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미쳤구나.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나? 감히 우릴 상대로 배 위에 올라타다니.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쏘론은 발목에 달려 있던 두 자루의 도끼를 뽑아 남궁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후욱……! 훅!!
부메랑처럼 돌아가는 도끼를 튕겨내자 남궁은 바위를 쳐낸 것 같은 묵직한 무게에 중심을 잃고 뒤로 밀려났다.
척-!!
튕겨 나간 도끼를 잡아챈 쏘론이 남궁에게 달려들었다.
“계약자면 계약자답게 대리자 일족들에게 콩고물이나 받아 처먹을 것이지……! 다른 계약자들은 가만히 찌그러져 있는데 건방지게 왜 네놈 혼자 팔각전쟁에 나서고 지랄이야!”
부우우웅……!!
뛰어오른 쏘론이 도끼를 양손으로 잡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서는 있는 힘껏 내리쳤다.
콰앙-!!!
“고정하십시오!! 배, 배가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배가 크게 흔들렸고 선원들을 쏘론의 행동에 당황한 듯 소리쳤다.
“시끄럽다! 여기서 저놈을 죽이지 못하면 어차피 배를 띄우는 의미가 없어!!”
쏘론은 부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날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우우우웅……!!
그의 전신에 푸른색의 오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카하!!!”
특유의 울음소리와 함께 그의 안광마저 푸른빛으로 변하자 그가 서 있는 배 주위로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쥐고 있던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호수 위에 생겨난 소용돌이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쾅! 쾅!! 콰아앙!!!
7개의 물 회오리가 남궁을 강타했다.
“…….”
맹렬한 폭음과 함께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다.
엄청난 위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쏘론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쿨럭.]
거친 신음 소리가 들렸다.
“단련을 열심히 했군.”
[그, 그럼요.]
“미친…….”
물보라가 내려앉으면서 보이는 남궁의 모습에 쏘론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네놈은 대리자 일족으로서 자존심도 없느냐.”
쏘론의 물 회오리를 막은 건 남궁이 아닌 규류였다.
[응, 없는데?]
남궁에게 뒤통수를 잡힌 채 쏘론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은 규류는 엉망이 된 몰골이었지만 씨익 웃으며 얄밉게 대답했다.
“아프냐.”
[아프긴요. 파리가 앉은 것처럼 아무렇지 않습니다. 【역갑술】을 익힌 보람이 있네요.]
주르륵-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쓰레기 새끼. 인간의 고기방패나 되려고 야차의 술법을 익힌 거냐? 쪽팔린 줄 알아야지!”
[그건 네가 알 바 아니지. 고기방패한테 처맞을 주제에 말이야.]
“뭐?”
실없이 웃으며 대답하는 규류를 보며 쏘론은 이를 바득 갈았다.
퍼억-!!
하지만 그 순간, 엄청난 속도로 규류가 쏘론을 향해 파고들며 주먹을 날렸다.
“……!!”
방어를 할 새도 없이 규류의 주먹이 쏘론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창그랑……!
“……컥!”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쏘론은 고통에 들고 있던 도끼를 떨어뜨렸다.
‘뭐, 뭐야? 이 새끼…….’
쏘론은 예상치 못한 규류의 무위에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팔각전쟁이 대리자 일족과 계약자의 싸움이 분명 아닐 텐데? 진짜 상대가 누군지 잊은 모양이지?]
“감히 피라미 새끼가……!!”
촤르르륵……!!
도끼의 주위로 다시 한번 물줄기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툭- 툭- 툭-
하지만 그 순간 규류가 손가락이 쏘론의 팔목을 찔렀다. 특별히 무게가 실린 것도 아니었는데 그의 손가락이 닿는 찰나 쏘론은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쿵-!
취르르르륵-!!!
쥐고 있던 도끼가 바닥에 떨어졌고 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에 도끼가 빙글빙글 돌며 팽이처럼 거칠게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컥!!”
“커허헉!!”
사방으로 날뛰는 도끼는 갑판 위에 있던 일족들의 목을 그대로 베기 시작했다.
쿵-!!!
배 위를 휘젓고 다니던 도끼는 돛의 기둥에 박히고 나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
하지만 쏘론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신의 도끼가 수 명의 부하들을 도륙낸 후였기 때문이다.
“이……!!!!”
쏘론은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주우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달리 움직이지 않는 팔은 손가락도 하나 꿈쩍 할 수 없었다.
[점혈이다. 야차술 중 하나지. 낄낄, 나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거든.]
규류는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허공에 찌르며 쏘론에게 말했다.
[그리고 계약자가 팔각전쟁에 참가하는 게 뭐 어때서? 오히려 겁먹고 꽁무니 빼는 것보다 훨씬 낫지.]
“누가 꽁무니를 빼?”
그때였다.
목조선 한 척이 빠른 속도로 호수를 가로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삐이이이익---!!!
손가락으로 휘파람을 불자 바이킹들이 소환되었다.
100명이 넘는 바이킹들이 일제히 규류를 향해 달려들며 두터운 밧줄을 뿌렸다.
[뭐, 뭐야?]
규류는 황급히 뒤로 피하려 했지만 거미줄처럼 촘촘한 덫은 갑판 위를 덮을 정도로 거대했다.
“잡아!!”
바이킹의 밧줄이 규류를 짓누르자 무거운 바위에 눌린 것처럼, 그는 밧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개구리같이 넙죽 엎드리고 말았다.
촤르륵……!
요르드의 채찍이 뱀처럼 밧줄 사이를 파고들며 규류의 입을 감쌌다.
“넌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시끄럽게 굴면 즉시 대가리를 날려 버릴 테니까.”
[웁웁……!!]
바닥에 엎드린 규류는 입이 틀어 막힌 채 꼼지락거리며 그녀를 향해 소리쳤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요르드.”
“이렇게 또 만나네. 거암귀 때는 꽤나 신세를 졌어.”
“그래? 신세를 진 것에 대한 보답이 이건가? 팔각전쟁에 네가 참가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나도 일족의 계약자니까. 내 일족이 공격당한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남궁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었다.
“내 일족이라…… 몰입이 너무 과한 거 아냐? 팔각전쟁의 왕이 정해진다 한들 계약자들이 받고 있는 혜택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 그래서 다른 놈들은 꼬리 내리고 숨어 있는 거지. 그렇다고 나까지 놈들하고 똑같을 필욘 없잖아? 난 당신에게 겁먹지 않아.”
“겁이라…… 그 말은 꼭 팔각전쟁은 핑계고 나와 한판 붙어보고 싶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쿵!!
촤르륵……!!
요르드는 규류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채찍의 손잡이를 갑판 끝에 묶고는 허리에서 나머지 채찍을 꺼내 들었다.
“맞아. 그럼 얼마나 강한지 한번 볼까?”
그 순간 그녀가 자신의 검지를 깨물었다.
그러고는 손끝에 맺힌 핏물로 이마에서부터 뺨까지 길게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뿌우우우우우우……!!
어디선가 나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진군의 나팔이 울립니다.
▶ 발할라의 영혼들이 배를 이끕니다.
호수 위로 푸른빛을 띠는 수십 척의 유령선들이 일제히 남궁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해인 일족은…….”
요르드의 눈동자가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영롱한 에메랄드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물 위에서 지지 않는다.”
솨아아악---!!!
유령선들이 수면 위로 서서히 떠오르며 해인 일족의 병사들을 지나쳐 갔다.
“후우우우……!!”
유령선이 스쳐 지나간 해인 일족들이 숨을 뱉어내자 그들의 입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 영혼들이 일족에 깃듭니다.
▶ 일족의 전사들의 고양감이 깊어집니다.
▶ 소환된 바이킹들의 능력이 2배 증가합니다.
“전 함선!!! 진격하라!!!”
쏘론을 비롯한 해인 일족의 선원들은 요르드와 같은 푸른 안광을 내뿜으며 배를 몰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요르드의 바이킹들이 갑판 위로 뛰어오르며 남궁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넌 내 몫이야. 일족은 일족끼리 인간은 인간끼리. 그래야 짝이 맞지. 안 그래?”
캉-! 캉-! 카강-!!
남궁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도끼들을 피하고 막으며 기회를 찾았다.
“짝이 맞다고 하기엔 달려드는 놈들이 너무 많은 거 아냐?”
“억울하면 당신도 소환하든가. 어차피 소환술을 쓰는 건 매한가지잖아.”
“소환술이 아니라 사령술. 엄연히 다른 능력이야. 그리고 그걸 쓰면 너 죽는다.”
요르드는 그의 말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죽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끼긴 했지만 진짜 자신만만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글쎄. 딱히 자만이 아닌데.”
촤르르륵……!
남궁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채찍을 튕겨내며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무아경(無我經) - 1서(書)
그를 막으려 뛰어든 바이킹들이 사방으로 튕겨져 나왔다.
퍼억-!!!
남궁은 요르드의 멱살을 움켜잡아 갑판 위로 내던지고서 위로 올라섰다.
콰직-!!
그가 검을 내려찍었다.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목을 스치며 검이 갑판에 박혔다.
“크윽……!!”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요르드는 반항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그의 발아래 내리 깔릴 수밖에 없었다.
“괴물 새끼…… 진군의 나팔을 분 바이킹들을 한 방에 날려 버리다니.”
“네 소환수들이 약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나?”
“에인헤랴르(Einherier)!!”
그녀의 외침에 바이킹들의 등 뒤로 검은 날개가 돋아났다.
“어디 이것도 막아보시지!”
“…….”
솨아아악---!!!!
날개를 단 바이킹들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사방에서 남궁을 향해 검과 도끼를 휘둘렀다.
“발할라의 기원인가? 제법이야. 해인 일족의 보고를 연 모양이로군. 대리자 일족의 계약자들 중 보고를 연 건 소민이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쾅-!! 콰아앙--!!!
굉음과 함께 배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사방으로 물보라가 일어났고 요르드는 바이킹들의 공격에 자신을 누르고 있던 남궁의 압박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크하!!!”
황급히 바닥에서 일어선 그녀는 뒤로 물러나며 채찍을 휘둘렀다.
꽈드드득……!!
한데 물보라 속으로 내질렀던 채찍을 잡아당기는 순간 어째서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보라 속에서 보이는 남궁의 날카로운 안광에 그녀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굳이 우리가 목숨을 걸면서까지 싸울 이유는 없지만…… 전장에 나온 이상 나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겠다.”
“크윽!!”
요르드는 있는 힘껏 채찍을 잡아당겼지만 서서히 자신의 몸이 남궁 쪽으로 끌려 들어감을 느꼈다.
“페어리 퀸이 그러더군. 호수가 강력한 힘을 가지는 이유는 이 아래 수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뭐?”
턱-
솟구쳤던 물보라가 아래로 떨어지며 두 사람을 적셨다. 남궁은 젖은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기며 그녀에게 말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기에 요정족과 나가 일족이 그렇게나 목을 매는 걸까. 궁금하지 않아?”
▶ 영혼 지대 Lv 5가 발동됩니다.
꿀꺽-
남궁의 속삭임에 요르드는 자신도 모르게 오싹한 기분에 마른침을 삼켰다.
▶ 셀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이 반응합니다.
쿠르르르륵…….
그 순간, 호수 아래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차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