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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162/270)

162화

“참악!! 전투 대형으로!!”

동해에서 합류한 제1함대의 광개토대왕급 함선 갑판 위에 선 참악 부대 전투원들이 박효주의 외침에 무기를 들었다.

펑-!! 펑--!! 퍼엉-!!!

기함의 포신에서 울리는 굉음과 함께 날아간 포탄이 거암귀의 머리에서 터졌다.

1함대의 사격을 시작으로 뒤에 대열을 갖추고 있던 다른 국가들의 함선들도 일제히 포격을 개시했다.

[쿠오오오오……!!]

사방에서 터지는 검은 연기를 뚫고 거암귀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공격!!!”

박효주가 품 안에서 단검을 뽑아 공중에 흩뿌렸다.

열댓 개의 단검들이 핑그르르 돌며 거암귀를 향해 날아가자, 그녀가 공중에 떠 있는 단검들을 밟으며 내달렸다.

와아아아아--!!

동시에 참악 부대 대원들이 함선과 함선을 연결하여 만든 임시 다리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전 함선 전진!!”

각각의 함선에 부대원들이 배치되자 함선이 거암귀의 주위를 크게 둘러갔다.

철컥-!!

꽈드드드득--!!!

그러자 함선에 연결되어 있는 사슬들이 마치 그물처럼 거암귀의 다리를 크게 두르기 시작했다.

“모두 자리를 지켜라!!! 강화 시작!!! 절대로 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라!!”

함선들 위에 선 참악 부대 대원들 중 마법계 능력자들이 함선에 연결되어 있는 사슬에 강화 주문을 외웠다.

우우우우웅……!!

사슬의 겉면에 옅은 빛이 흐르기 시작했고,

“닻을 내려!!”

선장의 외침에 커다란 백을 메고 있던 병사들이 갑판의 양쪽으로 흩어지며 자리 잡았다.

철컥-!!

가방을 집어 던지자 가방 안에 있던 둥근 구체에서 사슬이 튀어 나와 공중에서 함선과 연결되고는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만덕수가 만든 마물 포획용 함선 앵커였다.

쿠우우웅……!!

함선 사이드에 10개가 넘는 임시 닻이 박혔고 육중한 함선들은 수면 아래로 반쯤 더 가라앉았다.

“준비 완료!!”

병사들의 외침에 각각의 함선에 흩어졌던 참악 부대 대원들이 빠른 속도로 거암귀를 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봐!! 이건 반칙이잖아!!”

목조선 위에 있던 요르드는 거암귀를 등반하는 참악 부대를 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거대한 함선들에 가려진 그녀의 목조선은 어쩐지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거기서 무리하지 말고 이리로 오는 게 어때.”

그때였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들자 함선에 타고 있던 알렉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당신이로군.”

“전선에 참여한 건 맞지만 저들은 한국의 특수부대야. 나와는 별개지. 그보다 쓸데없이 자리를 차지하지 말고 올라와. 함선을 좀 더 옆으로 붙일 수 있게 말이야.”

“……도대체 뭐가 그리 여유로운 거지? 6번째 마물이 소환되었는데 고작 당신뿐이라니. 다른 계시자들은 뭐 하고 말이야.”

“고작 나뿐이라서 미안하게 되었군. 하지만 다른 계시자들이 움직이지 않은 데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러게 틀어박혀 있지만 말고 밖으로 좀 나와야지.”

“만신전에서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나오고 싶지 않던데? 욕심이 그득해서 서로 싸워대는 꼴이라니.”

“그건 동감.”

“…….”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인정하는 알렉의 태도에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저 위에 남궁이 있다.”

“그래서?”

“밖과 담을 쌓고 살아도 그가 어떤 인간인지는 알겠지. 믿어봐. 그가 거암귀를 사냥할 방법을 가지고 온다고 했으니까.”

“설마 한 사람의 말만 믿고 나머지 계시자들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거야? 미쳤군. 저런 자들이 인류의 영웅이라고 다니고 있으니…….”

그녀의 말에 알렉은 쓴웃음을 지었다.

“영웅 놀이를 한 건 나뿐이다. 나머지 계시자들이 꼭 선하다고 할 순 없지만…… 영웅이라고 말하고 다니진 않았어.”

“그들 편을 드는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당신들 놀음에 사람들만 피해를 입었다고.”

“알아. 후회하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지금 노력 중이야.”

“남궁의 말만 믿고 손을 놓고 있는 게?”

“손을 놓고 있는 건지 아니면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는 두고 봐야겠지.”

알렉은 함께 함선에 타고 있던 명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그녀에게 말했다.

[쿠우우우우우우---!!!]

그때였다.

거암귀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치켜세우며 뱃고동 소리같이 커다란 울림을 터뜨렸다.

캉……! 카캉……!!!

투두두두두두두---!!!!

거암귀가 발을 내딛자 녀석을 포박하고 있던 함선의 사슬들이 일제히 끊어지기 시작했다.

“큭……!!”

사슬을 끊은 거암귀가 거대한 다리를 들어 올렸고, 요르드의 머리 위로 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어서!!”

알렉의 외침에 그녀가 허리에 차고 있던 채찍을 꺼내 있는 힘껏 휘둘렀다.

콰직-!!!

거암귀의 발에 목조선이 산산조각 나버리며 흩어졌다.

진짜 나무가 아닌 술법으로 만들어진 배는 충격과 함께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알렉의 팔에 감긴 채찍을 타고 그녀가 함선의 갑판 위로 올라섰다.

“빨리 배를 빼라고 해! 내 롱쉽(Long Ship)이 버티지 못할 정도면 여기 있는 함선들은 산산조각 날 거라고!”

“사슬이 끊어졌다!! 배를 더 가까이 붙여!!”

하지만 요르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알렉의 명령에 함선들은 거암귀의 다리 사이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미쳤어?”

“너무 높아.”

“……뭐?”

“머리까지 올라가기엔 너무 높다고.”

“배리어 차지 완료! 준비되었습니다!!”

알 수 없는 알렉의 말과 함께 병사의 외침이 들리자 요르드는 고개를 돌렸다.

“가동 개시!!”

우우우우웅---!!!

갑판에 장착되어 있는 장치에 전원이 들어왔고, 놀랍게도 함선을 감싸는 커다란 실드가 생겨났다.

“……마법? 뭐야, 덴 하울도 온 거였어?”

“주위를 봐봐. 아무리 대마법사라 할지라도 저 많은 수의 함선들을 모두 실드로 감쌀 순 없을걸.”

“그럼 어떻게 된 거지?”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지. 카니발이 주는 힘이 아닌 인류가 스스로 터득한 무기.”

그제야 요르드는 각 함선마다 배리어를 생성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잘못 알았다. 인류야말로 나 같은 계시자보다 더 강한데 말이야.”

콰아아아앙---!!!

거암귀가 실드로 감싸인 함선을 밟았다.

요르드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마물의 발바닥을 보며 본능적으로 움찔거렸다.

“……!!”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배를 산산조각 내버린 거암귀의 발에도 함선의 실드는 부서지지 않았다.

“전속력 전진!!!”

함선이 미끄러지듯 거암귀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가자 거암귀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배리어 해제!! 함포 발사!!”

실드가 사라지자 함선의 함포에서 일제히 포탄이 쏟아졌다.

쾅-!! 콰가가강--!!!

거암귀의 배 아래로 들어간 함선들의 공격에 발이 미끄러진 듯 중심을 잃은 거암귀의 몸이 그대로 바닷속으로 처박혔다.

에에에에엥……!!

“꽉 잡아!! 충격에 대비하라!!!”

거암귀가 쓰러지며 거대한 파도가 만들어졌고, 함장의 외침과 함께 함선들이 파도에 휩쓸려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살려줘!!”

그야말로 쓰나미와 같은 파도였다.

대비를 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섬의 크기만 한 거암귀가 쓰러졌으니 제아무리 함선이라 하더라도 버틸 수가 없었다.

뿌우우우우……!!

그 순간, 요르드의 휘파람과 함께 소환된 바이킹들이 휘청거리는 함선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파도에 휩쓸려 뒤집어질 뻔했던 함선들은 그녀의 힘에 간신히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덕분에 살았군.”

“먼저 도움을 받았으니까.”

알렉의 인사에 그녀는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제 어쩌지? 놈을 쓰러뜨리긴 했지만…… 이 정도 공격으론 어림없어 보이는데.”

“기다려 봐. 남궁이 답을 가지고 올 거니까.”

“또 그 사람인가?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신들에게 거암귀를 맡겨놓고 자리를 비운 걸 봐서는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데.”

“나에 대한 믿음은 필요 없다. 내가 저들을 믿고 있으니까 자리를 비울 수 있었던 거지.”

“……!!”

그때, 요르드는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유리처럼 투명한 기다란 막대를 짊어진 채 나타난 남궁의 모습에 그녀는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받아.”

하지만 그녀에겐 관심도 없는 듯 남궁은 들고 있던 막대를 명훈에게 던졌다.

“이게 뭡니까?”

“무기를 구해 온다고 했잖아.”

“설마 이제 형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튼튼한 검입니까?”

명훈은 남궁이 던진 막대를 바라봤다.

기다랗게 잘려진 그것은 아무리 봐도 검이라고 불리기엔 힘들어 보였다.

한데 유리처럼 투명한 막대기는 함선의 갑판에 힘껏 내려쳐 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가벼우면서 무겁다.’

명훈은 신기한 듯 유리 막대기를 몇 번 휘둘렀다.

들고 있는 무게 자체는 그리 무겁지 않은데 내려칠 때마다 뭔가 특이한 기분이 들었다.

‘막대기가 꼭 공기를 빨아들인다고 해야 할까?’

그로 인해 내려칠 때 속도가 붙었다. 명훈은 그 변화가 흥미로운 듯 막대기를 다시 들어 올렸다.

“한 번만 더…….”

그가 막대기를 다시 내려치려는 순간 남궁이 그의 팔을 잡았다.

“조심하는 게 좋을걸. 잘못하면 거암귀를 잡는 것이 아니라 우리까지 잡을 수 있으니까.”

“에이, 형님도…… 제가 어떻게…….”

“그건 막대기가 아니라 용암 호수에 있는 제단의 귀퉁이를 자른 거야. 겉보기엔 유리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광물이지.”

“그런 것 같네요.”

“검의 재료로 쓰는 것이긴 하지만…… 지금 제련을 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니까. 그래도 거암귀 정도 잡는 것은 문제 없을 거다.

남궁은 신기한 듯 막대기를 바라보는 명훈을 향해 말했다.

“거암귀 정도라니···.”

요르드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들고 있어봐.”

남궁이 【계명검】을 꺼내자 명훈은 황급히 투명한 막대기를 위로 치켜세웠다.

“제단은 후아석이라는 광물로 만들어졌어.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재료지.”

그의 말에 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느꼈을 거야. 단단하다는 것 이외에도 후아석의 특징이 하나 더 있다는 거.”

캉-!!

남궁의 검이 명훈의 막대기에 부딪혔다.

“……!!!”

그 순간, 놀랍게도 명훈이 들고 있던 막대기에서 불꽃이 화르륵 뿜어져 나왔다.

“이, 이게 무슨……?”

“후아석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하지만 일정한 충격을 받으면 충격에 비례해서 머금고 있는 것을 뱉어내거든.”

“그 말은…….”

“용암 호수의 제단이 만들어진 건 언제인지 알 수 없어. 10년? 100년? 모르지. 어쩌면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일지도.”

꿀꺽-

명훈은 타오르는 막대기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받아.”

남궁은 입고 있던 코트와 장화를 그에게 건넸다.

“보여줘라.”

거암귀의 머리에서 뛰어내린 남궁은 하늘에 떠 있는 드론들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다.

“네.”

꽈악-

막대기를 움켜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태산검(泰山劍) 최명훈.

이날을 기점으로 세계연합장에 대한 논란은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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