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크륵…… 크륵…….]
[크르르륵…….]
원래대로라면 대통령의 직무실이 있어야 할 마요 광장의 붉은 건축물, 카사 로사다는 괴상한 성으로 변해 있었다.
성벽엔 아직 살아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시체들이 덕지덕지 붙은 채로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쿠그그그그…….
원래는 없었던 해자 위로 성의 다리가 내려왔고, 성문을 통과하자 그곳의 풍경은 더욱더 끔찍했다.
“……갈수록 가관이로군.”
마치 구걸을 하듯 사람들이 저마다 낡은 바가지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마차 주위로 달려들었다.
성의 가운데는 커다란 우물이 있었고 자판대에 늘어놓은 음식들과 대장간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화로가 있는 건물까지.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한 그 모습은 어느 것 하나 좋아 보이지 않았다.
시궁창을 구르기라도 한 것처럼 거무튀튀한 모습과 낡은 옷가지들.
분명 가게에 먹을 것들이 진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누구도 배불러 보이는 자는 없었다.
“저 사람들은 뭐지?”
“당연한 것을 물으시는군요. 성의 주민들입니다.”
“주민?”
“네. 저희가 알기로는 남궁 님의 성채도 사람들을 받으신다고 하던데…… 그와 같은 것이지요.”
남궁은 페레스의 말에 냉소를 지었다.
“내 눈에는 죽기 일보 직전의 노예들로 보이는데.”
“과찬이십니다.”
페레스의 대답에 남궁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웃을 때 보인 그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 역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건 저자가 카를로스에게 힘을 부여받은 사람인 건지…… 아니면 저 마부처럼 창조된 것인지겠지.’
마부와 마차를 끄는 보이지 않는 말은 한눈에 봐도 술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문제는 테레스가 인간이 아닌 술법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카를로스의 술사로서의 능력이 진 웨이의 연금술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시자인 진 웨이조차 연금술로 골렘을 만들어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
하지만 그런 골렘조차 기본적인 술사의 명령만을 따르는 정도이지 의지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인형술사도 아니고, 최면술사는 더더욱 아닐 테고…… 사신 중에 광월의 능력과 비슷한 힘을 가진 놈도 없었던 것 같은데…….’
남궁은 본성(本城)에 도달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놈의 정체를 유추했다.
아니, 애초에 카를로스는 전생에 두각을 나타낸 자가 아니었으니 그를 가늠하기보다는 그에게 힘을 준 사신을 찾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남궁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어느새 마차는 성문 앞에 멈춰 섰고, 페레스가 문을 열며 그에게 말했다.
땡땡땡-!!
그가 마차에서 내리자 종소리가 들렸다. 갑옷을 입은 기사와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와 그의 양옆으로 길을 만들었다.
척-!!
병사들이 들고 있던 창대를 서로 교차하며 길을 만들었고, 기사들은 검을 뽑아 자신의 가슴 위로 들어 올렸다.
“…….”
남궁은 장난 같은 그 모습에 대꾸를 하는 것도 귀찮다는 듯 그들을 무시하며 성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당신이 찾아올 줄이야…… 무척이나 기쁜 일이군요.”
두터운 망토를 두른 채 홀의 계단을 걸어 내려오던 남자가 남궁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반겼다.
“날 아나?”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인류를 구원한 영웅이신데 말이지요. 당신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까.”
“그러게. 이제 조금 후회되는군. 재활용 봉투에 일반 쓰레기도 같이 담긴 걸 몰랐으니.”
“하하, 분리수거를 도와줄 집사 하나 내어 드리는 게 좋겠군요. 돌아가시는 길에 골라 가십시오.”
남자는 대열을 지키며 서 있는 병사들을 가리키며 웃었다.
“네가 카를로스인가? 듣자 하니 자질이 없는 자에게 자질을 준다던데.”
“비슷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잘 못 아시고 계시는군요. 저는 없는 자질을 만들어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자질을 가진 자들을 좀 더 쉽고 빠르게 개안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혈연(血緣)의 피를 써서?”
“제가 사용하는 건 고작 한 방울에 불과합니다. 그 한 방울을 제공하고 그자 역시 힘을 얻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습니까.”
“그 피를 제공한 자들은? 지금 다 어떻게 되었지?”
“음음, 손님을 이렇게 세워 두는 것도 안 될 일이지. 페레스, 뭐 하는가. 남궁 님을 이리 모시게.”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카를로스의 명령에 페레스가 남궁을 안내했다.
남궁은 과연 안쪽에 얼마나 더 끔찍한 것이 있을까 생각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 * *
“드시죠.”
하지만 남궁의 기대와는 달리 거대한 원탁이 있는 카를로스의 방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두커운 책 한 권이 책상 옆에 놓여 있을 뿐, 이렇다 할 특이점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각 클랜의 리더들이 모여 회의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저희는 평등을 추구하거든요.”
“어디서 본 건 있군.”
남궁은 카를로스가 내어준 찻잔을 다시 그에게 밀며 의자에 앉았다.
“인류의 영웅을 영접한 건 기쁜 일이지만…… 친히 이곳까지 오신 건 이유가 있을 터. 한번 들어볼까요.”
잠시 표정이 굳어졌지만 카를로스는 이내 곧 웃으며 남궁에게 말했다.
“우(无)의 탑 내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지. 조사해 보니 당신네 쪽 사람이더군.”
“역시…… 그 일 때문에 오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카를로스는 별로 놀랍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도 그들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연합에 먼저 파발을 보냈어야 하는데 성내의 일을 처리하다 보니 큰 걸음을 하시게 했군요.”
그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페레스가 뭔가를 들고 들어왔다.
“탑으로 도망친 자들을 넘겨주신다면 저희가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보상이라긴 뭐하나…… 놀란 성채의 주민들을 위해 이걸 드리면 어떨지요.”
탈칵-
페레스가 들고 온 상자 안에는 룬이 가득히 들어 있었다.
“하급 이상의 것들입니다. 한두 개만 사용해도 앞으로 있을 카니발에서 살아남는 데 아주 큰 힘이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
카를로스는 남궁을 향해 눈썹을 씰룩이며 말했다.
“이걸 어디서 얻었지?”
“아무리 세계연합이라고 해도 자율성을 침범할 순 없지요. 영업 비밀을 말씀드리는 건 곤란합니다.”
콰앙-!!!
남궁이 탁자를 내려쳤다.
“영업 비밀? 헛소리하고 있군. 내가 상파울로에서 너희들이 하는 짓을 모를 줄 아나? 빈민가의 아이들을 이용해서 룬을 캐고 있던 것 말이야!”
“검은 어금니 말씀이시군요……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영지를 관리하다 보니 영주들에게 일임한 것이 문제였지요.”
“……뭐?”
“브라질을 다스리던 피멘타 공이 [모프]에 들어오면서 조금 욕심을 냈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에게 가혹 행위를 하지 말라 누누이 얘기했건만…… 쯧쯧.”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몇몇의 사람들이 수레를 끌고 들어 왔다.
“그에 대한 문책은 충분히 했습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거두시지요.”
“……미친 새끼.”
남궁은 당장에라도 카를로스를 죽여 버릴 듯 노려보며 읊조렸다.
수레에 들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조각조각 잘린 피멘타 대통령의 주검이었다.
“주군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은 대역죄. 그런 자에겐 능지처참이 답이지요.”
“누구냐.”
“무슨 말씀이신지요.”
“네 까짓 게 이런 일을 벌였을 리 없지. 네 뒤에 있는 놈이 누구냔 말이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는 피의 성의 성주이자 영주들을 다스리는 왕입니다.”
“그 왕이 될 수 있도록 빌어먹을 힘을 준 놈이 누구냐는 말이다.”
콰악-!!!
남궁이 카를로스의 멱살을 움켜잡으며 거칠게 소리쳤다.
“카를로스 경……!!”
수레를 끌고 서 있던 페레스가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카를로스는 그에게 멈추라는 듯 손을 펼쳐 저어 보였다.
“제가 제공할 룬은 저게 다가 아닙니다. 성의 보고 안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룬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탑의 시민들의 수만큼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아니, 연합의 능력자들을 위해 제공해 드릴 수도 있지요.”
“묻는 말에나 대답해.”
“제 위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그럼 원흉이 네 녀석이라는 말이군.”
서걱-.
그 순간 남궁의 검이 움직였다.
검집에서 검이 뽑히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네킹처럼 페레스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고, 카를로스의 목이 부서진 탁자 위로 떨어졌다.
“그럼 죽어.”
남궁은 바닥에 떨어진 그의 머리를 향해 말했다.
“카, 카를로…… 스…….”
뒤늦게 페레스가 쓰러진 그를 향해 달려왔지만 남궁의 검은 그의 몸을 또한 순식간에 갈라 버렸다.
[야만스럽군요. 항상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셨습니까. 다짜고짜 무기부터 뽑다니…… 힘의 시대는 결국 종말한다는 걸 역사가 알려주는데 말입니다.]
그때였다.
잘린 카를로스의 머리가 공처럼 통통 바닥에 튕기며 몸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쯔즉…… 쯔즈즉…….
잘린 머리가 목에 붙자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었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좌우로 움직여 보고는 괜찮은지 음음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봐라? 목이 잘렸는데도 죽지 않아? 이 새끼 진짜 괴물이었군.”
“인간이라는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만.”
카를로스는 남궁을 향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너…… 정체가 뭐냐.”
남궁은 갈라 버린 페레스의 시체를 힐끔 쳐다봤다.
인간처럼 보였지만 잘려 나간 그의 몸 안은 목각인형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보아하니 사신(死神)은 아닌 것 같고. 뭐 하는 놈이길래 드루이드의 술법을 쓰고 연금술의 영역인 골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
“하하, 저런 장난감에게 골렘이라니요. 그런 위대한 이름을 붙이는 건 과합니다.”
그는 오히려 남궁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진웨이의 연금술로 만들어낸 골렘의 수준을 알고 있는 남궁으로서는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교한 페레스를 장난감이라고 부르는 카를로스의 말이 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진짜 골렘을 보고 싶으십니까.”
“아니. 관심 없어.”
“흐음…… 후회하실 텐데요.”
“어차피 넌 여기서 죽을 텐데 후회할 일도 없지.”
솨아아아악---!!
그 순간 남궁의 뒤에서 영혼 병사들이 소환되었다.
“난 인간 같지 않은 놈들과는 대화 안 해.”
파앗-!!
영혼 병사들이 일제히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