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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193/270)

193화

“어디야……! 어디에 있는 거야!!”

요르드는 배 위에서 호수 아래를 바라보며 남궁을 찾으려 애썼다.

호수를 가득 채웠던 검은 덩어리들이 새하얗게 빛을 뿜어내자 그녀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콰아아앙---!!

그때였다.

폭음과 함께 맹렬한 물보라가 솟구쳐 오르자 그녀가 타고 있던 배가 크게 휘청거렸다.

“큭?!”

툭-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을 때,그녀는 자신의 앞에 이질적인 뭔가가 서 있음을 깨달았다.

“…….”

고개를 들어 그것이 무엇인지 바라봐야 하는데 그녀는 어쩐지 고개를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이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짝.

차가운 혀가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의 뺨에 닿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무, 무슨…….”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그녀의 앞에는 거대한 자줏빛의 산양이 서 있었다.

“허튼 생각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 바이킹들도 소환체라면 정령의 일종이니까. 원시성령의 앞에서는 무력할걸.”

“……호수 아래에서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지?”

“보이는 대로.”

그녀는 나트리엘의 옆에 서 있는 남궁을 바라보며 굳은 얼굴로 물었다.

“영혼 병사 하나 더 늘었다고 표정이 바뀌었군. 그 정도로 내가 포기할 것 같아?”

“말은 바로 해야지. 영혼 병사가 늘지 않아도 어차피 넌 날 막지 못하잖아.”

“닥쳐.”

“네 입장은 이해한다. 가족을 잃은 것도, 그리고 대리자 일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도.”

스르릉-

남궁은 그녀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도 널 진지하게 대하겠다. 카니발은 앞으로도 긴 여정이다. 해인 일족의 계약자는 분명 많은 도움이 되겠지.”

요르드는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없다고 카니발을 끝낼 수 없는 것도 아냐. 진정으로 전쟁을 원한다면…….”

뿌우우우우우---!!

그 순간, 호수 아래에서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받아주마.”

“……!!!”

남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호수 위로 모습을 드러낸 수만의 원혼들에 요르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 있나?”

그녀는 그대로 얼어붙은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검은 영혼들을 바라봤다.

[해인 일족의 계약자여.]

반투명한 엘프의 얼굴 속에서 보이는 검은 해골이 입을 열자, 음산한 기운이 호수 주위를 감쌌다.

[가서 전하라.]

꿀꺽-

음산한 목소리는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사신(死神)이 전쟁에 참여할 것이다.]

솨아아아악……!!

수많은 엘프의 원혼들이 마치 물살처럼 그녀를 지나쳐 질주하기 시작했다.

원혼들이 그녀를 스쳐 지나갈 때 마다, 그녀는 뼛속까지 시린 같은 냉기에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헉헉…….”

원혼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는 숨을 토해내며 주저앉았다.

촤르르륵……!!

엘프의 원혼들이 지나간 자리에 새하얀 얼음이 호수 위로 얼어붙으며 길을 만들었다.

저벅- 저벅-

남궁은 그들이 만든 길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사…… 사신? 갑자기 이게 무슨!!”

“놈들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야! 사신은 아직 태어나서는 안 되는 놈들인데!!”

해인 일족들은 호수의 수면 위를 날아오는 엘프의 원혼들을 보며 당혹스러운 듯 소리쳤다.

“속도를 올려라……!! 잡히면 끝장이다!!”

“사신들은 적아의 구분이 없다!! 서둘러라!! 놈들을 미끼로 쓰는 거다!!”

뿌우우우우---!!!

뿔피리 소리와 함께 해인 일족의 선원들이 배를 몰기 시작했다.

[온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현류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진을 치고 있던 야차 일족의 병사들이 활의 시위를 당겼다.

[공격하라!!]

그의 외침과 함께, 하늘을 뒤덮는 화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해신의 방패여!!”

쏘론이 손목에 감겨 있는 팔찌 위에 입을 맞추었다.

차르릉……!

그러자 팔찌에 달려 있는 방울들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떨렸고, 그다음 그가 머리 위로 손을 들자 방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쿵! 쿵!! 쿠쿠쿠쿵!!!

팔찌의 방울에서 흘러나온 빛이 호수의 배들을 감싸며, 떨어지는 화살들이 그 빛에 튕겨 나갔다.

“좋아!! 속도를 올려라!! 야차 놈들의 궁술은 보잘것없다! 방패를 뚫을…….”

콰아아앙!!

그때였다.

쏘론이 뒤를 바라본 순간, 굉음과 함께 그를 따르던 배들이 산산조각 나며 부서지고 있었다.

“무, 무슨……?”

화살 비에 정신이 팔려 그가 놓친 것이 있었다.

거대한 바위들이 배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것 말이다.

바위들은 쏘론이 만든 방패의 결계를 종잇장처럼 짓이겨 버리며 뒤에 있던 배들을 산산조각 내버리고 있었다.

[공격하라.]

거인족의 바위였다.

쏘론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거대한 바위라 할지라도 자신의 방벽을 부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요력……?’

바위를 감싸고 있는 반짝이는 가루들.

그것들이 자신의 방벽을 무력화시키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쏘론의 얼굴이 굳어졌다.

“빌어먹을 놈들……! 이때다 싶어 달려드는군!!”

날아오는 바위들을 피하며 쏘론은 갑판에 세워 두었던 자신의 방패를 움켜잡았다.

“뿔을 세워라!!”

쩌적……! 쩌저적……!!

그의 명령에 해인들이 갑판 위에 거대한 원뿔의 기둥을 채워 넣었다.

“발사!!”

쾅-! 쾅-!! 콰강-!!

대부분의 함선이 옆쪽에 포문이 있는 것과 달리, 해인 일족의 배는 마치 석궁을 쏘는 것처럼 선원들이 줄을 당기자 갑판 위에 있던 기둥들이 일제히 앞으로 쏘아졌다.

“파도여!!!”

쏘론이 주문을 읊조리자 날아드는 뿔들과 동시에 호수의 수면이 요동치며 배의 속도가 빨라졌다.

[피해라! 뿔에 닿는 순간 몸이 녹아 버린다!!]

배에서 날아오는 뿔은 보잘것없는 나무 기둥처럼 보였지만, 그것을 본 순간 현류는 다급히 병력을 후퇴시켰다.

콰아아앙---!!!

기둥이 바닥에 박히자 마치 물풍선을 터뜨린 것처럼 기둥이 부서지며 그 안에서 물이 쏟아졌다.

[크악!!]

-아아악!!!

-웁……! 우우웁……!!

여기저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뿔이 거인의 가슴을 꿰뚫었고, 뿔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은 요정들의 날개를 녹여 버렸으며, 동시에 솟구치는 고약한 냄새는 야차의 폐를 갉아먹었다.

“약탈의 시작이다!!”

쏘론은 순간 흐트러지는 병력의 모습을 보며 있는 힘껏 도끼를 들어 올리고는 배에서 뛰어내렸다.

와아아아아--!!

호수 반대편에 도착한 해인 일족들이 일제히 야차 연합군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퍼억! 퍽!!

콰드드드득---!!!

그들의 도끼에 푸른빛이 서렸고 거인의 두터운 피부마저 도려내듯 잘려 나갔다.

엄청난 기세였다.

“…….”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좀 더 거리를 둬라.]

현류의 말이 떨어지자 호숫가에 포진되어 있던 병력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뭐 하는 짓이냐. 야차, 적을 두고 도망치다니. 너희들은 전사로서 명예도 없는 것이냐.”

[해인 놈들은 물에 가까울수록 강해진다. 굳이 놈들이 유리한 곳에서 싸울 필욘 없지.]

게다가 호수의 효과까지 받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현류는 단 한 번의 교전으로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자신들이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적어도 물 위에서는 말이지.’

[자존심이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니까.]

“약은 놈……!! 적어도 무휘는 잔머리를 굴리는 놈은 아니었는데! 후대는 겁쟁이가 되어버렸구나!”

쏘론은 도끼를 움켜잡으며 현류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런 그조차 결국 물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저 소리만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원한다면 이리 와서 덤비던가.]

빠득-

쏘론은 죽일 듯이 현류를 노려봤다.

[키에에에엑---!!]

불행 중 다행으로,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는 나가 일족이 엘더 드래곤을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싸움을 걸어온 놈들이 대응을 하지도 않을 줄이야…… 젠장, 어디서부터 말린 거지?’

호수 위에서 전투를 벌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쏘론의 생각은 어이없게도 뒤집혔다.

우습지만 전쟁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적이 있어야 가능한 법.

혼자 안간힘을 쓴다 한들 적이 반응을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호수를 빼앗으러 온 게 아니더냐!!!”

[나가 일족의 것이 된 지 수백 년. 급할 게 뭐있어. 앞으로 수백 년 괴롭히다 빼앗아도 문제 될 건 없지.]

현류는 쏘론의 분노에 차갑게 대답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너희가 바다에서 배를 타는 일은 영원히 없겠지. 호수에서 나룻배나 띄워 놀아라.]

“닥쳐!!!”

콰아아아앙……!!!

쏘론의 발이 움직였다.

“컥!!”

그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쏘론의 허리가 꺾였다.

[와씨, 따라잡느라 죽는 줄 알았네.]

바닥에 처박힌 쏘론이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규류가 있었다.

“네놈…….”

쏘론은 규류를 노려봤다.

[너희 계약자가 그러던데. 인간은 인간끼리, 일족은 일족끼리.]

규류는 쏘론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뒤에서 들으니 뻘소리도 하고 말이야. 우리가 겁쟁이라고 했나?]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쏘론에게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지, 우린 현명한 거지. 아무리 서로 경쟁하는 사이래도 적을 앞에 두고 같은 연합 먼저 배신하진 않거든.]

규류는 저 멀리 보이는 엘더 드래곤을 가리키며 말했다.

쿠그그그…….

그 순간, 거대한 드래곤이 서서히 나가 일족에 의해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호수의 효과가 대단하긴 하구나. 저렇게 빨리 엘더 드래곤을 잡다니.’

현류는 쓰러지는 드래곤을 보며 생각했다.

그가 눈짓을 주자 야차 일족의 전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만 포기하는 어때. 뒤쪽에 사신들이 보이지? 한마디만 해도 그들은 너희를 먹어 치울 거다.]

규류의 말대로 어느새 호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사신들이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며 쏘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신을 어떻게 부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을 믿나? 저놈들은 그저 죽음에 취한 괴물에 불과하다.”

[바보냐? 저들이 아니더라도 이미 전세는 기울어졌어.]

“……뭐?”

[사신들이 어째서 여기까지 와 지켜만 보고 있는 건지 아직 감이 안 오지?]

규류는 쏘론을 향해 씨익 웃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나가 녀석들이 엘더 드래곤을 사냥하기를.]

“그게 무슨 뜻이지?”

[사신과 계약까지 한 마당에서 어째서 전쟁을 종결시키지 않고 있었을까.]

화르르륵……!!

그때였다.

호수 반대편 나가 일족의 거점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설마…….”

[키에에에에엑---!!!]

그 순간, 죽었던 엘더 드래곤의 포효가 다시 울렸다.

[그래, 저걸 얻기 위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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