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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화 (161/270)

161화

“지금.”

남궁이 깍지를 끼며 손을 들자 클락은 그의 손바닥을 밟고 뛰어 올랐다.

[카아아아---!!!]

그가 공중에서 【오룡권갑(五龍拳甲)】을 휘두르자 권갑에 그려져 있는 문양이 빛을 내며 4마리의 수룡이 뿜어져 나왔다.

퍼억-!!!

콰아아앙……!!!

수룡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석들을 산산조각 내며 사라지자 클락은 공중에서 방향을 틀며 아래로 착지하고는 지체 없이 남궁의 뒤를 따라 달렸다.

“이거…… 얼마나 더 해야…… 합니까?”

처음엔 의욕이 넘쳤던 클락도 이제는 지치는 듯 거친 숨과 함꼐 창백한 얼굴로 남궁에게 물었다.

“이제 절반 왔어.”

“……젠장, 괜히 물어봤네.”

칼 같은 남궁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왼쪽.”

파앗--!!!

하지만 투덜거림과는 별개로, 남궁의 명령에 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면 남궁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반대쪽에서 떨어지는 낙석들을 처리할 뿐이었다.

등을 맡길 수 있는 존재.

남궁에게 있어서 그런 사람이라면 명훈이 있겠지만, 명훈과 클락은 의미가 달랐다.

명훈의 자질과 강함을 믿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남궁이 지켜야 할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클락은 남궁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믿음을 주는 존재였다.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남궁의 전투를 몇 배나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였다.

팟-! 파팟-!!!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듯 남궁은 클락이 산산조각 낸 낙석들 사이를 빠르게 빠져나가며 용암 호수로 진입했다.

* * *

-전 함대 포격 개시!!!

-모든 연합 비행 편대에 알린다. 마물이 제도를 넘지 못하도록 화력을 집중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의 병력까지 합류하며 구성된 연합군은 거암귀의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 미사일을 쏟아붓고 있었다.

콰아아앙---!!

거암귀의 다리에서 어뢰가 터지면서 사방으로 물보라가 일었고, 마물의 머리 위로 수십 대의 전투기들이 일제히 포탄을 떨어트렸다.

콰! 쾅!! 콰가가강……!!

거암귀의 머리 위로 시커먼 연기와 함께 포탄의 불꽃이 일었다.

하지만 거대한 마물의 속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위로 걸어 올라갈 뿐이었다.

부우우우---!!

그 순간, 나팔 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군함들 사이로 파도를 뚫고 마치 중세 시대에나 있었을 법 한 목조선 한 대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뭐지?”

섬에 있던 알렉 트라만이 눈에 띠는 목조선을 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흠…… 글쎄요.”

포탄이 사방에서 터지며 목조선 주위로 물보라가 이는 모습은 당장에라도 침몰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노를 저어라!!”

하지만 갑판의 선두에 서 있는 여인의 외침에, 목조선은 놀랍게도 신기(神技)에 가까운 조타술로 물보라를 피하며 거암귀의 근처로 나아갔다.

부우우우우---!!

다시 한번 나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파도 위로 물기둥들이 솟구쳐 오르더니 그 안에서 뿔이 난 투구와 도끼를 든 전사들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우--!!!

바다 위에 물로 만들어진 전사들이 포효와 같은 외침을 토해 내며 거암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퍽! 퍽!! 퍼퍽--!!

전사들은 사정 없이 도끼로 거암귀의 다리를 후려치며 놈의 다리를 올라타기 시작했다.

“……바이킹?”

명훈은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해인 일족의 계약자가 움직인 모양이군.”

알렉은 물의 바이킹들을 보며 목책의 갑판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삐이-!!

그가 손가락을 둥글에 말아 호각을 불었다.

그러자 커다란 매 한 마리가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전원 공격!!!”

그녀의 외침에 목조선 뒤로 한차례 바이킹들이 더 소환되었다.

“……형님의 영혼 병사보다 훨씬 많잖아?”

우-! 우-!! 우-!!!

무려 100명이 넘는 바이킹들이 목조선 안에서 뛰어내리며 거암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놈의 다리를 묶어라!”

여인의 지휘에 물의 바이킹들이 로프가 달린 도끼를 던져 거암귀의 한쪽 다리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쿠그그그그…….

마물의 몸이 휘청거렸다.

“정말로 막은 건가?”

명훈은 물로 된 밧줄 수십 개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거암귀의 다리를 묶자 알렉을 바라보며 물었다.

“숫자는 많지만 개체의 힘은 남궁의 영혼 병사보다 훨씬 못 미친다. 저 정도로 거암귀의 발을 묶을 수 있을 리가 없어.”

하지만 놀란 명훈과 달리 알렉은 목조선 위에 서 있는 여인을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요르드…… 유니버스 클랜을 구축할 때만 하더라도 스무 명이 고작이었던 것 같은데.’

대리자 일족 계약자들의 힘은 계시자들보다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100명이 넘는 소환수를 부린다면 계시자라 할지라도 쉽게 그녀에게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려서 저렇게까지 소환수를 늘린 거지? 저 정도라면 남소민을 제외하고 현재 남은 대리자 일족의 계약자들 중에 가장 강할 것 같은데.’

마물을 상대함에 있어서 새로운 전력의 등장은 기뻐해야 할 일이었지만, 알렉은 그녀의 비약적인 성장이 어쩐지 의심스러웠다.

‘그녀는 계시자들을 극도로 싫어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쩐 일이지?’

알렉 트라만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도 준비하지.”

“하지만 무기도 없잖아.”

“너는 남궁을 믿지 않는가?”

“……뭐?”

“검을 가지고 온다고 했잖아.”

그는 명훈에게 말했다.

“그럼 가지고 오겠지.”

* * *

“저기로군.”

남궁은 용암 호수 위에 만들어져 있는 작은 제단에서 장화를 발견했다.

▶ 원시 아룡의 팔찌를 사용합니다.

▶ 석화의 보석이 발동됩니다.

쿨타임이 찬 석화의 보석이 팔찌에서 빛을 뿜어내자, 그의 전신에 다시 한 번 단단한 돌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호수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시커먼 연기와 함께 다리에 붙어 있는 돌들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오래 가진 못하겠어.’

그는 서둘러 호수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후웁……!!”

남궁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눈을 질끈 감으며 용암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콰아아아앙---!!!

호수의 용암이 출렁이면서 그 안에서 아직 소환하지 않았던 아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다른 영혼 병사들이라면 용암의 열기에 녹아 버렸겠지만 영웅급인 아스라면…….’

남궁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아스가 자신의 거대한 도끼를 옆으로 눕히자, 남궁은 그것을 밟고 아스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치이이익……!!

영체임에도 불구하고 호수의 열기는 아스에게 대미지를 줄 정도로 강렬했다.

“조금만 버텨줘.”

고통스러울 텐데도 아스는 남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단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두터운 갑옷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파앗-!!!

남궁이 아스의 어깨를 밟고 제단 위로 뛰어올랐다.

▶ 영체의 손상으로 인해 아스테리온의 소환이 강제로 종료됩니다.

▶ 손상된 영체가 회복된 이후 재소환이 가능합니다.

치이이익…….

아슬아슬하게 제단에 뛰어내린 순간 아스의 몸체가 그대로 호수 안으로 녹아내렸다.

“고맙다.”

사라지는 아스의 영체를 향해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그가 제단 위에 안착했다.

제단은 마치 유리처럼 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영령마저 녹이는 용암 한가운데 있어도 멀쩡했다.

“규류.”

[무슨 일이십니까? 설마 히든 아이템을 얻는다며 자랑하려고 저를 부르시는 건 아니시죠? 낄낄.]

그의 부름에 규류가 나타났다.

[남궁 님도 남궁 님이지만 그런 식으로 불기린을 잡을 줄이야…… 지금 대리자 일족 안에서도 난리입니다요.]

“내가 잡은 것도 아닌데 뭐.”

▶ 맹화장(에픽)을 획득하였습니다.

넘버링 45

이름 : 맹화장(猛火長)

등급 : 에픽(최고)

▶ 불기린의 꼬리를 닮은 목이 긴 장화.

▶ 최초의 용 사냥꾼이라 불리는 칼란이 레드 드래곤을 사냥하기 위해 제작한 장화.

▶ 착용자는 장화에 불을 일으켜 화속성 2등급 내성과 공격력을 가진다.

▶ 장화의 소켓에 들어가는 특수한 아이템을 결합하게 되면 장화에 숨겨진 기능을 찾을 수 있다.

▶ 부속 아이템 : 혹한의 숨결

‘장화의 부속 아이템? 이걸로 끝이 아니었나?’

남궁은 제단에서 획득한 장화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한의 숨결…….’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남궁이 알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12번째 지옥문의 보스 몬스터인 서리 귀부인을 잡으면 얻을 수 있는 보구.

“하지만 맹화장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속성인데…… 이걸 쓰는 사람이 있으려나?‘

카니발에는 이런 식으로 조합을 통해 해금시켜야 하는 아이템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숨겨진 기능이라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만약 【혹한의 숨결】과 【맹화장】을 결합했을 때 얻는 부가 효과 대신 2등급 화염 내성과 속성을 잃는다면, 오히려 손해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결국 도박이라는 건데…… 쉽사리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남궁은 장화를 신었다.

화르륵……!!!

▶ 2등급 화염 내성이 지속됩니다.

▶ 2등급 화염 속성이 지속됩니다.

장화의 뒷굽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며 그의 전신을 휘감자 맹렬한 화염과 달리 따스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야, 축하드립니다. 맹화장을 지금 얻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입죠. 그나저나 어쩐 일로 부르신 겁니까? 설마 진짜 자랑하고 싶으셔서 그런 건가요?]

규류는 어울리지 않게 남궁의 주위를 맴돌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정신 사납다. 가만히 있어.”

[네.]

남궁의 한마디에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보따리를 열어줘.”

[오랜만에 찾아주셨네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쓸 만한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찾아보시죠.]

규류가 보따리를 열었고 남궁은 거침 없이 목록들을 내렸다.

“이거.”

넘버링 668.

이름 : 드워프 장인의 광물 곡괭이

등급 : 레어(최고)

가격 : 770,000헤드

▶ 바위 부수기 : 노련한 광부 브록크의 곡괭이. 아무리 단단한 광물이라도 내구도를 모두 소모하여 딱 한 번 완벽하게 부술 수 있다.

▶ 내구도가 최고치가 아닐 시 바위 부수기 불가능.

[……이걸로 뭘 할 생각이십니까?]

규류는 곡괭이를 꺼냈다.

“용암 호수에서도 멀쩡하게 있던 제단이야. 아마 지금 구할 수 있는 광물 중 이것보다 단단한 놈은 없을걸.”

남궁은 【맹화장】이 놓여 있던 제단을 퉁퉁 손가락으로 튕겼다.

[……설마?]

규류는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맞아. 제단으로 검을 만들 거야.”

남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있는 힘껏 제단을 향해 곡괭이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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