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 (173/270)

173화

“무슨 일이지?”

“그, 그게…….”

몰려 있는 마을 사람들을 헤치고, 남궁이 비명 소리가 들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조금 전 비명을 질렀던 여성은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참극(慘劇)의 목격자였다.

‘시체가 셋.’

남궁은 주위를 훑으며 건물의 입구에 출입자 숙소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기억했다.

그는 홀에 엎어져 있는 시체의 얼굴을 돌렸다.

“흐, 흐익……!!”

뒤에 서 있던 목격자는 쓰러져 있는 시체의 얼굴을 보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주저앉았다.

얼굴이 없었다.

나머지 2구의 시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파낸 것처럼, 목 위로 머리는 남아 있었지만 얼굴 부분만 도려내어져 있었다.

“형님!”

보고를 받은 창환이 황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뒤로 검문소에 있던 참악부대의 부대원들이 뒤따랐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글쎄. 차차 알아봐야지. 다행히 목격자가 있으니까. 거기, 지금 당장 박효주에게 연락하세요.”

“알겠습니다.”

“일단 넌 주위를 봉쇄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도록 해. 그리고 혹시 마을 안에 메모리스트가 있는지 찾아보고.”

“넵.”

창환과 부대원들은 남궁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사물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메모리스트가 있으면 좋겠지만…… 찾기 어렵겠지.’

메모리스트는 염동술만큼이나 희귀한 자질이었다.

사물을 보는 드루이드계의 자질도 필요하고, 점성술이나 미래 예지 같은 술법계의 능력도 있는 자가 개안할 수 있는 힘이었다.

“제가 할 수 있어요.”

그때였다.

사람들 틈바구니 사이로 들어온 여인이 남궁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이런 식으로 만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인은 다름 아닌 검문소 명단에서 봤던 갈리나 볼코프였기 때문이다.

“마물 해체팀인 [매머드] 소속의 갈리나 볼코프라고 합니다.”

“남궁입니다. 반갑습니다.”

“유명 인사를 이렇게 직접 뵙게 되니 영광이네요.”

“글쎄. 얼굴 없는 시체를 두고 인사를 나누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죠.”

그녀는 남궁의 말에 내민 손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은 그녀를 살폈다.

‘시체 앞에서 태연한 걸 보면 평범한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한 것 같군.’

앳되어 보이는 사진의 모습과 달리, 실제로 본 그녀의 눈동자는 깊이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웠다.

남궁은 자신의 추측이 조금 더 옳은 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할 수 있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메모리스트이십니까.”

“아뇨. 그런 대단한 능력은 없습니다. 단지 저 시신들에 대해서 알고 있어서요.”

“아는 사람들입니까?”

“네. 그들은 저와 함께 온 동료들입니다.”

남궁은 그녀의 말에 얼굴 없는 3구의 시신들이 검문소에서 봤던 나머지 팀원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유감이군요. 동료들에게 이런 일이 생겼으니 말입니다. 정부 소속의 참악부대를 통해 이번 일에 대해서 조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셔도 좋지만, 딱히 그러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들이 죽은 이유를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네. 대략은요.”

자신의 물음에 여전히 담담히 대답하는 갈리나를 남궁은 찬찬히 살폈다.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능력을 빼앗긴 겁니다.”

남궁은 그녀의 대답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능력을 빼앗겨?”

“네. 정확히는 빌린 능력을 회수해 간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지 모르겠네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갈리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가리켰다.

솨아아악-!!!

그 순간, 두 사람의 주위로 두툼한 석벽들이 채워졌다.

“재밌는 능력이네요.”

갈리나는 석벽을 두들기며 흥미로운 눈초리로 말했다.

“내부 소리가 새어 나가진 않을 겁니다. 방음 효과도 충분하지만 웬만한 힘으로는 부수기도 힘들죠.”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헛소리를 하는 거라면 나갈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야.”

오싹-

갈리나는 자신의 전신을 찌르는 날카로운 그의 위압에 오히려 웃는 것처럼 입술을 씰룩였다.

“할아버지께 들은 대로군요. 과연 자가트(закат)를 반파(半破) 시킨 분답네요. 덕분에 다시 재기하시는 데 꽤나 고생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남궁은 예상대로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산드르 볼코프. 그 노인네는 아직도 살아 있나 보군. 온갖 불법적인 짓은 다 하면서 살았는데 명줄도 길어.”

“지금도 잘 계신걸요.”

“카니발로 무너진 도시가 몇 개인데 마물들은 그런 자는 데려가지 않고 뭐 하는 건지.”

“동감이에요.”

남궁의 말에 갈리나는 싱긋 웃었다.

시체 앞에서 담담했던 모습과 달리 그녀의 웃음은 진짜였다.

“꼭 할아버지가 죽길 바라는 것 같군.”

“잘 보셨어요.”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전(前) 자가트의 주인이자 저의 할아버지, 그리고 현재 마물 해체팀 [매머드]를 만든 알렉산드르 볼코프의 암살을 의뢰하려 합니다.”

콰앙-!!

그 순간, 그녀의 뒤에 세워진 석벽 위로 주먹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의뢰? 넌 내가 하찮은 킬러 나부랭이로 보이나?”

“그럴 리가요. 세계를 구하신 영웅을 어찌 저희 같은 하. 찮. 은 족속과 같이 생각하겠습니까.”

남궁이 내지른 주먹이 스친 듯 뺨이 붉게 변한 그녀는 오히려 힘을 주어 대답했다.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당신께 의뢰를 하는 겁니다. 왜냐면…… 그 괴물은 당신이 아니면 죽일 수 없을 것 같거든요.”

“90이 넘은 노인네가 뭐가 두려워서? 당신 할아버지가 이제 와서 대단한 자질이라도 깨우친 모양이지?”

“아뇨. 깨우친 게 아니라 사셨습니다.”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자질을 사셨습니다. 그것도 3개의 자질을 말이죠.”

남궁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자질을 산다고?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애초에 자질은 태생적으로 가졌든지 후천적인 경험을 통해서 얻었든지 결국 오로지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힘이야.”

“자질을 복사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요?”

씰룩-

그녀의 말에 남궁의 눈초리가 얇게 변했다.

“자질을 복사해?”

“[트레이스]의 수장, 카를로스. 그는 타인의 능력을 복사할 수 있고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줄 수 있어요.”

“카를로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타인의 능력을 복사하고 나눠줄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광월(光月).

‘태양목, 월안’과 함께 해와 달의 관망자의 계시자에게 부여되는 두 번째 능력이었다.

원칙상으로는, 10번째 지옥문이 열릴 때 계시자들은 두 번째 보상을 받는다.

‘미풍의 어머니나 화롯불을 다루는 자는 그렇다 쳐도…… 해와 달의 관망자의 보상까지 나타났다는 건…….’

결국 알렉 트라만이 아닌 다른 계시자를 선택했다는 말이 될 수 있었다.

‘아냐.’

남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광월의 능력은 확실히 능력을 복사해서 부여하는 힘을 가졌어.’

그 힘을 통해 다수의 일반인들이 일정 시간 동안 마법을 쓸 수 있다든지, 궁술, 검술과 같은 전투 능력을 상승시킬 수도 있었다.

카니발이 진행될수록 많은 사상자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병력은 항상 부족했고 광월의 힘은 그 틈을 채워주는 결정적인 능력이었다.

‘전생에 알렉은 그 힘으로 100명이 넘는 일반인들을 마법부대로 만든 적이 있었어.’

‘하지만 계속해서 그 힘을 부여할 수는 없어.’

일정 시간이 지나면 광월로 부여받은 힘은 사라지게 된다.

능력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들은 극심한 갈증과 피로를 느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얼굴을 파낸 것 같은 상처…….’

그런 건 광월의 부작용이 절대 아니었다.

“[매머드] 팀의 멘시코프란 자가 있다던데. 그자가 거암귀를 해체 하는 마장연합에 와서 장길수를 영입하려고 했다.”

“멘시코프…… [매머드] 팀의 팀장입니다.”

“왜 장길수에게 접근한 거지?”

“타깃을 찾기 위함일 겁니다. [트레이스] 산하에 있는 여러 팀들의 팀장들은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뭔데?”

“자질을 가진 능력자들을 찾아내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능력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

남궁은 그 능력마저 해와 달의 관망자의 계시자가 가지는 ‘태양목’, ‘월안’과 똑같다는 사실에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알아낸 정보를 카를로스에게 보고하면, 카를로스는 그들의 능력을 복사할 수 있습니다.”

“보지도 않고 타인의 능력을 복사한다고?”

“뭔가 조건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기까지는 모르겠어요.”

‘흐음…… 어쨌든 저 말이 사실이라면 그 멘시코프란 자는 장길수의 [폭식] 능력을 보려고 왔다는 건데.’

스카우트는 애초에 생각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저 자질을 가진 자를 만나는 행위가 중요한 것 일 테니까.

“그럼 너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보다시피 그가 능력을 회수해 가면 능력을 받은 사람은 끔찍하게 죽습니다. 도망칠 수도 없죠. 그렇기에 우리는 한 가지 가설에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능력이 닿지 않는 곳이 어딜까.”

그녀는 남궁을 바라봤다.

“현실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면 회수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우(无)의 탑을 찾은 이유다?”

남궁의 물음에 갈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것도 틀린 모양이지만요. 그 죽음의 상처. 그건 카를로스가 능력을 가져갔다는 증거니까요.”

“그런데 왜 도망치려고 하는 거지? 굳이 배신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당신 할아버지도 그자에게 충성할 정도인데.”

“어린아이들을 노예처럼 부려 목숨 대신 룬을 착취하고, 획득한 능력을 실험하기 위해 사람들을 도구로 쓰는데도요?”

얼핏 들으면 끔찍한 얘기였지만 남궁은 그녀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킬러단의 여식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우습다고 생각되진 않나? 너희가 죽인 사람들의 목숨이 카를로스인가 뭔가 하는 놈보다 많을걸.”

신랄한 남궁의 갈리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게다가 지금 내게 네 할아버지의 암살을 의뢰하고 있으면서 말이야.”

“그가 카를로스의 수많은 눈들 중 저를 찾아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가족마저 죽이려는 사람의 말을 믿으라고?”

“만약 카를로스가 연합의 능력자들을 노리고 있다면요? 그들의 능력을 하나둘 복사해서 자신의 수하들에게 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녀는 말했다.

“어쩌면 카니발의 마물들보다 더 큰 인류의 적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솔직히 말해봐.”

“……네?”

“정말로 그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이유.”

꿀꺽-

갈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인류애 같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다시 지껄이면 그땐 네 목을 들고 알렉산드르에게 찾아가 물을 테니까.”

남궁은 그녀를 바라봤다.

“어째서 너만 죽지 않았지? 다른 동료들은 능력을 회수당해 살해당했잖아?”

씰룩-

그 순간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