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1화 (151/270)

151화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우리가 카니발을 끝냈느냐고? 당연한 걸 묻는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위상과 마물에 대해서 모를 리 없잖느냐.”

장로는 남궁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남궁은 여전히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기엔 당신들의 정보가 너무 부족한걸.”

“뭐?”

“아무리 바실리스크의 독이 치명적이라고는 하지만 카니발을 끝낸 자들이라면 약점과 상관없이 놈을 압살할 수 있을 것이다.”

남궁은 쓰러져 있는 마물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약점을 제대로 알기는커녕 오히려 위험한 방법으로 놈을 사냥하더군. 왜 그럴까? 약점을 찾을 필요도 없기 때문에? 아니지.”

그의 말에 쿠가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샐러맨더를 사냥할 때 사냥꾼들의 움직임은 체계가 잡혀 있었고 정확하게 약점을 노렸어. 그 말은 충분히 약점을 찾아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어째서?”

장로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바실리스크가 두렵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또 이상한 일이야. 카니발을 끝낸 자가 고작 바실리스크를 두려워하다니 말이야. 놈은 기껏해야 15번째 지옥문의 보스 몬스터니까.”

남궁이 겪었던 20개가 넘는 지옥문의 주인들을 생각했을 때, 바실리스크는 강하지만 그렇다고 못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2배는 더 될 지옥문을 통과한 자들이 고작 바실리스크에 쩔쩔매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无)는 내게 말했다. 나는 20개가 넘는 지옥문을 겪었지만 그것들은 기껏해야 카니발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2, 20개의 문을 모두?”

순간 쿠가는 자신도 모르게 뱉은 말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모두?”

하지만 그걸 남궁이 놓칠 리 없었다.

“왜 거기서 모두란 말이 나오지?”

“아, 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라고 하기엔 네 표정이 썩 마음에 안 드는데.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내 도움을 정말로 얻고 싶다면 말이지.”

쿠가는 장로들을 힐끔 바라봤다.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보며 장로들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오게.”

남궁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주위를 살피라는 의미로 눈짓을 주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 *

“들겠나? 맛은 그리 좋지 않지만 몸을 따뜻하게 해주지. 혈맥의 순환에 도움이 될걸세.”

“자네처럼 강(强)의 단계에 있는 자들에게 특히나 효험이 있을 테니 말이야.”

늪을 지나 악산의 정상에 오르자 그곳에는 작은 굴이 하나 있었다.

굴 안에는 화로가 있었고 그 위에 끓고 있던 검붉은 차를 장로가 남궁에게 건넸다.

“몸에 좋은 거라도 신의가 없다면 마실 순 없지. 얘기를 먼저 듣고 난 뒤에 생각하겠어.”

“옳은 말이군.”

찻잔을 내려놓은 남궁의 모습에 장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곁에 특이한 힘들이 있군. 그들을 불러낼 수 있는가? 그들과도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어려운 일은 아니지.”

화르륵……!!

남궁이 힘을 끌어 올리자 무명과 마왕의 모습이 나타났다.

영혼 병사처럼 짙은 어둠으로 되어 있는 마왕과 달리 무명은 그에게 힘을 빌려주는 영령 그 자체였기에 흐릿한 형태였다.

“흐음, 과연. 혈맥술을 쓰는 것을 봐서 야차 일족과 연이 있는 모양인데. 혹시 저 영령이 일족인가?”

“맞아. 그가 혈맥술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야차 일족의 무명이라고 한다.]

“강의 단계에 불과한데 흐릿하긴 해도 영령을 소환하는 것도 모자라 의식까지 갖추고 있다니…… 과연…….”

장로들은 무명의 목소리를 듣자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뭐야? 이 인간들. 자기들끼리 심취해서는…….’

남궁은 그들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아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그들을 살폈다.

“게다가 이쪽을 보게. 마왕과 영혼 계약을 맺었군. 이런 건 우리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이런 건 회귀의 능력과는 별개지. 아무래도 체질 자체가 사령술에 민감한 모양이야.”

“어쩌면 그걸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흐음…… 라테아가 저자를 시험 한 것도, 우리에게 보낸 것도 역시 그 때문이겠지?”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군. 그걸 외부인에게 주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의 전통을 깨뜨리는 것인데.”

“하지만 이제 알게 되었지 않은가. 그건 유서 깊은 보물이지만 결국 우리가 쓸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말이야.”

남궁은 그들을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사람을 여기까지 불러 왔으면 답을 내야지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있고…….”

탈칵-

그때였다.

세 명의 장로 중 한 명이 굴 안에서 뭔가를 가져왔다.

“……이게 뭐지?”

상자 안에는 낡은 단검 한 자루가 있었다.

“카니발을 끝내고 난 뒤에 우리 일족이 받은 보상일세. 혹시 이것에 대해서 본 적이 있는가?”

차르릉-

남궁은 상자 안에 있는 단검을 꺼내어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뽑힌 검날은 낡은 겉모습과 달리 날은 아주 잘 벼려져 있었다.

“이건…….”

남궁도 처음 보는 단검이었다.

하지만 그가 놀란 것은 다른 이유였다.

넘버링 8-1.

이름 : 군주 레오릭의 단검

등급 : 레전더리(최초)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장 오만한 왕의 단검.

▶ 위대한 힘을 얻을 수 있으나 그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오만함에 대한 죗값을 대신 치러야 한다.

▶ 신을 죽이고자 한 그의 욕망이 검날에 서려 있으나 현재는 봉인되어 있다.

▶ 레오릭의 투구와 함께 3가지의 부속을 모두 모으면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넘버링이 있군.”

부속품 중 하나를 찾은 것보다 그가 놀라운 것은 【토룡의 보석】을 획득했을 때는 나오지 않았던 넘버링이 적혀 있다는 것이었다.

“전 차원을 통틀어서 단 하나뿐이라는 것이지.”

장로가 남궁의 표정을 읽은 듯 답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여기에 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야. 레오릭 왕은 우리 요란 일족의 수장이었으니.”

“……!!!”

남궁은 장로들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레오릭이 당신들의 왕이었다고?”

“그래. 혹시 그를 아는가?”

“알다마다.”

남궁은 계시자의 시험을 통과했을 때 초반의 이점을 포기하고 자신이 쓸 수 없는 【군주 레오릭의 투구】를 선택했었다.

그만큼 레오릭의 무구를 완성하는 것은 남궁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전생에 그와 계약을 맺었던 단 한 명의 영혼 병사를 위한 것.

그 영혼 병사가 바로 레오릭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건……·.”

퉁-

“나는 그를 소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남궁은 전대에서 투구를 꺼내 그들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설마…… 그의 영혼이 자네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말인가?”

“믿을 수가 없군…….”

장로들은 투구를 본 순간 마치 경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요르가 그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했던 것도 이해가 가는군. 설마 다른 차원의 존재일 줄은 나도 몰랐거든.”

“그를 만난 적이 있는가?”

“물론. 전생에 나와 계약을 맺었던 자니까. 설명하기는 길지만 나는 처음부터 계시자는 아니었다. 그를 만난 덕분에 마족들을 모두 사냥하고 회귀할 수 있었지.”

남궁은 전생을 떠나기 전 마지막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오랜 시간 함께해 왔던 둘은 서로의 의사를 대화 없이도 알 수 있었다.

그는 회귀를 하기 전 남궁에게 전했다.

삼독문에 남아 있는 자신의 투구를 얻으라고 말이다.

“계시자의 시험 이후 투구를 보상으로 획득했을 때 요르에게 레오릭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레오릭에 대해서 알지 못하더군. 다른 차원의 존재라 그저 듣기만 했었다고 말이야.”

그때 남궁은 의아했지만 굳이 되묻지 않았다.

자신의 회귀에서 레오릭의 존재는 중요했고, 굳이 요르에게 자신의 카드를 알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레오릭은 분명 내 차원에 존재했다. 내가 그와 계약을 맺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위상들이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는 건데…… 그게 가능한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레오릭은 특별하니까.”

“우리의 차원은 자네가 있던 시절보다 훨씬 더 과거라네. 위상들 역시 지금의 위상보다 더 오래된 선대의 위상들이겠지.”

“선대의 위상들과의 사건으로 레오릭의 존재는 사라지게 되었다네.”

“사라져? 그는 나와 계약을 했다니까?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남궁은 인상을 찡그렸다. 

“자네는 우리에게 카니발을 끝냈는지 물었지? 솔직히 말해서 자네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네.”

“그게 무슨 뜻이지?”

“우리들은 분명 카니발을 끝냈네. 다만 우리가 끝낸 카니발과 지금 자네가 하고 있는 카니발이 다를 뿐이지.”

남궁은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원마다 열리는 카니발의 문의 수가 다르거든. 우리가 경험한 문의 수는 20개가 끝일세.”

남궁은 그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뭐? 고작 20개? 그 말은 우리보다 훨씬 더 적은 수의 문이 열리고 카니발이 끝났다는 말이잖아.”

장로의 말은 황당했지만 그들의 표정을 봤을 때 거짓으로 보이진 않았다.

“바실리스크에 약한 것도 이해가 가는군…… 15번째 지옥문에서 나오는 마물이니 당신들의 입장에선 꽤나 상급의 마물이잖아.”

“그렇기도 하지만 바실리스크는 20개의 문에서 나온 마물 중 가장 많은 일족을 죽인 마물이라네.”

“내 기억이 맞다면…… 마지막 마물인 샌드웜이 훨씬 더 강할 텐데?”

“15번째 문 이후 나머지 5개의 문은 우리에겐 어렵지 않았네.”

“어째서지?”

“레오릭의 성인식이 끝났거든. 요란 일족은 성인이 됨과 동시에 모든 자질을 깨우친다네.”

“그는 진정한 왕이었네. 남은 모든 문의 마물을 섬멸하고 더 나아가 왕좌 쟁탈전까지 나갔지.”

장로들은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그의 능력이었다면 충분히 왕좌에 오를 수 있었을 걸세.”

“그런데?”

장로들은 곰방대처럼 생긴 것에 약초를 담아 불을 붙여 크게 들이마셨다.

깊은 한숨과 함께 알싸한 냄새가 굴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레오릭은 만족하지 않았어. 카니발에 희생된 일족을 모두 살리고자 했지.”

“죽은 일족을 위하는 거야 수장으로서 당연한 일이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 거지?”

“요란 일족만이 아닐세.”

“……뭐?”

“그는 우리의 차원뿐만 아니라 카니발에 참가했던 다른 차원들의 일족들까지 모두 살리고자 했거든.”

“당연히 그의 말은 묵살되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릭은 포기하지 않았어.”

장로들은 조심스럽게 남궁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결심했지. 단순히 인간의 왕에 머무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힘을 얻어야겠다고.”

“설마…….”

“그래. 그는 위상의 자리를 노렸네.”

“아무리 그가 대단한 힘을 가졌다 한들 신에게 도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지.”

“그의 반기가 위상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놈들은 탑에 우리를 가뒀지.”

“레오릭에게 동조했던 다른 차원의 일족들도 모두 이곳에 갇히게 되었다네.”

“우리가 탑이 준 퀘스트를 어째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물었지?”

꽈악-

주름이 잡힌 장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것은 당연한 일일세.”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들의 목소리엔 차가운 노기가 서려 있었다.

“이곳은 분명 위상에게 패배한 자들이 갇힌 감옥이지만…….”

“반대로 유일하게, 위상에게 반기를 든 자들이 모인 곳이기도 하지.”

우우우웅…….

그 순간, 마치 그들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단검이 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