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쾅……!!!
내려친 탁상이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뭐?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시체를 실은 화물선이 난파되었다고? 도대체 너희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키프로스에 놈을 잡을 계획을 완벽하게 해뒀다면서!!”
“그자가 시체를 운반하고 있는 화물선으로 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만일을 대비해서 주술사를 배치시켜 뒀었는데…….”
쿵…… 쿠궁…….
마물 침공 이후 불빛이 꺼진 베트남 하이퐁에 위치한 공장 지대에서, 때아닌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놈은 사령술을 쓴다고! 그 많은 시체를 놈이 처먹기라도 하면 어쩔 거냐고!!”
멱살을 잡힌 남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옆을 바라봤다.
“…….”
그의 시선을 따라 공장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눈도 그곳을 향했다.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내부는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일꾼들을 비롯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민소매나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유독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 있는 한 남자만은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것도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말이다.
“놔주시죠. 안 좋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경우의 수에 두지 않았던 것도 아니잖습니까.”
“……뭐?”
“돌아갈 때 짐을 들어줄 녀석입니다. 중동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산주께서는 고작 이런 일로 역정이나 내시고. 손님을 대하는 태도부터 배우셔야 하겠습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악취가 난다는 듯 코와 입을 막으며 말했다.
다에시 아드나니.
무장단체인 ISR을 부활시킨 장본인이었지만 그는 어쩐지 무력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손님에 대한 태도?”
순간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반짝이자, 놀랍게도 진웨이의 양팔이 기형적으로 두꺼워졌다.
우드득-!
그러고는 보란 듯이 남자의 목을 비틀어 버렸다.
“손님도 손님다워야지. 일 처리도 제대로 못하는 놈들은 손님이 아니라 짐덩이일 뿐이다.”
“…….”
인간의 몸을 마치 장난감처럼 다루는 진웨이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의 눈엔 그야말로 괴물 같아 보이기 충분했다.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하군요. 그게 위상에게 받은 보구입니까.”
하지만 공포에 빠진 다른 이들과 달리 다에시는 진웨이의 보구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오색반지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좋군요.”
“왜? 부러워? 너도 맛보고 싶은가?”
“하하. 사양하겠습니다. 계시자와 손을 잡을 생각이지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니니까.”
다에시는 진웨이를 향해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의 여유로운 모습에 진웨이는 더욱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오색반지로는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재수 없는 놈…….’
물론 진웨이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위상의 선택을 받지 못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는 계시자가 없지만, 대리자 일족의 계약자는 있었다.
빠득-
그중에 하나가 바로 다에시 아드나니였다.
그를 선택한 대리자 일족은 귀귀족(鬼鬼族)이라 불리는, 환술의 힘을 가진 일족.
“억울하십니까.”
그 순간 다에시가 진웨이를 바라봤다.
“……뭐?”
“이례적으로 8명의 계시자 중 3명이 아시아에서 뽑혔죠. 그 덕분에 대리자 일족 역시 아시아 쪽에 쏠려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시아인들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증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에시는 그를 향해 웃었다.
“물론, 위상에게 뽑힌 진웨이 님의 대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요.”
“쓸데없는 소리…….”
“대리자 일족은 대리 경매로 계약자를 뽑았습니다. 대리자 일족이 위상의 하위에 있긴 하지만, 꼭 그 위상의 지역에서 뽑아야 한다는 법은 없었으니까요.”
“넌 운이 좋았던 거야. 내 위상이 대리 일족의 계약자를 동시에 맡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그 자리를 포기한 거지, 남궁처럼 위상이 허락했다면 그 힘은 내 것이었어.”
“대신 수백 명의 정예들을 참가 시켰죠. 뭐, 모두 죽었지만. 덕분에 삼합회도 꽤나 세력이 휘청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에 진웨이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공장을 돌리는 인원도 버거워서 베트남에서 이러는 상황이니…….”
“본론만 말하지?”
진웨이는 아직 반지가 비어 있는 2개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참자. 저 나불거리는 놈도 반지만 완성시킨 후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야. 귀귀족의 계약자가 있어야 남궁을 잡을 수 있다.’
그는 몸을 돌렸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화물선을 확인했다면 그들은 이곳으로 올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그리고 위치를 알면 당신이 관련 되어 있다는 것도 알겠죠.”
“그래서?”
“일단 남궁의 발목을 붙잡아주시죠. 놈을 처리할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콰아아아앙--!!
진웨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있는 힘껏 바닥을 발로 내디디며 다에시를 노려봤다.
“결국 결론은 나보고 뒤처리를 하라는 소리 아냐? ISR을 재건하는 데 자금을 빌려달라고 굽실거릴 때는 언제고 이제는 날 부려먹으려고?”
“진정하시고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지금 삼합회가 관리하고 있는 베트남 마약 공장에서 생산된 마약의 양이라면, 국가 하나 정도는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남궁이 이곳으로 온다면 열에 아홉은 공장을 파괴할 것이 분명하다는 겁니다. 더 이상 마약을 생산하기 어려울 수 있죠.”
“…….”
진웨이는 남궁을 떠올렸다.
마족전 때 보여줬던 미친 전투력은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놈이 마음먹으면 공장지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냐. 아마 지금 가지고 있는 마약이 최대량이라고 봐야겠지.’
“계속해.”
“지금 상황에서 남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힘이 아닙니다. 아쉽지만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없으니까요.”
다에시는 눈을 번뜩이며 그에게 말했다.
“그렇기에 저희는 놈의 움직임을 약화시키며 싸워야 합니다. 그에게 가장 유효한 제약을 줄 수 있는 건 인질일 겁니다.”
“남궁의 딸? 너도 알 텐데. 그 아이는 최상급 마력 자질을 가지고 있어. 남궁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실력일걸.”
“그래 봐야 아이일 뿐입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목숨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단단함을 가질 순 없죠.”
그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오싹-
삼합회의 산주에 올라 수많은 사람들을 봐온 진웨이조차 웃음이 소름 돋기는 처음이었다.
“저 정도 양의 마약이라면 한국 시민들을 광견(狂犬)으로 만들기 충분합니다. 그들을 막으려면 죽이는 수밖에 없을 텐데, 그 대단한 남궁의 딸이라도 꼬마가 과연 살인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모르는 일이지.”
“그럴 수 없을 겁니다. 광견 중에는 남궁의 동료들도 있을 테니까요. 그의 딸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다지 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제 손을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자신만만해하는 다에시의 모습에 진웨이는 오히려 그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게 마약을 맡기는 게 불안할 수도 있겠지만…… 믿으시죠. 대신 당신께 남궁의 목을 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마치 그의 생각을 읽은 듯 다에시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하여 저를 당신의 추종자로 선택해 주십시오.”
“계약자인 주제에 위상의 힘까지 얻으려는 시커먼 속내가 보이는군.”
그렇게 된다면 다에시는 남궁 이후 두 개의 힘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남궁을 처리하게 되면…… 저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없애야 해. 분명 내 뒤를 노릴 놈이다.’
진웨이는 생각과 달리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믿어보지. 대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할 거야.”
“걱정 마십시오. ISR이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미 일곱 뱀의 성물 중 하나를 저희가 확보하고 있는 이상, 놈은 절대로 만신전의 우승자가 될 수 없을 겁니다.”
‘저 말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독이 든 성배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도박을 하지 않으면 남궁을 이길 수 없으니까.
‘남궁…… 네 말대로 어차피 우리는 모두 경쟁자다. 대전에서 너와 함께 싸운 덕분에 오색 반지를 하나 더 만들 수 있었던 건 고맙지만.’
진웨이는 비릿하게 웃었다.
‘고마운 김에 나머지 2개를 완성할 수 있도록 네 목도 내놔야겠어.’
“그리고 에이라 미쉘과 그를 따르는 나가 일족의 계약자가 저희와 함께 움직일 겁니다.”
“에이라 미쉘? 언제 그녀와 접선한 거지?”
“이왕이면 확실하게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을 위해서 말이죠.”
“그 말이 내겐 오히려 남궁이 화물선을 장악하도록 놔둔 것처럼 들리는데.”
“하하, 오해십니다.”
진웨이는 뺨을 씰룩이며 공장을 나섰다.
짝! 짝!!
“자, 다들 일을 시작하죠.”
그가 떠난 후 다에시가 내린 명령에 인부들이 마약을 옮기기 시작했다.
촤르륵…….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뒤에서 다에시는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책 한 권을 펼쳤다.
‘만신전…….’
책 안은 알 수 없는 문자들로 가득해 읽을 수 없었지만 그는 어쩐지 즐거운 듯 웃었다.
‘승자가 꼭 계시자라는 규율은 없지.’
계시자들의 전쟁 속에서 그 틈을 노리는 자들도 있는 법이었다.
탁-
책장을 덮자,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책의 표지 위로 일곱 뱀의 문양이 드러났다.
* * *
“베트남으로 가지 않겠다고? 왜? 거기가 목적지가 아니더라도 뭔가 단서는 찾을 수 있을 텐데.”
배를 몰던 주사인이 남궁의 결정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화물선에 경보 프로그램이 이미 작동되었었잖아. 그렇다면 녀석들도 여기 상황을 알고 있겠지. 대비를 하든 도망을 치든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을 거야.”
“그래도 녀석들이 어떻게 대응을 할지 여기서는 알 수 없잖아.”
철썩이는 파도에 구명정이 거칠게 흔들렸지만 남궁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그가 생각에 잠기자 주사인은 배를 모는 데 집중했다.
‘베트남엔 분명 진웨이의 마약 공장이 있을 거야. 시체를 운반하고 있었던 것도 키만 얀의 주술 때문이 아니라 마약의 재료로 쓰려고 했던 걸 거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인간의 뼈와 살을 갈아 만드는 그것은 영종도 공장에서 제조되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놈은 마족전 이후 3번째 반지까지 완성했으니…… 연금술의 효과도 훨씬 높아졌을 터. 그 마약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알면 놈이 계획을 저지르기 전에 선수를 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이미 전생과 달리 흘러가는 양상 속에서, 지금의 미래를 볼 수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미래를 본다라…….”
그 순간 남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지. 그 녀석이 잘 해준다면 말이야.”
“……그 녀석?”
“최명훈.”
주사인은 남궁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하…… 그 순댕이? 네가 711을 해체했을 때 제일 좋아하던 녀석이잖아. 도대체 그런 녀석이 왜 군인이 된 건지 모르겠다니까.”
“실력이 있으니까.”
“실력만 좋으면 뭐 해. 군인은 죽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야. 그런데 살인이 두려워서 꽁무니 뺀 녀석에게 뭘 시키겠어?”
“별거 아냐. 환선굴에서 빼앗긴 성물을 되찾아오라고 했어. 범인은 가츠마타.”
“가츠마타? 설마 그 비월의 수장?”
“맞아.”
“글렀군. 비월에 손에 들어간 걸 무슨 수로 되찾아와?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가능할지 말지일 텐데.”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거야.”
회의적인 그와 달리 남궁은 오히려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도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할 일은 수두룩할 거야.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서 있어야 할 사람은 녀석이어야 하니까.”
“살인이 싫어서 군인도 포기하고 현충원에서 일하는 녀석이…… 정말 비월의 수장을 죽일 수 있을까?”
“글쎄, 녀석이 가츠마타를 죽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궁은 고개를 들었다.
“명훈이가 임무에 실패한 걸 본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