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뭣들 하냐!! 밥 먹기 싫어? 빠릿빠릿하게 안 움직이냐고!!”
촤악-!! 촤르르륵……!! 착!!!
검은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산 중턱엔 방독면을 쓰고 채찍을 휘두르고 있는 병사들이 곳곳에 보였다.
“마물들에게서 너희를 지켜주는 게 누군지 잊지 마라!! 할당량을 못 채우는 놈은 밤까지 할 줄 알아!!”
산을 오르는 아이들 중 몸이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갈비뼈가 보이는 앙상한 몸. 당장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아이들이 잘게 부순 검은 바위들을 나눠 들며 힘겹게 걸음을 걷고 있었다.
툴썩-
몇몇 아이들이 부들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 새끼들이! 빨리 안 일어나!!”
기다렸다는 듯 방독면을 쓰고 있던 자들이 채찍으로 아이들을 후려쳤다.
고대 노예들의 노역장을 방불케 하는 그 모습은 차마 두 눈으로 지켜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쿨럭……!!”
쓰러진 아이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입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고, 채찍의 고통은 이미 아무런 감각도 없는 듯 초점 없는 눈으로 흐르는 피를 바라볼 뿐이었다.
퍼억-!!!
하지만 방독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주저앉아 있는 아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잔혹하게 그들을 발로 밟았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그들의 가슴엔 놀랍게도 경찰 배치가 달려 있었다.
“뭘 보고 서 있어! 안 움직여? 이 새끼들아!!”
경관들의 호통 소리에 아이들은 다시금 검은 바위를 나르기 시작했다.
철컥-
“후우…… 이것도 못해 먹겠군.”
조금 전 피를 토하던 아이를 신나게 밟아댔던 경관은 산 아래에 마련된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서며 신경질적으로 방독면을 벗어 던졌다.
치익! 꿀꺽- 꿀꺽-
산은 열기를 뿜어내고 있어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컨테이너 박스 안에 있는 맥주는 목이 따가울 정도로 시원했다.
“후아, 그래도 이 맛에 하는 거지.”
남자는 땀을 닦아내며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맛있나? 애들 패고 먹는 술이?”
“……!!!”
그 순간, 경관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섰다.
“앉아.”
하지만 그의 허벅지에 박힌 단검에 힘을 잃고 그대로 뒤로 다시 자빠졌다.
촤르륵……!!
경관의 목에 얇은 낚싯줄이 감겼다.
“커컥!!”
줄을 잡아당기자 낚싯줄은 순식간에 목을 조여왔다.
“내 말 잘 들어. 디에고란 놈은 어디 있지?”
“너 이 새끼…… 누구야? 어디서 보낸 놈이냐!!”
“떠드는 거 보니 살 만한가 보군.”
꽈드드득……!!
조금 더 줄에 힘을 주자 줄이 점점 살점을 파고들어 그의 목에 붉은 피가 주르륵 흘렀다.
“사, 살려주십시오!!”
위협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났다. 경관을 포박하고 있던 줄이 실망스럽다는 듯 힘을 잃고 떨어졌다.
“헉, 헉, 헉…….”
목이 잘려 나갈 것 같았던 기분에 남자는 아직 붙어 있는 자신의 목을 움켜잡으며 숨을 거칠게 내뱉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흑요석을…… 캐고 있습니다.”
“저 바위를 말하는 건가.”
“마, 맞습니다. 저걸 정제하면 룬을 얻을 수 있어서요.”
그다지 비밀은 아닌 듯, 이미 여기 오기 전에 아이에게 들었던 내용에 남기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위들에 독성이 있던데 잘도 경찰 배지를 달고 이런 짓을 하고 있군.”
“하하…… 어쩔 수 없잖습니까. 저희도 먹고살아야죠. 룬을 채취 하는 게 아니었으면 이미 굶어 죽었을 겁니다.”
“정부는 뭘 하고?”
경관은 남기철의 물음에 오히려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정부요? 이거 다 정부가 시키는 일인뎁쇼.”
“미친놈…… 지금 너희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나 있나?”
“알다마다요. 그런데 우리가 없었으면 여긴 망해도 진즉에 망했을 곳입니다. 뒈질 놈들 조금이라도 살려놨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콰앙-!!
그 순간 남기철은 경관의 머리를 거칠게 탁자 위로 내리쳤다.
“컥!!!”
“뭐? 이 새끼들이 하는 짓은 카니발이 열리나 안 열리나 똑같군. 누가 누굴 보호해?”
버둥거리는 경관을 짓누르며 그는 간신히 화를 참는 듯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였다.
짓누르고 있던 경관의 목과 몸이 가볍게 분리되자, 몸을 기대고 있던 남기철이 순간 휘청거렸다.
“나이가 드니 쓸데없이 말이 많아지셨나? 저런 놈들에게 설교를 해서 뭐 하겠다고…….”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남기철은 굳은 얼굴로 손에 들려 있는 경관의 잘린 머리를 대충 던져 버리며 남궁을 바라봤다.
“뭐가 힘을 쓰지 말고 뭐가 당신만 보라는 겁니까. 이런 놈들에게 쓸데없이 시간이나 낭비하고 있다니.”
“……멋대로 죽이는 건 여전하구나.”
“사람 같지 않은 놈들이니까. 밖에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건 안 보이시나 봅니다.”
남궁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내가 군인이 된 건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지 짐승을 살리려는 게 아니었어.”
“…….”
“당신은 짐승을 살리려고 가족을 버렸지만.”
남기철은 대답 대신 쓰러진 경관의 몸을 뒤졌다. 그의 허리에 채워져 있던 카드키를 뜯어내었다.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 그때의 이유를 설명해 주마.”
“들을 생각 없습니다. 그 ‘언젠가’가 벌써 10년도 더 지났는데 아직도 때가 안 되었다면 말할 생각이 없는 거겠지.”
남궁은 그의 손에서 카드키를 빼앗듯 낚아채며 고개를 돌렸다.
솨아아아악……!!!
그 순간 영혼 병사들이 소환되었다.
“너…….”
“시간 낭비할 여유 없어. 여긴 거암귀를 사냥하고 나온 3개의 히든 던전 중 하나야. 그 말은 다음 문이 열리기 전에 2개의 던전을 더 공략해야 한다는 말이라고.”
소환된 영혼 병사들이 한순간 사라졌다.
“……컥!!!”
그러고는 저 멀리 컨테이너 밖에서 산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보초들의 등 뒤로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그들을 제압했다.
“이제 됐어. 애초에 기대를 한 내가 바보 같았지. 쓸 수 있는 힘을 쓰지 말라는 것만큼 바보 같은 소리도 없는데 그 말을 듣고 있었어.”
남궁이 산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했다.
[좀 실망인데. 네가 하도 거창하게 얘기해서 기대를 했는데 말이야.]
요르의 목소리였다.
[노인네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했던 게 실력이 좋아서인가 했더니, 이빨 빠진 호랑이였구만.]
남궁은 비아냥거리는 그의 말을 애써 들리지 않는 척했다.
[하여간 생긴 거답지 않게 귀엽다니까. 내게 그렇게 으름장을 먼저 놓았던 게, 자기가 직접 찾아가기 위해서였다니.]
‘좀 조용히 하지? 위상이란 녀석이 그리 할 일이 없나? 사사건건 남의 일에 관여나 하고.’
[남이라니. 너는 내 계시자라고. 그리고 딱히 할 일도 없어. 네가 너무 알아서 잘 살아남는 바람에 뭐 할 게 없거든.]
요르가 그를 놀리듯 말했다.
[하지만 묘해. 이능의 힘을 놓고 본다면 능력은 보잘것없는데…… 블랙 루트를 공략했다라. 뭔가가 더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그게 무슨 뜻이야.’
[모르지. 그걸 알아내는 건 네 몫이니까. 여튼, 기대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남궁은 사라지라는 듯 대충 허공에 손을 저었다.
“그게 네 위상이냐.”
“……뭐?”
“조금 전에 네게 나불대던 목소리 말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전 네게 말을 걸었잖느냐.”
‘뭐지? 설마 위상의 존재를 느낀 건가?’
남궁은 그의 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표정을 감추는 게 서툴구나. 그렇게 놀랄 필요도 없다. 네게 쿠후란을 소개해 준 게 나라는 걸 잊었느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였을 남궁의 얼굴이었지만 남기철은 미세한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정식으로 배운 건 아니지만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조금씩은 익혔거든.”
그는 컨테이너를 나와 입구에 쓰러져 있는 보초들을 치우며 말했다.
“카니발에 있기 전에도 세계 곳곳엔 능력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좋은 정보원이 되고 때로는 전황을 뒤집는 열쇠가 되기도 하지.”
“…….”
“네가 그들과 저절로 친해졌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해낸 게 아냐. 내가 깔아놓은 것을 그저 물려받은 것뿐이지.”
탓-!!
그는 남궁의 손에 있던 카드키를 다시 빼앗았다.
“너는 네가 잘해서 그런 줄 알지? 아서라, 그들의 마음을 여는 게 쉬운 줄 알아? 드루이드술부터 점성술, 천문학, 주술…… 뭐 하나 네가 배운 게 있더냐.”
신랄한 그의 말에 남궁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그들과 네가 연이 닿았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않아? 그들이 먼저 알고 찾아 간 게 아니라면 말이야. 네가 사교성이 좋은 녀석도 아닌데.”
“그게 모두 당신 덕분이란 말인가?”
“아니.”
오히려 뜨뜻미지근한 아버지의 대답이 남궁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손이 많이 가는 아들이란 뜻이지.”
남기철은 카드키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한 가지만 물으마. 들리는 소문엔 네가 회귀자라던데, 정말이더냐.”
치이이익…….
카드키를 가까이 가져가자 산 입구에 지하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동료나 계시자들이라면 모를까…… 외부에 발설한 적은 없는데? 도대체 저 양반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남궁은 생각지도 못한 그의 물음에 대답을 피했다.
“나는 네게 도움이 되고 죽었느냐.”
“…….”
“뭐, 상관없다. 설사 전생에 그러지 못했더라면, 적어도 이번엔 도움이 되면 좋은 일이지. 이렇게 만났으니 말이야.”
남기철은 열린 지하 문 주위로 알 수 없는 약병들을 하나하나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따금 어떤 것들은 문의 주위에 진득한 점액을 발라 붙이기도 했다.
“자, 다 됐다. 이제 던전을 열거라.”
남궁은 수상한 약병들을 바라보며 의아했다.
오랜 전생의 경험을 가진 그도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약초술?’
그도 그럴 것이, 마물의 공격으로 거의 반파되다시피 한 세상에서 느긋하게 약초나 캐러 다닐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바닥에 깔린 건 오망매 잎과 함께 열다섯 가지 산뿌리들을 갈아서 만든 촉매다. 그리고 벽에 붙여 놓은 것들은 이집트에 생성된 던전에서 얻은 언데드의 뼈를 간 것들. 그리고…….”
궁금해하는 남궁의 눈빛을 알아차린 그는 신이 난 듯 아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게 뭔지는 상관없는데, 그것들로 뭘 하려는 거지?”
“일단 지도부터 주거라. 던전의 문을 열게 되면 알 테니까.”
남궁에게서 받아 든 양피지를 양손으로 움켜쥐고서 그가 말했다.
촤아악……!!
그리고 던전 지도를 있는 힘껏 찢자,
▶ 던전 지도를 사용합니다.
▶ 지도의 좌표와 일치합니다.
▶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2등급 던전 [번개나락]의 문이 열립니다.
새하얀 빛과 함께 던전의 입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펑……! 펑! 퍼퍼퍼펑…… ·!
그 순간, 문 주위에 깔아 놓았던 약병들이 일제히 폭발하기 시작했다.
약병 안에 흘러나온 진득한 액체가 생성되는 입구를 감싸기 시작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더냐. 처음에는 임무 때문이었지만…….”
‘저게 뭐지?’
던전의 문은 일종의 빛무리와 같아서 형체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약병에서 터진 점액들이 입구를 감싸기 시작하자, 단단한 문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칠흑처럼 검은 문이었다.
“괴상한 녀석들과 친해지려고 온갖 잡기(雜技)들을 닥치는 대로 배우다 보니 말이야. 나도 반무당은 된 모양이더라.”
‘설마…… 저게 블랙 루트?’
남궁은 자신이 지금껏 생각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째서 아무도 할 수 없었던 블랙 루트를 자신의 아버지가 공략 할 수 있었을까?
그 의문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장길수의 폭식, 만덕수의 공방, 박효주의 염동처럼 남기철만이 가진 자질이 블랙 루트를 열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주위의 공기가 일렁인다.]
그 순간, 무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남자…….]
그리고 마왕과 라테아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인간이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