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다들 아시다시피 각 문의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면 자동적으로 각지에 던전이 생성되었었습니다.”
명훈은 눈을 반짝이는 각국의 대리인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 던전은 다릅니다. 양피지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면 공략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던전의 개방은 1회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만큼 위험하고 중요한 보상이 있는 던전이라는 뜻이라 생각됩니다. 앞선 던전들은 카니발을 준비하는 연습용에 가깝다면, 이번 던전은 훈련이 아닌 진짜 공략에 무게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밀러드의 말에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분명 이 3개의 던전은 쉽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명훈의 반응에 밀러드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히든 던전의 지도를 분배한다면 계시자가 있는 나라들로 선별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아니, 잠…….”
“욕심 이전에 안전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밀러드의 말에 얼굴을 구기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특히 미국과 더불어 가장 많은 해군을 지원했던 러시아 측에서는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제가 보기엔 그 말씀이야말로 욕심이 그득해 보이는 말 같은데요.”
“……네?”
하지만 그의 말에 명훈은 오히려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게 안전을 따진다면 3개의 던전 모두 남궁 이사님께서 공략 하시는 게 낫겠군요. 굳이 여러분들과 상의를 할 필요 있을까 싶습니다.”
“그건…….”
밀러드는 명훈의 대답에 짐짓 당혹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계시자들 중 현재 남궁 이사님을 대적할 만큼의 실력자가 없다는 건 모두 인정하실 겁니다.”
“…….”
“저희 네스트는 단순히 던전의 공략에서 얻는 이익만을 따지지 않기에, 이곳에 여러분들을 모신 겁니다.”
‘그저 남궁이 세운 허수아비라고 생각했는데…. 마냥 쉬운 상대는 아니란건가.’
그들은 명훈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의 의미를 안다는 듯 명훈 역시 그들을 한 번 훑었다.
“카니발은 전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소환되는 마물을 상대로 단순히 한 곳만 강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희들의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던전의 기회를 누구에게 주실 건지요.”
“자세한 사항은 남궁 이사님께서…….”
“이사란 직함은 낯간지럽다. 부르지 마라, 명훈아.”
그때였다.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들어온 남궁의 등장에 사람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명훈과는 태생적으로 다른 위압감으로 자신들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저벅- 저벅-
남궁의 발걸음이 움직일 때마다 그가 자신들의 어깨가 밟는 기분이었다.
“다들 이번에 새로이 얻게 된 3개의 던전이 탐나는 모양인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자격 같은 건 없다. 원하는 자가 있다면 누구든 가져가도 된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저희가…….”
“아니, 우리도!!”
남궁의 말에 회의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단.”
행여나 기회를 놓칠세라 너도나도 손을 드는 대리인들을 향해 남궁이 말했다.
“던전의 개방은 공략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단 한 번인 만큼. 만약 공략에 실패했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치러야겠지.”
“상응하는 책임이라면…….”
“던전의 보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있을 수많을 카니발에 대응할 동력이 될 터. 실력도 되지 않는 이가 욕심에 그 기회를 날려 버리는 건 목숨을 내놓겠다는 뜻이겠지.”
남궁은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자들은 특별히 내가 직접 처리할 거고, 그들을 고용한 국가 역시 책임을 피해 가진 못할 것이다.”
꿀꺽-
사람들은 남궁의 한마디에 마른침을 삼켰다.
‘저 사람이라면 국가급 전력과도 맞먹으니…… 아니, 그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
‘그런 자에게 나라 하나 없애는 것 정도야…….’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별반 다르지 않았던 듯, 조금 전 던전 지도를 달라고 아우성칠 때와 달리 이제는 전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결정을 내리면 좋겠군.”
“……어디 가십니까?”
남궁은 명훈이 내려놓은 3개의 지도 중 하나를 들어 올리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던전 공략.”
* * *
“어떻게 생각해?”
3개의 지도 중 하나를 가지고 온 남궁은 지도를 내려놓으며 라테아에게 물었다.
[흐음…….]
카니발을 경험했던 요란 일족의 수장인 그녀는 남궁의 물음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도가 3개란 말이지.]
“맞아. 그것도 거암귀를 사냥하고 나왔지.”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원하겠지?]
“그렇게 해줘.”
라테아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까지 카니발의 공략을 잘해도 너무 잘한 모양이야. 뭐…… 당연한 거지만 이 지도가 드랍된 건 당신 때문이겠지.]
“역시 그건가?”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래. 위상들은 어떻게 해서든 참가자의 수를 줄이고 싶은 모양이야. 지금 상황에서 이걸 공략하러 들어가는 자는…….]
그녀는 남궁을 바라봤다.
[무조건 죽는다.]
“역시…… 번개나락의 지도가 맞나 보군.”
하지만 의미심장한 그녀의 경고에도 남궁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 반응은 뭐지? 설마 공략할 생각은 아니겠지. 설령 네가 번개나락을 경험해 봤다 한들…… 아니, 경험해 봤다면 더 잘 알 텐데. 그게 없으면 정상에 갈 수 없다는 거 말이야.]
“알지. 9번째 보스 몬스터인 번개장어의 바늘이 없으면 나락에서 떨어지는 낙뢰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는 거.”
3개의 던전 지도는 사실 거암귀를 잡고 난 뒤 나올 물건이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14번째 보스 몬스터를 잡고 난 뒤에나 나올 보상 일 텐데…….’
그걸 6번째 문의 보상에 넣어뒀다는 건 참으로 얄팍한 술수가 아닐 수 없었다.
보상처럼 보이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보상이 아니라 함정이라 할 수 있을 터.
“공략이 불가능한 던전은 그냥 공략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문이 열리는 것과 다르게 던전은 필수사항은 아니니까.”
[그걸 아는 녀석이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남궁은 쥐고 있던 양피지를 구기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 이런 저급한 수만 쓸지…… 위상이란 놈들의 머릿속도 하찮군. 안 그래?”
라테아는 자신을 향해 묻는 남궁의 물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게 묻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냐. 레오릭의 딸아.]
[……!!!]
그 순간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 일곱 뱀의 주인!]
[너무 경악스럽게 놀랄 필욘 없잖느냐. 나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요르는 라테아를 향해 피식 웃었다.
[우(无)의 탑에서 너희 둘이 하는 짓은 꽤나 볼만했다. 머저리 같은 위상들이 서로 싸움을 부추기려 했던 모양인데, 오히려 서로 손을 잡았으니 녀석들로서는 골치 아프게 되었지.]
“하지만 너도 잘한 건 없어. 위상들이 진짜 노린 건 나를 죽이라는 일족들의 퀘스트가 아니라 그 안에 봉인되어 있던 란(亂)이었잖아.”
핀잔을 주는 남궁이었지만 요르는 오히려 그런 그를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 역시 위상이니까. 녀석들이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막을 순 없어. 그래도 잘 눈치채지 않았더냐.]
란이 있는 문을 열기 직전 자신이 준 퀘스트를 끝내야 한다는 요르의 말이 없었더라면 남궁은 순간 흔들렸을지 모른다.
“그건 맞아. 네가 굳이 나를 찾아와서까지 그 말을 왜 했을까 의아했지. 너는 계시자를 붙잡는 성격은 아니니까.”
[조마조마했다고. 설마 네가 란(亂)과 계약이라도 맺을까 말이지.]
“그럴 리가. 우(无)야 그렇다 쳐도 어째서 위상의 태초라 불리는 란(亂)마저 봉인이 되어 있는지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니까.”
[그런 의심이 내가 너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지.]
“그나저나 무슨 일이지? 이 말도 안 되는 던전에 대해 핑계를 대려고 온 건가?”
[그건 핑계를 댈 것도 없다. 카니발 보상의 순서야 위상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니까. 우(无)의 탑을 연 건 치졸한 방법이지만 그건 달라.]
“내 눈엔 둘 다 똑같아 보이는데…….”
[공략이 불가능한 던전은 그냥 공략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던전의 지도는 줬지만 우린 그걸 꼭 공략하라고 하지 않았다.]
요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궁의 표정을 살폈다.
[네 말대로 보관하고 있다가 천천히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 만.]
그의 웃음이 어쩐지 남궁과 닮아 있었다.
[그럴 생각 없겠지. 위상들은 카니발의 진행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으니까. 어렵다는 건 그만큼 더 좋은 보상이 따른다는 것이고.]
“잘 아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무슨 짓을 해도 나는 너희가 내건 보상을 모두 뜯어낼 거야.”
[방법은 생각해 봤느냐.]
“글쎄…… 번개나락을 공략하려면 2등급 이상의 뇌(雷) 속성 내성이 필요한데, 지금 상황에서는 구할 방법이 없지. 야차 보따리에 판매되는 내성 비약도 3등급까지니까.”
남궁은 요르를 바라봤다.
“미풍의 어머니의 축복이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뭣하면 성물을 가지고 한 번 더 협박해 볼까.”
[아서라. 그게 먹힐 리가 있겠냐. 그녀의 계시자가 누군지는 너도 잘 알잖아. 성물로 협박하면 그녀는 자신의 계시자를 가지고 널 겁박할걸.]
빠득-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그의 예상대로 위상들은 자신의 회귀를 엿본 모양이었다.
[성물은 최후의 최후까지 아끼는 게 좋을 거다. 네가 정말로 그들에게 제대로 엿을 먹이고 싶다면 말이야.]
“네 성물도 내게 있는데 그런 얘기를 잘도 하는군.”
[성물을 가지고 나를 협박하기보단 날 회유하는 게 얻어먹을 것이 더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아직 열어보지 못한 삼독문의 문이 2개나 더 있잖냐.]
남궁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물론 배신할 낌새가 보인다면…… 그 전에 내가 널 죽여 버리겠지만.]
“뭐, 그건 마음대로. 그래도 죽여 버릴 생각으로 온 건 아닐 테고. 할 말이 뭐지?”
[하여간 겁박도 먹히지 않는 놈이니…… 매번 도와줘도 고맙다는 소리를 안 하지.]
“……?”
[내 친히 너를 위해서 조언을 하러 온 것인데 말이야.]
요르는 남궁이 내려놓은 양피지를 한 바퀴 돌리며 말했다.
[던전엔 분명 입구가 있지만, 꼭 그 입구로 들어갈 필요는 없지.]
그의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남궁의 머리를 때렸다.
[너도 알 거다. 번개나락의 입구는 매서운 낙뢰의 지옥이지만…… 그 뒤편은 구름 한 점 없는 들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지.]
“하지만 던전을 개방하면 시작점은 결국 입구일 수밖에 없잖아. 낙뢰의 지옥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는걸.”
[글쎄. 불가능한 것이라면 애초에 네가 이번 던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겠지. 솔직히 말해봐라. 네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 말이다. 그게 내가 말한 것과 전혀 관계가 없느냐.]
요르의 물음에 남궁은 피식 웃었다.
“아니. 과연 눈치가 빨라.”
설령 자신의 회귀를 엿보았다 한들 위상들조차 그가 이것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진 못할 것이다.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열 수 있는 던전의 뒷문.
블랙 루트(Black Route)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