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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187/270)

187화

“저건가.”

요정계의 경계에 있는 호수는 바다라고 생각될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호수의 앞에는 나가 일족이 사는 늪지계가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두 계가 같이 이어져 있다니 신기하군.]

라테아는 요정계가 처음인 듯 호수의 주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정과 나가는 모두 호수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두 계가 호수를 기점으로 두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내가 알기로 요정들은 세계수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던가?]

[맞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세계수가 어떻게 자라난 것인가겠지요. 요정들이 태어난 세계수가 바로 저 호수의 물을 먹고 자랐습니다.]

규류의 말에 라테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나가 일족은 호수의 폭발로 인해 흩어진 마력에서 태어난 존재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호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선택을 받은 자와 버림을 받은 자라…… 나가 일족이 호수에 집착하는 것도 납득이 가는군.]

“납득이 가든 안 가든 결국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야.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 필욘 없다.”

남궁의 말에 그들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호수의 건너편에 포진되어 있는 나가 일족의 병력을 바라볼 뿐.

[키에에에에에---!!!]

그 순간,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드래곤의 포효가 들려왔다.

[설마…… 벌써 비룡족이 도착 한 걸까요? 아무리 계의 문을 열어서 호수로 오는 거라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많은 병력을 이동하려면 쉽지 않을 텐데요.]

규류는 포효가 들려오는 위치를 찾으려 상공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쫄지 마. 그렇지 않을 거니까. 아마도 드래곤만 먼저 이곳을 보낸 거겠지.”

남궁의 말에 규류는 머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드래곤이 있는 곳으로 가실 겁니까? 비룡족이 오기 전에 먼저 드래곤을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 우리는 비룡족이 있는 곳으로 간다.”

[정말 인사라도 할 생각이십니까.]

“드래곤이 이미 호수 근처에 도착했다는 건, 이제 곧 녀석도 호수의 효과를 받는다는 뜻이야. 그렇게 되면 도구도 없는 상황에서 잡을 방법이 없다.”

[아아…….]

“비룡족 군세 안에 분명 드래곤 테이머가 있을 테니, 놈을 죽이고 드래곤의 지배가 풀리면 그때 진짜 용 사냥이 시작될 거다.”

[알겠습니다.]

“라테아. 상공에 있는 드래곤의 속성이 뭔지 알아봐 줄 수 있나?”

[어렵지 않은 일이지.]

규류와의 대화를 마친 남궁이 그녀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답과 동시에 라테아는 빠른 속도로 호수의 주변을 날아올랐다.

[찾았다.]

“어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말이 들려왔다.

[가까이 다가가면 녀석이 내 존재를 알아차릴 것 같아 더는 못 가겠지만…… 엘더 드래곤이라 그런지 엄청난 덩치로군. 단박에 알 수 있어.]

“그래서 비늘의 색이 뭐지?”

[검은색.]

남궁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었다.

“딱 좋아.”

* * *

“속도를 올려라!!!”

“해인 일족보다 먼저 거점을 잡아야 한다!!”

언덕 아래에서 질주하는 비룡족의 아룡들이 남궁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타고 있는 아룡은 드레이크와 흡사하게 생긴 비익룡이라 불리는 것.

날개가 없는 대신 다리가 진화 되고 4족 보행을 하는 그들은 공룡과 스콜피온을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직 비룡들까지는 길들이지 못하는 모양이군. 엘더 드래곤을 다룬다기에 좀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그래도 상대할 만하겠어.”

지면 이외 다른 곳에서 비룡족들이 보이지 않자, 남궁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비익룡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강한 마물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비룡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내 기억으로 비룡족은 카니발에서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어. 딱 한 번 그들을 봤던 것이 팔각전쟁의 마지막이었으니…….’

그들이 어째서 몸을 사렸는지,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비룡족의 수장을 보자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군. 무칸.”

비익룡의 등 위에 서 있는 거대한 덩치의 사내는 단연 돋보이는 위압감을 보였지만, 남궁이 주시하는 자는 그가 아닌 그의 옆에 있는 소년 같은 체구의 사내였다.

‘그의 아들 무하드.’

비룡족은 8개의 대리자 일족 중 그다지 입지가 강한 자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칸의 죽음 이후 무하드가 수장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그들은 비약적인 성장을 일으켰다.

‘바로 무하드가 비룡을 길들였기 때문이지.’

어째서 무칸의 시대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이 무하드는 가능했는지 알 수 없으나, 남궁의 기억 속에서 비룡족은 일족의 이름처럼 비룡을 다루며 상공을 제압하고 난 뒤부터 확실히 강해졌다.

‘팔각전쟁을 서두른 보람이 있어.’

비룡이 없는 비룡족은 설령 드래곤이 있다 한들 약체일 수밖에 없었다.

“인사 좀 해볼까.”

[……네?]

화르르륵……!

그 순간 남궁의 주위로 영혼 병사들이 소환되었다.

[자, 잠시만요! 아무리 강화되었다고 해도 고작 5마리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지금 저 숫자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규류가 남궁의 말에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의 말대로, 언덕 아래에는 비익룡을 탄 비룡족들이 500명 넘게 내달리고 있었다.

“인사만 한다니까. 걱정 마.”

팟-

남궁은 그대로 몸을 절벽 아래로 던졌다.

[아오……! 진짜!]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규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절벽에서 뛰어 내렸다.

콰아아앙---!!

남궁이 지면에 닿기 바로 직전, 아스가 먼저 굉음과 함께 바닥에 내려앉으며 그의 몸을 받쳤다.

[크르르르르……!!]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달리고 있던 비익룡들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리자 뒤따라오던 병력들이 뒤엉키고 말았다.

“뭐, 뭐야?!”

“모두 전열을 가다듬어라!!!”

“조심해!!”

퍼억-!!

후방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비룡족들의 외침 속에서 남궁이 자신의 앞에 있던 비익룡의 머리를 【계명검】으로 후려쳤다.

[케에에엑!!]

비익룡의 비명과 함께 그 위에 타고 있던 무칸이 휘청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버님!!!”

무하드가 그 광경에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스캉-!!

그가 자신의 허리 뒤에 달려 있던 초승달처럼 생긴 2자루의 검을 뽑아 들었다.

“……이놈!!!”

검이 섬광을 뿜어내며 남궁을 향해 쇄도했다.

캉-! 캉!! 카가가강--!!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검격이었지만 남궁은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그의 공격을 받아 넘겼다.

“천하의 무하드도 아직은 미숙하군.”

“뭐?”

“아니면 내가 강해진 건가?”

까드드득……!!

검이 서로 맞물린 채 엎치락뒤치락 움직이자 무하드는 그제야 자신을 습격한 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남궁……!! 위상의 계시자인 자가 팔각전쟁을 일으키다니! 제정신인가!!”

“계시자이기도 하지만 나는 야차 일족의 계약자이기도 하다. 내가 이 전쟁에 못 낄 것도 없는데? 불만이면 너희들의 계약자도 부르던가.”

“큭……!!”

무하드는 남궁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우리는 너희들처럼 계약자를 사리사욕에 쓰지 않는다……! 대리자 일족은 계약자로 하여금 카니발을 좀 더 빠르고 안전하게 공략하고 참가자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자들이다!”

“멋진 말이긴 한데…… 그럼 계속 계약자를 돕지 왜 여기에 온 거지?”

“그걸 말이라고 해? 모두 네놈 때문이잖냐!!”

카앙---!!!

무하드가 뒤로 물러서며 쌍검을 날리자 마치 부메랑처럼 그것들이 남궁을 향해 날아갔다.

“나 때문이라.”

남궁의 주위를 두르고 있던 영혼병사들이 무하드의 검을 쳐냈다.

“참가하는 척하다 양측의 전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드래곤으로 쓸어버릴 생각은 아니고?”

“……뭐?”

무하드는 순간 굳은 얼굴로 남궁을 바라봤다.

“팔각전쟁의 승자는 결국 1명이야. 공공의 적이 있어 연합을 한다지만…… 글쎄? 적이 사라지고 나면 너희는? 연합의 끈이 과연 얼마나 갈까.”

“닥쳐!!”

“다들 같은 속셈이겠지. 이번 전투를 통해 적을 섬멸하는 것과 함께 다른 연합의 힘도 약화시키는 것.”

남궁이 바닥에 떨어진 쌍검을 주워 무하드에게 던졌다.

“나가 일족은 호수의 힘으로 강해져 있는 상태다.”

남궁이 던진 검을 주워 들며 무하드는 그를 노려봤다.

“만약 나가 녀석들이 호수의 힘을 차단해 버린다면? 연합의 세 일족 중 과연 누가 가장 먼저 타깃이 될까.”

“…….”

“해인 일족이야 버프가 사라진다 해도 물이 있으면 강해지는 족속이니 호수 위에 배를 띄운 상태라면 쉽게 지지 않겠지. 그런데 너희는?”

무하드는 남궁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호수에 일부러 드래곤을 먼저 보낸 건 단순히 호수를 방어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맹 일족들에게 비룡족의 힘을 과시하기 위함이기도 하겠지.”

꿈틀-

그의 뺨이 씰룩였다.

“하지만 잘 들어. 드래곤 하나만 믿고 까부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야차 일족에서 용 사냥을 위한 작살을 만들고 있거든.”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설령 우리가 패배한다 한들 적어도 너희 드래곤만큼은 죽일 거란 뜻이지.”

무하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족의 유일한 카드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을 혹여라도 잃게 된다면 남궁의 말대로 자신들에게 나머지 전투에 대한 승산은 없었기 때문이다.

“웃기지 마라!! 감히 네놈 따위가 엘더 드래곤을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콰아아앙---!!

순간 남궁과 무하드 사이에 거대한 투창이 꽂혔다. 두 사람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마샤!!!”

“아, 아버님……! 잠시만!!”

투창을 던진 사람은 다름 아닌 무칸.

그가 누군가를 부르자 무하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놈이로군.’

남궁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당장 드래곤을 불러라!! 놈을 이곳에서 죽여 버리……!!”

그때였다.

무칸의 외침이 멈추고, ‘마샤’라 불리는 일족의 주위에 있던 호위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어리석은 수장은 끝까지 어리석은 법이지.”

남궁이 그를 지나쳐 달렸다.

“빌어먹을!! 놈을 막아!!!”

무하드는 다급히 소리쳤지만 그 순간 자신의 발아래 끈적한 어둠이 내리깔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영혼 지대 Lv 5가 발동됩니다.

혈맥이 개통된 덕분일까. 남궁의 사령술 레벨은 전체적으로 모두 오른 상태였다.

그만큼 더 깊은 어둠이 죽은 비룡족의 병사들을 먹어 치웠다.

“흐, 흐이익……?!”

마샤라 불리던 술사는 언데드 병사가 되어 튀어나온 호위들을 보며 창백해진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흐아아아아!!”

무하드는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그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쿵……!

커다란 도끼를 바닥에 찍으며 아스가 보란 듯 그의 앞을 막아섰다.

▶ 영혼 강화 Lv 5가 발동됩니다.

▶ 영혼 지대 안에 있는 모든 영혼 병사들의 능력이 일시적으로 강화됩니다.

▶ 지속 시간 10분

아스의 도끼가 검붉은 화염으로 뒤덮이자 무하드는 쉽사리 안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드래곤을 불러? 그거 좋은 생각이네. 이봐, 마샤라고 했나?”

남궁은 술사의 목에 검을 겨누며 말했다.

“불러봐. 그럼 작살을 만들 필요도 없겠지.”

꿀꺽-

마샤는 자신의 목에 닿은 섬뜩한 검날에 마른침을 삼켰다.

“너희 일족을 시체로 만들어 드래곤을 잡는 것도 재밌는 일일 것 같으니.”

영혼 지대의 크기가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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