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화 (147/270)

147화

▶ 우(无)의 탑에 입장하였습니다.

▶ 정해진 장소 이외에는 탑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 신중하게 생각하십시오.

▶ 문을 열면 탑이 시작됩니다.

그림자 문을 지나 탑 안으로 들어가자 마치 냉동 창고 속에 있는 것처럼 차가운 냉기가 전신을 휘감았다.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때 까지는 돌아갈 수 없다라…… 이거 꽤 무서운 얘긴데요?”

“선택을 잘 해야겠네요.”

남궁은 굳게 닫혀 있는 청동문을 살폈다.

탑 자체도 전생에 없던 것이었으니 입구도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청동문에 새겨진 문양들도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족을 알 수 없는 4명. 그리고 7마리의 마물과 싸우고 있다.’

문의 그림은 낡았지만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탑 안에 있는 종족을 말하는 건가.’

아직 그림의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남궁은 그림 전체를 기억하려는 듯 다시 한번 확인했다.

“우리 모두가 갈 수는 없다. 탑이 생겼다고 해서 지옥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 오히려 너도나도 탑을 공략하려고 하는 시기에 놈들이 6번째 문을 열 수도 있다.”

“팀을 나누잔 말이지?”

“맞아.”

남궁은 주사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선발대가 먼저 탑을 탐색한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탑을 나갈 수 있는 탈출구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고 난 뒤에 마물의 종류와 탑의 인구를 조사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눌 생각이십니까? 저희는 형님의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일방적으로 나눌 생각은 없어. 일단 지원자를 받도록 하지. 탑은 위험하지만 그만큼 보상이 확실할 테니까.”

“전 가겠습니다.”

“그럼 나도 가야지!”

“저도요! 저도!”

명훈을 시작으로 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며 외쳤다.

“넌 기각.”

“아 왜!”

소민이 땅을 발로 캉캉 때리며 불만을 토했다.

“덴 하울에게 가서 마법을 연구하도록 해. 그가 3번째 페이지를 열 수 있도록 말이야.”

“치…… 나도 가고 싶은데.”

“단순히 위험해서가 아냐. 탑을 공략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야. 만에 하나 우리가 갇히게 되었을 경우 외부에서 출구를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하니까.”

남궁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사인 너도 소민이를 도와서 탑을 외부에서 분석해 줘.”

“그러지.”

“나머지 다른 지원자가 더 있나?”

명훈과 호준을 제외하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 경인이 유일하게 손을 들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남궁은 기대했던 인물이 지원했다는 듯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거라.”

“응. 다녀올게요.”

의외로 공략대에 지원한 경인을 전태호는 막지 않았다.

“쟤가 가면 전 안 갑니다. 여기에 남아서 할 것도 있고요.”

“에……? 왜요?”

“원거리는 너 하나면 충분하니까. 사인 형님, 계시는 동안에 제 무기 좀 봐주실 수 있습니까.”

“문제 될 것 없지. 여전히 그거 쓰는 거야?”

“네. 전에 덴 하울이 미국 쪽의 총기류들이 좋다고 한번 보러 오라고 하던데요.”

“그거야 내가 안 만들었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당분간 네 총은 내게 맡겨.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어 줄 테니까.”

어쩐지 승부욕이 발동한 듯 주사인의 눈빛이 빛났다.

“그럼, 명훈이랑 호준이, 그리고 경인이 이렇게 셋인가.”

“저도 갈 겁니다.”

가츠마타가 남궁에게 말했다.

“내 생각엔 에리카 쪽도 탑을 공략하려 할 텐데…… 괜찮겠어? 우리가 탑의 보상을 독식할 수도 있는데.”

“괜찮습니다. 에리카 님께서는 탑 공략을 하지 않으시기로 하셨으니까요.”

“음? 어째서?”

“에리카 님께선 예지 능력을 키우기 위해 탑 공략보다 폐관 수련을 결정하셨습니다.”

일리 있는 이야기긴 했다.

에리카가 예지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가문이 가지는 음양사의 혈통 때문이었으니까.

단순히 마물을 잡고 보상을 받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영력을 키우는 것이 그녀에겐 중요했다.

“그럼 마음 편하게 공략할 수 있겠군.”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공략을 단언하시는 겁니까.”

남궁은 굳게 닫혀 있는 청동문을 있는 힘껏 밀며 말했다.

“물론.”

▶ 탑의 1층이 시작됩니다.

▶ 아룡(牙龍)의 문이 열립니다.

▶ 용암 대지에 입장하였습니다.

* * *

화르르르르륵……!!

부글…… 부글…….

청동문을 열어 발을 들여놓는 순간 주위는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변했다.

“윽…… 뜨거워.”

여기저기 갈라진 지면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강물 대신 용암이 흘러나오는 이곳은 엄청난 열기에 제대로 눈을 뜨는 것도 쉽지 않았다.

▶ 영혼 주술사가 술법을 시전 합니다.

남궁의 부름에 나타난 키만 얀의 영혼이 들고 있던 스태프를 흔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주위를 푸른 막이 감쌌고, 그제야 눈을 뜨기도 어려웠던 열기가 조금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물로 만든 보호막이다. 이곳의 열기가 생각한 것보다 뜨거워. 충격에 조심하도록 해. 자칫하면 깨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명훈이 물었지만 남궁도 처음 와보는 것은 매한가지.

“수색의 기본은 지형지물을 확인하는 것이니까 일단 저기 언덕 쪽으로 가자. 경인이의 눈이라면 뭔가 보일 거야.”

“알겠습니다.”

용암 지대에 높다랗게 솟아 오른 절벽 하나가 있었다. 일행은 앞장서는 남궁의 뒤를 따라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그때였다.

마물의 포효 같은 것이 들리고 연이어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

자신들보다 빨리 탑 안에 들어 온 무리가 있는 걸까? 놀랄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일단 확인을 해야겠군.’

단지 그들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공략의 방향성이 달라질 뿐.

“잡아……!!!”

“놈을 반대로 몰아!!”

언덕에 오르자 놀랍게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용암 지대에 있는 거대한 도마뱀을 잡고 있었다.

도마뱀의 전신은 붉은 비늘로 뒤덮여 있었고, 발등과 꼬리 끝에서 푸른 화염이 피어올랐다.

“저건…….”

남궁은 사람들을 경계하며 커다란 입을 벌리는 도마뱀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샐러맨더?”

익숙한 마물의 모습에 반갑기는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째서 녀석이 이곳에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물론, 탑에는 어떠한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마물이 있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마물의 등급.

‘샐러맨더는 서펀트와 함께 지옥문의 보스 몬스터 중 하나다. 내 기억이 맞다면 7번째 문이 열려야 나오는 녀석일 텐데…….’

차릉…….

그 순간 남궁의 손목에 있는 팔찌가 가볍게 떨렸다. 서펀트를 잡고 획득했던 【어룡의 보석】이었다.

남궁은 팔찌에 비어 있는 4개의 소켓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5마리의 아룡을 모두 사냥해서 얻은 보석으로 팔찌를 진화시킬 수 있다.’

서펀트를 비롯하여 샐러맨더, 드레이크, 바실리스크, 그리고 와이번까지 카니발에는 5마리의 아룡(牙龍)들이 존재하며 놈들은 각 문의 보스 몬스터이기도 했다.

‘마지막 아룡인 드레이크가 소환 되는 것은 15번째 지옥문 때. 사실 아직 한참 뒤에 일이라 생각해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남궁은 사냥당하고 있는 샐러맨더를 바라봤다.

‘분명 아룡의 문이 열렸다고 했어. 어쩌면 15번째 지옥문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나머지 아룡들을 이곳에서 사냥할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엄청난 기회였다.

만약 그렇다면, 샐러맨더를 이대로 그냥 저들이 사냥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될지 모른다.

“너희는 언덕에서 자리를 잡고 있어. 내가 저들을 확인하고 올 테니까.”

“조심하십시오.”

남궁은 명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탁-!! 타탓-!!

언덕 위에 일행을 남겨둔 채 남궁은 【써펀트의 부서진 비늘 조각】을 발동시켰다.

그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왜곡되었다.

[케에에엑……!!!]

가까이 다가갈수록 샐러맨더의 크기가 여실히 느껴졌다.

4m에 달하는 거대한 불도마뱀은 꼬리를 흔드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쾅! 쾅! 콰아아앙……!!

마물의 꼬리가 지면에 박힐 때마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바위 파편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확실히 샐러맨더야.’

의심할 여지 없이 놈은 지옥문의 보스였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그런 상급 마물을 사냥하고 있는 저들일 것이다.

“산개해라!! 놈의 불꽃에 맞으면 끝이야!”

“2조 투창 준비!!”

샐러맨더를 포위하고 있는 사냥꾼의 수는 열 명 정도. 그들은 2인이 1조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미끼가 되는 2명의 움직임은 남궁이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등에 꽂히는 창이 하나둘 늘어나자 샐러맨더가 거칠게 불을 뿜었다.

“챤! 내가 간다!!”

그 순간, 미끼가 되고 있던 2명 중 한 명이 걸고 있던 목걸이를 잡아 뜯으며 샐러맨더의 불꽃 속으로 몸을 던졌다.

‘뭘 할 생각이지?’

샐러맨더의 화염은 드래곤의 브레스와 맞먹을 정도로 엄청난 열기를 가진다.

그 열기가 얼마나 지독한지는 누구보다 남궁이 잘 알고 있었다.

웬만한 마법으로는 막을 수도 없거니와 화염 내성을 가진 아이템을 전신에 둘러도 한 번 버틸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화염 안으로 들어간다?

둘 중 하나였다.

‘미친놈이거나, 믿는 구석이 있거나.’

파아아아악……!!!

마치 소화기를 터뜨린 것처럼 새하얀 연기가 샐러맨더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놀랍게도 화염이 단박에 꺼졌다.

“지금이야!!”

조금 전 몸을 던졌던 남자가 샐러맨더의 입천장에 단검을 박아 넣으며 소리쳤다.

[케에에엑……!!]

샐러맨더가 괴로운 듯 바둥거리고, 나머지 사냥꾼들이 일제히 녀석을 향해 창을 던졌다.

치이익---!!!

그들이 던지는 창도 평범한 것이 아닌 듯 샐러맨더의 비늘에 닿는 순간 얼음이 녹는 것 같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공격해!!!”

샐러맨더의 입안에 있던 남자의 외침에 사냥꾼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이 실력자다.’

샐러맨더의 능력치는 전생에 그가 겪었던 것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보스급 몬스터를 고작 10명이서 사냥하고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들의 실력은 못해도 현재의 계시자들과 비슷한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도대체 누구지? 혹시 둘 중 저들에 대해서 아는 사람 있나?’

남궁은 무명과 마왕에게 물었다.

[나는 모르겠군. 처음 보는 자들이다.]

[흠…… 나 역시. 하지만 과거 마족이 대리자 일족의 위치에 있을 때 들었던 얘기가 있다.]

‘뭔데?’

[이 차원에서 시작된 카니발을 예로 들자면, 보통 카니발의 참가자는 너희 인간뿐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크게 구분하면 참가자는 모두 셋이다.]

‘위상과 대리자 일족을 말하는 거겠지.’

[맞아. 위상은 자신의 계시자가 승리함으로써 카니발을 쟁취할 수 있고, 대리자 일족은 자신의 계약자가 성장함으로써 카니발과는 별개로 일족들끼리의 전쟁, 팔각 전쟁을 수행하지.]

마왕은 말을 이었다.

[팔각 전쟁에서 승리한 대리자 일족은 위상으로 오를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 그리고 위상은 자신의 지위보다 한 단계 격상되어 전 차원을 아우를 수 있는 진위(眞位)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하지.]

‘그런데? 그게 저들과 무슨 상관이지?’

[그럼 너희 인간이 얻는 건 뭐지?]

남궁은 마왕의 물음에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카니발에서 살아남는 것에 급급했지 카니발에서 우승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넌 그걸 아나?’

[결국 카니발의 승자는 위상이든 대리자 일족이든 자리를 얻게 되는 거지. 권좌(權座) 말이다. 위상은 진위의 자리를, 대리자 일족은 위상의 자리를.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인간은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고 했다.]

‘왕?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쓸데없는…….’

남궁은 마왕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냉소를 지었지만, 그의 웃음은 마왕의 다음 말에 그치고 말았다.

[그 자리는 오직 한 명만이 얻을 수 있지. 카니발은 그저 왕좌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관문에 불과하다.]

그는 굳은 얼굴로 샐러맨더를 사냥하는 자들을 바라봤다.

[위상들이 말한 패배자는 카니발을 실패한 자들이 아니다. 왕좌에 도전하여 실패한 자들을 뜻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설마.’

[그래. 저들은 왕좌에 오르지 못한 카니발의 승리자들이다.]

꿀꺽-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카니발을 공략하기는커녕 문에서 나오는 마물들을 막는 것으로도 급급한 상황인데…….

눈앞의 저들은 이 끔찍한 관문을 모두 통과했다는 말이었으니까.

‘강한 이유가 있었군.’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만약 저들이 너를 노리기라도 한다면 절대로 쉽지 않을 테니.]

마왕의 얘기를 들은 무명이 남궁에게 경고했다.

‘만약 저들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하지만 남궁의 생각은 달랐다.

[그게 무슨 뜻이야? 설마 저들을 굴복시키겠다는 말이냐? 카니발에서 이기기는커녕 살아남기 급급한 너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왕좌 쟁탈전에서 패배했다 한들 저들은 카니발을 모두 끝낸 자들이라고. 이제 겨우 5번째 문을 끝낸 너희와는 달라.]

그의 말에 무명과 마왕은 그를 말렸다.

‘그래? 그런데 난 혼자 싸우겠다고 한 적 없는데.’

[뭐?]

‘너희가 있잖아.’

둘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남궁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입 발린 소리 하긴.]

하지만 썩 기분 좋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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