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270)

136화

“내놔.”

“이게 무슨 짓이야!!!!”

“잔말 말고 성물이나 내놔. 네가 가진 성물만 주면 만신전을 끝낼 수 있다고!!”

에이라 미쉘은 잡아먹을 듯 소리치는 진웨이를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아까 그건 남궁을 속이려고 했던 말이라고!! 바보같이 녀석의 농간에 넘어가서 도망쳐 오기나 하고…… 당신 행동이 나머지 계시자들을 적으로 돌렸다는 걸 알기나 해?”

“상관없어. 내가 성물을 완성하고 남궁을 제물로 결정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까.”

“……제물은 나머지 계시자들의 다수결로 정해져. 만약에 그들이 남궁을 선택하지 않으면?”

“그러면 그들도 성전을 소환하지 못하게 되는 거지. 위상을 현실로 강림시킬 수 있는 성전이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부여해 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야. 그런 힘을 마다한다고?”

진웨이는 오히려 에이라 미쉘의 물음에 말도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

“그거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지. 그리고 행여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런 생각을 한 인간은 내가 반드시 죽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물을 바쳐 나머지 위상도 소환시켜 줄 것을 약속하지.”

진웨이가 다그치듯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니 성물을 내놔!! 남궁 그놈이 곧 우리 위치를 발견할 거라고!”

‘……저자의 말도 틀리진 않아.’

사실상 현 상황에서 온전한 성물을 가진 이는 진웨이뿐.

‘내 성물을 완성하려면 덴 하울의 것을 빼앗아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리스크가 커.’

게다가 남궁이 그녀를 제물로 지목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한시라도 빨리 만신전의 우승자가 결정 돼야 했다.

“…….”

에이라 미쉘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손으로 헝클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시간을 줘.”

“늦장 부릴 때가 아니란 걸 알 텐데?”

“알아. 하지만 만신전의 우승자는 단순히 문을 닫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보상을 얻을 수 있어. 지금 그걸 포기해야 하는 것과 같은데, 당신이라면 쉽게 결정할 수 있겠어?”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이제 곧 오색반지의 힘이 충전되겠지만 이동술은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그러고 보니 여긴 어디지?”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에 있는 섬 중 하나다. 횟수도 횟수지만 도약할 수 있는 거리의 제한도 있어서 그리 멀리 가지 못해.”

“계획은?”

“그래도 한 번 더 도약하게 되면 아슬아슬하게 베트남까진 갈 수 있을 것 같다. 당신도 알지? 거기에 내 공장이 있는 거.”

‘베트남 공장 지대에만 간다면 놈을 잡기 위한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

애초에 다에시와 짠 계획에서도 그가 남궁을 붙잡아두기로 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마조마하기는 진웨이도 마찬가지였다.

‘제일 큰 불안 요소는 남궁이 혹여 다에시가 일곱 뱀의 성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만에 하나 다에시가 성물을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전에 계시자들을 모으려고 했을 때 어쩐지 자꾸 빼더라니…… 록산느, 그 여자가 남궁의 편에 섰다면 그자도 성물을 하나 확보한 것과 다름없어.’

꽈악-

에이라 미쉘 또한 주먹을 움켜쥐었다.

‘덴 하울을 어떻게든 끌어내야 하는데…… 설귀산에서 그놈도 얼음 심장을 받았으니 남궁의 편일 게 틀림없고…….’

덴 하울은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길 큰 사건을 터뜨려야 하는데…… 역시 그것뿐이야.’

그 순간 그녀가 진웨이를 바라봤다.

“좋아. 당신에게 성물을 빌려줄게. 하지만 그 전에 조건이 있어.”

“뭐지?”

“한국에 설치했다는 마약 폭탄.”

“……?”

“터뜨리자.”

진웨이는 그 말에 놀란 표정으로 에이라를 바라봤다.

* * *

“만약에…… 진웨이가 말한 마약 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요?”

“리자드맨 때와 비슷한 상황이 되겠지. 범위가 고작 영종도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이라는 게 문제지만.”

“괜찮을까요? 혹시라도 그자가 폭탄을 터뜨리기라도 하면…….”

진웨이와 에이라 미쉘이 떠난 후, 박효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남궁에게 물었다.

“청와대에 연락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써서 폭탄을 찾으라고 해. 연금술로 만들어진 거라 일반적인 것과는 달라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만에 하나 다에시가 직접 움직인 거라면…… 잡는 게 쉽진 않을 거야. 인정하기 싫지만 놈은 전쟁에 관해서는 천재에 가까우니까.”

주사인이 말했다.

“놈이 작정하고 숨겼다면 폭탄을 모두 회수하는 건 불가능해. 어디라도 분명 폭탄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어.”

프로젝트 임펄스를 수행하던 시절에 주사인도 그에게 몇 번이나 골치를 썩었던 기억이 있어, 다에시 아드나니란 이름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네게 부탁하는 거야.”

남궁은 그를 바라봤다.

“나? 됐어. 내가 놈에게 당한 게 몇 번인데…… 또 이상한 걸 시킬 생각이라면 관둬. ISR을 소탕할 때도 그놈 때문에 전력 잃었던 거 기억 안 나?”

“기억하지. 하지만 네가 아니었다면 ISR 소탕은커녕 오히려 우리가 전멸했을 거야. 즉, 네가 있었기 때문에 이겼다는 뜻이지.”

“그때랑 지금이랑은 상황이 다르잖아. 그땐 711이 전부 있었으니까.”

“대신 이번엔 내 딸이 있다.”

“어쩌라고? 딸바보 자랑하는 거냐? 소민이가 요정족의 계약자란 건 들었다. 그리고 대단한 마력 자질을 가졌다는 것도. 하지만 난 그 어린애를 전쟁터에 내보내지 않아.”

남궁은 그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소민이 혼자가 아니야. 그 아이 곁엔 수아도 함께 있어.”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설명하기 어려운데 수아의 영혼이 소민의 마력과 합쳐졌다. 보면 알 거야. 소민의 마력이 어떻게 다른지 말이지. 그 아이는 분명 도움이 될 거다. 그리고 소민이뿐만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같이 실력자들이야. 혼자 용쓰지 말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난 간다고 안 했는데.”

주사인은 불안한 표정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다에시를 막을 사람은 너뿐이다. 한국에 가도록 해.”

“후우…… 아주 날 사지로 밀어 넣는군.”

달그락- 달그락-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주머니 안에 있는 주사위를 만지작거렸다.

남궁은 그 모습에, 말은 그렇게 해도 이미 그가 계획을 짜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자, 여기 주소. 명훈이를 만나서 함께 움직여.”

“됐어. 알고 있으니까.”

말은 안 했지만 이미 떠날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는 그였다.

“넌 뭘 하려고?”

“따로 준비할 게 있어.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곧 따라갈 수 있을 거야.”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결국 전장은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다에시 하나만 있으면 그래도 할 만 하겠지만 결국 시간의 문제지, 계시자들도 모일 수밖에 없을 거야.”

‘성물은 결국 한 곳에 모이게 된다.’

전생에도 그러했듯.

주사인의 말에 남궁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장판이 되기 전에는 돌아와라.”

주사인은 언제 싸둔 건지 배낭을 들쳐 메고서 남궁에게 말했다.

* * *

[왜 바로 가지 않은 거지? 록산느에게서 성물을 받았으니 그 다에시인가 뭔가 하는 놈을 치면 끝나는 거잖아. 그렇다면 차라리 다함께 돌아가면 되지 않아?]

“다에시를 잡을 수 있다면 말이지.”

[설마 계시자도 아닌 평범한 인간을 네가 잡을 수 없다고? 위상도 잡아먹을 것 같은 녀석이 이상한 일이로군.]

“놈은 일반인이 아냐. 놈은 귀귀족의 계약자일 가능성이 높다.”

대리경매 이후 일족의 계약자들이 밝혀졌을 때, 귀귀족의 계약자에 대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지에서 활동하는 다에시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낼 리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는 전생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 가지 알려진 점이라면, 귀귀족이 참여한 전투에선 단 한 번도 패배가 없었다는 것.

‘과거 최휘수의 추종자였던 키만 얀이 중동에서 일으켰던 일곱 뱀의 세력이 있었어.’

파죽지세로 대륙의 각종 계시자 세력들을 쓸어버렸던 엄청난 파괴력.

키만 얀의 능력이 대단한 것도 있었지만 전술적인 측면에서 비정상적으로 그들은 강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습이 지금의 ISR과 유사했다.

‘다에시와 키만 얀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걸 봤을 때…… 전생에 일곱 뱀의 세력을 뒤에서 움직인 것도 다에시일 가능성이 높아.’

그가 최휘수의 나머지 추종자였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조금은 의아했다.

전생에선 추종자로 머물렀던 다에시가 지금은 계시자의 자리를 노리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걷고 있으니 말이다.

[널 그놈보다 쉽게 여기는 거겠지.]

“아직 날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뿐이야.”

남궁의 대답에 무명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귀귀족이라…… 그 빌어먹을 족속들이 아직도 살아 있단 말이지.]

“당신도 알다시피 귀귀족은 환술을 다루는 족속이야. 그중에서도 일족의 특기는 분신화. 놈들의 계약자라면 설령 한국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열에 아홉은 본체가 아닐 확률이 높아.”

[흐음…… 분신을 죽여봤자 의미가 없으니 네 말도 일리가 있군. 그렇다면 놈을 잡을 방법은?]

“귀귀족보다 더 높은 술법을 쓸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놈의 술법을 파훼하고 더 나아가 본신이 있는 위치까지 알 수 있어.”

[흠…… 그 화물선에서 사역한 주술사 말이냐. 제법 뛰어나 보이지만 과연 그가 귀귀족의 계약자보다 뛰어날지는 글쎄.]

“카니발이 일어나기 전까진 키만 얀이 현대 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주술사였던 건 맞지만, 당신 말대로 귀귀족에 비하면 한참 아래지.”

[그렇다면? 뜸들이지 말고 얘기해 보거라. 네 녀석이 아무런 해답도 없이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으니 말이야.]

“뭐, 방법은 간단해. 전에는 사역 할 수 있는 영혼의 수가 제한되어서 못했지만…… 이번엔 여유가 생겼으니 도전해 볼 가치가 있지.”

툭-

남궁은 전대 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알렉 트라만이 남궁을 만나러 성채에 왔을 때 두고 간 4번째 보상 상자였다.

철컥-

그가 상자의 잠금쇠를 풀었다.

우우우우웅…….

그러자, 옅은 떨림과 함께 열린 틈 사이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설마…….]

무명은 상자의 뚜껑을 열자 나타난 작은 반지를 바라보며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넘버링 55.

이름 : 권위를 잃은 마왕의 진혼 반지

등급 : 에픽(최고)

▶ 낡았지만 마왕을 증명하는 증표 중 하나.

▶ 대리자 일족의 직위를 박탈당한 뒤 마계에서 기회를 엿보던 마왕의 집념이 담겨 있다.

▶ 효과 : 마족을 사냥 혹은 굴복 시 그 수만큼 모든 신체 능력과 내성이 영구적으로 상승한다.

▶ 알 수 없는 힘에 봉인되어 있다. 봉인을 해제하면 특별한 힘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맞아. 진혼 반지는 그 자체로도 제법 쓸 만한 것이긴 하지만, 마왕의 힘이 담긴 반지가 고작 신체 능력과 내성을 상승시켜 주는 것으로는 아쉽지.”

우우우웅…….

남궁이 반지를 손바닥 위에 내려놓고는 천천히 사령의 힘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반지 안에 박혀 있는 보석이 마치 핏빛처럼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진짜 효능은 따로 있으니까.”

▶ 반지의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재수 없는 놈을 또 보게 되는군.]

그 순간 놀랍게도 마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궁은 고개를 돌려 흐릿한 영혼을 반갑게 맞이했다.

“과연 마왕이로군. 목을 베었는데도 죽지 않다니.”

[죽었다. 확실하게. 남은 건 그저 사념일 뿐이야.]

“그래?”

[네놈 딸의 괴상한 힘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어. 넌 무슨 짓을 해도 날 죽일 수 없으니까.]

나타스는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날 도와주는 게 어때.”

[닥쳐. 내가 네게 힘을 빌려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 아냐? 날 죽인 놈에게 힘을 빌려줄 리가 없잖아.]

마왕 나타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날개를 접으며 돌아서려 했다.

“뭔가 잘못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야. 강제로 사역해서 영혼 병사로 쓰는 것보다는 그래도 의지를 가지는 게 낫지 않아?”

[뭐……? 이 미친……!!]

“의지가 살아 있어야 재기도 할 수 있지. 영혼 병사가 되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그게 무슨…….]

“재기를 꿈꾸던 거 아니었나? 빼앗긴 대리자 일족 자리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 그 난리를 피웠던 것 같은데.”

마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남궁은 그것이 그의 약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평생 문이 열려야 나올 수 있는 마물로 살고 싶은 건 아니겠지.”

[뭘 말하고 싶은 거지?]

“그냥 단순한 사실이지. 귀귀족이 사라지면 대리자 일족의 자리가 하나 빈다는 것뿐.”

[……놈들을 죽일 수 있나? 놈들을 잡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텐데.]

“너희 마족은 잡기 쉬워서 내게 죽었나?”

그의 물음에 남궁은 마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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