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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146/270)

146화

솨아아아악---!!!

독구름을 떠받들고 있던 덴 하울의 마력이 점차 고갈되어 갈 때쯤 갑작스럽게 구름이 흩어졌다.

“무, 무슨 일이지……?”

어두컴컴했던 하늘이 새하얗게 변했고 빛이 주위를 감싸자 마치 세상이 정화되는 것처럼 온기가 느껴졌다.

▶ 미풍의 어머니께서 풍요(豊饒)를 외웁니다.

▶ 만물의 회복이 빨라집니다.

[크르…… 크르르르…….]

따스한 바람이 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독구름에 변이되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 만신전이 종료되었습니다.

▶ 모든 성물이 파괴되었습니다.

▶ 부서진 성물은 새로운 곳에서 생성됩니다.

쿠그그그그……!!

미풍은 순식간에 돌풍으로 변했고, 주위를 비추던 빛과 함께 얽혀 용오름처럼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끄, 끝났나?”

“살았다…….”

변이자들을 막던 군인들이 총구를 내리며 낮은 탄성을 터뜨렸다. 맑은 하늘을 보는 것이 이렇게나 즐거운 일인가 싶었다.

와아아아아---!!!

와아아--!

순간 정적이 흘렀지만 이내 곧 생존의 환호성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투둑…… 투두두둑…….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목마름을 채워주기라도 하려는 듯, 맑은 하늘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물은 신기하게도 계절감 없이 따뜻했고 비를 맞은 사람들은 오히려 힘이 솟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기뻐하는 순간에도 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 잠깐…… 이대로 종료라니? 말도 안 돼!”

에이라 미쉘이 고개를 돌려 진웨이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그의 얼굴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종료는 아니지.”

그때였다.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에이라 미쉘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잠깐의 유예 기간을 두었을 뿐이다. 알림의 내용은 보두 확인했지? 부서진 성물은 곧 생성될 거다. 다시 한 번 그것을 찾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진짜 만신전의 끝나겠지.”

남궁이었다.

“그, 그럴 수가…….”

“하지만 만신전이 끝나지 않았다 한들 모든 계시자가 만신전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

“……뭐?”

푸욱-

그때였다.

남궁의 검이 에이라 미쉘의 목을 뚫고 지나갔다.

“컥.”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목에서 흘러 나오는 피를 두 손으로 다급히 막았다.

“어떻게…….”

“미풍의 어머니에게 빌린 힘이다. 네가 가진 모든 방어 수단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더군. 같은 파장을 가졌으니까.”

남궁은 억울해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굳이 이런 힘이 없어도 널 죽이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진 않지만. 불필요한 수고는 덜었지.”

“내가…… 왜…….”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너만이 아니니까.”

콰아아앙---!!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웨이의 머리 위로 거대한 망치가 떨어져 내렸다.

내려친 망치 사이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렀다.

즉사(卽死)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사람들은 너무 놀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성물을 두 번 다시 부수지 않는 조건으로 위상이 수락한 일이다. 미풍의 어머니와 화롯불을 다루는 자의 계시자는 새로이 뽑힐 것이다.”

남궁은 말했다.

“부서진 성물은 탑 안에서 생성 된다고 한다. 두 위상의 성물을 찾는 자는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나머지 성물과 함께 계시자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 우(无)의 탑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 부서진 성물이 탑 안에 잠듭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도전자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계시자는 인간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할 줄 아는 자만이 되어야 한다.”

어느새 날아든 드론들을 통해, 전 세계가 그의 말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되었든 이와 같은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드론에 달려 있는 카메라가 두 시체를 담았다.

▶ 탑의 문이 열립니다.

▶ 탑의 종족들이 깨어납니다.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었다.

* * *

“탑이라…… 다들 난리네요. 탑을 공략하려는 원정대들이 하나둘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명훈은 저 멀리 보이는 백색의 탑을 바라보며 말했다. 탑은 특이하게도 지도상에 위치가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나라에서도 탑의 모습은 보였다.

실체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그것 말고는 탑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입구는 찾았답니까?”

“글쎄. 아직까지 언론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걸 봐서는 못 찾은 게 아닐까.”

“보이는데 갈 수가 없다라……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요.”

“지금까지는 뭐 믿어질 만한 일이라서 세상이 이렇게 변했겠나.”

“그나저나 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탑을 공략하라는 걸까요?”

명훈의 대답에 호준은 고개를 저었다.

“공략하는 게 아닐지도.”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형님.”

“일전에 내가 비월의 금역인 지네 굴에 갔을 때였어. 원래는 가츠마타에게 빼앗긴 성물을 찾으려고 갔었는데 어쩌다 보니 거기까지 들어가게 되었지.”

명훈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바라봤다.

“비월의 살수들도 공략하지 못한 곳이라고 하더라.”

“헤에…… 그럼 가츠마타도 실패한 던전을 형님이 공략하신 겁니까?”

“아니. 나는 공략하지 않았어.”

“네?”

“그냥 굴이 나를 선택해 준 것뿐이지.”

묘한 그의 대답에 호준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사람들도 그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던전이 공략자를 선택한다…… 확실히 경험자다운 말이군.”

그때였다.

성채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가츠마타의 모습에 사람들이 경계했다.

“그럴 필요 없다. 명훈이도 알겠지만 그가 성물을 훔치게 한 것은 나도 관여한 일이니까.”

“형님, 다녀오셨습니까.”

가츠마타와 함께 온 남궁을 보고는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손짓을 하고서 그들의 앞에 섰다.

“위상의 등장은 갑작스럽지만 사실 그들은 이미 우리의 역사에 비슷하게나마 남아 있어.”

“위상은 신과 같으니까요.”

“그리고 지네 굴과 같이 영적인 힘을 가진 공간들은 일종의 현실에 남아 있는 던전과 같지.”

“으흠…….”

남궁은 명훈을 바라봤다.

“지네굴에 처음 들어갔을 때 어땠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긴 했습니다. 뭐랄까…… 구름 위에 있는 기분이랄까? 처음에는 현실이 아닌 듯한 기분이었죠.”

“던전에 들어갔을 때와 비슷했나?”

“조금 달랐습니다. 카니발로 인해 생성된 던전들은…… 입장했을 때 그냥 거실에서 방에 들어가는 느낌 정도?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정도였지 그렇게 현실이 아닌 듯한 느낌을 주진 않았습니다.”

“이상하지 않아? 오히려 카니발로 생성된 던전들은 현실에 없던 것들이고, 지네 굴은 현실에 이미 있던 공간인데. 후자가 더 이능적인 느낌이라니.”

“으흠…… 네 말은 카니발 이전과 이후를 굳이 나누지 말라는 뜻 같은데. 맞아?”

남궁의 말을 가장 먼저 해석한 건 역시나 주사인이었다.

“카니발과 같은 이능적인 존재들이 사실은 우리가 모르는 과거에 이미 존재했었다…… 라는 거군요.”

“맞아. 요르는 그런 얘기를 했었지. 올림푸스의 신들을 비롯해 역사에 기록된 신들 역시 위상이라고.”

“그 말은 과거에도 카니발이 있었다는 뜻인가요?”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명훈의 물음에 주사인이 말했다.

“우리 역사에도 신들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내용은 많으니까. 라그나로크와 같은 것들이 어쩌면 일종의 카니발이었을지도 모르지.”

“헐…….”

“그런데 그게 탑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

“탑 안에는 카니발에 참가했던 종족들이 갇혀 있다고 했습니다.”

“엘프라든지 드워프 같은 것들일까요? 그런 거 있잖아요. 소설 속에 나오는 이종족들.”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이미 대리자 일족만 보더라도 요정이나 나가와 같은 존재들이 있으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이종족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어.”

남궁의 대답에 경인과 성우, 그리고 소민은 기대감에 눈을 반짝였다.

“좋은 일만은 아냐. 하지만 그들이 꼭 우리에게 우호적일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

“그렇지. 마물들은 보스를 사냥하고 문을 닫으면 끝나지만 그들이 우리와 함께 이 세계에 공존하는 것이라면…….”

“이제 판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거지. 이종족이라는 적이 하나 더 추가되는 셈이니까.”

들떠 있는 세 사람과 달리 주사인과 창환은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했다.

“그야말로 대격변이로군요.”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어. 카니발처럼 대비 없이 당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충분히 강해졌으니까.”

“탑을…… 공략할 생각이시죠?”

“물론.”

명훈의 물음에 남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无)의 탑은 전생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특이점이었다. 그렇기에 남궁 역시 탑이 과연 앞으로 있을 카니발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당초의 계획은 에이라 미쉘과 진웨이를 미끼로 위상들끼리 싸움을 붙이려고 했던 건데…….’

의외로 두 위상은 깨끗하게 자신의 위상을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우(无)의 탑을 여는 조건으로 계시자를 새로이 뽑는 조건을 걸었다.

‘뒤늦게 시작하는 계시자들은 확실히 우리들보다 약할 수밖에 없으니 당장 위협이 되진 않겠지만…….’

또 다른 경쟁자로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역시 쉬운 상대가 아냐.’

결과적으로는 위상의 수는 그대로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남궁은 우(无)의 탑을 공략하고자 했다.

‘미풍의 어머니의 말처럼 카니발에 패배한 종족들이 탑 안에 갇혀 있는 거라면 해방을 조건으로 힘을 빌릴 수 있을지 모르니까.’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런 자들이 더 많을 것이다.

자유를 대가로 자신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놈들이니까.

“하지만 공략은커녕 아직 우리는 탑의 입구도 찾지 못하고 있지. 그러기 위해서 너희 둘의 힘이 필요하다.”

남궁은 명훈과 가츠마타를 바라봤다.

“저희요?”

“지네 굴은 현존하는 신물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스팟 중 한 곳이지. 너희 둘은 어떻게 해서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

“으음…….”

명훈은 슬쩍 가츠마타를 바라봤다.

“딱히 제가 한 것은 없습니다. 성물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 가츠마타가 제게 그러더군요. 아직 공략하지 못한 던전을 클리어하면 주겠다고요.”

“그래서?”

“저는 단순히 카니발로 인해 생성된 던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별 의심을 하지 않았고요.”

그는 살짝 머리를 긁적였다.

“비월의 안내를 따라 굴의 입구에 도착했고…… 그냥 안으로 들어간 게 다입니다.”

“굴의 입구를 육안으로 볼 수 있나?”

가츠마타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의외였습니다. 에리카 님의 명령에 그를 지네 굴로 안내하긴 했지만…… 저희가 하는 안내라는 건 정해진 좌표에 사람을 두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말은 비월조차 굴의 입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명훈은 가츠마타의 대답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분명 크게 굴의 입구가…….”

“그거야.”

“네?”

“탑이 생성된지 일주일이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가 탑의 입구를 찾지 못한 이유 말이야.”

명훈이 그를 바라봤다.

“어째서 비월의 살수들 중 유일하게 가츠마타와 네가 굴을 공략 할 수 있었는지.”

남궁은 말했다.

“어쩌면 탑의 입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도 모른다.”

“에이, 그게 무슨…… 그럼 탑에 어떻게 들어간다는 겁니까, 대장.”

호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지만 머리가 좋은 주사인은 나궁의 말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존재한다 믿는 것이 중요하단 말이군.”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끄응…….”

뭔가 안간힘을 쓰는 듯 이리저리 머리를 저으며 힘을 주었지만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안 되는데?”

솨아아아악……!!

그때였다.

그들의 앞에 빛 무리가 번지면서 모여 있던 사람들의 그림자가 한데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명훈의 앞에서 튀어오르더니 구의 형태를 띠었고, 다시 한 번 길게 세로로 늘어났다.

“……어?”

문(門)이 생겼다.

“뭐, 뭐야? 너 어떻게 한 거야?”

주사인은 놀란 듯 물었지만 정작 이걸 행한 주인공인 명훈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답이 좀 되었나?”

“의식의 실제화라는 겁니까? 글쎄요, 순수한 건지 단순한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가츠마타는 탑의 문을 연 명훈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곧 알 수 있겠죠. 직접 제 눈으로 답을 보기 위해 온 거니까요.”

검은 문은 마치 그들의 도전을 기다리겠다는 듯 가볍게 떨렸다.

“탑으로.”

남궁이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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