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1화 (191/270)

191화

▶ 영혼 지대 Lv 5가 발동됩니다.

▶ 셀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이 당신의 부름에 반응합니다.

남궁은 수면 아래에서 요동치는 영혼의 아우성을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나군.’

런던에서도 엄청난 숫자의 영혼들을 불러냈었지만 호수 아래에 있는 영혼들은 그들과는 분명 결이 달랐다.

오히려 부름을 한 남궁을 잡아먹을 것같이 느껴졌다.

▶ 영혼 감지 Lv 3가 발동됩니다.

남궁은 요르드가 있다는 것도 잊은 듯 호수를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가 빛나며 호수 아래 괴물 같은 영혼들이 눈에 들어왔다.

[키에에에에에에---!!!]

검은 덩어리가 가까워지자 고막을 찢을 듯한 귀곡성이 호수를 때렸다.

▶ 우호적인 영혼들이 없습니다.

▶ 영혼 사역 Lv 4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영혼 흡수 Lv 6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큭?!”

송곳으로 관자놀이를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남궁의 몸이 비틀거렸다.

[괜찮으냐.]

무명이 그런 그를 보며 물었다.

‘영혼 사역을 쓸 수 없어?’

남궁은 통증보다 능력을 쓸 수 없는 상황에 황당한 기분이었다. 조금 전 통증은 한마디로 자신의 사령술을 영혼들이 거부했다는 뜻이었으니까.

‘호수 아래에 있는 영혼들이 내게 적대적이란 뜻인가?’

아니, 뭔가 다르다.

적대적인 영혼들이었다면 영혼 지대를 떠나 애초에 자신을 공격했을 것이다.

▶ 영혼의 눈 Lv 3이 발동됩니다.

남궁은 수면 아래 엉켜 붙어 있는 검은 영혼의 덩어리를 바라봤다.

[키에에에에엑……!!!]

자신들을 꿰뚫는 눈빛을 알아차린 듯, 수면 아래에 검은 덩어리들이 남궁의 시야를 가리려는 것처럼 발 빠르게 움직였다.

파직……! 파지지직……!!

남궁의 시야 안으로 스파크가 일었다. 강렬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남궁은 더 깊이 아래를 꿰뚫어 보려 했다.

“어디서 한눈을 팔고 있는 거야!!”

요르드는 자신을 무시한 채 호수를 바라보는 남궁을 보며 노성을 뱉어냈다.

콰아아앙--!!

그러나 그 순간, 그녀의 앞에 거대한 도끼가 내려꽂혔다.

“큭?!”

동시에 쇄도하는 날카로운 검들에 그녀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남궁을 지키러 소환된 영혼 병사들이 그녀의 바이킹들을 거침없이 베어 버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

남궁이야 그렇다 쳐도 그의 소환수마저 자신의 바이킹들을 압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빠득-

‘이것이 계시자와 계약자의 차이인가?’

“……웃기지 마!!”

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들이 아니면 세계를 구할 수 없는 것처럼 행동하던 계시자들.

그녀는 인류의 구원자인 양 영웅 놀이를 하는 그들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계시자로 뽑힌 자들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런 그들의 행동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오갔고, 그것을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 포장했다.

“내 가족을 빼앗아간 놈들이……!!”

계시자들의 욕심으로 가득 찼던 만신전에서 그녀의 가족들은 그저 흔한 희생자가 되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남들이 계시자들에게 환호할 때 힘을 길렀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자 타인의 의지대로 굴복되지 않을 힘 말이다.

그런데…….

강해졌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눈앞의 남궁은 너무 거대했다.

“이제 내 힘마저 빼앗아가려는 것이냐!”

퍼억-!!!

그 순간 그녀의 허리가 꺾였다.

“……컥!!”

숨이 막힐 듯한 통증과 함께 그녀의 입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콰직-!!!

불의의 일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비틀거리는 그녀의 뒤통수를 누군가 움켜잡아 갑판 위로 내려찍었다.

“조용.”

그녀의 머리를 지그시 누르며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 사납다.”

“네, 네놈……!!”

요르드는 남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남궁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갈 뿐이었다.

‘호수 아래 뭔가 있다.’

아마 자신의 영혼 사역을 거절하게 만든 것도 그놈일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호수인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주인이 있는 모양이로군.”

남궁은 뭉글거리는 검은 덩어리 속에 숨어 있는 핵을 찾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나와라.”

그가 【계명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호수의 수면을 있는 힘껏 때렸다.

콰아아아앙---!!

▶ 검의 악귀들이 냄새를 맡습니다.

▶ 검의 악귀들이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검날이 수면을 때리는 순간, 【계명검】에 들러붙어 있는 악귀들이 너도나도 수면 아래 어둠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쿠륵……! 쿠르르륵……!!

호수의 물이 끓는 것처럼 공기 방울들이 수면 위에서 부글거렸다.

슉-!!!

순간 순면 위로 뭔가가 튀어나왔다.

“……!!”

바닥에 쓰러져 있던 요르드의 뺨을 스치며 박힌 가시에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흐음…… 가시…… 아니, 뼈인가? 호수 아래 있는 녀석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쉽게 나올 생각은 없나 보군.”

남궁은 거의 창대와 같은 날카로운 뼈를 뽑아 살피면서 말했다.

[설마 이거…… 나트리엘의 뼈?]

“뭔가 알고 있나?”

[알다마다. 미친…… 호수의 주인이 나트리엘이었단 말이야? 어쩐지…… 그렇다면 이 말도 안 되는 힘도 이해는 가는 일이지.]

마왕은 남궁이 들고 있는 뼈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뭔지 설명부터 해주는 게 어때?”

[나트리엘은 원시성령(原始聖靈)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정령들보다 더 이전의 정령이라고 할 수 있지.]

“엘더 드래곤 같은 건가?”

[푸하? 그런 뇌가 녹아버린 덜떨어진 파충류와 원시성령을 비교하면 안 되지. 그들은 정령들의 시조다. 굳이 따지자면 위상과 같은 급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그런 녀석이 어째서 호수 바닥에 있는 거지?”

[왜긴. 죽었으니 그렇겠지.]

너무 당연한 대답이었기에 남궁은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위상들이 계를 관장하는 관리자라면, 원시성령들은 계를 탄생시키는 창조자다. 그들은 하나의 계를 만들고 계의 핵이 되는 존재다.]

“우와 란이 있던 태초에 계가 완성된 것이 아닌가?”

[그들이 만들어낸 건 차원이다. 결이 조금 다르지. 요란 일족도 인간이고 너희들도 인간이지만 서로 다른 세상이지 않나? 그게 차원이고, 계는 내가 살던 마계처럼 대리자 일족들이 사는 세상을 말한다.]

남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원시성령은 어떤 계를 만든 거지?”

[내가 알기로 나트리엘은 엘프가 사는 세계, 엘븐하임을 만든 성령이다.]

“엘프?”

확실히 야차 보따리에서도 그렇고 엘프란 이름이 들어 있는 무구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 말은 그들 역시 엄연히 카니발에 존재하는 자들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겠지. 그들은 멸족당했으니까.]

라테아가 대답했다.

[엘븐하임의 엘프들과 올트모른의 드워프들은 아버지와 함께 위상에 반기를 든 자들이었거든.]

“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거지? 그렇다면 우(无)의 탑에 그들이 갇혀 있을 가능성도 있잖아. 카를로스의 말대로 탑은 반기를 든 자들을 가둔 곳이니까.”

[아니. 그건 말할 필요 없는 일이었어.]

“어째서……?”

[그들은 확실하게 죽었으니까. 완벽하게.]

다른 때와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들은 본보기가 되었거든. 반기를 든 우리들의 앞에서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이 살던 계 자체가 완전히 소멸되었어. 나트리엘의 시체가 이곳에 잠들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설마…….”

남궁은 호수 아래에 모여 있는 검은 덩어리들을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나트리엘이 있다는 건…… 어쩌면 저 안에 있는 원혼들이 엘프들의 것일지 모르겠군.]

“그렇다면 더욱더 내게 힘을 빌려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너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위상에 반기를 들기 위해 싸우는 자인데.”

촤아아아악……!

그때였다.

호수의 수면이 폭발하며 날카로운 뼈들이 남궁을 향해 쏟아졌다.

쿵! 쿵! 쿠쿠쿵……!!

쐐기를 박는 것 럼 갑판 위에 꽂히는 뼈들을 피해 남궁은 호수 안으로 뛰어들었다.

“……!!!”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요르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저런…….”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그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끈거리는 뒤통수를 만지며 그녀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화가 나는 일이지만 사실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남궁에게 단 일격도 성공시키지 못했으니까.

꽈악-

그녀는 검은 호수를 바라봤다.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맑았던 호수는 물에서 힘을 발휘하는 해인 일족에겐 든든한 지원군처럼 느껴졌었지만, 지금은 당장에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은 괴물처럼 보였다.

‘들어갈 수 있을까……?’

꿀꺽-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쾅!!!

신경질적으로 배의 난간을 주먹으로 있는 힘껏 내리쳤다.

“……제길!”

겁을 먹은 거다.

물에서만큼은 자신 있다 호언장담했던 그녀였으나 정작 물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괴물 같은 놈…….”

요르드는 검은 연기로 뒤덮인 호수 때문에 보이지 않는 남궁의 모습을 찾으려 애를 쓰며 중얼거렸다.

* * *

부글…… 부글…….

남궁은 입안에 【아트란 심해복의 허파】를 밀어 넣으며 주위를 훑었다.

▶ 호수의 독성으로 인해 【아트란 심해복의 허파】가 오염됩니다.

▶ 사용 시간이 줄어듭니다.

▶ 10분 → 5분

[엄청난 영기로군. 과연 원시성령다워.]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호수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경고의 알림처럼 검게 변한 시야는 한눈에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남궁, 행여나 사령술로 원시성령을 길들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너도 성령의 독에 오염될 수 있어.]

라테아가 그에게 경고했다.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 아무리 너라도 원시성령은 아직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그녀의 말에 마왕도 호수 아래로 들어가는 그를 만류했다.

‘다들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걱정 마. 내가 찾으려는 건 원시성령이 아니니까.’

[그럼?]

‘잘 봐, 지금 이 지독한 영기가 정말로 원시성령의 시체에서 나오는 것인가 말이야.’

[흠?]

‘이건 원시성령이 내뿜는 영기가 아냐. 죽은 엘프들의 원혼들이 내뿜는 영기지. 오히려 원시성령이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걸걸?’

[하지만 분명 호수의 주인이 있다 하지 않았느냐. 그럼 저 원혼들을 다루는 존재는 누구지?]

솨아아아악……!!

검은 연기가 걷히고 기다란 뿔을 가진 산양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트리엘…….]

마왕은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성령을 바라보며 긴장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남궁의 눈은 성령을 바라보지 않았다.

‘성령을 다루는 자야 뻔하지.’

과거 누구보다 찬란한 번영을 이루었던 엘븐하임.

10만의 엘프를 이끌었던 숲의 군주.

[기다리고 있었다.]

엘프의 왕, 아카샤 티누비엘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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