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 영혼 사역 Lv 10(최대)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엘더 드래곤의 시체가 들썩였지만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이대로 소멸하고 싶진 않을 텐데. 뇌를 녹여서라도 살려고 하는 네가?”
▶ 영혼 사역 Lv 10(최대)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역술이 튕겨 나갈 때마다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남궁은 계속해서 엘더 드래곤을 향해 사역을 걸었다.
[부질없는 짓 하지 마라. 용핵이 깨진 이상 저건 그저 빈껍데기에 불과하니까.]
그때였다.
목소리가 들렸다.
[나의 이름은 윌무스. 내 용핵을 잘도 깨부쉈더구나. 그런 주제에 나를 사역하려 드느냐.]
드래곤의 시체 앞에 흐릿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애매하게 숨이 붙어 있다면 영혼 병사로 만들 수가 없으니까. 확실하게 죽어야지. 안 그래?”
남궁은 그 흐릿한 연기가 엘더 드래곤의 정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딱히 나를 원망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너를 부려먹으려고 했던 건 비룡족이고 너를 죽음으로 몰아간 건 나가 일족이니까.”
남궁은 말했다.
“오히려 완벽한 죽음은 안식과도 같지. 안 그래?”
[말은 잘하는군.]
“비룡족의 수장은 죽었다. 그의 아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글쎄, 그들의 미래는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겠지.”
[비룡계에는 아직 2마리의 엘더 드래곤이 더 남아 있다. 그리고 수많은 드레이크와 사룡들까지. 그들은 비룡족에 귀속되지 않았지만 네가 비룡계를 공격한다면 가만있지 않을 거다.]
“내가 왜? 나는 팔각전쟁을 종결하러 왔지 대리자 일족들이 사는 계를 파괴하러 온 건 아냐.”
[만약 비룡족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비룡계에 머물러만 있는다면? 결국 너는 그들을 찾으러 가야 할 텐데.]
“뇌가 녹아버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하군.”
남궁은 윌무스의 말에 피식 웃었다.
[육체를 잃은 덕분에 오히려 머리가 맑아졌거든. 그토록 삶에 집착했는데…… 죽고 나서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군.]
“그래서 답은?”
[거절한다. 지금까지 삶이란 족쇄를 차고 살아왔는데…… 죽어서도 다시 또 삶에 엮이라고? 나는 이대로 조용히 소멸할 것이다.]
“그건 곤란한데. 네가 없으면 정말로 비룡계를 없애 버려야 할지도 모르거든.”
[……뭐?]
돌아서려던 윌무스는 남궁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사령술의 사용법은 2가지가 있다. 영혼을 계약하여 영혼 병사를 만드는 것과 죽은 시체를 일으켜 언데드로 사용하는 것.”
그는 손가락을 들었다.
“전자는 육체가 소멸되었지만 적어도 너의 의지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는 너의 영혼을 소멸 시킨 뒤 남은 빈껍데기를 이용하는 거지.”
[지금 그건…… 협박인가. 우습지도 않은 소리군. 영혼 사역은 술자에게 우호적인 영혼만이 가능하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래서 하는 소리야. 지금부터 네가 내게 우호적이 되면 될 일.”
[크, 크크큭…….]
남궁의 말에 윌무스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거 완전히 미친놈이로군! 뜬금없이 내게 찾아와 하는 소리가 뭐? 갑자기 네게 우호적이 되라고?]
“뭐가 우습지? 나를 따르는 영혼 병사들은 나와 일면식도 없는 자들이다. 나는 그들의 얼굴조차 모른다. 적어도 거기에 비하면 네가 훨씬 낫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우호적일 수가 있나?]
윌무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궁에게 되물었다.
“목표가 같으니까. 봐라. 원시성령도 내게 힘을 보태었다. 계의 창조자도 인정한 나를 고작 드래곤인 네가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
[너를 따른다고 해서 내가 얻는 것이 뭐지? 어차피 나는 죽었는데.]
“그거야말로 바보 같은 물음이로군. 어째서 너는 삶에 집착했지?”
[그건…….]
“죽음이 두려운가?”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겠지. 보지 못한 미래가 궁금하기 때문 아닌가?”
남궁은 윌무스를 바라봤다.
“비룡족 역시 대리자 일족이니 너 역시 수많은 카니발을 봐왔겠지. 하지만 알다시피 한결같은 결과였을 거다.”
[…….]
“그런 미래를 보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 왔을 리가 없고. 그렇다면 답은 반대겠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래를 보고 싶은 것.”
남궁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윌무스의 눈빛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아닌가?”
[그걸 네가 보여줄 수 있는가.]
“물론.”
윌무스는 물끄러미 남궁의 옆에 있는 나트리엘을 바라봤다.
[과연 원시성령조차 따르는 너를 의심하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인가…… 내게 원하는 것이 뭐지?]
“간단하다. 비룡계의 보고를 여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남은 수장 아들의 패배 선언이 필요하겠지. 그들은 아직 항복을 하지 않고 도망쳤으니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군. 대신 나 역시 조건이 있다.]
“뭔데?”
[비룡족이 너희들에게 항복을 하게 되면 수장의 아들은 살려다오.]
▶ 영혼 사역 Lv 10(최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알림이 변했다.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바퀴벌레 같은 새끼!! 더럽게 끈질기구나!!”
쏘론은 신경질적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며 점혈을 펼치는 규류에 그의 도끼는 점차 느려지고 있었다.
[크, 크큭…… 물 밖으로 나온 해인 일족은 별 볼 일 없군. 아니면 내가 강한 건가?]
[그런 말은 수장을 죽이고 난 뒤에 하는 게 어때? 잘난 척하기엔 네 얼굴이 너무 엉망이거든.]
[킬킬.]
현류의 말에 규류는 웃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만만한 것도 이해는 가는 일이었다. 물 밖이든 아니든 간에 어쨌든 쏘론은 한 일족의 수장이었다.
수장과의 대결에서 이 정도로 밀리지 않고 싸울 수 있다는 건, 규류 역시 이제 수장급의 실력을 가졌다는 의미였으니까.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강해.’
현류는 규류의 전투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쏘론의 공격은 확실히 서서히 무뎌지고 있었다.
도끼의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고 그가 사용하던 능력들은 더 이상 규류에게 통하지 않았다.
‘물로 돌아가야 한다.’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호수를 슬쩍 바라본 순간, 규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놀리듯 말했다.
[마음대로 해봐.]
“……크아아아아!!!”
쏘론은 있는 규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끼를 집어 던지며 호숫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쯧쯧, 이런 실력으로 팔각전쟁을 노렸다니.]
찰박-
호수에 발이 닿는 순간 초조했던 쏘론의 표정이 살아났다.
“죽여주…….”
서걱-
그때였다.
검은 낫이 그의 목을 가볍게 베었다.
[기다리는 것은 끝났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쏘론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며 들려오는 아카샤의 목소리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분명 쏘론의 발이 물에 닿았다.’
현류는 사신이 된 아카샤를 바라봤다.
과거 엘프의 모습은 사라지고 검은 로브와 낫을 든 그는 그저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자일 뿐이었다.
‘물 위에서 해인 일족은 강하다. 그런 쏘론을 단 일격에 죽이다니…… 쉽지 않은 자들이야.’
위상도 아니고 대리자 일족도 아닌 인외의 존재들.
하지만 그들의 힘은 지금 본 것처럼 결코 쉽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걱정 마라. 이제 막 사신의 이름을 단 것뿐이다. 일족의 수장을 그리 쉽게 죽일 만큼 강하지 않아.]
현류의 눈빛을 읽은 걸까.
수면 위에 떠 있던 아카샤가 천천히 바닥에 내려오며 말했다.
[호수의 힘이 우리에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치가 쏘론을 상대로 그렇게 선전을 할 순 없었겠지.]
[호수의 힘이 돌아왔다고?]
[잘 봐라.]
아카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둘은 자신들의 몸을 감싸는 미약한 힘을 뒤늦게 깨달았다.
[잠깐, 호수의 힘이 우리에게 적용된다는 건…….]
[나가 여왕이 죽었다는 뜻이겠지.]
[……!!!]
아카샤의 말에 규류와 현류는 서로를 바라봤다.
[팔각전쟁이…….]
[끝났다?]
솨아아아아---!!!
그 순간, 호수에서 엄청난 물보라가 일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수면 위로 머리를 드러낸 거대한 써펀트의 등장에 모두가 경계했지만, 규류는 녀석을 본 순간 소리쳤다.
[용아!]
푸른 써펀트의 머리 위엔 남궁이 있었다.
“부르지 않았다고 너무 서운해하지 마라. 호수에서 싸우는 건 위험했으니까.”
[크륵, 크륵.]
이해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는 용아의 이마를 가볍게 두들기고서 남궁은 바닥에 내렸다.
“아직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비룡족을 해결해야 하고, 요정족과도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요정족이라…… 쉬운 일은 아니군요.]
“세상 일이 어디 쉽겠나. 요정족도 요정족이지만 더 복잡한 일은 많지.”
남궁은 카를로스를 떠올리며 말했다.
“뭐…… 아직 처리할 것들이 남긴 했지만. 그래도 호수전의 승리를 기뻐할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차르릉-
남궁은 품 안에서 작은 열쇠 꾸러미를 꺼내 둘에게 흔들었다.
[나가 일족의 금고 열쇠!!]
규류가 그것을 단박에 알아보고는 소리쳤다.
* * *
▶ 나가 여왕의 일곱 창고의 열쇠가 모두 맞춰졌습니다.
▶ 열쇠 꾸러미의 소지자는 창고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3개의 보구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 이후 열쇠 꾸러미를 분실하지 않는 이상 6개월에 한 번씩 원하는 물건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와…… 엄청나네.]
황금빛 비늘로 뒤덮인 일곱 개의 창고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라칸하임의 창고는 장난이었네요.]
산처럼 쌓인 보물들이 있던 거인족의 라칸하임의 창고도 엄청났지만, 그 대단했던 창고도 나가 여왕의 창고에는 비할 바가 못되었다.
“여왕의 욕심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보여주는 것이겠지.”
말은 담담히 했지만 남궁도 창고 안의 보물들을 보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일곱 개의 창고 중 지금 자신들이 있는 마지막 창고는 놀랍게도 에픽 등급 이하의 물건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건 나도 처음이로군.’
사방에 보랏빛의 이름을 가진 무구들만 쌓여 있으니 오히려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
[이번에도 찾으시는 건 나가 일족의 보물이시겠죠? 제 기억으로 나가 일족의 보물은 호수의 홀일 겁니다. 수(水) 계열의 마법력을 대폭 올려주는 것이죠.]
규류는 자신 있다는 듯 눈썹을 씰룩이며 남궁에게 말했다.
“아니.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냐.”
[그럼요?]
“나가 여왕도 다루지 못해서 숨겨둔 무구.”
[잉, 그런 게 있을까요? 거인족이야 도구를 다루는 데 미숙해서 그렇다 쳐도 마법 일족인 나가 여왕이 다루지 못하는 도구는 없을 것 같은데…….]
그때였다.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던 규류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태초의 운석을 티탄이 다루지 못한 건 단순히 그가 부족해서가 아냐.”
[저, 저건…….]
규류는 창고 속 보물들을 헤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다루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그 물건이 대단하단 방증이니까.”
나가 여왕조차 다루지 못해 꼭꼭 숨겨 놓은 보구.
[너, 넘버링 1……?!]
당연히 대단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