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자, 자! 집중!! 1조는 거암귀의 오른쪽을 맡는다. 꼬리부터 차근차근 잘라내! 해체술이 없는 녀석들은 잘라낸 부위를 나르도록 해라. 거기 너희들은 나를 따라오고.”
머리가 반으로 쪼개진 거암귀의 주위로 인양선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선박이 마물 근처에 다다르자 장길수와 마장동 연합의 협회원들이 일제히 마물의 등 위로 뛰어올랐다.
“아직 마물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2조는 주위를 경계하고 나머지는 모두 작업을 시작한다!”
“넵!!”
협회원들이 거암귀의 꼬리에 차근차근 날붙이를 박아 넣기 시작했다.
“끙…… 끄응…….”
“이게 왜 안 되지?”
하지만 날이 들어가기는커녕 낑낑거리는 협회원들을 보며 장길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비켜봐.”
푸욱-
그는 평상시에 사용하던 본 나이프가 아닌 커다란 손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가 있는 힘껏 비늘 사이에 도끼를 때려 넣자 단단한 껍질이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오오…….”
“역시 형님이십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서둘러. 저 커다란 녀석을 해체하려면 며칠은 걸릴 것 같으니까.”
도끼를 잡고 있는 그의 오른팔은 비정상적으로 두터웠고, 녹색 빛이 남아 있는 피부는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진웨이의 독구름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이었다.
다행히 주사인의 연구 덕에 독구름에 중독된 사람들을 해독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들은 원래의 모습으로 완벽히 돌아가게 할 수는 없었다.
신체에 남아 있는 독기를 한 곳에 응축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고, 결국 장길수는 그것을 그의 오른팔에 집중시켰다.
그 덕분에 괴물과도 같은 팔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는 그것이 마음에 드는 모습이었다.
“껍질은 내가 부순다. 조각 하나까지도 남기지 마라!!”
“네!!!”
장길수의 외침에 협회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거암귀의 살점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 거암귀의 꼬리 살점을 섭취하였습니다.
▶ 거암귀의 특성 : 물리 방어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는 뜯어낸 비늘 안쪽의 살점을 마치 육포처럼 씹어대며 거암귀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괴력이로군요. 우리 쪽 전문가들은 비늘 한 조각을 뜯어내는 것도 힘겨워하는데 말입니다.”
“음?”
장길수는 거암귀의 등껍질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누구시오?”
“반갑습니다. 러시아에 소속되어 있는 마물 해체팀인 [메머드]라고 합니다. 팀장인 멘시코프입니다.”
새하얀 제복을 입은 훤칠한 키의 남성이 장길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
하지만 장길수는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잘라낸 거암귀의 살점을 질겅질겅 씹었다.
“무례한…….”
멘시코프의 뒤에 있던 대원이 장길수의 그런 반응에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일이오? 거암귀 해체는 한국에서 독점으로 맡았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여기서 나온 재료는 모두 네스트(Nest)에 납품될 거니까 눈독 들일 생각 하지 마쇼.”
그렇게 말한 장길수는 멘시코프에게 떠나라는 듯 손을 뒤로 내저었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연합에 들어가는 물자는 [마장연합]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걸요. 저희가 원하는 건 거암귀가 아닙니다.”
멘시코프는 뒤에 서 있던 부하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듯 뒤로 밀며 장길수에게 대답했다.
“어차피 나눠 주신다 하더라도 장길수 씨와 같은 해체 능력도 없어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무슨 일로 온 거요?”
“저희가 노리는 건 마물이 아니라 사람이거든요.”
“흠?”
장길수는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저희 팀의 고문으로 영입을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세계를 위해서 장길수 씨의 해체 능력을 널리 알려주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멘시코프는 명함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런 거 줄 시간에 잘라 놓은 살점들이나 나르쇼.”
장길수는 대충 작업복 주머니에 명함을 찔러 넣고는 도끼를 들었다.
* * *
“덕수 형님께도 왔었소?”
“흐음, 러시아 쪽은 아닌데…… 네스트 본부로 몇 사람들이 왔더군. 내게 온 사람은 인도라고 하던데.”
“인도요?”
“원래 그쪽에 기술 좋은 재인들이 많으니…… 나 만 아니라 수혁이한테도 인사를 하더군.”
거암귀가 함락되고 일주일이 넘도록 해체 작업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연합 본부로 돌아온 장길수는 만덕수의 이야기에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혁이 녀석에게까지 접선을 했단 말입니까? 이거 좀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전투 능력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폭식을 비롯한 무구 제작과 도구 제작 스킬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능력이었다.
“글쎄. 그들의 말로는 서로 지식을 공유하자더군. 사실 자네의 폭식이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들의 능력은 유일한 건 아니니까.”
만덕수는 불기린의 이빨을 녹인 용액을 거푸집에 천천히 밀어 넣으며 말했다.
“제작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야 각 국가마다 수백은 될걸세.”
“에이, 그래도 그런 허접한 녀석들과 형님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이번에 거암귀를 잡을 때 쓴 함선의 사슬도 형님이 제작하셨잖소.”
“내 능력보단 오히려 사인이가 만든 배리어 장치가 훨씬 더 대단하지.”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형님 능력이 대단찮으면 인도 녀석들이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모르지. 겉으로 보기엔 나보다 더 많은 제작 스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치이이익……!
거푸집 안에 들어 있는 쇳물이 수증기를 내뿜으며 식어가자 만덕수는 만들어진 날을 꺼내어 재빨리 망치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나 같은 노인네의 고리타분한 능력을 왜 관심 있어 하는지 모르겠구먼.”
“고리타분이요? 그놈들이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본 거지요. 대한민국 최고의 도구 장인이지 않습니까.”
장길수의 말에 만덕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저 있는 것을 보강할 뿐이지.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못함세. 기발한 아이디어는 젊은이들의 몫이지.”
만덕수의 망치가 움직일 때마다 서서히 검날이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창조도 기초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기교가 뛰어나다고 해서 이런 검을 만들어낼 순 없죠.”
“이게 누군가. 세계연합장 아니신가.”
검을 두들기던 만덕수는 명훈의 등장에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낯간지럽게 그런 소리 말아주십시오. 남궁 형님께서 깔아 놓은 판에 그냥 서 있기만 한 겁니다.”
“그런 소리라니. 거암귀를 일격에 죽인 영웅인데 부족한 게 아니지.”
명훈은 만덕수의 칭찬이 아직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형님께서 주신 후아석 때문이죠. 오히려 저는 덕수 할아버지께서 더 대단하신데요. 후아석을 다루는 방법을 찾으셨잖습니까.”
조금 전 만덕수가 녹인 쇳물은 다름 아닌 남궁이 잘라 온 제단의 잔해였다.
“됐네. 이미 자네가 이 안에 들어 있는 불꽃을 모두 소진했지 않은가. 그냥 광석에 불과한데 못 두들길 이유가 없지.”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거암귀를 태워 버릴 정도로 엄청난 화염을 머금고 있었던 후아석을 제련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말게. 그나저나 조금 전에 길수가 한 얘기 말일세. 연합이 창설되고 난 뒤에 여기저기 생산 능력을 가진 자들을 영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뭐, 아직 연합의 규정이 만들어 진 것도 아니고…… 클랜을 창설 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니까요.”
명훈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처럼 알렉이 유니버스 클랜을 창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참악부대와 같은 국가 관할부터 개인 클랜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유니버스 클랜과 달리 다른 부대와 클랜들은 계시자의 부재로 인해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는 곳이 없었다.
“그래도 찜찜하단 말이야. 꼭 연합의 능력자들을 스카우트하려는 것 같거든.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게 좋을 거야.”
“설마 형님이 계신데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장길수의 말에 명훈은 괜찮다는 듯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것도 맞았다.
‘스카우트라…….’
연합 소속이라고 해서 꼭 이곳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규제는 없었다.
애초에 세계연합인 네스트가 만들어진 이유도 여러 단체와 클랜을 규합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니까.
“조금 알아보겠습니다.”
“그러게. 내 검이 완성되면 연락주지.”
“알겠습니다.”
명훈은 만덕수의 공방을 나서며 다시 한번 장길수에게 물었다.
“그 사람들이 어디 소속이라고 하셨죠?”
“덕수 형님을 찾아온 사람은 인도 쪽이었는데 클랜의 이름은 얘기 하지 않았던 것 같고…… 내게 말을 건 건 러시아의 마물 해체팀, [매머드]라고 하더라.”
“감사합니다.”
단순한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네스트 창설 이전까지 잠잠했던 클랜들이 수면 위로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일일까 명훈은 의심되었다.
‘시대가 한 번 변혁을 맞이하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
이제 그 혼란의 중심에 단순히 계시자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도착하셨습니까.”
“음.”
공방을 지나 연합 본부의 회의실로 들어오자 안에 있던 몇몇의 사람들이 그를 향해 인사했다.
“논공 보고서는 완성되었습니까.”
“네. 이번 토벌에 있어 각 국가의 기여도에 따라 거암귀의 시체를 분배하였습니다.”
참악부대에서 파견 온 국정원 팀원들이 명훈에게 서류를 건넸다.
그가 서류를 받자 회의실에 앉아 있던 각국의 대변인들이 눈을 빛냈다.
“반갑습니다. 네스트 연합장, 최명훈입니다.”
명훈은 회의실에 모여 있는 그들의 눈빛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거참…… 앞으로 저런 사람들과 다퉈야 하는 건가. 형님께서 정말 무거운 일을 맡기셨다니까.’
“이번 거암귀 토벌 작전에 참가한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각국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탈칵-
명훈이 팀원에게 눈짓을 하자 프로젝터의 화면이 바뀌었다.
“거암귀의 해체는 현재 [마장연합]에서 진행 중입니다. 거암귀는 훌륭한 재료이며 보시는 바와 같이 각국에 균형 있게 배분될 것입니다.”
“재료를 나눠 주시는 연합장님의 배려에 오히려 저희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일전에 덴 하울과 함께 왔었던 밀러드가 미국 대변인의 직책으로 명훈에게 말했다.
“당연한 일이죠. 거암귀의 시체를 통해 제작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저희 네스트 공방에서 연구 중이며, 레시피를 공유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그것엔 관심이 없는 듯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명훈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연합장님께서도 아실 겁니다. 거암귀의 시체는 물론 훌륭한 재료지만, 저희가 이곳에 모인 진짜 이유는 하나라는 것을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대변하듯 밀러드가 말을 내뱉었다.
“압니다.”
탁-
그 순간, 명훈이 단상 위에 뭔가를 내려놓았다.
“거암귀에서 나온 히든 보상.”
3개의 던전 지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