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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화 (183/270)

183화

“……형님?”

남궁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아니, 할 일이 있으시다면서 계속 주무시고 계셨던 겁니까. 에이, 전 또 대답이 없어서 걱정했잖습니까.”

“어디쯤이지?”

“어디긴요. 벌써 인천항에 도착했는걸요. 하선 작업도 거의 끝나갑니다. 저희도 이제 내려야 합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된 건가.”

명훈의 말에 남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

일어선 그는 잠시 멈칫했다.

‘가볍다.’

수십 시간 이상을 앉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피로감은커녕 오히려 전신에 혈기가 왕성하게 도는 기분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냐. 그냥 푹 자서 그런가 봐.”

“하긴 형님께서 이렇게 오랫동안 주무신 걸 본 건 저도 손에 꼽을 정도니까요. 소민이가 같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남궁은 명훈의 말에 피식 웃었다.

“…….”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소민은 어쩐지 밖으로 나온 아빠를 반기기보다는 살피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빠가 좀 늦었지? 미안.”

“전 그럼 밑에 상황 좀 체크하겠습니다. 천천히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러지.”

명훈이 서둘러 복도를 달려 항구로 내려갔다.

“우리도 갈까?”

남궁이 소민에게 말하며 딸의 어깨를 가볍게 쓸었다.

“아빠.”

하지만 소민은 그를 따라가지 않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는 그를 불렀다.

“응, 왜?”

그녀는 말했다.

“마법 배웠어?”

묻는 소민도 물음을 받은 남궁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 * *

“신기하네. 이런 건 처음 봐.”

카를로스의 일을 잠시 일단락시키고 성채로 돌아온 남궁은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는 딸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마력하고 비슷한데…… 미묘하게 결이 다르단 말이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흐음…… 정말이네요. 소민 양께서 처음에 마력이라고 생각하신 것도 이해됩니다. 무척 비슷하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르네요.”

소민의 옆에 있던 덴 하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마력은 술자에 따라 자연계의 힘 중에서도 특정한 속성이 좀 더 짙습니다. 제가 빙결 속성인 것처럼요.”

그는 【레아의 서(書)】를 들고서 몇 가지 감지 마법으로 남궁을 좀 더 살피며 말했다.

“남궁 님에게서도 분명 자연계의 기운이 짙게 느껴지긴 하지만…… 묘하네요. 어떤 특정한 속성에 치우쳐져 있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소민이도 속성이 없는 마력을 가진 거긴 하지만, 이쪽은 영력이라 불리는 영혼의 힘과 합쳐진 마력이니까. 자연계의 힘은 아냐.”

그리고 또 한 명, 록산느가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

“드루이드의 정령력이야 더더욱 아니고.”

“이거야 원…… 실험실의 쥐가 된 기분이로군.”

남궁은 벗고 있던 셔츠를 대충 입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갑자기 당신이 마력이 생긴 것 같다고 해서 놀란 나머지 서둘러 왔으니까.”

“마력을 가지는 게 뭐 그리 놀랄 일이라고.”

“으휴, 놀랄 일이지. 마력의 자질이 없던 자가 갑자기 마력이 생긴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고 있으니까.”

“……위험해?”

“인간이 마력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자연계에서 마력을 빌려 몸 안에서 마력을 순환시켜야 해.”

“흐음.”

“순환을 시키기 위해서는 피가 흐르는 혈관처럼 몸 안에 마력의 통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 혈관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느냐에 따라서 마력의 자질이 나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그 말은 마력의 자질이 없는 사람은 마력의 통로도 없다는 뜻이겠지. 그런 사람이 갑자기 마력을 배운다? 인간의 신체는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아.”

꾸욱-

록산느가 남궁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순환을 위한 대체품을 찾게 되겠지.”

“혈관…… 인가.”

“맞아. 피가 흘러야 할 혈관에 마력이 꽉 들어차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마력이 상승할수록 오히려 자신을 죽이는 독이 되는 거라고.”

남궁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안 놀라네?”

의미심장한 그녀의 말에도 남궁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혈맥술.”

“……응?”

“야차 일족의 알려지지 않은 비술이야. 일종의 오러라 부를 수 있는 이형의 힘을 혈맥이라는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 몸 안에 흘려보내는 거지.”

우우우웅…….

그가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로 뭉글거리는 푸른 기운이 일렁였다.

“혈맥술은 여러 단계로 나뉘는데 첫 단계인 강(强)의 단계는 신체를 강화함과 동시에 혈맥술에 맞게 변화시키지.”

푸른 기운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그의 몸에 다시 흡수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강(强)의 단계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얻은 고대 룬을 통해 자신의 문제점을 알아냈지.]

“……!!”

무명의 모습이 나타나자 영혼을 감지할 수 있는 소민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로 인해 막혔던 혈맥이 마저 뚫리면서 비로소 강(强)의 단계를 완벽하게 깨우치게 된 거다.]

“혈맥술이라…… 그때 제게 부탁하셨던 비약과 관련된 술법 말씀이시군요.”

“맞아.”

덴의 말에 남궁이 대답했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익힌 것이 아니라 신체 능력을 강화시키는 수준이었기에 혈맥술을 끌어 올리려면 비약이 필요했지.”

“그런데…… 이건 비약으로 끌어 올리고 할 수준이 아니군요. 제대로 된 혈맥술이 이런 효과를 내다니 상상 이상입니다.”

“왜?”

“남궁 님은 이형의 힘을 마력의 통로가 아니라 신체에 흘려보낼 수 있는 혈맥을 가지신 것 아닙니까?”

“그렇지.”

“그리고 현재 살펴본 결과 마력과 결이 다르다고 느껴진 이유는 혈맥이 단순히 한 종류의 힘이 아닌, 종류와 상관없이 모든 이형의 힘을 흘려 내보낼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겠죠.”

“그 말은…… 남궁 님은 마력이나 정령력을 동시에 익힐 수 있다는 말씀인 거죠?”

“물론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력이라든지 저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힘까지도 가능할 수 있겠죠.”

모여 있던 마지막 사람인 박효주는 덴의 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괜히 뜬구름 잡는 소리로 기대하게 만들지 마. 혈맥은 결국 통로에 불과해. 흘려보낼 것이 없는데 통로만 있음 뭐해? 그건 그냥 빈털터리일 뿐이지.”

“배우시면 되죠.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어쩐지 덴은 남궁보다 더 신이 난 듯 말했다.

“원한다면 정령술도 배울 수 있겠지. 쿠후란이 좋아할지도 몰라.”

[인기가 많군.]

무명은 사람들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남궁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궁은 그 순간 자신의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이것저것 잡기들을 배우다 보니 남들은 볼 수 없는…… 아니지, 보려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거든.”

남궁은 그의 말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마치 운명이 자신에게 블랙 루트를 여는 자가 되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됐어. 나는 이것저것 배울 생각은 없어.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거다.”

“사령술 말씀이십니까?”

“맞아. 만약 혈맥이 모든 종류의 힘을 통과시켜 그 힘을 증폭시킬 수 있다면 굳이 새로운 것을 배우기보다는 사령술에 맞추는 것이 맞겠지.”

“으음…….”

“여러 가지 능력을 배워 어정쩡한 상태가 되느니 하나에 집중하는 게 극의에 도달하는 방법이니까.”

“그의 말도 틀리진 않아.”

“아쉽지만……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록산느의 말에 덴과 나머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아빠. 알지? 사령술도 영혼과 관련된 술법이고 영혼과 관련된 거라면……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거.”

자신을 걱정하는 부쩍 커버린 딸을 보며 남궁은 웃으면서 딸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 주었다.

“그래, 알다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응. 알겠어.”

마지막으로 소민이 떠나고 나자 남궁은 그제야 편하게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감이 좋은 아이로군. 혈맥술로 인한 변화를 단박에 알아보다니 말이야.]

“누가 뭐라 해도 가장 뛰어난 마력 자질을 가진 아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것까지는 알아보지 못한 것 같군. 혈맥술의 진짜 의의를.]

남궁은 무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혈단(血丹)의 생성이 완료되었습니다.

▶ 혈맥술 - 유(柔)을 습득하였습니다.

단전 아래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기운에 남궁은 천천히 자신의 배를 쓸어 내렸다.

[유(柔)의 단계는 단순히 혈맥을 뚫어 기운을 흘려보내 몸을 부드럽게 만들지. 하지만 그건 진짜 유(柔)의 의의가 아니다.]

우우웅…….

무명이 천천히 손을 뻗자 남궁의 몸 안에 만들어진 혈단을 중심으로 모든 혈맥 안의 흐르는 힘이 빨려들어 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름을 제어하는 것. 그것이 진짜 유(柔)의 단계에 이르러 얻을 수 있는 힘이지.]

꽈악-

남궁이 주먹을 쥐자 그의 손목에 팔찌처럼 둥근 고리의 형태로 된 기류가 만들어졌다.

고리의 개수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5개가 되자 그것들이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진환이라 불리는 그 고리는 하나당 네가 낼 수 있는 힘을 뜻한다. 즉, 5개라는 것은 5배의 힘을 낼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지.]

무명은 남궁이 만들어낸 고리를 보며 말했다.

“5배라…… 가늠이 잘 되지 않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씰룩였다.

[뭐,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익숙해지면 될 일이다. 네 몸이 혈맥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테니까.]

무명은 남궁을 향해 말했다.

[인간의 육체는 우리와 달리 유한하니까. 자칫 너무 과한 힘을 쏟게 되면 터져 나갈 수 있다.]

“육체가 문제라는 거군.”

[클클, 너무 강함만 좇을 필욘 없다. 육체를 가졌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살아 있지 않다면…… 그런 제약도 없는 거 아닐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설마 강해지기 위해서 죽기라도 하겠다는 소리냐.]

남궁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당연히 죽을 생각은 없지. 다만, 내 주위에 이미 죽은 자들이 잔뜩 있잖아.”

화르륵……!!

그 순간 남궁의 주위로 아스가 나타났다.

“사령술에 집중하겠다는 건 단순히 내 사령술의 등급을 올려 영혼 병사의 숫자나 늘리겠다는 것이 아냐.”

[설마…….]

“중요한 건 병사의 숫자보다 개체의 강함이니까. 나는 영혼 병사들에게 혈맥술을 가르칠 생각이야.”

[너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만에 하나 사역된 영체가 주인보다 강하게 되었을 때 제어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걸, 너도 알 텐데?]

“알아.”

[잘못하면 네가 병사들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내가 내 병사들보다 약할 것 같아?”

[……미쳤군.]

그의 말에 무명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미치지 않고서야 살아남을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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