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그러는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덴 하울을 불러내기는커녕 잡혀서 얻어맞고나 있잖아!!”
“그, 그건…….”
진웨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말문이 막힌 듯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신이 떠난 뒤 폭격에 비행기가 추락했어. 저 미친놈들이 미사일을 퍼부은 거지.”
에이라 미쉘은 남궁을 노려보며 으르렁 거렸다.
“사람들이 이 일을 가만히 둘 것 같아? 인명을 구조하러 가는 비행기를 미사일로 격추하다니…… 잘도 이런 미친 짓을 하다니!”
“구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술수가 뻔히 보이는데 너라면 받아 주겠나?”
“자, 잠깐! 마법사들도 동승했을 텐데? 고작 미사일 따위가 실드 마법을 뚫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어째서?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치직…… 치지직…….
그 순간 공간이 일그러졌다.
“말이 안 되긴 왜 안 돼?”
“웁…… 우웁……!!”
진웨이의 물음에 대답한 미카엘이 팔과 다리, 그리고 입을 틀어막은 남자를 어깨에 들쳐 메고 나타났다.
“당연히 마법을 쓸 수 없으니 미사일을 맞고 떨어진 거지. 간단한 걸 이해 못 하네.”
슈아아아앙---!!
마치 진웨이의 외침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상공에 전투기들이 편대를 이루며 날아가고 있었다.
“네놈…….”
미카엘의 등장으로 일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진웨이는 이를 바득 갈며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형님 말대로 비행기 한 대 떨어뜨린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네놈들을 지금 대한민국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잖아?”
미카엘은 포박한 마법사를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주위를 보고 말해. 네놈이 한 짓거리에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는데.”
“크, 크윽……!!”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궁이 진웨이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그래서? 이제 뭘 할 생각이지? 우리는 일곱 뱀의 성물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
“안다. 그건 곧 가져오게 될 거야.”
“크, 크큭…… 과연 그게 쉽게 될까? 다에시가 어떤 놈인지 너도 잘 알 텐데.”
진웨이는 남궁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어떤 놈이라…… 그것까지 알아야 하나?”
“뭐?”
콰아아아앙---!!!
그때였다.
상공에서 굉음과 함께 뭔가 떨어졌다.
“……컥!!”
[다녀왔다.]
마왕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쿨럭…… 커헉…….”
양팔이 부러지고 한쪽 다리가 잘린 다에시가 몸을 부르르 떨며 가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콰직……!!!
그런 그를 즈려밟으며 마왕은 남궁을 바라봤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진웨이는 너덜너덜해진 다에시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귀귀족의 계약자라고 해봐야 쓸 수 있는 환술도 몇 개 되지도 않더군. 기껏해야 중급 귀신 정도나 될까? 그 정도 하찮은 환술이 내게 통할 리 없지.]
마왕은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하며 그들에게 말했다.
[잡아먹어도 되나?]
“놈에게 받아낼 것이 있다. 그것만 끝나면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
[좋아. 당연히 살려줄 일은 없지만 말이야.]
남궁의 대답에 마왕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놔.”
남궁은 다에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크, 크큭…… 마왕이라니…… 이런 것까지 불러낼 수 있었나? 수많은 경우의 수를 산정해서 만든 계획인데. 이렇게 어이없게 끝날 줄이야…….”
푸욱-!!
남궁은 다에시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다리에다 검을 박아 넣었다.
“크아아악!!!”
거침없이 파고드는 검날에 다에시는 몸부림을 치며 비명을 질렀다.
“잡담 말고. 내놔.”
“……거래를 하는 건 어떻습니까.”
“거래?”
“제가 가진 성물을 드릴 테니 대신 저를 당신의 추종자로 세워주시죠.”
“미친 새끼!!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진웨이는 그의 말에 발광을 하며 소리쳤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습니까, 진웨이. 계획은 이미 틀어졌고 목숨은 건져야지. 안 그렇습니까?”
“목숨? 지랄하고 있네! 지금 너 혼자 살려고 남궁에게 붙겠다는 소리냐! 놈이 널 살려줄 것 같아? 하나같이 머저리 같은 놈들만 있어서는……!!”
에이라는 남궁의 앞에 세워놓은 성물을 보고는 안절부절못하며 소리쳤다.
“진웨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자를 막으라고!! 이 머저리 같은 새끼야!!”
“……닥쳐!!”
그때였다.
에이라의 외침에 진웨이가 오히려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뭐?”
“닥치라고!! 그렇게 저놈을 잡고 싶으면 네가 하라고!!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란 말이야!!”
그의 외침에 에이라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쟤들 왜 저래요?”
미카엘은 갑작스러운 내분에 어이가 없다는 듯 남궁에게 물었다.
“광신술이 풀린 거지. 에이라의 능력은 의지를 주입하는 최면과 다르거든. 광신술은 말 그대로 신을 믿는 행위와 같은 것이니까. 본인의 의지와 믿음이 필요한데 그 믿음이 방금 깨진 거다.”
미카엘은 남궁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헤에…… 정신이 번쩍 들겠네요. 재밌게 흘러가는데요? 저 둘 중에 누가 제물이 될지 궁금하네요.”
“지금 내게 거래를 하자고 했나?”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남궁은 허리를 숙여 쓰러져 있는 다에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렇습니다.”
“천재라 불리던 다에시도 머리가 굳은 모양이로군. 내가 왜 너랑 계약을 하지?”
“……뭐?”
서걱.
그 순간 남궁의 검이 다에시의 목을 잘랐다.
“……!!!”
“……!!!”
거침없는 그의 모습에 에이라와 진웨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명훈은 조용히 소민의 뒤에 서 그녀의 눈을 가리며 성우에게 눈짓을 보냈다.
“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허망한 다에시의 죽음에 진웨이는 허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벅- 저벅-
하지만 남궁은 그런 그를 지나쳐 이번엔 에이라의 앞에 섰다.
“화롯불의 성물을 네가 가지고 있지?”
“…….”
“꺼내봐.”
꿀꺽-
그녀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듯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두 번 말 안 한다.”
“여, 여기 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품 안에서 성물을 꺼냈다.
“미친……!!! 알아서 그에게 성물을 바칠 거였으면 이런 짓은 왜 꾸민 거야!! 감히 날 이용해? 죽여 버리겠어!!”
진웨이는 바둥거렸다.
하지만 엉망이 된 그의 몸으로는 그녀를 막기는커녕 바라보고 있는 것도 벅찼다.
“……남궁!! 넌 실수한 거다! 네놈은 잘난 척 다에시를 죽였지만 그래서는 결국 일곱 뱀의 성물을 찾지 못할 거다!!”
“상관없어.”
“……뭐?”
남궁의 대답에 진웨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쿠그그그그…….
상공에서 독구름이 서서히 몰려들기 시작했다.
“분위기 좋군.”
남궁은 하늘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엿 먹이기 딱 좋은 날씨야.”
* * *
툭- 툭- 툭-
“모두 세웠어요!!”
무너진 건물의 잔해 위로 하나 씩 줄을 지어 성물을 세우고서 미카엘이 남궁에게 소리쳤다.
“고생했다.”
“뭘요. 그냥 받아 온 것뿐인데요.”
그의 뒤로 세워진 성물의 숫자는 모두 8개.
세워진 성물은 제각각 모양이 달랐다.
“지금부터 만신전을 시작하겠다.”
“무슨…….”
진웨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만신전의 목적은 성물을 완성해서 위상이 현실에 강림할 수 있도록 성전을 소환하는 것이지.”
남궁은 줄지어 세워진 성물을 하나씩 툭툭 손가락으로 건들며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왜 성물을 모아서 네놈들을 이곳으로 불러내야 하지?”
달그락-
남궁은 눈앞에 있는 성물 하나를 잡았다.
“너희가 이 땅에 강림을 해서 정말로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것인지 누가 확신을 줄 수 있느냔 말이야.”
그가 들고 있는 성물이 화롯불을 다루는 자의 것임을 안 진웨이는 창백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이제부터 너희 차례다. 지금 당장 이곳으로 내려와라.”
꽈악-
남궁이 성물을 움켜쥐자 놀랍게도 성물의 윗부분이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금이 갔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있는 성물을 모두 하나씩 부서뜨릴 것이다.”
“……!!!!”
그의 말에 에이라와 진웨이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희는 힘을 미끼로 인간이 서로 싸우는 것을 원했겠지만 그렇게 쉽게 가면 재미없지. 명색이 만신전인데…….”
남궁은 말했다.
“신들이 서로 물고 뜯어야 하지 않겠어? 이곳에 있는 성물이 부서진다면 성물을 완성시킬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게 된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쿵-!!!
그는 들고 있던 성물을 내려찍었다.
“너희들 중 누구도 이 땅을 밟아볼 수 없다는 거야. 인간의 땅을 넘보려 한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쿠그그그그그그……!!!
쿠그그그……!!
그의 말과 함께 독구름들이 요란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거센 바람이 불었고, 서서히 모이기 시작하던 독구름들이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지직……!!
하늘을 뒤덮는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온 세상이 까맣게 변한 것 같았다.
[크아아아!!!]
[케에엑!!!]
독에 감염되었던 사람들이 독구름의 아래에서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이 점차 변했고,
쿵! 쿵!! 쿠우우웅!!
변이가 진행될수록 방벽을 두들기는 그들의 힘이 거세지면서 실드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위상의 화를 돋우다니…… 남궁,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네놈이 한 짓을 봐라! 일주일은 걸릴 독구름을 고작 몇 분 만에 모두 불러내게 만들었다고!”
진웨이는 소리쳤다.
“성물이 완성되고 위상의 힘으로 독구름을 정화하면 끝날 일인 것을…… 네놈이 상황을 최악으로 만든 것이다.”
콰직……!! 콰가가강……!!
그 순간, 독구름에서 떨어진 낙뢰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세상을 뒤덮기 시작했다.
“클클…… 결국 한국은 죽음의 땅이 될 거다. 차라리 잘 되었어. 모두 다 뒈져라.”
그때였다.
진웨이는 순간 주위의 공기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이질감에 그가 주위를 훑었다.
“……눈?”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얼음이었다.
파스슥……!!
내려앉던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하얗게 변하며 얼어붙더니 바스러졌다.
“뒈지는 건 네놈이나 해.”
진웨이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분석이 끝난 모양이군.”
“그럼. 연금술은 마법이 아니니까.”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주사인의 옆으로 덴 하울이 있었다.
우우우우웅……!!!
그가 천천히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마법진들이 겹겹이 쌓여 검은 구름을 떠받들기 시작했다.
“독구름이 덴 하울을 불러내긴 했네.”
“……닥쳐.”
미카엘의 놀림에 에이라 미쉘은 이를 바득 갈며 그를 노려봤다.
“마지막 경고다.”
남궁은 세워놓은 성물을 밀어 바닥에 떨어뜨리며 말했다.
“부숴 버리기 전에 모두 내 앞으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