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한국에 생성된 독구름은 조사 된 바에 의하면 중국의 진웨이가 연금술로 만든 마약 폭탄으로 인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찰칵-! 찰칵-! 찰칵-!!
긴급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에 단상에 선 여자는 잠시 숨을 골랐다.
“다들 아시다시피 현재 만신전이라 불리는 성물 쟁탈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물의 힘은 매력적이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희생되어서는 안 됩니다.”
에이라 미쉘.
성녀라 불리는 그녀는 모여든 기자들 앞에서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저는 지금부터 STW에서 선별 한 능력자들과 함께 시민들을 위해 한국행을 결정하였습니다.”
“아직 독구름의 성분도 분석되지 않았다고 하던데…… 너무 위험한 것 아닐까요?”
“위험합니다. 하지만 힘을 가진 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두 눈을 감은 채 기도를 하듯 손을 모았다.
“인류는 이미 마물의 습격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함께 도와야 할 시기에 서로 싸우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니까요.”
기자들은 그 모습에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고 각종 매체는 실시간으로 그 모습을 방송했다.
“저는 성녀로서 책임을 다하여 시민들을 구하겠습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짝짝짝짝---!!
짝짝-!!
연설이 끝남과 동시에 기자들은 있는 힘껏 그녀를 향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에이라 미쉘의 위대한 한국행 결정! 그녀는 진정한 성녀인가!!
-범인은 진웨이로 밝혀져…… 각국의 정부들이 그를 막을 방법에 대한 긴급회의를 진행하기로…….
-다른 계시자들의 반응은?
-한국의 위기 속에서 남궁의 행방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상황!
-과연 독구름을 막을 방법은?!
“하아, 시간도 없는데. 귀찮게.”
그녀의 마지막 말은 마치 인류의 구원자처럼 누구보다 성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기자들은 마치 그녀에게 홀린 듯 속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기자회견을 끝내고 차에 탑승한 에이라는 피곤한 듯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도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로써 당당하게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알아.”
운전석에 타고 있던 그녀의 수행비서의 말에 에이라는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기자라고 해봐야 결국은 그들도 사람이고 대중일 뿐이야. 조금만 구슬려도 쉽게 넘어가지. 이제 서두르지. 다에시인가 뭔가 하는 작자가 일곱 뱀의 성물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
“맞아.”
그녀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독구름으로 덴 하울을 유인하면서 동시에 놈도 처리하는 게 좋겠어. 행여나 남궁에게 성물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안 그래?”
“……그렇게 하지.”
조금은 맥이 빠진 듯한 말투와 초점 없는 눈동자로 진웨이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나와 함께 비행기로 이동할 거야. 당신은 4번째 반지의 범위 안에 들어가게 되면 바로 사용하도록 해.”
“어디로 가야 하지?”
그녀는 그의 물음에 귀찮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광신술을 쓰면 이런 게 문제라니까. 한순간에 얼이 빠지게 되니 말이야. 하나부터 열까지 지시해야 하니 원…….”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어쩐지 즐거운 듯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남궁, 이렇게 떠들썩하게 해놨으니 아무리 당신이라도 대놓고 나를 공격할 순 없을걸. 게다가 이제 확실한 먹잇감도 던져줄 테니까.’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달리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이제 남은 건 진웨이를 이용해서 다에시가 가진 일곱 뱀의 성물을 빼앗는 것과 덴 하울을 잡아 내 성물을 완성시키는 건데…….’
쯧-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둘 다 쉽지 않아. 얼음 심장을 먹었으니 덴의 마력은 상상 이상일 거고 말이지. 내가 직접 싸워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일단은 광신술에 걸린 진웨이를 그에게 던져줄 생각이긴 하지만, 그 하나만 가지고는 뭔가 부족했다.
“반지의 힘을 쓰면 진웨이와 덴 하울의 싸움은 호각일 거야. 다만 남궁이나 다른 계시자들이 끼어 드는 게 문제인데…….”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어째서?”
“어차피 한국의 시민들을 구하실 생각 없으시지 않습니까. 이왕 죽을 거라면…… 그 목숨, 쓸모 있는 곳에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툭-
비서는 뒷좌석에 있는 그녀에게 뭔가를 건넸다.
“나가 일족의 계약자만 구입할 수 있는 보고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아무리 계약자라고 해도 이렇게 비싼 걸 어떻게 구한 거지?”
“별것 아닙니다. 신도들의 헤드를 모았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거절하기도 했지만…… 뭐, 다른 방법으로도 받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는 마치 목을 베는 것처럼 자신의 목 위에 손가락을 대고 스윽 그으며 웃었다.
넘버링 591.
이름 : 키메라 합성서
등급 : 레어(최초)
▶ 나가 일족의 마법을 통해 완성시킨, 키메라를 소환할 수 있는 소환서.
▶ 키메라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명력이 필요하다.
▶ 흡수된 생명력의 양이 많을수록 높은 등급의 키메라를 소환할 수 있다.
“레어 등급의 마물 소환서라……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현재 등급은 그렇지만 흡수된 생명력의 양에 따라서 등급 상승도 가능합니다. 어차피 쓸모없는 목숨들이야 그곳에 널리고 널렸잖습니까.”
“하긴. 그렇지.”
에이라는 스크롤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내가 널 좋아하는 거라니까. 일 처리가 항상 마음에 들어. 성전을 열면 내 추종자로 널 붙여주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부우우웅-.
비서는 차의 속도를 올렸다.
* * *
서대문역 8번 출구.
서울 서대문 경찰서를 중심으로 1차 저지선을 구축한 군 병력들이 서서히 다가오는 구름을 바라보며 긴장 가득한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소환된 중앙 독구름의 크기가 점차 확대! 현재 반경 3㎞입니다!
-강원에서 출발한 독구름이 이동하면서 크기를 계속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확인된 것으로는 경기장 위에 있는 독구름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됩니다!!
-독구름 아래에 있던 감염자들의 변이가 끝났습니다. 사살 명령을……!!
광기에 빠져 날뛰던 감염자들이 독구름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자 마물로 변해 구름을 따라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뭐, 뭐야……? 왜 이렇게 많아!! 보고에서는 감염자의 수가 1,500명 정도라고 했잖아!!”
그러나 그들의 모습보다 더욱 군인들을 경악케 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엄청난 감염자들의 숫자였다.
“……빌어먹을.”
모르긴 몰라도 족히 천 단위가 아닌 만 단위의 수는 되어 보였다.
[크아아아악!!!]
포효를 지르며 달려든 마물이 그들을 덮치려는 순간,
쾅-!! 콰아앙--!!!
밀려드는 마물들을 향해 전차의 포신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두다다다다다다……!!!
만덕수가 만든 특수 방벽 뒤로 세워진 장갑차에 장착된 기관총이 쉴 새 없이 탄환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
쿵! 쿵! 쿠쿵!!!
마물이 된 사람들이 방벽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끊임없이 밀려드는 그들은 방벽에 깔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밟아가며 점차 높이를 높였다.
[카아악!!]
[크르르르륵……!!]
물밀듯이 밀려오는 변이자들이 하나둘 방벽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제, 제길!!!”
방벽의 끝에서 뛰어내린 변이자들이 총구를 겨누던 군인들을 덮쳤다.
두다다다다……!!
군인들이 들고 있던 총이 목표를 잃고 요란한 소리만을 내뿜었다.
걸신들린 것처럼 변이자들이 그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제길…….”
사람이 사람을 먹고 있었다.
그야말로 생지옥과 다를 바 없는 끔찍한 광경에 군인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쿠그그그그그…….
동시에 점차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의 절망감을 내려다보며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독구름이 서서히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여, 여기는 서대문역 임시 대피소!! 시, 시민들이 감염…….]
콰아앙!!
지하철역 출구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니 계단을 타고 벌레 떼처럼 감염자들이 쏟아져 순식간에 주위를 가득 메웠다.
“아…….”
탄식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왔고, 그 작은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막을 방법이 없었다.
군인들은 동료의 시체를 먹어 치우고 이제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쾅! 쾅!! 쿠그가가강!!
전차의 포격에도 변이자들은 끊임없이 밀려들며 전차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꾸역꾸역 포식의 구멍 안쪽으로 기어 들어가 입구를 틀어막자, 전차의 탄환이 내부에서 폭발하며 그대로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꽃이 일었다.
“으, 으아아아!!”
아직 죽음이 두려운 젊은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총을 집어 던지고 도망치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도망치는 것조차 포기한 듯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부아아아아앙……!!
그때였다.
무너진 방벽 사이로 요란한 배기음과 함께 뭔가가 솟구쳐 나왔다.
“……!!!”
경찰서 건물의 벽면을 타고 달린 검은 오토바이 한 대가 끼이이익! 소리와 함께 뒷바퀴로 바닥을 긁으며 멈춰 섰다.
츠으으으으…….
기다란 스키드마크가 아스팔트 도로 위에 그려지고, 타이어가 타는 냄새와 함께 헬멧을 벗은 성우가 오토바이를 세웠다.
“도착했다.”
헬멧을 바닥에 던진 그가 뒤에 타고 있던 소민을 내렸다.
“후아……!”
성우가 눌러쓴 소민의 헬멧을 벗기자 그녀는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다들 대피하세요!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호흡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그녀는 지팡이를 꺼내 움켜잡으며 군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 아이들은…….”
군인들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들이 누군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밀려드는 감염자들에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이곳으로 뛰어들어 막아선 아이들의 모습.
그들은 나약했던 스스로에게 도리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뭐 하세요? 어서 가세요!”
“괜찮습니다.”
“네?”
“두 사람이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저 많은 감염자들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두 사람에게 모든 걸 맡기고 도망이라니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변이자의 피로 범벅이 된 군인 한 명이 소민에게 다가와 말했다.
얼룩진 군복에 보이는 2개의 다이아 마크로 그가 지금 이곳을 지휘하는 소대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노승완 중위님?”
머뭇거리는 소민과 달리, 소대장의 말을 들은 성우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힘을 빌려 드리죠.”
폐허가 된 런던의 끔찍했던 모습만 본 소민은 사람들을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반대로 대전에서 함께 싸운 경험이 있는 성우는 오히려 그들의 의지를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 군신화 Lv 4가 발동되었습니다.
▶ 반경 350m 내에 있는 모든 우호적인 존재들의 신체 능력을 상승 시킵니다.
▶ 군신화의 효과는 거절할 수 있습니다.
‘이거라면…….’
소대장은 전신에 차오르는 뜨거운 기운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싸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건 자신만이 아니었다.
성우의 힘을 받은 병사들은 어느새 패색이 짙던 얼굴이 전의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소대장은 성우의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퍼억-!!!
그때였다.
“……!!!”
성우의 눈동자가 커졌다.
툭-
마주 잡은 손은 그대로인데 소대장의 머리만이 바닥에 떨어졌다.
푹……! 푸우우우욱……!!
잘린 목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올랐고, 성우는 그 광경에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눈물겹군.”
먼지구름 속에서 진웨이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