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콰아아아앙―!!!!
조종실의 유리창이 사방으로 깨지며 그 안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남궁!!!”
주사인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그를 보며 소리쳤다.
쿵! 쿠그그그……!!
컨테이너 박스 위로 떨어진 남궁이 앞으로 구르며 속도를 죽였다.
화르륵……!!!
남궁은 황급히 코트를 벗어 던졌다.
입고 있던 코트 위로 순간 검은 불길이 치솟더니 사라졌다.
“…….”
화염 내성을 가지고 있는 코트가 시커멓게 그을렸다는 것은 일반적인 불꽃이 아니라는 의미다.
‘지옥불.’
그러나 남궁이 놀란 이유는 그 불꽃의 특이함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생에 일곱 뱀의 계시자였던 최휘수의 특기.
“어째서 네가…….”
남궁은 분명 그가 계시자의 시험에서 요르에게 소멸당한 것을 보았다.
그런 그가 리치 킹이 되어 돌아 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쿠웅–!!!!
솨아아아악……!!!
부서진 조종실 위에서 최휘수가 뛰어내렸다.
사실 그의 얼굴은 가면과 같은 안개로 뒤덮여 있어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남궁은 그가 최휘수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몸 안에서 흘러나오는 사기를 잊을려야 잊을 수 없었으니까.
“오랜만이로군. 미스터 남.”
그때였다.
열린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검은 로브를 입은 노년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키만 얀.”
“영웅 놀이를 하던 게 아니었나? 조용히 ISR이나 처리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굳이 여기까지 기어 오다니 말이야.”
“저건 뭐지? 당신이야말로 닥치고 이집트에서 왕 노릇이나 할 것이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저걸 어디서 구한 건지나 말해.”
남궁은 리치 킹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내도 시체를 다루더니 이제는 시체가 탐이 나나? 그래, 골라봐. 갓난쟁이부터 어린아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갖 것이 있으니 말이야.”
“……것?”
남궁은 그의 마지막 말에 살짝 눈썹을 꿈틀거렸다.
“네놈은 시체를 다룬다는 거창한 말로 꾸밀 수준도 아냐. 그저 미친 시체 애호가일 뿐이지.”
“클클…… 그래, 과거엔 그랬을지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쿠웅-
노인이 지팡이를 내려치자 갑판 위에서 요동치던 수십 개의 컨테이너 박스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쿠그그그그…….
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공포스러웠다.
언제라도 목줄을 끊고 달려들 수 있도록 기다리는 사냥개 같았기 때문이다.
“꿈에 그리던 힘을 얻었지. 정말 멋진 세상이야. 안 그래? 클클…… 놀랄 일 투성이야. 천하의 남궁이 사령술이라니. 그런데 뭐, 이해도 가더군. 자네가 어째서 사령술을 쓸 수 있게 되었는지 말일세.”
“…….”
“자네 아내 덕분이겠지? 아직도 구천을 떠돌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있었나 보군. 참으로 질긴…… 컥!!”
그때였다.
육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뛰어든 남궁이 키만 얀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 저 시체를 어디서 구했지?”
당장에라도 그의 목을 비틀어 버릴 것 같은 기세로 남궁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크르르르…….]
키만 얀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최휘수, 아니, 리치 킹의 으르렁거리는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긴 어디야. 한국이지.”
“퍽이나.”
촤르르륵……!!!
남궁이 손을 뻗자 우의 사슬이 움직였다.
[라……!! 크라!!!]
그 순간 키만 얀의 입에서 마치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듯한 기묘한 외침이 들렸다.
쿠구구구구구――!!!!
쿠그그그―!!
그러자 컨테이너 박스 안에 있던 시체들이 일제히 튀어나오며 남궁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촤르륵……!!
하지만 찰나의 순간, 사슬이 그를 감싸며 날려드는 시체들을 막았다.
꽈악……!!
사슬의 틈 사이로 남궁이 손을 뻗어 시체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퍽!!!!
손가락에 힘을 주자 시체의 머리통이 그대로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푸욱―!!
움켜잡은 【계명검】이 번뜩이며 주위의 시체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시체들이 비처럼 쏟아지며 남궁을 덮쳤지만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지는 못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남궁은 담담한 표정으로 키만 얀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괴…… 괴물 새끼.”
“다시 한 번 묻겠다. 저 시체를 어디서 구했지?”
키만 얀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디긴 어디야. 한국…… 케켁!!”
“네가 한국에 왔다고? 그랬다면 내가 모를 리 없어. 게다가 네 깜냥으로 이런 짓을 혼자서 할 리는 더더욱 없지. 늙은 너구리 새끼야.”
“뭐, 뭐라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좋을 거야. 네 뒤에 누가 숨어 있는지 몰라도 이런 망망대해에선 아무리 대단한 자라도 구해줄 수 없을걸?”
“그래서 저게 있는 거지.”
하지만 남궁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키만 얀은 전혀 겁을 먹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두르자 메케한 냄새가 갑판 위를 가득 채웠다.
쾅―!! 쾅―!!! 콰가가강―――!!!
그 순간, 남궁의 머리 위로 검은색의 화구(火球)가 연달아 떨어졌다.
솨아아악―!!!
서걱―!!
화구가 남궁을 노리기 직전, 그의 발아래에서 소환된 영혼 병사들이 그것을 갈랐다.
“있어도 별 소용없어 보이는데.”
“노, 놈을 어서 막아!!”
토막이 난 시체들을 보며 키만 얀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부웅―!!
키만 얀이 소리치자 최휘수의 시체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쳤다.
그러자 그의 발아래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갑판을 가득 채웠다.
“…….”
남궁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키킥…… 키키킥…….]
검은 연기 속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영혼 병사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졌던 시체들이 스켈레톤이 되어 하나둘 일어서기 시작했다.
‘영혼 지대.’
그 순간 남궁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같은 일곱 뱀의 계시자였어도 자신과 최휘수의 길은 완전히 달랐다.
영령의 힘을 다루는 그와 달리 최휘수는 온갖 시체를 다뤘다.
그리고 영혼 지대는 시체들을 소환하는 영역의 힘.
지옥불과 함께 최휘수가 가장 완벽하게 다루던 사령술이었다.
“미친…… 저게 뭐야? 시체가 다시 부활했어? 완전 무적인 거잖아?”
주사인은 쓰고 있던 고글을 벗어 던지고는 넋이 나간 얼굴로 소리쳤다.
“…….”
하지만 그의 물음에 무스타파와 박효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래? 괜찮아?”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진 그녀를 보며 주사인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우웁…… 우엑……!!!”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옆에 있던 무스타파가 몸을 파르르 떨더니 목을 움켜잡으며 토를 해대기 시작했다.
“아 씨, 뭐, 뭐야?”
하수구에서 흐를 것 같은 시커먼 토사물이 무스타파의 입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웁……! 우웁!!”
그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토는 그치지 않았고, 괴로운 듯 울먹이는 얼굴로 주사인을 바라봤다.
“이, 이게 무슨…….”
갑작스러운 난리에 주사인도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댈 뿐.
쿵―!!
그 순간 창백한 안색이었던 박효주마저 쓰러졌다.
그녀의 몸이 바닥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들썩이자, 주사인은 자신의 뺨을 때리며 고개를 저었다.
“후우…….”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낮게 숨을 토해낸 주사인이 조금 전 검은 안개에 부서진 드론의 내부에서 조각 몇 개를 꺼냈다.
전자기장을 일으키던 구체의 조각이었다.
“좀 아프긴 할 텐데…… 죽는 것 보단 낫겠지.”
그가 무스타파와 박효주의 몸 안에 구체를 집어넣고는 스위치를 당겼다.
치직……! 치지지직……!!
그러자 두 사람의 주위로 작은 스파크들이 번쩍였고, 이내 부르르 떨리던 몸이 멈췄다.
“헉…… 헉…….”
“괜찮아요?”
의식을 잃은 무스타파와 달리 박효주는 힘겹게 눈을 뜨며 비틀비틀 일어섰다.
“엄청난 사기(死氣)…….”
주사인과 달리 마력과 정령의 힘을 가진 두 사람은 온몸으로 느낀 것이었다.
격(格)의 차이를 말이다.
“위험해…….”
박효주는 비틀거리며 어둠 속에 침식된 남궁을 향해 걸음을 옮겼지만, 전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힘에 얼마 가지 못한 채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
주사인은 두 사람의 모습에 떨리는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거…… 엄청나군. 도대체 어떻게 된 인간이면 이렇게 지독한 사기를 내뿜을 수 있는 거지? 일곱 뱀의 계시자인 너도 이 정도는 아닌데.]
무명은 주위에 깔린 검은 바닥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는 나보다 먼저 일곱 뱀의 계시자가 되었던 자니까.’
[……뭐?]
남궁은 굳은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확실히…… 이 정도면 전성기 최휘수에 가까울 정도로 짙은 사기야.”
치직……! 치지직……!!
그가 떠다니는 검은 입자에 손가락을 가져가자, 입자들이 악마의 형상이 되어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며 그의 손가락을 물어뜯으려 했다.
‘독각(毒角)까지 불러낼 수 있는 건가.’
“…….”
남궁은 둥둥 떠다니는 입자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지금 자신이 전성기의 최휘수를 이길 수 있을까?
결론은 불가능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최휘수는 시체술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자였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이상한 일이다.’
“최휘수는 강해. 키만 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냐.”
우우우우웅……!!!
그가 있는 힘껏 검을 그었다.
무아경(無我經) - 1서(書)
퍼억―!!!
검이 뿜어내는 검풍에 검은 연기가 휩쓸려 사라지고, 검날이 도달한 자리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소환수가 소환자보다 강할 리 없어. 지금 이건 그저 눈속임에 불과하다.”
“……쿨럭?!”
▶ 검의 악귀들이 오염된 피에 흥분합니다.
▶ 검의 예기가 매우 날카로워집니다.
낮은 신음과 함께, 마치 삼키듯 순식간에 검날에 묻은 피가 증발했다.
“어떻게……?”
안개가 걷히면서 키만 얀의 당혹스러워하는 얼굴이 나타났다.
“내가 너보다 강하니까.”
서걱-
남궁은 검으로 그의 목을 가볍게 잘라냈다.
툭-
바닥에 그의 머리가 떨어지고, 무너지는 시체 안에서 흘러나온 피가 검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 검의 악귀들이 만족스러워합니다.
▶ 일시적으로 사령술의 단계가 2단계 증가합니다.
▶ 지속 시간 : 5분
“쓰레기도 마지막엔 도움이 되는군.”
솨아아악……!!
그가 힘을 끌어 올리자 【계명검】이 공명하며 함께 떨렸다.
동시에 그의 발아래 생겨난 영혼 지대가 최휘수의 것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숨이 막힐 만큼 강했던 사기(死氣)가 남궁의 힘에 조금 옅어졌다.
‘5분…….’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했다.
스르르릉-
남궁은 앞을 바라봤다.
[크륵…….]
소환자가 죽었지만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는 듯, 최휘수는 마치 냄새를 맡는 것처럼 남궁을 향해 코를 벌름거렸다.
“마치 마물 같군.”
남궁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아니, 이미 마물이 된 거겠지.”
눈앞의 그는 최휘수가 아닌 엘더 리치였으니까.
“그럼…….”
그가 검을 고쳐 잡았다.
“널 죽이면 보상도 있겠군.”
흥분한 듯 검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