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270)

180화

“그, 그건…….”

“어째서 하나같이 다들 눈에 보이는 술수를 쓰는 걸까. 인간을 우습게 아는 건지…… 아니면 너희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건지 모르겠군.”

남궁의 말에 카를로스는 오히려 그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바라봤다.

“제 눈엔 당신의 그 고집이야말로 정말 바보 같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뭐?”

“저희는 요란 일족과 계약했던 대리자 일족입니다. 아시다시피 요란 일족이 카니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왔지요.”

꽈악-

카를로스는 남궁의 팔을 움켜잡았다.

“그런 저희의 힘을 마다하는 이유가 뭐죠? 저희를 계약 일족으로 뽑으라는 말도 아닙니다.”

아귀에서 느껴지는 힘은 굉장했다. 그가 조금만 힘을 줘도 손목이 으스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땅덩이를 조금 내어주고 대신 저희가 채굴하는 룬을 받으라는 겁니다. 그뿐입니까? 저는 정보를 드릴 수 있습니다.”

“카니발의 정보라면 필요 없다. 너야말로 모르는 것투성이군. 나는…….”

“대마족의 퀘스트를 공략한 회귀자.”

“…….”

“그걸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이래 봬도 대리자 일족이었는데. 문의 보스에 대한 정보로 거래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카를로스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시 다듬으며 말했다.

“시대가 흐를수록 카니발에 열리는 문의 개수도 증가하니, 당신은 우리보다 더 많은 문을 겪었겠지요.”

“그럼 무슨 정보를 주겠다는 거지?”

“던전의 공략법. 아무리 당신이 회귀자라도 모든 던전을 공략할 순 없었을 겁니다. 전생에서 어쩔 수 없이 남겨진 던전들이 수두룩할 터.”

그는 웃었다.

“저는 그 던전들의 공략법을 알고 있습니다.”

“던전의 공략은 라테아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하하, 모르는 소리지요. 레오릭의 비호 아래 자란 그녀가 뭘 안다고 말이죠.”

남궁의 말에 카를로스는 웃었다.

“왕이 죽은 뒤 무너지는 일족을 살리려 발버둥 친 덕분에 그럴싸한 눈을 가지게 되었지만…… 카니발 당시에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아, 아무것도 아냐? 네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라테아가 그를 향해 노성을 터뜨렸다.

“하하. 화를 내시는 겁니까. 왜죠? 내가 틀린 말을 했습니까? 카뇽 전투에서 머리를 처박고 덜덜 떨던 사람이 누구였지요?”

[그, 그건……!!]

벌겋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보며 카를로스는 낄낄거리고 웃었다.

‘종잡을 수 없는 놈이로군.’

남궁은 그에 대한 평가를 한 줄로 정의했다.

카를로스는 지금껏 겪었던 이종족과는 뭔가 결이 달랐다. 단순한 악인이라고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선의 입장에 있는 자도 아니었다.

‘목숨을 가벼이 여기면서 매사에 하는 행동들은 꼭 장난을 치는 것 같아.’

“너, 대리자 일족이라고 하는 걸 봐서 인간은 아닐 테고. 정체가 뭐지?”

“라테아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소론 일족입니다. 요그라온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일족.”

그는 남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군요. 이게 궁금하셨던 모양이군요. 모르는 것도 당연합니다. 탑에 갇히게 되어 대리자 일족의 자격을 박탈당했으니 말입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당신의 차원엔 저희 일족이 없을 테니까요. 저희는 소론 일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들을 저희를 이렇게 부르기도 했죠.”

카를로스의 목소리가 남궁의 귀를 때렸다.

“악마(惡魔).”

남궁의 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저희는 마족과 다릅니다. 그들은 마를 숭상하는 일족으로 오로지 마력만을 좇죠. 하지만 저희 악마는 세상 모든 것을 좇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마술, 검술, 연금술…… 세상은 수많은 술법들이 점철되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저희는 그 모든 것을 좇고, 그렇기에 저희는 룬을 먹고 삽니다. 룬은 모든 술법의 응축이니까요.”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룬은 신체 능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고, 10번째 문이 끝난 이후로는 마력이라든지 정령력뿐만 아니라 검술, 궁술과 같은 스킬화된 룬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일족의 존속을 위한 것뿐이다?”

“살아 있어야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위상의 자리는 8개뿐이지만, 위상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대리자 일족 역시 마찬가지죠.”

카를로스는 나타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 그래?”

[마족은 이미 기회를 잃었다. 내가 죽었으니까. 하지만 뭐…… 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수장이 살아 있다면 일족은 사라지지 않으니 기회를 노릴 수 있겠지.]

마왕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탑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맥락입니다. 악마는 일종의 작은 위상이다, 라는 말이 있죠. 위상이 행하는 기적을 약간의 대가를 받고 이룰 수 있거든요.”

“약간의 대가? 웃기지도 않는군. 그 대가가 사람의 목숨인가?”

“분명 저는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힘을 원하는 자들이 직접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

남궁은 조용히 그를 주시했다.

“네게 힘을 받은 자들을 모두 기억하는가?”

“물론입니다. 악마인걸요.”

“그들의 신상을 내게 빠짐없이 보고해라. 그리고 룬 채굴에 아이들을 강제로 노역시키지 마. 채굴법을 우리에게 알리고 광산의 독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자, 잠깐……! 설마 저 녀석을 그냥 두겠다는 말이야?]

“또한 영역 밖으로 절대로 나갈 수 없으며, 탑의 문을 빠져나온 방법에 대해서도 내게 말해야 할 것이다.”

“멸족을 피할 수 있다면 무엇을 마다하겠습니까.”

“모든 사항은 야차 일족의 양피지에 적어 계약서로 만들 것이다.”

남궁은 카를로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엇을?”

“뭐긴. 양피지값은 내야지.”

“하하, 못 당하겠군요.”

카를로스는 그의 말에 피식 웃고는 바닥에 너부러져 있던 룬 몇 개를 집어 들었다.

우우우웅…….

그가 손에 힘을 주자 놀랍게도 룬들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칙……! 치칙……!

녹아내린 덩어리 위로 카를로스가 자신의 손목을 물어뜯어 피를 떨어뜨렸다.

“악마와의 거래는 언제나 대가보다 더 좋은 것을 받게 마련이지요. 첫 거래인데 흔한 룬을 드리는 건 마지막 소론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니.”

달아올랐던 룬이 카를로스의 피에 식으면서 제 모습을 갖추었다.

보랏빛의 룬은 남궁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떻습니까?”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를로스의 손바닥 위에 있는 룬을 남궁이 집어 들었다.

“…….”

룬을 살핀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고대 사냥꾼의 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사용하시겠습니까?

‘스킬 룬이다.’

그것도 하급이나 중급 같은 수준이 아닌 고대 룬이었다.

25년이란 세월 동안 카니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남궁조차 딱 2번 봤던 전설급 룬.

꿀꺽-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게도 룬의 등급과 속성을 본 순간 남궁은 당장에라도 사용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고대 룬은 20번째 문을 공략하고 나서야 처음 등장했었는데…….’

이걸 7번째 문이 끝난 지금 시점에서 얻을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한 것이었다.

애초에 거암귀를 사냥하고 얻은 던전 지도의 난이도부터 더 이상 문의 순서로 획득할 수 있는 도구들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룬은 아니다.

이걸 얻는다는 것은 카니발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는 일이었다.

넘버링 7780-3

이름 : 고대 사냥꾼의 룬 : 약점포착

▶ 위대한 사냥꾼 하이엔의 능력이 담겨 있는 룬.

▶ 룬을 흡수 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약점을 찾아내는 눈을 가질 수 있다.

▶ 발견한 약점에 공격을 가할 시 추가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 발견한 약점에 마무리 일격을 가할 시 추가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약점 포착이라는 능력뿐만 아니라 부가적인 효과까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것들뿐이었다.

‘카니발을 공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각각의 문에 소환되는 보스를 사냥하는 것이다.’

남궁은 25년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후에 있을 25년의 미래는 알지 못했다.

만약 이 룬을 사용하게 된다면 그가 알지 못하는 미래의 보스들까지 손쉽게 사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스들의 보상템을 추가적으로 더 얻을 수 있다면 전력 보강에도 좋을 거야.’

꽈악-

남궁은 룬을 움켜잡았다.

“이런 룬을 얼마나 만들 수 있지?”

“역시…… 마음에 드셨습니까? 물론, 고대 룬은 쉽게 세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저라도 반년에 하나 정도겠지요.”

“반년?”

“너무 오래 걸리십니까? 뭐,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단지 그게 악마와의 계약이라 꺼려질 순 있겠지만…… 사실 악마만큼 완벽한 거래 대상도 없지요.”

카를로스는 묘한 웃음을 띠었다.

“확실히 고대 룬을 지금 시점에서 얻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일이지. 하지만 이걸 보니 더욱 널 믿을 수가 없겠어. 몇 가지 더 확인해야겠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믿을 수 없다니요. 저는 최고의 조건을 제공했습니다만!”

“이런 룬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위험 요소다. 만에 하나 우리가 아닌 다른 자들에게도 룬을 제공하면 어쩔 거지? 네가 나 몰래 이미 자리를 잡은 것처럼 말이야.”

“하, 하하…… 그건…….”

“나는 위상을 믿지 않아. 그런데 악마족이 작은 위상이라는 소리를 지껄이는데 어찌 믿음이 가겠어.”

“비유에 불과한 말입니다. 저는 절대로 위상과 결탁하지 않았습니다. 어, 어떻게 해야 믿으시겠습니까?”

“증명할 방법은 하나지. 나왔다면 다시 들어갈 수도 있을 테니, 탑의 2층으로 갈 수 있는 문을 열어봐.”

순간 카를로스의 눈빛이 떨렸다.

“그럴 수 있다면 나는 너와 거래를 하겠다. 하지만 만약 그게 거짓이라면…….”

꿀꺽-

남궁은 손에 들고 있던 룬을 입안에 밀어 넣어 삼켰다.

“룬뿐만 아니라 네 목숨까지 가져가마.”

“그,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탑의 문을 열려면 막대한 마력이 필요합니다.”

“글쎄. 네 술법은 대단해도 네 마력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데.”

“하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로 말할 것 같…….”

그때였다.

카를로스는 남궁과의 대화에 집중하다 놓친 한 가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하늘이 맑지?”

남궁의 말에 그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 자신의 장벽을 뚫고 들어왔던 얼음 가시들.

‘장벽이 뚫렸었다.’

그 순간, 그는 부서진 건물의 천장 위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마력 폭풍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마력만 있으면 탑의 상층부를 열 수 있다고?”

“……!!”

“어디 해봐요.”

콰직-!!

그녀는 카를로스의 눈앞에서 쥐고 있던 뭔가를 구겼다. 놀랍게도 그건 조금 전 마경 속에서 보인 소년의 머리를 겨누었던 총이었다.

‘설마 인질들까지 구한 건가?’

카를로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작은 체구의 이 소녀에게서 믿을 수 없는 마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이면…….”

툭-

천장에서 내려온 작은 소녀가 그를 향해 말했다.

“나한테 죽어.”

아이의 목소리는 여렸지만 그 안에 담긴 날카로운 분노는 아빠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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