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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화 (196/270)

196화

[넘버링 1번을 나가 여왕이 가지고 있었다니…….]

규류는 창고 가장 안쪽에 갖은 술법으로 봉인되어 있는 물건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나저나 정말로 빼앗기기 싫었나 봅니다. 이 정도로 많은 결계를 쳐놓다니 말이죠.]

“모르지. 너무 위험해서 봉인을 한 것일지도.”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넘버링이 있는 보구인데요. 넘버링이 있다는 건 카니발을 위해 필요한 물건이라는 뜻이잖습니까.]

“필요한 물건이 꼭 모든 사람들에게 이득을 주는 것만은 아니니까.”

[……??]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규류를 뒤로한 채 남궁은 봉인된 제단 위에 놓여 있는 그것을 바라봤다.

“팔괘(八卦).”

그것은 작은 향로였다.

무기도 아니고 갑옷도 아니고 심지어 악세서리도 아닌 그것이 어째서 1번의 넘버링을 가진 것일까.

넘버링 1.

이름 : 팔괘(八卦)

등급: 레전더리(최고)

▶ 음과 양, 삼라만상을 모두 담겨져 있다고 알려진 향로. 다른 보구들과 달리 태초의 근원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 향로에 피울 수 있는 향의 개수는 모두 8개이며 각각에 하나의 영혼을 태울 수 있다.

▶ 영혼을 향로 안에 태우게 되면 한 단계 더 깊은 심연에 도달 할 수 있다.

▶ 향의 주인도 향초의 제물이 될 수 있다.

우우우웅…….

창고의 주인이 바뀌어서일까.

온갖 봉인의 술법들로 가득한 제단은 의외로 남궁의 손이 닿자 그 어떤 것도 발동하지 않았다.

탈칵-

쉽게 팔괘를 제단에서 꺼낸 남궁은 향로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새하얀 모래가 담겨 있었고 옆 칸에 가지런히 8개의 향초가 놓여 있었다.

[한 단계 더 깊은 심연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령술의 영혼 병사들을 강화시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까요.]

“글쎄. 나도 모르지. 나도 처음 보는 거니까. 다만 확실한 건 이 향초는 꼭 죽은 자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이야.”

남궁은 향로에 꺼낸 향을 위로 들어 올려 살폈다.

▶ 향에 영혼을 담을 수 있습니다.

▶ 영혼을 담으시겠습니까?

▶ 주의 : 향에 담긴 영혼은 향을 태우기 전까지 다시 꺼낼 수 없습니다.

남궁은 살짝 긴장한 모습으로 다시 팔괘 안에 향을 집어넣었다.

[영혼 병사를 써보시는 것 어떻습니까?]

“좀 더 살펴본 뒤에. 향을 태우면 향에 담긴 영혼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 건지 모르니까.”

그는 심연이라는 단어가 거슬렸다.

“위상이 존재하는 현재보다 더 과거인 란(亂)과 우(无)가 살던 시대는 심연이 아니라 태초라 불렸어.”

단순히 진화의 의미였다면 심연이 아닌 태초라는 단어가 더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심연에 닿는다는 것이 꼭 좋은 의미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향의 개수가 8개.’

심연이라는 말과 함께 남궁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위상의 수도 8명, 대리자 일족의 수도 8개라는 점이었다.

어쩌면 향에 담아야 할 영혼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해인 일족의 보구가 있는 섬에도 가시렵니까?]

“아니. 거기까지 가려면 너무 시간이 걸려. 녀석들의 섬까지는 배를 몰아서 가야 하니까.”

규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긴 네가 가서 안에 어떤 게 있는지 확인해서 내게 알려주도록 해. 아마 레전더리는 없을 듯싶으니…… 쓸 만한 것들로 추려봐.”

[알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 할까요? 요정족과 비룡족 말입니다.]

“흐음…….”

비룡족이야 그렇다 쳐도 요정족을 처리하는 것은 사실 좀 고민을 해야 할 일이었다.

“규류. 너는 당장 왕좌의 자리에 오르고 싶나?”

[아뇨.]

남궁의 물음에 규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어째서? 이형의 왕에 오르는 것은 모든 대리자 일족의 염원이잖아. 그리고 바로 코앞까지 왔다.”

[뭐…… 왕좌에 올라서 현류 녀석을 놀리고 싶긴 한데 지금은 별로 생각 없습니다.]

“어째서?”

[그 자리에 올라서 위상의 힘을 남궁 님께 드리는 거라면 모를까. 또 만에 하나 위상의 힘을 드렸다가 제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죽기는 싫은가 보군.”

[에이, 설마요. 야차가 죽음을 두려워할 리가. 다만 만에 하나 제가 잘못된다면 남궁 님께서 카니발을 공략하는 걸 못 보지 않습니까.]

남궁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현류 녀석이 분해하는 모습보다 남궁 님이 카니발을 끝냈을 때 위상들의 얼굴이 더 궁금하거든요.]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소민이를 위한 규류의 배려이기도 했다.

팔각전쟁의 마무리는 카니발이 끝날 때쯤 해도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이형의 왕위가 위상의 힘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그것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규류는 말했다.

[짐은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에 남궁은 그의 이마를 한 대 툭 치며 말했다.

“쓸데없는 물건 가져오지 말고 카니발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로 챙겨와.”

[여부가 있겠습니까.]

“먼저 간다.”

[흐음, 하긴 지금쯤 샐러맨더와의 전투가 한창이겠군요. 어서 가서 문을 닫으셔야죠.]

“거긴 전에도 말했다시피 애들에게 맡길 거야. 샐러맨더 하나 잡는 것쯤은 그들에게 더 이상 일도 아냐.”

[그럼…… 아! 그렇군요.]

규류는 남궁이 어디로 향할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곱 뱀의 주인의 계시자로서 요청한다.”

남궁은 보고의 문을 있는 힘껏 밀며 말했다.

“삼독문(三毒門)을 열어라.”

쿠그그그그그그---

그 순간, 열린 보고의 문 뒤로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 삼독문 - 은(銀)에 입장하였습니다.

* * *

짝- 짝- 짝-

쏟아지던 빛에 감았던 눈을 뜨자 그곳에는 요르가 있었다.

[과연, 대단해. 삼독문의 2번째를 벌써 열게 만들다니 말이야. 엘더 드래곤을 사령술로 부릴 생각은 조금 예상되는 일이었지만 호수에 갇혀 있던 엘프를 사신으로 만들다니.]

요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지금 위에서는 또 한 번 난리가 난 것 아느냐. 특히나 미풍의 어머니와 화롯불을 다루는 자는 속이 쓰려 미칠 노릇이겠지.]

그는 둘을 상상하면 키득거렸다.

[기껏 다음 보구를 주면서까지 계시자를 한 번 더 영입하는 수고를 했는데, 격차를 좁히기는커녕 더 벌어졌으니 말이야.]

“웃기고 있네. 제렌과 클락을 계시자로 뽑은 건 정말로 나와 경쟁을 시키려는 게 아니잖아.”

요르의 말에 남궁은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그 둘은 이제 카니발의 승리는 상관없이 날 괴롭히려 할 뿐이니까. 그들이 누군지 알아서 뽑은 것이잖아.”

[하여간 너무 잘 알아서 가끔은 재미가 없단 말이지.]

남궁의 대답에 요르는 입맛을 다셨다.

“사령술의 스킬들이 모두 최대에 도달했어. 이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전생에도 여기까지 도달하진 못했나 봐?]

“애초에 계시자도 아니었으니까.”

[25년 동안 쌓아 올린 것보다 더 빠르게 사령술을 익히다니, 다른 위상들의 의욕이 꺾이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군.]

“그래서 방법은?”

[없다.]

“……뭐?”

[빠른 건 좋지만 너무 빨라. 시험 문제가 준비되지 않았는데 시험을 치르겠다고 와봐야 어쩔 도리가 없지.]

남궁은 그의 대답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일전에 내가 네게 퀘스트를 줬던 것 기억하느냐.]

“화신을 찾는 것?”

[그래. 그 퀘스트의 보상도 기억하겠지.]

“획득한 화신의 숫자만큼 새로운 특전이 생성된다.”

[7마리의 화신 중 4마리를 획득했을 때 사령술의 능력들을 승급 할 수 있는 보상이 주어진다.]

“그 말은…….”

[그래. 이놈아. 적어도 17번째 문까지 도달했을 때나 할 수 있는 등급 진화를 벌써 해달라고 오면 어쩌라는 거냐.]

요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남궁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아무런 이유 없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우로보로스, 튀폰, 라미아…… 앞으로 만나게 될 내 화신들을 사냥하고 그들의 내단을 먹음으로써 너는 사령술의 다음 단계를 익힐 그릇을 갖추게 되는 거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네가 생각지도 못하게 야차 일족의 혈맥술을 익혀 버리는 바람에 혼돈이 오고 만 거다. 그 술법 때문에 사령술의 다음 단계를 익힐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졌거든.]

“그래서 방법은?”

[나의 4번째 화신인 우로보로스의 내단이 사령술의 능력을 진화 시킬 수 있는 재료다.]

“우로보로스라면…….”

[그래, 17번째 문의 보스기도 하지.]

난감한 일이었다.

이제 겨우 7번째 문을 공략하고 있는 상황에서 17번째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으니까.

“설마 내가 그 말을 듣고 알겠다며 그냥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방법이 없는데 어쩌겠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너희들은 했던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잖아.”

하지만 오히려 그런 그를 보며 코웃음을 치는 건 남궁이었다.

“격차를 줄이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다른 위상들은 아직 받을 수 없는 2번째 보구를 줬잖아.”

[나를 그런 허접한 놈들과 똑같이 생각하는 거냐.]

“그들에 비한다면 내가 훨씬 더 정당하다는 걸 말하는 것뿐이다.”

[흐음…… 뭐, 확실히 네 말대로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단지 네가 곤란할 뿐이니까.]

“말해봐.”

[시험을 치르는 거다.]

“시험?”

[문의 보스로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능력을 익히기 위한 시험으로서 말이지.]

“어떻게 해야 하지?”

[앞으로 깨어날 우로보로스를 거두어 이곳에서 소환을 시키면 된다. 대신 너 혼자서 녀석을 상대해야 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군.”

[녀석아, 너는 뭐든지 너무 쉽게 생각하는구나. 일에는 최소한의 순서라는 것이 있다. 네가 필요한 건 우로보로스의 내단이랬지?]

남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그 전에 존재하는 나머지 화신들도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차피 녀석들이 문의 보스라면 결국 상대해야 하기는 매한가지야.”

[다르지. 카니발의 사냥과 시험은.]

“……?”

[시험은 어떠한 화신이든 모두 소환할 수 있지만 화신의 순서에 따라 남아 있는 화신들까지 모두 소환된다.]

요르는 턱을 괴며 남궁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우로보로스를 소환하게 되면 앞에 있는 2마리의 화신들도 한꺼번에 소환된다는 뜻이다.]

그는 남궁을 바라봤다.

[너는 3마리의 화신과 동시에 싸워야 한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

입을 다문 남궁의 모습에 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리 너라도 부담스러운 일이겠지. 그래서 안 된다고 했던 거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그렇게 되면 카니발의 문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다른 보스로 대체되나?”

[아니, 그렇진 않다. 소환된 화신들만큼 문의 숫자가 줄어들게 되지. 물론, 그들을 네가 사냥했을 때의 일이겠지만.]

“문의 숫자를 줄일 수 있다…….”

남궁은 요르를 바라봤다.

“그렇게 좋은 걸 왜 이제야 말해주는 거야?”

[……뭐?]

“그 말은 나 혼자서 6개의 문을 미리 닫을 수 있다는 뜻이잖아.”

[무슨 소리냐. 우로보로스는 4번째 화신이라고 했잖느냐. 레비아탄을 사냥했으니 6개가 아니라 3개의 문을…… 설마?]

요르는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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