 되어 고문당할 때 놈의 곁에 키만 얀이 있었어.’

그의 잔혹성은 최휘수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지 않았다.

시체를 토막 내고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살아 있는 사람을 그대로 실험하기도 했었다.

빠득-

남궁은 그때의 고통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상하군.’

키만 얀의 특기는 최휘수와 마찬가지로 영령이 아닌 시체를 다루는 시체술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눈앞을 가린 안개에 스며들어 있는 지독한 사기(死氣)는 고위급 사령술을 가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키만 얀이 한 게 아냐.’

저벅― 저벅― 저벅-

남궁은 천천히 갑판 위로 걸어갔다.

‘누구지?’

솨아아악……!!

그 순간, 조종실 앞에 있던 안개가 남궁을 향해 쏟아졌다.

치직……! 치지지직……!!

박효주가 있는 힘껏 단검을 날렸고, 단검에 스며들어 있는 전격이 안개와 부딪히면서 번뜩였다.

그녀의 공격에 순간 움찔하던 안개는 이내 곧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그를 향해 날아갔다.

“조심해!! 안개 주위에 중력이 뒤틀려 있다. 저 안은 일종의 블랙홀과 같아! 빨려 들어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 도 있어!”

탁―! 타탁―!!

주사인이 빠르게 손목에 부착되어 있는 미니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러자 그의 주위에 있던 드론들의 양옆으로 다리가 튀어나오더니 마치 지뢰처럼 바닥에 박혔다.

지이이이잉……!!

바닥에 박힌 드론의 상부 해치가 열리면서 작은 구체들이 사방으로 튀어나왔다.

지직……! 지지직……!!

공중으로 발사된 수십 개의 구체들 사이로 번쩍이는 뇌전이 일어나더니 새하얀 빛으로 연결되었고, 푸르스름한 전자기장이 그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카그그그그그그극---!!!

전자기장이 안개와 부딪히자 요란한 굉음과 함께 살점이 타는 것같이 고약한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우읍…… 무슨 냄새가…….”

무스타파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헛구역질을 했다.

[케에에엑!!!]

그때였다.

검은 안개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큭!!!”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에 사람들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비틀거렸다.

“야!!!”

그 순간 주사인이 남궁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씨발…… 이거 어딘가 비슷하지 않냐?”

눈앞의 안개는 이집트 카이로를 뒤덮었던 검은 구름, 흑운(黑雲)과 닮았지만 주사인이 말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의 일이었다.

“기억나? 영등포를 강타했던 대지진이 발발하기 직전에도…… 저런 안개가 나타났었잖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아내의 목숨을 앗아갔던 끔찍한 재해인 것을.

“…….”

남궁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의 일과 지금 눈앞의 괴안개가 정말로 연관이 있는 걸까?

“카니발이 시작되기도 전이었어. 그 전에도 물론 이능력자들이 있긴 했지만, 아무리 대단한 이능력자라도 도시 하나를 날려 버릴 만한 것을 만들어낼 수 없었어.”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신은 존재하지.”

“……그게 뭐?”

“위상이 존재해야 카니발이 시작되는 건 맞지. 하지만 꼭 카니발이 존재해야 위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잖아.”

주사인의 말에 남궁의 표정이 굳어졌다.

“네 말은 그때 일이 위상들이 저지른 일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뭐, 그거야 모르지. 단지 그때와 지금의 현상이 비슷하다는 것뿐.”

주사인이 이어 말했다.

“그래도 조금 다가간 것 같지 않냐. 그토록 헤매던 의문에 진실에 말이야.”

하지만 남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25년이란 세월 동안 그는 이 지옥에서 살아남았다.

누구보다 이 세계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었으나, 단 한 번도 카니발과 아내의 죽음을 연관시켜 본 적은 없었다.

꽈악-

남궁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만약 주사인의 말처럼 아내의 죽음이 위상과 관련된 것이라면…….

“선을 넘은 거지.”

콰아아앙---!!!

남궁의 【계명검】이 안개를 갈랐다.

쩌억……! 후드드드드득……!!

갈라진 안개 사이로 마치 내장이 쏟아지는 것처럼 검붉은 점액이 흘러내렸다.

“이, 이건…….”

잘려 나간 안개는 그대로 사라졌지만 흘러내린 점액 안에 뭔가가 잔뜩 들어 있었다.

시체였다.

시커멓게 그을린 것부터, 여기저기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가고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성한 것이 없었다.

그건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전사자들의 시체였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어.”

주사인은 물에 분 것처럼 부풀어 오른 시체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미친놈이!”

너스레를 떨던 모습과 달리 주사인은 진심으로 화가 난 모습이었다.

철컥-

쿠우우웅……!!

그때였다.

주사인의 외침이 마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던 것처럼, 갑자기 그들의 앞에 있던 컨테이너 박스의 문이 일제히 열리기 시작했다.

“……!!!”

문이 열리자 어두운 창고 안에서 수백 개의 눈동자들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꿀꺽–

주사인의 목젖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크르르르르…….]

[크르르…….]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무거운 컨테이너 박스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젠장.”

그리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좀비들이 박스 안에서 어기적거리며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쿠쿵!!!

아직 열리지 않은 박스들이 요동쳤다.

“설마…… 저 안에도 들어 있는 건가?”

당장에라도 열릴 것 같은 박스들의 모습에 무스타파의 눈동자가 떨렸다.

“겁먹지 마. 각오하고 온 거잖아.”

“……전 아닌데요.”

남궁은 무스타파의 뒤통수를 지그시 누르며 피식 웃고는 그를 지나쳐 좀비들을 향해 달려갔다.

“박효주, 길을 만들어. 좀비들을 조종하는 우두머리가 분명 있을 거다. 놈을 잡으면 끝난다.”

“네!!”

촤르르륵……!!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녀는 입고 있던 재킷의 아래를 털어내듯 쳐올렸다.

그러자 안쪽에 달려 있는 주머니에서 수십 개의 단검들이 튀어나왔다.

“훕……!!!”

허공에서 양손을 활짝 펴서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단검들이 마치 물결처럼 그녀의 양팔을 따라 나선으로 회전하며 솟구쳤다.

콰가가가각!!!!

그리고 있는 힘껏 팔을 내린 순간, 거대한 채찍처럼 단검들이 좀비들의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크륵…… ·!!]

[카그그그극……!!]

요란한 소리와 함께 좀비들에게 단검들이 박혔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에 잠시 주춤했지만 좀비들의 행진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은 거침없이 좀비 무리 안으로 달려갔다.

“자, 잠깐……!!!”

무스타파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란 듯 소리쳤다.

솨아아악……!!

치지지지지직……!!!!

하지만 그 순간, 날카로운 돌풍과 함께 마치 톱날처럼 좀비에 박혀 있던 단검들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케겍!!!]

[크에에에엑!!!]

비명 소리와 함께 단검들의 좀비의 몸을 갉아내기 시작했고 사방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탁–! 타탁–!!

남궁이 비틀거리는 좀비들의 어깨를 밟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크륵!! 크르륵!!!]

놈들은 그를 붙잡으려는 듯 팔을 뻗었다.

치직……! 치지지직……!!!

그러나 그보다 더 먼저 회전하던 단검에서 전격이 뿜어져 나오며 좀비들을 덮쳤다.

[케게게게게겍!!!]

전격에 휘감긴 좀비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바닥에 쓰러졌고, 남궁은 여전히 놈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조종실을 향해 달려갔다.

츠즈즈즈즈…….

시커멓게 그을린 좀비의 시체들만 화물선 갑판 위에 즐비했다.

박효주는 허공에 떠다니는 단검들을 회수해서는 남궁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

미리 짠 것처럼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맞는 두 사람을 보며 주사인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명훈이 말고 저 인간을 저렇게 보조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단순히 빠르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궁 특유의 박자를 따라가는 건 센스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콰앙---!!!

조종실의 문을 발로 밀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남궁이 멈칫했다.

그의 예상대로 조금 전 시체 안개가 보호하려던 조종실 안에서 지독한 사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귀를 울리는 알림과 함께 그의 눈은 조종실 앞에서 사신과 같은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한 남자를 바라봤다.

“네놈이로군.”

남궁이 검을 휘젓자 마치 검날이 먹어치우듯 사기가 사라졌다.

[크르르르…….]

어둠 속에서 남자가 남궁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멈칫–

그 순간 남궁의 얼굴이 굳어졌다.

“……최휘수?”

▶ 엘더 리치와 조우하였습니다.

알림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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